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장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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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재보장 조약은 1887년 독일 제국과 러시아 제국 간에 체결된 비밀 조약이다. 이 조약은 삼황동맹 해체 이후, 발칸 반도를 둘러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 제국의 경쟁 속에서 독일이 러시아와 맺은 일시적인 협약이었다. 주요 내용은 독일과 러시아가 제3국과의 전쟁에서 우호적 중립을 지키고, 러시아가 터키 해협을 점령할 경우 독일이 이를 지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890년 빌헬름 2세의 비스마르크 해임 이후 독일이 조약 갱신을 거부하면서, 러시아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게 되었고,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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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7년 조약 - 중국-포르투갈 우호통상조약
중국-포르투갈 우호통상조약은 1887년 포르투갈이 마카오에 대한 영구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청나라와 체결한 조약으로, 마카오의 영구적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포르투갈이 중국에 토지세를 지불하고, 마카오를 제3국에 양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보장 조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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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 정보 | |
제목 | 독로 재보장 조약 |
다른 이름 | 재보험 조약, 이중 보장 조약 |
원어 제목 (독일어) | Rückversicherungsvertrag |
원어 제목 (러시아어) | Договор перестраховки |
서명일 | 1887년 6월 18일 |
실효일 | 1890년 |
당사국 |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
조약 내용 | |
내용 | 독일은 러시아의 불가리아와 동루멜리아에서의 기득권을 인정함. 러시아가 보스포루스 해협이나 다르다넬스 해협을 점령할 경우 독일은 러시아를 국제 외교적으로 지원하고 발칸 반도 진출을 인정함. 조약 당사국 중 한 곳이 제3국과 전쟁을 벌일 경우, 다른 당사국은 호의적 중립을 지킴. |
관련 정보 |
2. 배경
1887년 삼황동맹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 제국 간의 세력권 경쟁, 특히 발칸 반도를 둘러싼 경쟁으로 인해 해체되었다.[2] 비스마르크는 유럽의 평화를 유지하고자 했으나,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간의 발칸 반도 지배 경쟁은 심화되었다. 비스마르크는 러시아와 프랑스의 동맹을 막고, 독일이 두 전선 전쟁에 직면하는 상황을 피하고자 러시아와의 합의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2. 1. 삼황동맹의 붕괴와 발칸 반도의 위기
188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 제국 간의 발칸 반도를 둘러싼 경쟁이 심화되면서 삼황동맹이 해체되었다.[2] 비스마르크는 유럽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와 프랑스의 동맹을 막고, 독일이 양면전쟁에 직면하는 상황을 피하고자 했다. 그는 러시아와의 합의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2. 2. 독일과 러시아의 비밀 협상
1887년 초, 러시아 외교관이 베를린을 방문하여 독일과 프랑스 간의 전쟁에서 러시아의 우호적인 중립국 지위를 제안했다. 그 대가로 독일은 불가리아에서 러시아의 지배력을 인정하고,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터키 해협을 점령할 경우 우호적 중립을 약속했다. 알렉산드르 3세는 처음에는 이 계획을 거부했으나, 외무장관 니콜라이 기르스(Nikolay Girs)의 설득으로 승인했다. 비스마르크는 러시아가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일 경우 독일의 중립을 요구하는 러시아의 요청은 거절했다.[2]3. 조약의 내용
삼국동맹이 붕괴된 후, 독일은 러시아와 프랑스의 접근을 막고 두 전선 작전을 피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의 프랑스 접근을 막기 위해 독일-러시아 재보장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의 유효 기간은 3년이었다. 이 협정은 삼국동맹 가맹국인 오스트리아와 대립하는 러시아와의 조약이므로, 비밀 조약이었다.[1]
3. 1. 우호적 중립 조항
독일과 러시아는 제3국과 전쟁을 할 경우, 서로 우호적 중립을 지키기로 합의했다.[1] 그러나 독일이 프랑스를 공격하거나, 러시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를 공격하는 경우에는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았다.[1]3. 2. 러시아의 발칸 반도 진출 지지
독일은 러시아의 불가리아와 동루멜리아에서의 기득권을 인정했다.[1] 러시아가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을 점령할 경우, 독일은 국제 외교에서 러시아를 지지하고 발칸반도 진출을 인정했다.[1]4. 조약의 갱신 거부와 그 결과
