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 (삼국지)
1. 개요
장훈은 삼국 시대 원술 휘하의 무장이다. 193년 원술이 양주 자사 진온을 살해하고 양주에 근거지를 옮기자, 교유와 함께 대장군에 임명되었다. 197년 여포와의 전투에서 한섬과 양봉의 배신으로 대패하고, 9월에는 조조에게 패하여 다른 장수들과 함께 죽을 뻔했으나 간신히 살아남았다. 199년 원술 세력이 몰락한 후 손책에게 의탁하려 했으나 유훈에게 사로잡혔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대장군으로 등장하며, 여포와의 전투에서 패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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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대립 정권의 재상 -
유림 (왕랑)
유림은 전한 말에서 후한 초에 활동하며 뛰어난 술책과 언변으로 이름을 떨친 임협이었으나, 왕랑을 옹립하여 세력을 확장하려다 광무제에게 패배하여 몰락한 인물이다. -
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원술과 주변 인물 -
손견
손견은 후한 말의 군벌이자 오나라의 시조이며 손책과 손권의 아버지로, 황건적의 난 진압 등 공을 세웠고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하여 낙양 함락에 기여했으나, 향양 전투 중 전사했으며, 뛰어난 무력과 리더십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과감한 성격으로 비판받기도 하는 인물이다. -
원술과 주변 인물 -
진기 (원술 부하)
진기는 영웅기에 기록된 원술 휘하 장수로, 원술이 황제를 칭하려 할 때 반대하다 죽임을 당했으며, 구강태수로 임명되어 손책과의 동맹 관계에 갈등을 빚었고, 여포 공격에 참여했다 패배하기도 했다.
2. 생애
193년(초평 4년), 원술이 남양군을 잃고 구강군 일대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할 때, 장훈은 교유(橋蕤)와 함께 원술의 핵심 장수가 되었다. 『삼국지』 오서(吳書) 손책전에 따르면, 손책이 원술에게 의탁했을 때 장훈은 20세 전후였던 손책을 높이 평가하며 마음을 주었다고 한다. 같은 해 3월, 원술이 양주 자사 진온(陳溫)을 살해하고(진온에 대해서는 병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진우(陳瑀)를 쫓아내고 양주에 근거지를 옮기자, 교유와 함께 대장군에 임명되었다.
199년 원술의 세력이 와해되고 원술도 객사하였다. 원술의 남은 일족은 옛 부하인 여강태수 유훈에게 의탁한 반면 장훈과 장사 양홍은 회계태수 손책을 의지하려 하였다. 도중에 유훈에게 요격당하여 사로잡히고 보물들도 빼앗겼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197년(건안 2년) 황제를 참칭한 원술은 서주목 여포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장훈, 교유, 한섬, 양봉 등에게 수만 명의 대군을 줘 일곱 길에서 밀고 올라가게 했다. 진규는 한섬·양봉과 원술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은 것을 알아채고 그 둘을 구슬릴 것을 제안하였다. 여포군이 응전하여 장훈군과의 거리가 100보가량 되었을 때 한섬과 양봉도 돌아서서 장훈군을 동시에 타격하였다. 그 탓에 대패하여 살상되거나 물에 빠져 죽은 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9월(음력), 원술이 진국을 침입하였다. 연주목 조조가 몸소 응징에 나섰고, 원술은 장훈·교유·이풍·양강·악취를 남겨두고 돌아갔다. 호현(苦縣) 부근에서 참패하여 장훈만 간신히 퇴각하고 다른 네 장수는 죽음을 당했다.
2.1. 원술의 부하
193년(초평 4년), 원술이 남양군을 잃고 구강군 일대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할 때, 장훈은 교유(橋蕤)와 함께 원술의 핵심 장수가 되었다. 『삼국지』 오서(吳書) 손책전에 따르면, 손책이 원술에게 의탁했을 때 장훈은 20세 전후였던 손책을 높이 평가하며 마음을 주었다고 한다. 같은 해 3월, 원술이 양주 자사 진온(陳溫)을 살해하고(진온에 대해서는 병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진우(陳瑀)를 쫓아내고 양주에 근거지를 옮기자, 교유와 함께 대장군에 임명되었다.
197년(건안 2년) 황제를 참칭한 원술은 서주목 여포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장훈, 교유, 한섬, 양봉 등에게 수만 명의 대군을 줘 일곱 길에서 밀고 올라가게 했다. 진규는 한섬·양봉과 원술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은 것을 알아채고 그 둘을 구슬릴 것을 제안하였다. 여포군이 응전하여 장훈군과의 거리가 100보가량 되었을 때 한섬과 양봉도 돌아서서 장훈군을 동시에 타격하였다. 그 탓에 대패하여 살상되거나 물에 빠져 죽은 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9월(음력), 원술이 진국을 침입하였다. 연주목 조조가 몸소 응징에 나섰고, 원술은 장훈·교유·이풍·양강·악취를 남겨두고 돌아갔다. 호현(苦縣) 부근에서 참패하여 장훈만 간신히 퇴각하고 다른 네 장수는 죽음을 당했다.
199년 원술의 세력이 와해되고 원술도 객사하였다. 원술의 남은 일족은 옛 부하인 여강태수 유훈에게 의탁한 반면 장훈과 장사 양홍은 회계태수 손책을 의지하려 하였다. 도중에 유훈에게 요격당하여 사로잡히고 보물들도 빼앗겼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2.2. 여포와의 전투와 패배
197년(건안 2년),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고 서주목 여포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장훈은 교유, 한섬, 양봉 등과 함께 대군을 이끌고 서주를 공격했다. 진규(陳珪)는 한섬·양봉과 원술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은 것을 알고 이들을 설득하여 여포에게 협력하게 하였다. 여포군이 응전하여 장훈군과의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한섬과 양봉이 돌아서서 장훈군을 공격하였다. 그 탓에 장훈군은 대패하였고, 수많은 병사들이 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 그 해 9월, 장훈은 원술을 따라 진국을 침공하여 진민왕 유총과 그의 상 낙준을 살해했다. 그러나 조조가 직접 원술 토벌에 나서자, 원술은 장훈을 포함한 여러 장수들을 남겨두고 자신만 회남으로 도망쳤다.
2.3. 원술의 몰락과 최후
197년(건안 2년), 황제를 참칭한 원술은 서주목 여포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장훈에게 수만 명의 대군을 주어 일곱 길에서 밀고 올라가게 했다. 그러나 진규의 계략으로 한섬과 양봉이 배신하여 여포군과 함께 장훈군을 공격했고, 그 탓에 대패하였다. 같은 해 9월, 원술이 진국을 침입하여 진민왕 유총(명제의 후예)과 그의 상 낙준을 살해하였다. 연주목 조조가 몸소 응징에 나섰고, 원술은 장훈·교유, 이풍·양강·악취를 남겨두고 돌아갔다. 호현(苦縣) 부근에서 참패하여 장훈만 간신히 퇴각하고 다른 네 장수는 죽음을 당했다.
199년, 원술의 세력이 와해되고 원술도 객사하였다. 원술의 남은 일족은 옛 부하인 여강태수 유훈에게 의탁한 반면, 장훈과 장사 양홍은 회계태수 손책을 의지하려 하였다. 도중에 유훈에게 요격당하여 사로잡히고 보물들도 빼앗겼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