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기
1. 개요
쟁기는 농업에서 토양을 갈고 씨앗을 심거나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이다. 인류는 농업의 시작과 함께 쟁기를 사용해 왔으며, 초기에는 손이나 동물을 이용하여 땅을 갈았다. 쟁기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왔으며, 초기 형태인 활 쟁기(Ard)에서 흙판 쟁기, 강철 쟁기, 스텀프 점프 쟁기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현대에는 트랙터와 결합되어 대규모 농업에 사용되며, 몰드보드 쟁기, 원판 쟁기, 로터리 쟁기, 굴착식 쟁기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쟁기질은 토양을 부드럽게 하고 공기를 통하게 하는 등 장점이 있지만, 토양 침식을 유발하고 경반층을 형성하는 등 문제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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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도 | 토양을 갈고 밭을 일구는 데 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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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 Plough (플라우) |
|---|---|
| 일본어 | 犂 (すき, 스키) 또는 犁 (からすき, 카라스키) |
| 한국어 | 쟁기 |
| 기원 | 신석기 시대 |
|---|---|
| 초기 형태 | 막대기 쟁기 |
| 발전 | 동물 견인 쟁기 강철 쟁기 트랙터 쟁기 |
| 주요 구성 요소 | 쟁기날 쟁기 몸체 몰드보드 (쟁기판) 랜스 |
|---|---|
| 작동 원리 | 쟁기날로 흙을 자르고 몰드보드로 흙을 뒤집어 골을 만듦 |
| 막대기 쟁기 | 가장 원시적인 형태 |
|---|---|
| 몰드보드 쟁기 | 흙을 뒤집는 데 효과적 |
| 회전 쟁기 | 회전날을 사용하여 흙을 갈음 |
| 원반 쟁기 | 원반 모양의 날을 사용 |
| 상징 | 농업, 풍요, 노동의 상징 |
|---|---|
| 관련 속담 | 쟁기질 한 번에 씨앗 세 섬 |
| 현대 기술 | GPS 기반 자동 쟁기 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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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쟁기는 씨앗을 뿌리거나 심기 전에 흙을 풀거나 뒤집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로, 농업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쟁기질은 토양을 뒤집어 신선한 영양분을 표면으로 가져오고, 작물 잔여물과 잡초를 묻어 부식시키며, 토양을 공기에 노출시켜 수분 유지를 돕는다.
초기에는 사람이 쟁기를 끌었지만, 이후 소, 말 등 가축의 힘을 이용하면서 효율성이 높아졌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증기 기관이, 20세기 초에는 내연 기관 트랙터가 쟁기를 끄는 주요 동력원이 되었다. 현대에는 토양 손상과 침식을 우려하여 전통적인 쟁기 사용이 줄고, 얕은 쟁기질이나 보존 경운 기법이 활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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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쟁기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가라스키(唐犂), 구비키스키(頸木鋤), 우시비키스키(牛引鋤) 등으로 불렸다. 쇼소인에는 758년 정월 행사에 사용된 자일수신(子日手辛鋤)이 소장되어 있다. 다이카 개신 시대에 장상려(長床犂)가 도입되었고, 이후 한반도에서 무상려(無床犂)가 전래되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장상려와 무상려의 장점을 결합한 단상려(短床犂)가 개발되어 전국적으로 보급되었으며, 개화기 이후에는 서양식 쟁기(플라우)가 도입되어 밭농사뿐만 아니라 논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2.1. 괭이질
농업이 처음 발전했을 때, 흙은 단순한 손으로 잡는 파는 막대와 괭이를 사용하여 갈았다. 이것들은 매년 홍수가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나일강과 같은 비옥한 지역에서 씨앗을 심을 고랑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파는 막대, 괭이는 어느 한 곳에서 발명된 것이 아니며, 괭이 농업은 농업이 행해지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흔했을 것이다. 괭이 농법은 돌이 많은 토양, 가파른 경사, 우세한 뿌리 작물 및 넓은 간격으로 재배되는 조잡한 곡물이 특징인 열대 또는 아열대 지역의 전통적인 경작 방법이다. 괭이 농업은 이러한 지역에 가장 적합하지만, 어느 정도 방식으로 어디에서나 사용된다.
2.2. 쟁기 (Ard)
기원전 6천년경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문명에서 소를 가축화하면서 인류는 쟁기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견인력을 얻었다. 가장 초기의 쟁기는 활 쟁기(Ard)였는데, 이는 머리(또는 몸체)라고 불리는 얇은 수직 막대기에 의해 관통된 견인 막대(또는 빔)로 구성되었다. 한쪽 끝은 자루(손잡이)이고 다른 쪽은 쟁기 날(절삭 날)이었으며, 얕은 밭고랑을 만들기 위해 표토를 통해 끌었다.