1890년 카이저 빌헬름 2세가 비스마르크를 해임한 후, 러시아는 재보장 조약 갱신을 요청했지만 독일은 이를 거부했다.[3] 비스마르크의 해임, 빌헬름 2세의 변덕스러운 성격, 그리고 비스마르크 후임자들의 불확실한 정책은 국제적 불안정을 야기했다.[6]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재보장 조약 자체가 운영 중일 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는 데 동의하지만, 갱신 실패는 러시아가 독일에서 멀어지고 프랑스로 향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표시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 중 하나였다고 평가한다.[9] 시드니 파이는 갱신 실패가 전환점이었다는 데 동의하지만, 이는 러시아와 독일을 갈라놓은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1890년 7월 독일과 영국의 조약은 러시아가 베를린이 런던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의심하게 만들었다. 범슬라브주의는 러시아에서 발칸을 지배하려는 결의와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그 결과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서로 점점 더 소원해졌고, 독일은 유일한 동맹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지원해야 했다. 또한 프랑스에서의 복수주의 부활은 러시아가 공화주의에 오랫동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자 하는 열망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10]
4. 1. 독일의 입장 변화
레오 폰 카프리비는 비스마르크의 후임으로 러시아를 달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독일 외교 정책 당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국, 루마니아, 이탈리아 등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갱신을 거부했다.[3][4]조약 불갱신을 앞두고 외무부 차관 베르켐 백작은 조약이 독일에게 불리한 이유와 갱신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각서를 작성하여 카프리비 총리에게 전달했고, 총리는 이를 접수하여 조약 불갱신에 영향을 주었다.[3]
빌헬름 2세는 알렉산드르 3세와의 개인적인 우정이 원만한 외교 관계를 보장하기에 충분하다고 믿었고, 영국과의 관계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영국-러시아 관계는 오랫동안 러시아가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터키 해협을 장악하려는 움직임 때문에 긴장 상태였고, 영국은 러시아의 남쪽으로의 확장이 중동의 영국 식민지 이익을 위협할 것을 우려했다.[5]
1896년 은퇴한 비스마르크는 독일 신문에 조약의 존재를 폭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고, 1890년 불갱신에 대한 책임을 카프리비에게 돌렸다. 비스마르크는 조약의 실패로 프랑스와 러시아가 가까워지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8]
4. 2. 프랑스-러시아 동맹의 체결
조약 갱신 실패는 러시아를 독일 동맹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러시아는 전략적 거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군사적, 경제적 안보를 필요로 했다. 동맹국이 절실히 필요했던 프랑스는 러시아 경제 재건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제공했고, 1894년 프랑스-러시아 동맹을 성공적으로 체결하여 프랑스의 고립을 종식시켰다.[5] 이는 비스마르크가 유럽 내 복잡한 동맹 관계에서 프랑스를 고립시키려 했던 정책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5]5. 역사적 평가와 영향
비스마르크의 "주변 분산" 전략의 일환으로 체결된 재보험 조약은 그의 권위에 크게 의존했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재보험 조약 자체가 운영 중일 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는 데 동의하지만, 갱신 실패는 러시아가 독일에서 멀어지고 프랑스로 향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표시했으며, 따라서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 중 하나였다고 평가한다.[9]
삼국동맹이 붕괴된 후, 독일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접근을 막고 두 전선 작전을 피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러시아가 프랑스와 가까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독일-러시아 재보장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기간은 3년이었다.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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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러시아의 불가리아와 동루멜리아에서의 기득권을 인정한다. |
러시아가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 양 해협을 점령할 경우, 독일은 러시아를 국제 외교에서 지지하고 발칸반도 진출을 인정한다. |
조약 당사국 중 한쪽이 제3국과 전쟁을 할 경우, 다른 쪽은 우호적 중립을 지킨다. |
이 협정은 같은 삼국동맹 가맹국인 오스트리아와 대립하는 러시아와의 조약이므로, 명백히 무리가 있었다. 이 조약은 비밀 조약이었으며, 비스마르크의 사임 후 독일 측의 거부로 갱신되지 않았다.
