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시게 모토노부
1. 개요
다니시게 모토노부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포수로서 1989년부터 2015년까지 27년간 활약했다.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뛰었으며,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로도 선발되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주니치 드래건스의 선수 겸임 감독을 맡았다. 그는 NPB 통산 최다 출장 경기, 연속 시즌 홈런, 포수 최다 출장 기록을 세웠으며, 2004년 일본 시리즈에서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2024년에는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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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 포수 / 감독 |
|---|---|
| 타석/투구 | 우타/우투 |
| 데뷔 리그 | NPB |
| 데뷔일 | 1989년 4월 11일 |
| 데뷔 팀 |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
| 최종 리그 | NPB |
| 최종 팀 | 주니치 드래건스 |
| 최종일 | 2015년 9월 26일 |
| 생년월일 | 1970년 12월 21일 (세) |
| 출생지 | 히로시마현 쇼바라시 |
| 신장 | 176cm |
| 체중 | 81kg |
| 유튜브 채널 | 구독자 12.2만명 |
| 타율 | 0.240 |
|---|---|
| 홈런 | 229개 |
| 안타 | 2,108개 |
| 타점 | 1,040점 |
| 첫 출장 | 1989년 4월 11일 |
| 마지막 출장 | 2015년 9월 26일 |
| 드래프트 순위 | 1988년 드래프트 1순위 |
| 소속 팀 |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요코하마 베이스타스 (1989–2001) 주니치 드래건스 (2002–2015) |
|---|
| 소속 팀 | 주니치 드래건스 (2014–2016) |
|---|
| 일본 시리즈 우승 | 2회 (1998년, 2007년) |
|---|---|
| 센트럴 리그 우승 | 5회 (1998년, 2004년, 2006년, 2010년, 2011년) |
| NPB 올스타 | 12회 (1993년, 1997년-2002년, 2005년, 2012년-2014년) |
| 베스트 나인 | 1회 (1998년) |
| 골든 글러브 | 6회 (1998년, 2006년-2007년, 2009년, 2011년-2012년) |
| 올스타전 최고령 출장 | 43세 6개월 |
| NPB 역대 최다 출장 | 3021경기 |
| NPB 최다 연속 시즌 안타 | 27년 |
| NPB 최다 연속 시즌 홈런 | 27년 |
| 시민영예상 | 쇼바라시 |
| 대표팀 | 일본 |
|---|---|
| 올림픽 | 2003년 (아시아 예선)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6년 |
|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금메달 |
| 유튜브 채널 | 谷繁ベースボールチャンネル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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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관한 -
박찬호
박찬호는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여 아시아 출신 투수 최다승 기록을 세운 전직 야구 선수로, 메이저 리그와 KBO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국가대표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관한 -
박용택
박용택은 LG 트윈스에서 19시즌 동안 활약하며 KBO 리그 최초로 통산 2500안타를 달성하고 도루왕, 타격왕, 골든글러브 수상 등 많은 기록을 남긴 후 은퇴하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LG 트윈스에서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
일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야구 국가대표팀 -
사사키 로키
사사키 로키는 2001년 이와테현 출신의 일본 프로 야구 선수로, 고교 시절 최고 구속 163km/h를 기록하고, 2019년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하여, 2022년 일본 프로야구 최연소 완봉승 기록을 세웠으며, 202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으로 우승에 기여했고, 202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도전을 승인받았다. -
일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야구 국가대표팀 -
오타니 쇼헤이
오타니 쇼헤이는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투수와 타자 모두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MVP를 수상하고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이도류 야구 선수이다. -
히로시마현 출신 야구 선수 -
무라타 조지
무라타 조지는 1967년 도쿄 오리온스에 입단하여 1990년 은퇴할 때까지 활약하며 통산 215승을 기록하고, 1985년 컴백상을 수상했으며, 은퇴 후 야구 해설가와 지도자로 활동하다 2005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22년 사망했다. -
히로시마현 출신 야구 선수 -
후지무라 후미오
후지무라 후미오는 오사카 타이거스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활약하며 MVP를 수상하고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으며,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일본의 전 야구 선수이다.
