이징 (조선 전기)
1. 개요
이징은 조선 전기의 인물로, 소위장군, 호군 등을 역임하고 사후 증 이조참의,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성종 재위 시 딸의 혼인 문제로 사간원과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나, 이후 복직하여 선무랑 목청전직을 지냈다. 그의 고조부는 고려 말의 장수 이의이며, 할아버지는 중추원경력 이인숙이다. 이징은 양천 허씨, 그리고 다른 부인을 두었으며, 장남 이지방과 아들 이지영을 두었다. 묘소는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에 있었으나, 2017년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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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육군 군인 -
김일성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본명으로 193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을 했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통치했으며, 한국 전쟁을 일으키고 주체사상을 내세워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한 정치인이다. -
육군 군인 -
샤를 드골
샤를 드골은 프랑스의 장군이자 정치가로서, 제2차 세계 대전 중 자유 프랑스 운동을 이끌고 전후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며 프랑스 해방과 재건에 기여했으나, 독단적인 성격과 국수주의적 경향으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2. 생애
이징은 조선 초기의 인물로, 충찬위(忠贊衛)를 지냈다. 성종 때 딸이 하성위 정현조의 후처가 된 일로 1482년(성종 13년) 사간원과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490년(성종 21년) 복직하여 선무랑 목청전직(宣務郞 穆淸殿直)을 역임했다.
사후 이조참의를 거쳐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대장리(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에 있었으나, 2017년 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으로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단강1리로 이장되었다.
2.1. 가계 배경
이징은 소위장군 행충좌위부사정과 호군을 역임하고 사후 증 통정대부 형조참의에 추증된 이경연과, 홍문관교리 남숙문의 딸 의령남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년은 미상이다. 고조부 이의는 고려 말 문신 출신 장수로, 강계원수 재직 시 1차 요동 정벌 당시 좌군도통사 이성계의 휘하로 출정하였다. 그러나 이성계가 2차 요동 정벌에서 회군한 후 조선을 건국하자, 충신은 불사이군이라 하여 관직을 거부하고 순흥 소백산에 은거하였다. 증조부 이만은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여 인진사, 홍로부사, 사재감 등을 거쳐 중추원부사를 지냈으나, 조선 건국 후 봉렬대부 호분위경력으로 강등되었다.
할아버지 이인숙은 사정, 직장을 거쳐 중추원경력, 호분위경력을 역임하고 1433년(세종 15년) 9월 지덕천군사로 부임하였고, 최종 관직은 판사복시사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교리를 지낸 남숙문의 딸로, 외증조부는 남근이고, 외고조할아버지는 고려말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 사천백 남을진이다.
형제로는 이숭(李崇)이 있는데, 이숭의 행적, 생졸년월일, 사망 원인, 묘소는 기록에 전하지 않는다.
2.2. 초기 생애와 관직
소위장군 행충좌위부사정과 호군을 역임하고 사후 증 통정대부 형조참의에 추증된 이경연과, 부인인 홍문관교리 남숙문의 딸 의령남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생년은 미상이다. 고조부 이의는 고려 말의 문신 출신 장수로, 강계원수 재직 시 1차 요동 정벌 당시 좌군도통사 이성계의 휘하로 출정하였다. 그러나 이성계가 2차 요동 정벌에서 회군한 후 조선을 건국하자, 충신은 불사이군이라 하여 관직을 거부하고 순흥 소백산에 은거하였다. 증조부 이만은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인진사, 홍로부사, 사재감 등을 거쳐 중추원부사를 지냈으나 조선 건국 후 봉렬대부 호분위경력으로 강등되었다.
할아버지 이인숙은 사정, 직장을 거쳐 중추원경력, 호분위경력을 역임하고 1433년(세종 15년) 9월 지덕천군사로 부임하였고, 최종 관직은 판사복시사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교리를 지낸 남숙문의 딸로, 외증조부는 남근이고, 외고조할아버지는 고려말의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 사천백 남을진이다.
