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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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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흥 고씨는 제주 고씨 시조 고말로의 10대손인 고중연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고려 말 홍건적의 침입 때 공민왕을 호종한 고중연이 장흥백에 봉해지면서 시작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과 그의 아들 고인후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28명을 배출했으며, 주요 인물로는 고경명, 고인후, 고종후 등이 있다. 장흥 고씨는 장택 고씨, 창평 고씨로도 불리며, 2015년 대한민국에 총 114,05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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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흥 고씨 - 고재득
    고재득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민주당 주요 요직을 역임하고 민선 성동구청장 4선을 달성하는 등 다양한 정치·행정 경력을 쌓았으며 현재 서울특별시구청장협의회 고문 및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 장흥 고씨 - 고경명
    고경명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으로,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아들 고인후와 함께 전사했으며, 사후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제봉집》 등의 저서를 남겼다.
장흥 고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장흥 고씨 (長興髙氏)
장흥 고씨
장흥 고씨 문중
기본 정보
성씨장흥 고씨 (長興髙氏)
이칭장택 고씨(長澤髙氏)
관향전라남도 장흥군
시조고중연(髙仲橼)
중시조고복림(高福林)
원시조고을나(髙乙那)
집성촌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고서면
창평면
인물고운
고맹영
고경명
고종후
고인후
고석진
고광순
고광만
고재필
고재호
고재청
고재득
고중석
고영주
고영한
고용진
고아라
년도2015
인구114,056명
순위''

2. 역사

고경명 일가의 충효와 절의, 의열은 높이 평가받았다. 선조는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광주 사당에 포충(褒忠)이라 사액하고, 고경명에게는 의정부 좌찬성 추증과 충렬(忠烈)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아들 고종후에게는 승정원 도승지,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효열(孝烈)이라는 시호를, 고인후에게는 예조 참의,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을 추증하고 의열(毅烈)이라는 시호를 내렸다.[1]

임진왜란 때 의병장 제봉 고경명과 둘째 아들 학봉 고인후가 순국하자, 후손들이 고경명의 부인 울산 김씨 슬하에 의지하다가 고인후의 처가가 있는 담양군 창평면 삼천리에 정착하면서 학봉파 후손들을 '''창평 고씨'''라 부르기도 한다.

2. 1. 시조 및 기원

제주 고씨를 시조로 하는 고말로(髙末老)의 10대손 '''고중연'''(髙仲橼)이 장흥 고씨의 시조이다. 고중연은 고려 말기에 홍건적의 제2차 침입 때 고려 공민왕을 호종하여 경상북도 지역으로 피난하였다. 이때의 공을 인정받아 호종공신으로 책봉되면서 장흥백(長興伯)에 봉해졌다고 한다.[1]

기세조 고복림(高福林)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냈다. 그의 아들 고합(高合)은 지영주사(知寧州事)를 지냈다.

장택 고씨(長澤 髙氏)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2. 2. 고려-조선 시대

고려 말기, 홍건적의 2차 침입 때 고려 공민왕을 호종하여 경상북도 지역으로 피난한 제주 고씨 중시조 고말로(髙末老)의 10대손 '''고중연'''(髙仲橼)이 호종공신으로 책봉되면서 장흥백(長興伯)에 봉해졌다.[1]

기세조 고복림(高福林)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냈고, 그의 아들 고합(高合)은 지영주사(知寧州事)를 지냈다.

고경명(高敬命) 일가의 충효(忠孝)ㆍ절의(節義)ㆍ의열(義烈)은 높이 평가받았다. 선조는 이들 일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광주 사당에 포충(褒忠)이라 사액하고, 고경명(高敬命)을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하고 충렬(忠烈)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고종후(高從厚)에게는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효열(孝烈)이라는 시호를, 고인후(高因厚)에게는 예조 참의(禮曹參議)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하고 의열(毅烈)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장택 고씨(長澤 髙氏)라고도 하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과 둘째 아들 학봉(鶴峯) 고인후(高因厚)가 순국(殉國)하자, 자손들이 고경명(高敬命)의 배위 정경부인 울산 김씨(蔚山 金氏) 슬하에 의지하다가 고인후(高因厚)의 처가가 있는 담양군 창평면 삼천리에 정착하여 살면서부터 학봉파(鶴峯派) 후손들을 '''창평 고씨'''(昌平高氏)라 부르기도 한다.