2. 프로 입단 전
다니시게 모토노부는 주고쿠 산지 깊숙한 곳에 위치한 히로시마현 히바 군 도조 정(현재의 쇼바라시)에서 태어났다. 도조 초등학교 2학년 때 지역 소년 야구팀 '도조 스트롱보이즈'에서 야구를 시작했고, 어린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 팬으로 하라 다쓰노리를 동경했다. 시마네현 고쓰시의 고노카와 고등학교(현재의 이와미치스이칸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투수에서 포수로 전향했다. 고시엔 대회에 두 차례 출전, 1988년 하계 시마네 현 대회 예선에서 5경기 7홈런을 기록하며 고시엔 대회 8강 진출에 기여했다. 고교 통산 42홈런을 기록, 에토 아키라와 함께 '동쪽의 에토, 서쪽의 다니시게'라고 불렸다. 1988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에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2.1. 유소년 시절
주고쿠 산지 깊숙한 곳에 위치한 히로시마현 히바 군 도조 정(현재의 쇼바라시)에서 태어났다. 도조 초등학교 2학년 때 지역 소년 야구팀 '도조 스트롱보이즈'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 팬이었고, 하라 다쓰노리를 동경했다.
2.2. 고등학교 시절
주고쿠 산지 깊숙한 곳에 있는 히로시마현 히바 군 도조 정(현재의 쇼바라시)에서 태어나 시마네현 고쓰시의 고노카와 고등학교(현재의 이와미치스이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원래 투수였으나, 고등학교 1학년 여름에 감독의 지시로 포수로 전향했다.
고시엔 대회에 두 차례 출전했으며, 특히 1988년 하계 시마네 현 대회 예선에서 5경기 7홈런을 기록하며 고시엔 대회 8강 진출에 기여했다. 고교 통산 42홈런을 기록하며, 에토 아키라와 함께 '동쪽의 에토, 서쪽의 다니시게'라고 불렸다.
1988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에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3. 프로 선수 시절
2004년 일본 시리즈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프로 통산 첫 만루 홈런을 기록했지만, 드래곤스는 세이부 라이온스에 4 대 3으로 패했다.
2015년에는 3,018경기에 출전하여 노무라 가쓰야의 기록을 넘어 NPB 통산 출장 경기수 기록을 경신했다.
3.1.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시절
고바 다케시 감독에게 발탁되어 프로 1년차부터 1군 경기에 출전했고, 시모노세키 구장에서 열린 시범 경기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사이토 마사키에게서 홈런을 쳐내는 등 고졸 신인 포수임에도 개막전 출전을 완수했다. 정규 경기 첫 타석에서 첫 안타를 기록하는 등 기대에 부응했지만, 8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1할 7푼 5리, 3홈런, 10타점으로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1990년 스도 유타카 감독 취임 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영입한 아키모토 고사쿠와 병용되었고, 이전까지 팀의 주전 포수였던 이치카와 가즈마사는 제3의 포수로 밀려났다. 그러나 타격에서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해 1992년 스도 감독이 팀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고 에지리 아키라 수석 코치가 감독으로 승격한 후에는 일시적으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에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로 구단명이 바뀐 것을 계기로 등번호를 1번에서 8번으로 변경했고, 곤도 아키히토 감독과 오야 아키히코 배터리 코치의 지도로 수비와 타격이 크게 성장하여 주전 포수 자리를 차지했다. 오야 아키히코가 감독으로 승격한 1996년과 1997년에는 2년 연속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 모리타 고키와 함께 선발 배터리를 구성했다(1997년 시즌 개막전은 나고야 돔에서의 첫 공식전).
1998년에는 공수의 핵심으로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고, 구원 투수 사사키 가즈히로와 함께 최우수 배터리상을 수상했다. 2001년에는 개인 최다인 시즌 20홈런을 기록하고 그 해 오프에 FA 자격을 얻었다. 당초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을 목표로 했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했다. 이로 인해 주니치의 주전 포수 나카무라 다케시가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현금 트레이드로 요코하마에 이적하면서 결과적으로 양 팀의 주전 포수가 바뀌는 형태가 되었다.