5. 1.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
많은 역사학자가 재보장 조약의 갱신 실패를 제1차 세계 대전 발발의 한 원인으로 본다.[9] 시드니 파이는 조약 불갱신 외에도 러시아와 독일을 갈라놓은 여러 요인을 지적했다. 1890년 7월 독일-영국 조약으로 러시아는 베를린이 런던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의심했다.[10] 범슬라브주의가 성장하며 러시아는 발칸 지배 의지를 키웠고, 그 결과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점점 멀어졌다. 독일은 유일한 동맹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지원해야 했다.[10] 프랑스에서는 복수주의가 부활하여, 오랫동안 공화주의에 반대해 온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자 하는 열망이 커졌다.[10]5. 2. 비스마르크 실각의 영향
1890년 카이저 빌헬름 2세가 비스마르크를 해임한 후, 러시아는 재보장 조약 갱신을 요청했지만 독일은 거부했다. 비스마르크의 후임인 레오 폰 카프리비는 러시아를 달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3] 조약 불갱신을 주장한 주요 인물은 외무부 차관인 베르켐 백작이었다. 그는 조약이 독일에게 불리한 이유와 갱신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각서를 작성하여 카프리비 총리에게 전달했고, 총리는 이를 접수하여 조약 불갱신에 영향을 주었다.[3] 독일 외교 정책 당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영국, 루마니아, 이탈리아와 관련된 다른 많은 독일의 입장과 상반되기 때문에 갱신을 만장일치로 거부했다. 예를 들어, 재보험 조약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루마니아를 보호하기로 약속한 1883년 오스트리아-루마니아 조약과 상반되었으며, 러시아는 그 조약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4]외교 정책에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빌헬름 2세는 차르 알렉산드르 3세와의 개인적인 우정이 더욱 원만한 외교 관계를 보장하기에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의 최우선 과제는 영국과의 관계 개선이었다. 영국-러시아 관계는 오랫동안 러시아가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터키 해협을 장악하려는 움직임 때문에 긴장 상태였고, 영국은 러시아의 남쪽으로의 확장이 중동의 영국 식민지 이익을 위협할 것을 우려했다.[5] 조약 불갱신은 러시아를 독일 동맹에서 멀어지게 했고, 러시아가 그러한 전략적 거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군사적, 경제적 안보의 필요성을 만들어냈다. 동맹국을 절실히 필요로 했던 프랑스는 러시아 경제 재건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제공했고, 1894년 프랑스-러시아 동맹을 성공적으로 체결하여 프랑스의 고립을 종식시켰다.[5] 비스마르크의 해임, 빌헬름 2세의 변덕스러운 성격, 그리고 비스마르크의 후임자들의 불확실한 정책은 증가하는 국제적 불안정의 공동 원인이었다.[6]
1896년 은퇴한 비스마르크는 독일 신문에 조약의 존재를 폭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1890년 불갱신에 대한 책임을 그의 후임인 카프리비에게 돌렸다. 비스마르크는 조약의 실패로 프랑스와 러시아가 가까워지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8]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재보험 조약 자체가 운영 중일 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는 데 동의하지만, 갱신 실패는 러시아가 독일에서 멀어지고 프랑스로 향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표시했으며, 따라서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 중 하나였다.[9]
6. 한국에 대한 시사점
재보장 조약은 강대국 간의 복잡한 외교 관계와 세력 균형이 국제 정세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참조
[1]
서적
The Aftermath of the Reinsurance Treaty
Princeton UP
[2]
서적
The Struggle for Mastery in Europe, 1848–1918
[3]
학술지
Die Grosse Politik der Europaischen Kabinette, 1871-1914
http://dx.doi.org/10[...]
1922-01-01
[4]
서적
Great power diplomacy, 1814–1914
[5]
학술지
Russia, the Straits Question, and the European Powers, 1904-8
https://www.jstor.or[...]
1929-01-01
[6]
서적
The New Cambridge Modern History: The Shifting Balance of World Forces 1898–1945
Cambridge University Press
[7]
서적
The alliance that wasn't: Germany and Austria-Hungary in World War I
https://www.cambrid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4-03-23
[8]
서적
Bismarck: a life
[9]
서적
[10]
서적
The Origins of the World War
[11]
문서
「二重保障」条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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