2. 3. 분파

장흥 고씨 시조 '''고중연'''(髙仲橼)은 제주 고씨 중시조 고말로(髙末老)의 10대손이다. 고중연은 고려 말 홍건적의 제2차 침입 때 고려 공민왕을 호종하여 경상북도 지역으로 피난하였다. 이때 공을 인정받아 호종공신으로 책봉, 장흥백(長興伯)에 봉해졌다.[1]

기세조 고복림(高福林)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냈다. 아들 고합(高合)은 지영주사(知寧州事)를 역임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과 둘째 아들 학봉(鶴峯) 고인후(高因厚)가 순국하자, 자손들이 고경명 배위 정경부인 울산 김씨(蔚山 金氏) 슬하에 의지하다가 고인후 처가가 있는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삼천리에 이주하여 살면서 학봉파(鶴峯派) 후손들을 '''창평 고씨'''(昌平高氏)라 부르기도 한다.

3. 주요 인물

wikitext


  • 고운 : 151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형조좌랑을 역임하였다.
  • 고맹영 : 고운의 아들. 1540년(중종 35)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첨지중추부사, 동부승지, 대사간, 홍문관부제학, 병조참의, 이조참의, 호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 고경명 : 1558년(명종 13) 식년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였고, 예조참의, 지제교, 독서당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둘째 아들 고인후와 함께 금산에서 순국하였다. 슬하에 고종후, 고인후, 고준후, 고순후, 고유후, 고용후 6형제와 2녀를 두었다.
  • 고종후 : 고경명의 첫째 아들로 ‘복수의병장’이 되어 진주성 전투에 참가, 성이 함락되자 김천일, 최경회 등과 진주 남강에 투신 자결하여 순절하였는데, 이들 3인을 ‘진주 3장사’라 하였다.
  • 고인후 : 고경명의 둘째 아들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아버지와 함께 금산에서 순국하였다.
  • 차녀 노씨부인 : 정유재란 때 순절하니 슬하의 두 아들과 딸이 난을 당하여 목숨을 바쳤다.
  • 고부립 : 고종후 아들로 정묘호란때 의병장이다.
  • 고부천 : 고인후의 아들. 1615년(광해군 7) 알성문과시에 급제하여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했다.
  • 고광순 : 호가 녹천으로, 고인후의 사손이며, 조선 말기 의병장이다.


=== 대한민국 ===

고인후의 직계 후손은 다음과 같다.

  • 춘강 고정주 규장각 직각
  • 고재필 전 보건사회부 장관
  • 고재청 전 국회 부의장
  • 고재욱 전 동아일보 사장
  • 고재호 전 대법관
  • 고중석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 고윤석 전 서울대 부총장
  • 고문석 전 한양대 법학대학장
  • 고명승 전 육군 대장
  • 고재종 전 전라남도 교육감
  • 고정석 전 산업은행장
  • 고광표 전 대창운수 대표
  • 고일석 전 무등양말 대표
  • 고재진 대위
  • 고재하(Jae Ha Ko)


고경명의 후손으로는 고제철 송원그룹 회장, 고재유 전 광주시장이 있다.

3. 1. 조선


  • 고운 : 151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형조좌랑을 역임하였다.
  • 고맹영 : 고운의 아들. 1540년(중종 35)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첨지중추부사·동부승지·대사간·홍문관부제학·병조참의·이조참의·호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 고경명 : 1558년(명종 13) 식년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였고, 예조참의 지제교 독서당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둘째 아들 고인후와 함께 금산에서 순국하였다. 슬하에 고종후, 고인후, 고준후, 고순후, 고유후, 고용후 6형제와 2녀를 두었다.
  • 고종후 : 고경명의 첫째 아들로 ‘복수의병장’이 되어 진주성 전투에 참가하여 성이 함락되자 김천일, 최경회 등과 진주 남강에 투신 자결하여 함께 순절하였는데, 이들 3인을 ‘진주 3장사’라 하였다.
  • 고인후 : 고경명의 둘째 아들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아버지와 함께 금산에서 순국하였다.
  • 차녀 노씨부인 : 정유재란 때 순절하니 슬하의 두 아들과 딸이 난을 당하여 목숨을 바쳤다.
  • 고부립 : 고종후 아들로 정묘호란때 의병장이다.
  • 고부천 : 고인후의 아들. 1615년(광해군 7) 알성문과시에 급제하여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했다.
  • 고광순 : 호가 녹천으로, 고인후의 사손이며, 조선 말기 의병장이다.