메이저 리그 진출을 포기하고 요코하마 잔류도 거론되었지만, 이 해부터 요코하마의 감독을 맡았던 모리 마사아키와의 불화 등으로 인해 같은 달 24일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할 의사를 밝혔다. 같은 달 27일 주니치와 계약금을 포함한 총액 1000의 4년 계약을 체결하고 등번호는 7로 발표되었다. 요코하마는 주니치로부터의 FA 보상으로 금전을 선택했지만, 당시 주니치의 주전 포수였던 나카무라 타케시가 출전 기회를 요구하며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다음 날 28일자로 현금 트레이드로 요코하마로 이적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주전 포수끼리의 "맞트레이드"가 되었다.
3.2.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
2001년 FA 자격을 얻어 메이저 리그 진출을 노렸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했다. 요코하마는 주니치로부터 FA 보상으로 금전을 선택했지만, 당시 주니치의 주전 포수였던 나카무라 다케시가 출전 기회를 찾아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다음 날 금전 트레이드로 요코하마로 이적했다. 결과적으로 주전 포수끼리의 맞트레이드가 된 셈이다.
2002년 시즌에는 타율은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 중 가장 낮은 .215였지만, 찬스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 24홈런, 78타점을 기록하며 모두 자신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 도루 저지율은 .483으로 2년 연속 리그 1위를 기록했다.
2003년 시즌에는 타율을 .264로 끌어올렸지만, 부상과 노구치 시게키 선발 등판 시 야나기사와 유이치에게 포수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가 많아 8년 만에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했다. 18홈런으로 3년 만에 20홈런 달성에 실패했지만, 팀의 주전 포수로서 장타력을 발휘하며 존재감을 보였다.
이 기간 감독이었던 야마다 히사시는 다니시게를 신뢰했고, 다니시게는 "정말 편했다", "야마다 씨 시절에는 우승은 없었지만, 3위와 2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차 8월에 갑자기 해임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라고 회고했다.
2004년 시즌에는 오치아이 히로미쓰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등번호를 7번에서 27번으로 변경했다. 오치아이는 "큰 전력 보강 없이 선수 개개인의 실력을 10~15% 올리면 이길 수 있다"고 말했고, 다니시게는 "전년도 2위였기에 선수 레벨을 올리면 자연스럽게 우승에 도달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가 마법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전년도 2위였는데요?'라는 느낌이다. 가와카미 겐신, 이와세 히토키, 다치나미 카즈요시, 아라이바 콤비(아라키 마사히로, 이바타 히로카즈)와 후쿠도메 코스케 등 멤버가 갖춰져 있었던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오치아이 감독에 대해서는 "1년 간의 전략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전력으로 어떻게 싸우면 가장 이길 확률이 높아지는지에 대한 신념이 항상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같은 해, 주전 포수로서 공수 양면에서 팀을 이끌며 리그 우승에 공헌했고, 이적 후 첫 시즌 100안타를 기록했다. 도루 저지율 .378은 리그 1위였다. 가와카미 겐신과 함께 2번째 최우수 배터리 상을 수상했다. 2004년 일본 시리즈 3차전에서 나가타 히데이치로에게서 역전 만루 홈런을 쳤지만, 팀은 3승 4패로 일본 시리즈 우승에는 실패했다.
2005년 시즌에는 타율 .234로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2006년 시즌에는 개막 전 3월에 열린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2차 리그 미국전에 선발 출전했다. 시즌에서는 7월 26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포수로서 사상 4번째 통산 2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그러나 타율, 안타 수, 루타 수, 도루 수에서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 중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다. 8년 만에 골든 글러브 상, 2년 만에 가와카미와 함께 최우수 배터리 상을 수상했다. 팀은 리그 우승을 달성했지만,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일본 시리즈는 1승 4패로 패했다.
