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선 (1898년)
1. 개요
이흥선은 1898년 출생하여, 대한제국 법무부 협판을 지낸 이재정의 아들이자, 언론인이자 수필가인 이능선의 형이다. 1920년 센슈 대학을 졸업하고, 1927년 경성부 창신동에 거주하며 철거 명령에 직면했다. 같은 해 경기도 시흥군 북면 신길리 구장을 역임했다. 이후 금강산선 현리역 역장, 매일신보사 동경지사 영업주임을 지냈다. 1949년 동생 이능선과 함께 김구를 방문하여 친필 휘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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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람 -
한민족
한민족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거주하며, 남한에서는 '한민족' 또는 '한국인', 북한에서는 '조선민족' 또는 '조선인'으로 불리고, 동북아시아에서 기원하여 삼국시대 이후 다양한 민족의 혼합을 거쳐 형성되었으며, 한국어와 유교, 불교, 샤머니즘 등의 문화를 공유하지만 남북 분단 이후 문화적 변화를 겪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약 8천만 명의 인구가 분포하며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 문제에 직면해 있다. -
일제 강점기의 기자 -
이능선 (1902년)
이능선은 일제강점기 및 광복 이후 언론인, 문인, 친일 행위자로 활동했으며, 매일신보 기자 및 발행인을 역임하고, 정국물산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 등을 지냈으며, 1963년에 사망했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2. 생애
대한제국의 관료였던 이재정의 아들로 경성부 수은동(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활동 시기 인천에는 김포 출신의 동명이인 사업가 이흥선이 있었는데, 그는 이 인물보다 10여 년 연하였다. 그는 일본 유학 후 경기도 시흥군의 구장, 금강산선 현리역 역장, 매일신보사 동경지사 영업주임 등을 지냈으며, 광복 이후에는 백범 김구와 만나기도 했다.
2.1. 가계
아버지는 대한제국 시절 법무부 협판, 탁지부 협판과 인천부윤 겸 인천감리사를 지낸 이재정이다. 어머니는 아버지 이재정의 후처인 안동 김씨이다. 할아버지는 돈녕부도정과 이문학관을 역임한 이유녕이며, 조선 순조 때의 통신사 이현상은 삼종증조부뻘 되는 친척이다. 매일신보 기자이자 잡지인, 수필가였던 이능선은 그의 친동생으로, 5촌 당숙에게 양자로 갔다. 경성부 수은동(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2.2. 일본 유학 및 사회 활동
일본에 유학하여 1920년 7월 센슈 대학( 専修大学일본어 )을 제39회로 졸업했다.
1921년 5월 19일, 동생 이양선은 이흥선이 미성년자인 자신을 이용하여 인감을 도용하고 토지를 저당잡아 팔려 한다며 주의를 당부하는 광고를 신문에 내기도 했다.
1927년 당시 경성부 동대문구 창신동 야산의 집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해당 지역이 국유지라는 이유로 다른 30여 가구 주민들과 함께 철거 명령을 받았다. 당시 창신동 거주민 200여 명은 당국에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거절당하고, 6월 30일까지 철거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같은 해 무렵에는 경기도 시흥군 북면 신길리(현재의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동)의 구장(區長)을 지냈다.
1934년 7월 25일, 우체국이 없던 강원도 김화군 통구면 현리에 금강산선 개통 이후 지역 발전을 위해 지역 유지 40여 명이 모여 현리 우편취급소 설치 기성회를 조직할 때 참여하여 고문으로 위촉되었다. 같은 해 8월 26일 당시에는 금강산선 현리역 역장으로 재직 중이었으며, 이는 조선신문사 내금강지국 확장 축하 광고에 이름이 실린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35년 8월 9일 매일신보사 동경지사의 영업주임( 每日申報社 東京支社 營業主任ko-Hani )으로 임명되었다.
귀국 시점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949년까지 생존해 있었다. 그해 동생 이능선과 함께 서울 서대문구 경교장을 찾아 김구를 만났다. 김구는 청년 시절 자신의 재판을 담당했던 아버지 이재정과의 인연을 고려하여, 9월 27일과 9월 28일 이틀에 걸쳐 두 형제에게 직접 쓴 휘호를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