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젠 도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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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젠 도모야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다. 히로시마 국제학원 대학을 졸업하고 2006년 육성 드래프트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2008년 1군에 데뷔하여 2루타를 기록했고, 2012년에는 이스턴 리그 수위 타자를 차지했다. 2015년 어깨 부상으로 은퇴를 결정했으며,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 홍보 담당, 팜 디렉터 보좌 등을 거쳐 2025년부터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여자 팀의 코치를 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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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젠 도모야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 |
| 이름 | 인젠 도모야 |
| 일본어 이름 | 隠善 智也 (いんぜん ともや) |
| 로마자 표기 | Inzen Tomoya |
| 출생일 | 1984년 6월 5일 |
| 출생지 | 히로시마현 히가시히로시마시 |
| 신장 | 174cm |
| 체중 | 73kg |
| 포지션 | 외야수, 1루수 |
| 투구 | 좌투 |
| 타석 | 좌타 |
| 프로 입단 정보 | |
| 드래프트 연도 | 2006년 |
| 드래프트 순위 | 육성 선수 드래프트 4라운드 |
| NPB 경력 | |
| 소속 구단 |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7년 ~ 2015년) |
| 첫 출장 | 2008년 3월 30일 |
| 마지막 출장 | 2015년 9월 2일 |
| 등번호 | 99 |
| NPB 통산 성적 (2008년 시즌 기준) | |
| 타율 | 0.290 |
| 안타 | 18 |
| 타점 | 4 |
| 코치 경력 | |
| 소속 팀 | 요미우리 자이언츠 여자팀 |
| 역할 | 코치 |
2. 선수 경력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 프로 입단 전 ===
히로시마현 히가시히로시마시 출신으로, 히가시히로시마 시립 시와호리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소베 고이치의 아버지가 감독을 맡고 있는 팀에서 소프트볼을 시작했다. 히가시히로시마 시립 시와 중학교에서는 투수 겸 외야수로 3번 타자를 맡았다. 히로시마 국제학원 고등학교 시절에는 3번·1루수·외야수 뿐만 아니라 투수까지 맡았으며, 왼손 투수이면서 3학년 봄철 대회 준결승에서는 유격수를 지킨 적도 있다. 2학년 여름 대회에서 8강, 2학년 가을 대회에서는 4강, 3학년 봄 현 대회에서 4강, 3학년 여름 대회에서는 8강에 진출했다. 히로시마 국제학원 대학 진학 후, 히로시마 6대학 리그의 중심 타자로서 대학 통산 13홈런, 베스트 나인 4회, 3학년 봄에는 MVP를 석권했고, 투수가 부족한 사정으로 인해 투수로도 겸임했다.
2006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육성 드래프트 4순위로 지명받아 입단했다. 이후 12월 14일 도쿄 도내의 호텔에서 열린 입단 회견에서 “동경하고 있는 선수는 다카하시 요시노부 선수”라고 발언했다. 히로시마 국제학원 대학 출신 프로 야구 선수는 야마구치 카즈오에 이어 두 번째였다.
=== 프로 입단 후 ===
==== 2007년 ====
2군에서 활동하여 시즌 후반에 기대 이상의 타격과 호수비로 활약하는 등 최종적으로 타율 2할 8푼 4리를 기록했다.
==== 2008년 ====
3월 21일에 시범 경기와 교육 리그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지배하 선수로 등록되면서 새로운 등번호는 99번으로 배정받았다. 3월 30일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3차전)에서 9회초에 팀의 4번째 투수인 오치 다이스케의 대타로 기용돼 1군 경기의 첫 출전을 완수했다. 그 타석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때려내 프로 데뷔 후 첫 안타를 기록했다.
5월 11일 도쿄 돔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선발로 기용돼 하라 다쓰노리 감독의 믿음에 부응하듯 3안타 3타점의 맹활약으로 이 경기의 수훈 선수로 선정되었다.
==== 2009년 ~ 2011년 ====
2009년 시즌부터는 등번호를 69번으로 변경했다.[1] 1군 공식전 3경기에 출장했다.
2011년에는 이스턴 리그의 타율 부문에서 1위와 5리 차이인 3할 2푼 5리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7월에 2년 만에 1군에 승격했고, 시즌 종료 후 11월에 전 연예인 아사유와 결혼했다.
==== 2012년 ~ 2015년 ====
2012년에는 이스턴 리그에서 타율 0.327로 수위 타자 타이틀을 획득했다. 1군 공식전에는 22경기에 출장했지만, 2안타, 1타점, 타율 0.095의 성적에 그쳤다.