2007년 시즌에는 8월 8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프로 야구 47번째 통산 300 2루타를 달성했다. 8월 10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갱신 중이던 포수 연속 수비 기회 무실책 프로 야구 기록이 1708에서 멈췄다. 타격에서는 타율, 득점, 안타 수, 3루타, 루타 수, 도루 수에서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 중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수비에서는 전년에 이어 골든 글러브 상을 수상했다. 가와카미도 2년 연속으로 수상하여, 센트럴 리그 최초로 같은 팀의 같은 배터리가 2년 연속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도루 저지율 .404는 리그 1위였다. 이 해에 3년 연속 타율 최하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일본 프로 야구 신기록이다. 또한, 다니시게는 현역 통산 5차례 타율 최하위 일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팀은 시즌 2위로 마쳤지만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승리하여 일본 시리즈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를 4승 1패로 꺾고 53년 만에 2번째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2008년 시즌에는 6월에 오른쪽 옆구리 통증으로 2군 경기에 출전하는 등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2004년에 다쳤던 허리 상태도 좋지 않아 매일 다리가 저린 상태였다고 한다. 시즌 오프에는 요추 척추관 협착증 치료를 위해 허리 뼈 일부를 깎는 수술을 받았다. 2009년 시즌 여름까지는 수술 통증으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다.
2009년 시즌에는 개막 직후 오른쪽 종아리 부상으로 약 1개월 간 결장했다. 7월 5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포수로서 노무라 가쓰야에 이어 역대 2위인 통산 2328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9월 1일에는 통산 200홈런과 200희생타를 달성했는데, 두 기록을 모두 달성한 것은 사상 3번째이다. 9월에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4번째 FA 권리를 획득했다. 프로 입단 21년 만에 처음으로 수비율 10할(무실책)을 달성했고, 골든 글러브 상을 수상했다.
2010년 시즌에는 7월 28일에 포수로는 노무라 가쓰야에 이어 프로 야구 사상 8번째로 25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휴식과 부상으로 결장했지만 시즌 내내 1군에 등록되어 팀의 4년 만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일본 시리즈는 2승 4패 1무로 패했다.
2011년 시즌에는 6월 4일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 다카야마 히사시와의 충돌로 왼쪽 무릎 내측 측부 인대를 다쳐 약 2개월 간 1군에서 제외되었다. 다니시게가 없는 동안 팀은 15승 21패 1무로 부진했지만, 재활과 상반신 훈련에 매진한 후 7월 29일 1군에 복귀하여 타율 .301, 23타점을 기록하며 타격에서도 활약했다. 부진한 와다 가즈히로를 대신해 시즌 후반부터 5번 타자를 맡았고, 9월 말에는 구단 기록에 1개 차이로 근접하는 10경기 연속 타점을 기록하는 등, 페넌트레이스 막바지 역전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포스트 시즌에서는 타격 부진에 빠져 CS 전 경기에 선발 출장했지만 무안타로 끝났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도 전 경기에 선발 출장했지만 무안타가 이어졌고, 11월 20일 제7전 5회 2번째 타석에서 삼진을 당하며 1989년 오이시 다이지로(긴테쓰)의 21타수 연속 무안타 시리즈 최악 기록을 넘어선 22타수 연속 무안타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23타수까지 무안타 기록이 이어졌고, CS 파이널 스테이지 제1전 1번째 타석부터 43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했다. 일본 시리즈는 3승 4패로 패하며 2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에 실패했다. 이 해에는 2년 만에 골든 글러브 상과 5년 만에 최우수 배터리 상을 요시미 가즈키와 함께 수상했다. 8월 25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프로 23년차, 통산 2594경기째에 처음으로 1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포수 이외의 수비를 맡은 것도 처음이다.
2012년 시즌에는 다카기 모리미치가 감독으로 취임했다. 4월 25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24년 연속 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입단 1년차"부터의 연속 시즌 홈런 프로 야구 신기록이다. 7월 26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홈런을 쳐 통산 3000루타를 달성했다. 타율은 .228(리그 최하위 2위)였지만, 5년 만에 규정 타석을 채우는 등 시즌 내내 활약했다. 도루 저지율은 .361이었다. 팀은 리그 2위를 기록했다. CS 파이널 스테이지 제1전 4번째 타석에서 적시 2루타를 쳐 전년부터 이어진 포스트 시즌 무안타 기록을 60타석에서 멈췄다.
