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호
1. 개요
임한호는 1783년에 생원이 되고 1792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를 지냈다. 1800년 이조참의를 거쳐 사간원, 대사간을 역임했으며,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지지하다 파직되어 유배되기도 했다. 1804년 대사간에 복직하고 강원도관찰사, 형조판서, 이조판서, 우빈객을 거쳐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중추부판사 재임 시에는 서얼의 등용을 주장했다. 김조순과 함께 당대의 권력자로 칭송받았으며, 1827년에 사망하여 정간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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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2년 출생 -
주문모
청나라 출신 가톨릭 신부 주문모는 1794년 조선에 잠입하여 선교 활동을 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으며, 초기 조선 천주교회 성장에 기여하여 2014년 시복되었다. -
1752년 출생 -
정조
정조는 조선의 제22대 왕으로, 탕평책 계승, 규장각 설치, 장용영 설치, 신해통공 실시, 수원 화성 건설 등 다양한 개혁을 추진했으며, 47세에 사망하여 건릉에 안장되었다. -
조선의 우의정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우의정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8세기 한국 사람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8세기 한국 사람 -
정조
정조는 조선의 제22대 왕으로, 탕평책 계승, 규장각 설치, 장용영 설치, 신해통공 실시, 수원 화성 건설 등 다양한 개혁을 추진했으며, 47세에 사망하여 건릉에 안장되었다.
2. 생애
임한호는 1783년에 생원이 되고, 1792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를 지냈다. 1800년 이조참의를 거쳐 사간원, 대사간을 역임했다. 대왕대비 김씨의 수렴청정을 지지했다가 파직되어 안주에 유배되었으나, 1804년 대왕대비의 동의하에 대사간에 복직, 1805년 강원도관찰사, 형조판서, 이조판서, 우빈객을 거쳐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중추부판사 시절에는 서얼 등용을 주장하여 서자도 조정에 출사할 수 있게 하였다. 그는 인품이 소박하고 자손이 많아 복인(福人)으로 불렸다.
2.1. 관직 생활
1783년에 생원이 되고, 1792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를 지냈다. 1800년 이조참의를 거쳐 사간원, 대사간이 되었다가 대왕대비 김씨의 수렴청정을 주장하여 파직되어 안주에 유배되었다. 1804년 대왕대비의 동의하에 대사간에 복직되었고, 1805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이후 형조판서, 이조판서, 우빈객을 지내고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중추부판사에 제수된 후에는 서얼의 등용을 주장하여 서자도 조정에 출사할 수 있게 하였다.
2.2. 정치적 격변과 유배
1800년 이조참의를 거쳐 사간원, 대사간이 되었다가 대왕대비 김씨의 수렴청정을 지지하는 주장을 하여 파직되고 안주로 유배되었다. 1804년 대왕대비의 동의를 얻어 대사간에 복직하였고, 1805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