2013년에는 다카하시 요시노부의 부상으로 인해, 공식전 개막 직후인 4월 5일에 시즌 첫 출장 선수 등록을 했다.[2] 하지만, 1군 공식전 1경기(대타로 1타석)에 출장했을 뿐, 같은 달 8일 등록 말소 후에는 2군 생활에 전념했다.[3]
2014년에는 프레데리크 세페다가 오른쪽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 것을 받아, 세페다를 대신하여 8월 22일에 급히 시즌 첫 출장 선수 등록을 했다. 당일 주니치전(도쿄 돔)에 선발 출장하여 2안타를 기록한 것을[4] 시작으로, 1군 공식전 11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321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8월 30일 주니치전(도쿄 돔) 3회말 2사 만루에서 대타로 시즌 첫 타석을 맞아, 와카마츠 슌타로부터의 내야 안타로 2타점을 기록했다.[5] 하지만, 9월 2일 야쿠르트전(이시카와 현립 야구장)에서의 출루 중에 왼쪽 어깨를 부상당했다. 후에 아탈구가 판명되어 전력에서 이탈했다.[6] 1군 공식전에는 3경기에 출장했지만, 통산 2타석에서 2타수 2안타(타율 1.000) 2타점을 기록했다. 1군의 센트럴 리그 우승으로 맞이한 클라이맥스 시리즈 중에도 백업 멤버로서 연습을 계속했다. 하지만, 시리즈 종료 후 10월 18일에 구단으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은 것을[7] 계기로, 현역 은퇴를 표명했다.[8] 은젠에 따르면, 통보 당시에는 다른 구단에서 현역을 계속하길 원했지만, 아내와 2살(당시)의 장녀와의 생활을 고려하여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9] 11월 5일자로, NPB로부터 임의 은퇴 선수로 공시되었다.[10]
2. 1. 프로 입단 전
히로시마현 히가시히로시마시 출신으로, 히가시히로시마 시립 시와호리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소베 고이치의 아버지가 감독을 맡고 있는 팀에서 소프트볼을 시작했다. 히가시히로시마 시립 시와 중학교에서는 투수 겸 외야수로 3번 타자를 맡았다. 히로시마 국제학원 고등학교 시절에는 3번·1루수·외야수 뿐만 아니라 투수까지 맡았으며, 왼손 투수이면서 3학년 봄철 대회 준결승에서는 유격수를 지킨 적도 있다. 2학년 여름 대회에서 8강, 2학년 가을 대회에서는 4강, 3학년 봄 현 대회에서 4강, 3학년 여름 대회에서는 8강에 진출했다. 히로시마 국제학원 대학 진학 후, 히로시마 6대학 리그의 중심 타자로서 대학 통산 13홈런, 베스트 나인 4회, 3학년 봄에는 MVP를 석권했고, 투수가 부족한 사정으로 인해 투수로도 겸임했다.2006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육성 드래프트 4순위로 지명받아 입단했다. 이후 12월 14일 도쿄 도내의 호텔에서 열린 입단 회견에서 “동경하고 있는 선수는 다카하시 요시노부 선수”라고 발언했다. 히로시마 국제학원 대학 출신 프로 야구 선수는 야마구치 카즈오에 이어 두 번째였다.
2. 2. 프로 입단 후
2007년 시즌 후반 이스턴 리그 공식전에서 활약하며 정교한 타격과 좋은 수비를 선보여 타율 0.284를 기록했다. 2군의 동 리그 우승으로 맞이한 팜 일본 선수권에서는 출전 기회는 없었지만, 육성 선수에서 스즈키 마코토와 함께 벤치 등록을 했다.2008년에는 시범 경기와 교육 리그에서의 활약을 거쳐 3월 21일에 지배하 선수 등록으로 이행했다. 등번호도 99로 변경했다. 3월 30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진구 구장) 9회 초에 대타로 1군 데뷔를 하여 좌중간을 넘는 2루타로 1군 첫 안타를 기록했다. 5월 11일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경기(도쿄 돔)에서 1군 첫 선발로 기용되어 3안타 3타점으로 팀의 대승에 기여했다.
2009년에는 등번호를 69로 변경하고, 1군 공식전 3경기에 출장했다.
2010년에는 1군 공식전에 출장할 기회가 없었다.
2011년에는 이스턴 리그의 타율 부문에서 수위와 5리 차이인 3할 2푼 5리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7월에 2년 만에 1군에 승격했고, 시즌 종료 후 11월에 전 연예인 아사유와 결혼했다.
2012년에는 타율 3할 2푼 7리로 이스턴 리그의 수위 타자를 획득했다. 1군 공식전에는 22경기에 출장했지만, 2안타, 1타점, 타율 0할 9푼 5리의 성적에 그쳤다.