2013년 시즌에는 개막부터 타격이 좋아 5월 6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오시모토 타케히코에게서 우전 안타를 쳐 통산 2803경기째에 사상 44번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프로 25년차, 9693타석째의 달성은 사상 최만이었고, 42세의 도달도 미야모토 신야의 41세 5개월을 넘어선 최고령 기록이었다. 2000안타 달성자 중 2014년 종료 시점에서 통산 타율이 .250에 미치지 못하는 유일한 선수이다. 포수로는 노무라 가쓰야, 후루타 아쓰야에 이어 사상 3번째 달성이었다. 5월 12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주니치에서의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2개 구단에서 1000안타 달성」은 오스기 가쓰오, 가네모토 도모아키에 이어 사상 3번째이다. 그러나 이후 타격 부진에 빠졌고, 수비에서도 도루 저지율이 자신의 최저 기록인 .174를 기록하는 등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6월 28일 DeNA전에서는 야마이 다이스케의 노히트노런을 도왔는데, 다니시게가 노히트노런 경기에서 포수를 맡은 것은 2002년 8월 1일 가와카미 겐신, 2006년 9월 16일 야마모토 마사에 이어 3번째였다. 6월 30일에는 통산 출장 경기 수가 2832경기가 되어 오 사다하루를 제치고 역대 2위가 되었다.
4. 감독 시절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주니치 드래건스의 선수 겸임 감독 및 전임 감독을 역임했다. 2015년 시즌 종료 후 선수 은퇴와 함께 감독으로 전임되었다.
2016년 시즌 초반의 불안한 시작과 올스타 휴식기 이후의 부진한 경기력으로 인해, 2016년 8월 10일 수비 코치 사에키 다카히로와 함께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시즌 잔여 기간 동안 수석 코치 모리 시게카즈가 감독 대행을 맡았다.
감독 시절에 대해 "변명은 하고 싶지 않지만, 감독이라는 것은 정말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감독이라도 선수가 없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회고했다.
| 연도 | 구단 | 순위 | 경기 | 승리 | 패전 | 무승부 | 승률 | 게임차 | 홈런 | 타율 | 방어율 | 연령 | ||
|---|---|---|---|---|---|---|---|---|---|---|---|---|---|---|
| 2014년 | 주니치 | 4위 | 144 | 67 | 73 | 4 | .479 | 13.5 | 87 | .258 | 3.69 | 43세 | ||
| 2015년 | 5위 | 143 | 62 | 77 | 4 | .446 | 13.0 | 71 | .252 | 3.21 | 44세 | |||
| 2016년 | 6위 | 103 | 42 | 58 | 3 | .420 | 16.5 | 78 | .244 | 3.74 | 45세 | |||
| 통산: 3년 | 391 | 171 | 208 | 11 | .451 | B클래스 3회 | ||||||||
* 통산 성적은 2016년 인플루엔자로 결장한 4월 22일 1경기(승리)와 휴양한 8월 9일 이후의 성적은 포함하지 않음.
5. 은퇴 후
부터 후지 TV, TV 가나가와, 메~테레, 일본 TV, CBC 텔레비전 (여러 프로그램 계약), 닛폰 방송, 도카이 라디오 (레귤러 출연)의 야구 해설가, 닛칸 스포츠의 야구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8월 10일, 제100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기념 대회 제1경기 시작 전에 고시엔 레전드 시구식에 참가하여 바깥쪽 낮은 코스로 스트라이크를 던져 관중석의 환호에 답했다。같은 해 12월 1일, 호웨일스 베이스타즈 OB회의 부회장에 취임했다。
1월 18일, 선수 부문에서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히로시마현 출신으로는 17번째 헌액이며, 도쿄도의 23명에 이어 전국 2위이다。
6. 플레이 스타일
다니시게는 입단 초기에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 고생했지만, 곤도 히로시는 "노무라 가쓰야나 요미우리의 V9을 지탱했던 모리 마사히코와 같은 포수 본류 타입"이라며 "머리 회전이 빠르고, 기억력이 발군"이라고 평가했다.