형제로는 이숭(李崇)이 있는데 이숭의 행적은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또한 이숭의 생졸년월일, 사망원인, 묘소 역시 기록에 전하지 않는다.
그의 초기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충찬위(忠贊衛)가 되었다. 성종 때 충찬위(忠贊衛)로 재직 중 그의 딸이 하성위 정현조의 후처가 되었다가, 이것이 이길원의 딸이자 이오의 누이가 반성위 박자순의 후처가 된 사건과 함께 문제가 되어 1482년(성종 13년) 5월부터 사간원과 사헌부의 탄핵, 여러 번의 논란 끝에 파직되었다. 1490년(성종 21년) 7월 7일 작첩을 돌려받았다. 이후 선무랑 목청전직(宣務郞 穆淸殿直)에 이르렀다.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증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가 다시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
2.3. 파직과 복직
성종 때 충찬위(忠贊衛)로 재직 중 그의 딸이 하성위 정현조의 후처가 되었다. 이것이 이길원의 딸이자 이오의 누이가 반성위 박자순의 후처가 된 사건과 함께 문제가 되어 1482년(성종 13년) 5월부터 사간원과 사헌부의 탄핵, 여러 번의 논란 끝에 파직되었다. 1490년(성종 21년) 7월 7일 작첩을 돌려받았다. 이후 선무랑 목청전직(宣務郞 穆淸殿直)에 이르렀다.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2.4. 사후
사후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대장리(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산 18번지 계좌(癸坐)에 안장되었다. 근처에는 아버지 이경연 내외의 묘소가 있었다.
2017년 6월 성남 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으로 2017년 8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산 19번지에서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단강1리로 이장되었다. 아버지 이경연 내외의 묘소 아래에 묘가 조성되었고 그 아래에는 증손자 이감과 풍천임씨, 예천윤씨 묘소, 4대손 이성헌 내외와 5대손 이길남 묘소, 그 아래에는 7대손 이홍관과 밀양박씨의 묘소가 조성되었다. 2017년 이장된 묘소 근처에는 숙종대에 건립된 그의 7대손 송곡 이서우의 사당인 영정각이 있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할아버지 | 이인숙(李仁淑) | 판사복시사 |
| 할머니 | 해주 오씨(海州吳氏) | 지인천군사 오부(吳溥)의 딸, 검교좌정승 이성중의 외손녀 |
| 아버지 | 이경연(李景衍, 다른 이름은 경행(景行)) | 증 통정대부 형조참의 |
| 어머니 | 의령 남씨(宜寧南氏) | 홍문관교리 남숙문의 딸, 남을진의 증손녀 |
| 동생 | 이숭(李崇) | |
| 부인 | 양천 허씨(陽川許氏, ? - 1509년) | 사헌부장령, 의정부 사인 허적(許迪)의 딸 |
| 장녀 | 우계 이씨 | |
| 사위 | 정현조(鄭顯祖) | 하동인, 편정공, 종성령 이구의 장인 |
| 차녀 | 우계 이씨 | |
| 사위 | 이오(李晤) | |
| 삼녀 | 우계 이씨 | |
| 사위 | 조효돈(趙孝暾) | 현감 |
| 장남 | 이지방(李之芳, 1466년 ~ 1537년) | |
| 자부 | 청송 심씨(靑松沈氏) | 봉사 심안신(沈安信)의 딸, 관찰사 증영돈녕부사 망세당 심선(沈璿)의 손녀 |
| 손녀 | 우계 이씨 | |
| 손자 | 이광식(李光軾, 1493년 ~ 1563년) | |
| 손부 | 함안 이씨(咸安李氏) | 정국공신 평안도관찰사 이세응(李世應)의 딸 |
| 손녀 | 우계 이씨 | |
| 부인 | ? | |
| 아들 | 이지영(李之英) | |
| 자부 | 성주 이씨 | |
| 손자 | 이형손(李亨遜) | 무과 군수 |
| 외할아버지 | 남숙문(南叔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