2013년에는 다카하시 요시노부의 왼쪽 다리 부상으로 인해, 공식전 개막 직후인 4월 5일에 시즌 첫 출장 선수 등록을 했다.[2] 하지만, 1군 공식전 1경기(대타로 1타석)에 출장했을 뿐, 같은 달 8일 등록 말소 후에는 2군 생활에 전념했다.[3]
2014년에는 프레데리크 세페다가 오른쪽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 것을 받아, 세페다를 대신하여 8월 22일에 급히 시즌 첫 출장 선수 등록을 했다. 당일 주니치전(도쿄 돔)에 선발 출장하여 2안타를 기록한 것을[4] 시작으로, 1군 공식전 11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321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8월 30일 주니치전(도쿄 돔) 3회말 2사 만루에서 대타로 시즌 첫 타석을 맞아, 와카마츠 슌타로부터의 내야 안타로 2타점을 기록했다.[5] 하지만, 9월 2일 야쿠르트전(이시카와 현립 야구장)에서의 출루 중에 왼쪽 어깨를 부상당했다. 후에 아탈구가 판명되어 전력에서 이탈했다.[6] 1군 공식전에는 3경기에 출장했지만, 통산 2타석에서 2타수 2안타(타율 1.000) 2타점을 기록했다. 1군의 센트럴 리그 우승으로 맞이한 클라이맥스 시리즈 중에도 백업 멤버로서 연습을 계속했다. 하지만, 시리즈 종료 후 10월 18일에 구단으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은 것을[7] 계기로 현역 은퇴를 표명했다.[8] 은젠에 따르면, 통보 당시에는 다른 구단에서 현역을 계속하길 원했지만, 아내와 2살(당시)의 장녀와의 생활을 고려하여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9] 11월 5일자로, NPB로부터 임의 은퇴 선수로 공시되었다.[10]
2. 2. 1. 2007년
2군에서 활동하여 시즌 후반에 기대 이상의 타격과 호수비로 활약하는 등 최종적으로 타율 2할 8푼 4리를 기록했다.2. 2. 2. 2008년
3월 21일에 시범 경기와 교육 리그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지배하 선수로 등록되면서 새로운 등번호는 99번으로 배정받았다. 3월 30일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3차전)에서 9회초에 팀의 4번째 투수인 오치 다이스케의 대타로 기용돼 1군 경기의 첫 출전을 완수했다. 그 타석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때려내 프로 데뷔 후 첫 안타를 기록했다.5월 11일 도쿄 돔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선발로 기용돼 하라 다쓰노리 감독의 믿음에 부응하듯 3안타 3타점의 맹활약으로 이 경기의 수훈 선수로 선정되었다.
2. 2. 3. 2009년 ~ 2011년
2009년 시즌부터는 등번호를 69번으로 변경했다.[1] 1군 공식전 3경기에 출장했다.2011년에는 이스턴 리그의 타율 부문에서 1위와 5리 차이인 3할 2푼 5리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7월에 2년 만에 1군에 승격했고, 시즌 종료 후 11월에 전 연예인 아사유와 결혼했다.
2. 2. 4. 2012년 ~ 2015년
2012년에는 이스턴 리그에서 타율 0.327로 수위 타자 타이틀을 획득했다. 1군 공식전에는 22경기에 출장했지만, 2안타, 1타점, 타율 0.095의 성적에 그쳤다.2013년에는 다카하시 요시노부의 부상으로 인해, 공식전 개막 직후인 4월 5일에 시즌 첫 출장 선수 등록을 했다.[2] 하지만, 1군 공식전 1경기(대타로 1타석)에 출장했을 뿐, 같은 달 8일 등록 말소 후에는 2군 생활에 전념했다.[3]
2014년에는 프레데리크 세페다가 오른쪽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 것을 받아, 세페다를 대신하여 8월 22일에 급히 시즌 첫 출장 선수 등록을 했다. 당일 주니치전(도쿄 돔)에 선발 출장하여 2안타를 기록한 것을[4] 시작으로, 1군 공식전 11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321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8월 30일 주니치전(도쿄 돔) 3회말 2사 만루에서 대타로 시즌 첫 타석을 맞아, 와카마츠 슌타로부터의 내야 안타로 2타점을 기록했다.[5] 하지만, 9월 2일 야쿠르트전(이시카와 현립 야구장)에서의 출루 중에 왼쪽 어깨를 부상당했다. 후에 아탈구가 판명되어 전력에서 이탈했다.[6] 1군 공식전에는 3경기에 출장했지만, 통산 2타석에서 2타수 2안타(타율 1.000) 2타점을 기록했다. 1군의 센트럴 리그 우승으로 맞이한 클라이맥스 시리즈 중에도 백업 멤버로서 연습을 계속했다. 하지만, 시리즈 종료 후 10월 18일에 구단으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은 것을[7] 계기로, 현역 은퇴를 표명했다.[8] 은젠에 따르면, 통보 당시에는 다른 구단에서 현역을 계속하길 원했지만, 아내와 2살(당시)의 장녀와의 생활을 고려하여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9] 11월 5일자로, NPB로부터 임의 은퇴 선수로 공시되었다.[10]
3. 은퇴 후
2016년 1월 1일 자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 홍보 담당으로 취임했다.[11] 2019년부터 팜 디렉터 보좌를 맡았으며, 2020년 8월 1일 자로 의료 컨디셔닝 실장 보좌로 취임했다.[12] 2021년에는 2군 매니저, 2022년에는 홍보부로 이동했다.[13]
2024년 12월 24일, 2025년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 여자 팀의 코치를 맡는 것이 발표되었다(등번호는 99).[14][15]
4. 상세 정보
4. 1. 연도별 타격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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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기
석
수
점
타
루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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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런
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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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생
번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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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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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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