"포수로서 몸도 작고, 손발도 짧다"고 말한 다니시게는 부상 방지와 파워 향상을 위해 철저하게 몸을 단련했다. 특히 위기감을 느낀 4년째부터 주 5일 전신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고 한다. 코마다 노리히로는 로버트 로즈의 영향으로 함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덕분에 오랫동안 현역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니시게는 투수가 던지기 쉽도록 "과녁"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포수 미트를 투구 동작에서 포구까지 투수에게 향한 채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트를 내리는 경우에도 투수의 시선이 홈 방향에서 벗어나는 타이밍에 내린다.
현역 시절 하타케야마 제품의 미트만을 사용했으며, 다니시게의 미트는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만들어낸 특수한 미트로 알려져 있다. 다른 선수나 야구 관계자들이 관심을 보이지만, 능숙하게 다루지 못한다고 한다. 다니시게의 미트는 전체적으로 작고, 웹(입구)이 좁으며, 포켓이 깊어 빗맞아도 볼이 자연스럽게 포켓에 들어가는 구조이다. 다니시게는 "내 미트는 볼이 들어오는 힘으로 미트가 닫힌다"고 말했다.
오치아이 히로미쓰는 감독 시절 "가장 없으면 곤란한 선수"라고 할 정도로 포수로서 신뢰했다. 2011년 다니시게가 선발 마스크를 쓴 경기와 그렇지 않은 경기의 승률 차이는 약 2할이었다. 사사키 주로 역시 뛰어난 캐칭 능력을 가진 포수로서 다니시게를 신뢰한다고 말했다.
6.1. 타격
통산 타율은 .240으로 높지 않았지만, 두 자릿수 홈런을 8차례 기록하는 등 장타력을 갖추고 있었다. 다음 타자가 투수인 경우가 많은 8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서는 경우가 많아 볼넷과 고의 사구가 많았고, 타율보다 1할 이상 높은 출루율을 기록한 시즌이 7차례나 있었다. 2011년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현역 선수 중에서는 최다 고의 사구를 기록했다.
6.2. 수비
다니시게 모토노부는 포수로서는 몸집이 작은 체격이지만 골든 글러브상을 6차례나 수상했는데, 특히 포구와 도루 저지가 뛰어나 도루 저지율 리그 1위를 5차례 기록했다. 투수에게 상대 타자의 약점을 철저히 찌르게 하는 공격적인 리드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세 히토키는 "나카무라 타케시는 투수를 감싸주는 포수였는데, 시게 씨는 투수를 꾸짖는 포수"라고 차이점을 설명하며, 위기의 순간이 될수록 강타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배구하는 타니시게의 배구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사토자키 토모야는 타니시게의 포구 기술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로, 미트의 면을 항상 투수에게 보여준 채로 있는 점을 들며 "내가 직접 본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극찬했다. 타무라 후지오는 타니시게의 캐칭을 "고도·특수·어렵다"고 하면서도, 그 점을 목표로 선수에게 지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야마모토 마사는 "배터리를 이룬 승리 횟수로 말하면, 나카무라 타케시, 다니시게 모토노부, 야노 아키히로"라고 전제한 후, 리드 면에 관해서는 "3명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배짱이 넘친다. 소위 '모험'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포수라고 해도 좋다"고 평가했다. 후루타 아쓰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함께 출연했을 때 타니시게가 포구할 때 작고, 입구가 작은 미트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더욱이 포구할 때 "잡는다"는 동작을 전혀 하지 않는 타니시게의 기술에 "상상할 수 없다"고 놀라워했다.