3. 2. 대한민국

고인후(高因厚)의 직계 후손으로는 춘강 고정주 규장각 직각, 고재필 전 보건사회부 장관, 고재청 전 국회 부의장, 고재욱 전 동아일보 사장, 고재호 전 대법관, 고중석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고윤석 전 서울대 부총장, 고문석 전 한양대 법학대학장, 고명승 전 육군 대장, 고재종 전 전라남도 교육감, 고정석 전 산업은행장, 고광표 전 대창운수 대표, 고일석 전 무등양말 대표, 고재진 대위, 고재하(Jae Ha Ko) 등이 있다.

고경명의 후손으로는 고제철 송원그룹 회장, 고재유 전 광주시장이 있다.

4. 과거 급제자

장흥 고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8명, 무과 급제자 7명, 생원시 합격자 25명, 진사시 합격자 30명, 음관 19명을 배출하였다.[2]

4. 1. 문과

명단

[2]

4. 2. 무과

인물
고대중
고시철
고시필
고정무
고제순
고한종
고후진

[2]

4. 3. 생원시

이름생년시호비고
고가인(高可寅)
고경리(高敬履)
고경명(高敬命)
고경훈(高敬訓)
고두기(高斗紀)
고두명(高斗明)
고두익(高斗翼)
고만집(高萬緝)
고민(高旻)
고부즙(高傅楫)
고부함(高傅咸)
고상열(高相說)
고시붕(高時鵬)
고시우(高時遇)
고시인(高時寅)
고시휴(高時休)
고언진(高彦鎭)
고용후(高用厚)
고운(高雲)
고의후(高依厚)
고제달(高濟達)
고제두(高濟斗)
고종주(高宗柱)
고중영(高仲英)
고한형(高漢亨)

[2]

4. 4. 진사시

이름한자
고경명(高敬命)高敬命
고경선(高敬先)高敬先
고경조(高敬祖)高敬祖
고계영(高季英)高季英
고광문(高光文)高光文
고광수(高光壽)高光壽
고규상(高圭相)高圭相
고달상(高達相)高達相
고대진(高大鎭)高大鎭
고두문(高斗文)高斗文
고두익(高斗翼)高斗翼
고두평(高斗平)高斗平
고부량(高傅良)高傅良
고부천(高傅川)高傅川
고부함(高傅咸)高傅咸
고순후(高循厚)高循厚
고습(高習)高習
고시한(高時翰)高時翰
고시훈(高時勳)高時勳
고영진(高英鎭)高英鎭
고용후(高用厚)高用厚
고운(高雲)高雲
고응묵(高應默)高應默
고의후(高依厚)高依厚
고익승(高益昇)高益昇
고인후(高因厚)高因厚
고일주(高馹柱)高馹柱
고정주(高鼎柱)高鼎柱
고제천(高濟川)高濟川
고종후(高從厚)高從厚

[2]

4. 5. 음관

이름
고광국
고만구
고백원
고봉진
고석현
고성진
고시면
고시신
고시협
고시홍
고제급
고제성
고제승
고제은
고제응
고제환
고제희
고태진
고혜진


5. 인구

1985년에는 장흥 고씨 9,877가구, 41,641명, 장택 고씨 840가구, 3,510명, 창평 고씨 352가구, 1,522명으로 총 46,673명이었다.[1] 2000년에는 장흥 고씨 19,316가구, 61,626명, 장택 고씨 1,157가구 3,710명, 창평 고씨 550가구, 1,811명으로 총 67,147명이었다.[1] 2015년에는 장흥 고씨 75,517명, 장택 고씨 38,539명으로 총 114,056명이었다.[1]

연도장흥 고씨장택 고씨창평 고씨합계
1985년9,877가구, 41,641명840가구, 3,510명352가구, 1,522명46,673명
2000년19,316가구, 61,626명1,157가구, 3,710명550가구, 1,811명67,147명
2015년75,517명38,539명-114,056명


참조

[1] 웹인용 장흥 고씨 (長興 髙氏) http://www.surname.i[...] 성씨정보 2008-09-17
[2] 인물 한국학중앙연구원
[3] 뉴스 [한국의 명가 명택 10] 한국적 살롱문화 溪山風流의 산실 - 전남 광주 기세훈(奇世勳) 고택 http://www.donga.com[...]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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