이와세 히토키는 "안쪽 슬라이더를 잡는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각도 하나로 판정이 바뀌는 생명선이었다"고 명구회 공식 YouTube 채널에서 말했다. 다니시게 모토노부와 배터리로 두 차례 최우수 배터리상을 수상한 가와카미 겐신은 자신의 YouTube 채널 등에서 "시게 씨가 컷볼 사용법을 만들었다", "던지는 나로서는 왼쪽 타자에게 바깥쪽 컷볼은 볼이다. 그것을 움직이지 않는 캐칭으로 심판에게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하게 했다. 그것은 왼쪽 타자는 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타니시게는 "나는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조금 베이스를 스쳤다"고 대답했다.
전 프로 야구 심판원 사사키 마사노부는 2021년 3월 2일 방송된 『이시바시, 장작을 태우다』(후지 TV)에서 "우리도, 세계 최고의 포수라고 불렀습니다만. 당시 프로 야구의 심판원, 아마 거의 전원 일치 아닐까 하는. 자주 이야기하는데..."라고, 타니시게의 이름을 거론하며, "캐칭이 예술 작품이고, 정말 압도적이다", "1위가 있다면 (2위까지) 한동안 없을 정도의 1위"라고 증언했다. 그 이유에 대해 "어쨌든 속이지 않는다", "투수의 공을 그대로 제대로 확실하게 잡는다", "(볼을 스트라이크라고 콜하면) 그만 '사사키 씨, 조금 넓어요, 지금'이라고 솔직하게 말해왔다"고 말하며, "솔직하고, 손익이나 자신의 형편에 따라 야구를 하지 않는 인상", "그래서 그에게는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입장을 넘어선 존경을 표했다.
다니시게 모토노부는 1996년, 2001년, 2002년, 2004년, 2007년에 도루 저지율 리그 1위를 기록했고, 2009년에는 수비율 10할(무실책)을 달성했다.
7. 인물·기타
애칭은 '시게', '하마의 사령탑'(요코하마 시절)이다. 사잔 올 스타즈의 열렬한 팬이며, 등장곡으로 사잔의 노래를 사용했다. 본인은 포수를 계속하면서 포수 사양의 성격이 자연스럽게 된다는 의미로, 포수에게 맞는 성격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2022년 시즌 시점에서는 한 경기를 전체적으로 생각하며 던지는 투수가 없어지고, 타자 2순을 기준으로 투구를 구성하는 투수가 증가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1순째 공격과 2순째 타선 공격의 차이를 의식하게 하면, 타자 2순은 던질 수 있다고 하면서도, 타자 3순째 이후를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포수가 생각하지 않게 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의 현역 시절과 달리, 중요한 장면에서 억제할 수 있도록 "미끼"로서 맞더라도 좋은 장면에서 치게 하는 경우가 적어졌다고 후루타 아츠야와 함께 말하고 있다.
복수 포수제에 관해서는, 에이스라고 부를 수 있는 포수가 팀에 나타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하면서도, 억지로 혼자 포수를 감당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8. 수상·타이틀 경력
9. 개인 기록
다니시게는 2012년 4월 25일 야쿠르트전에서 홈런을 때려내며 신인부터 24년 연속 홈런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했고, 같은 해 7월 26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도 2점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3000루타를 달성했다.
9.1. 첫 기록
* 첫 출장: 1989년 4월 11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8회말에 오카모토 도루의 대타로서 출장
* 첫 타석·첫 안타: 상동, 8회말에 가와구치 가즈히사로부터 좌전 안타
* 첫 선발 출장: 1989년 5월 18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8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7번·포수로서 선발 출장
* 첫 타점: 1989년 5월 21일, 대 한신 타이거스 6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5회초에 이케다 지카후사로부터 적시 3루타
* 첫 홈런: 1989년 5월 27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9차전(가시와자키 시 사토가이케 야구장), 5회초에 오바나 다카오로부터 솔로 홈런
* 첫 도루: 1990년 4월 7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1차전(나고야 구장), 11회초에 2루 도루(투수: 요다 쓰요시, 포수: 나카무라 다케시)
9.2. 기록 달성 경력
| 기록명 | 달성일 | 상대팀 | 구장 | 비고 |
|---|---|---|---|---|
| 통산 1000경기 출장 | 1998년 8월 25일 | 한신 타이거스 | 한신 고시엔 구장 | 역대 347번째 (이이다 데쓰야와 같은 날 달성) |
| 통산 100홈런 | 2001년 10월 3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역대 217번째 |
| 통산 1000안타 | 2001년 10월 9일 | 주니치 드래건스 | 요코하마 스타디움 | 역대 208번째 |
| 통산 1500경기 출장 | 2002년 8월 1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도쿄 돔 | 역대 137번째 |
| 통산 1000삼진 | 2003년 8월 6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나고야 돔 | 역대 34번째 |
| 통산 150홈런 | 2004년 5월 18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역대 136번째 |
| 통산 2000경기 출장 | 2006년 7월 26일 | 한신 타이거스 | 나고야 돔 | 역대 36번째 |
| 통산 1500안타 | 2006년 10월 9일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 메이지 진구 야구장 | 역대 90번째 |
| 통산 300 2루타 | 2007년 8월 8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나고야 돔 | 역대 47번째 |
| 통산 1500삼진 | 2009년 8월 14일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 나고야 돔 | 역대 7번째 |
| 통산 200홈런 | 2009년 9월 1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하마마쓰 구장 | 역대 94번째 |
| 통산 200희생타 | 2009년 9월 1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하마마쓰 구장 | 역대 29번째 (다카기 모리미치, 이시게 히로미치 이어 역대 3번째로 통산 200홈런과 200희생타 모두 달성) |
| 통산 2500경기 출장 | 2010년 7월 28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도쿄 돔 | 역대 9번째 |
| 통산 100사구 | 2010년 7월 28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도쿄 돔 | 역대 15번째 |
| 통산 350 2루타 | 2011년 9월 19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도쿄 돔 | 역대 32번째 |
| 통산 1000볼넷 | 2012년 4월 10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도쿄 돔 | 역대 13번째 |
| 통산 3000루타 | 2012년 7월 27일 | 한신 타이거스 | 나고야 돔 | 역대 50번째 |
| 통산 2000안타 | 2013년 5월 6일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 메이지 진구 야구장 | 역대 44번째 |
| 통산 1000타점 | 2013년 6월 13일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 세이부 돔 | 역대 40번째 |
| 통산 10000타석 | 2013년 9월 23일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 요코하마 스타디움 | 역대 9번째 |
| 통산 250희생타 | 2014년 10월 1일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 나고야 돔 | 역대 18번째 |
| 통산 3000경기 출장 | 2015년 4월 30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도쿄 돔 | 역대 2번째 |
9.3. 기타
* 수비 기회 연속 무실책: 1708차례(2006년 4월 4일 ~ 2007년 8월 10일) ※센트럴 리그 역대 2위
* 연속 시즌 안타: 27년(1989년 ~ 2015년) ※NPB 기록
* 연속 시즌 홈런: 27년(1989년 ~ 2015년) ※NPB 기록, 기네스 세계 기록 인정
* 주니치 구단 최고령 홈런: 44세 4개월 13일, 2015년 5월 4일 ※NPB 기록은 이와모토 요시유키의 45세 5개월 7일
* 센트럴 리그 최고령 맹타상: 44세 4개월 13일, 2015년 5월 4일 ※NPB 기록은 오치아이 히로미쓰의 44세 5개월, 1998년 5월 16일
* 올스타전 최고령 안타 기록: 43세 6개월, 2014년 1차전(세이부 돔)
* 포수로서 경기 출장: 2963경기 ※NPB 기록, 기네스 세계 기록 인정
* 2000안타 달성자에 의한 시즌 최고 안타 최저 기록: 126안타(1999년)
* 통산 삼진: 1838개 ※역대 3위, 센트럴 리그 기록. 리그 최다 삼진을 기록하지 않은 선수 중에서는 역대 최다
* 통산 볼넷: 1133개 ※역대 10위, 리그 최다 볼넷을 기록하지 않은 선수 중에서는 역대 최다
* 통산 몸에 맞는 공: 114개 ※역대 공동 15위, 리그 최다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지 않은 선수 중에서는 역대 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