쟁기는 새로운 땅을 잘 개간하지 못했기 때문에, 풀과 덤불을 뽑기 위해 호미나 괭이를 사용해야 했다. 쟁기는 밭고랑 사이에 흙을 남겨두었기 때문에, 밭은 종종 길이 방향과 폭 방향으로 교차하여 쟁기질되었으며, 이는 사각형의 켈트 밭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었다.
로마 시대에 켈트족은 처음으로 바퀴 달린 쟁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2.3. 흙판 쟁기 (Mould-board plough)
흙판 쟁기는 흙을 뒤집어 표면에 새로운 영양분을 공급하고 잡초와 이전 작물의 잔재를 묻어 썩게 하는 데 사용되었다. 흙판 쟁기는 밭에 고랑(furrow)이라고 불리는 뚜렷한 도랑을 남긴다. 흙판 쟁기는 밭을 가는 데 필요한 시간을 크게 줄여 농부가 더 넓은 면적의 땅을 경작할 수 있게 했다. 또한, 흙판 쟁기로 인해 생긴 이랑은 물길을 형성하여 토양 배수를 돕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에서는 눈이 녹은 물이 빨리 흘러나가 농부들이 더 일찍 파종할 수 있게 했다.
기원전 1000년경 고대 근동에서 분리 및 교체 가능한 섕크(share)를 가진 초기 쟁기가 등장했으며, 기원전 500년경 중국에서 최초의 쇠 쟁기 섕크가 나타났다. 초기 흙판은 칼날이 만든 절단면 안에 위치한 쐐기 모양으로, 흙을 옆으로 뒤집었다. 쟁기 섕크는 절단면을 표면 아래 수평으로 넓혀 흙판이 들어 올릴 때 더 넓은 면적의 흙이 뒤집히도록 했다. 흙판은 6세기 후반부터 영국에서 알려졌다.
한나라(기원전 202년~서기 220년) 이전의 중국 쟁기는 쟁기 쇳날을 제외하고 거의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나무 날과 손잡이에 V자형 철 조각이 장착되었다. 한나라 시대에 쟁기 쇳날 전체가 주철로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가장 초기에 알려진 무거운 흙판 철제 쟁기이다. 1279년 송나라 말에 이르러 중국 쟁기는 17세기까지 네덜란드에서 볼 수 없었던 수준의 발전에 도달했다.
Francesca Bray영어는 한나라 시대 중국 쟁기가 효율성 조건을 훌륭하게 충족했으며, 이는 표준적인 한나라 쟁기 팀이 단 두 마리의 동물, 나중에는 한 마리의 동물로 구성된 이유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18세기 유럽에서는 곡선 흙판과 다른 새로운 설계 원리가 도입되기 전까지 4, 6, 8마리의 견인 동물이 흔했다. 초기 중세 시대 또는 늦은 로마 시대에 흙판 쟁기가 유럽에 처음 등장했지만, 18세기 이전의 흙판은 대개 나무로 만들어졌고 직선형이었다. 이러한 구조는 끌어당기는 데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고, 넓은 지역의 토지를 목초지로 확보해야 했다. 중국에서는 동물의 힘이 훨씬 적게 필요했기 때문에 유럽의 혼합 경작-목초지 경제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고, 휴경지를 줄이고 경작지를 확장하여 유럽의 동일한 면적의 토지보다 훨씬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서기 3세기 말과 4세기에 중형 바퀴 보습 쟁기를 개발했으며, 고고학적 증거가 로마 브리튼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그리스와 로마의 보습은 일반적으로 밧줄 조각으로 샤프트 바닥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중국 쟁기보다 약했고, 철제 보습은 10세기까지 유럽에 나타나지 않았다. 카루카 중쟁기의 유럽 전반에 걸친 채택은 8세기 후반과 9세기 초에 삼포식 농법의 채택과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북유럽에서 단위 토지당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계몽주의 시대에 디자인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쟁기 설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1730년 영국 로더럼의 조셉 폴잠브는 로더럼 쟁기를 기반으로 새로운 형태를 사용하고 성형판을 철로 덮었다. 로더럼 쟁기는 칼날, 성형판, 손잡이로 구성되었고 이전 디자인보다 훨씬 가벼워 영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는 공장에서 널리 제작되어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쟁기였을 것이다.
1789년 로버트 랜섬은 입스위치의 철물 주조공으로, 쟁기 섕크를 주조하기 시작했다. 깨진 금형으로 인해 용융 금속이 차가운 금속과 접촉하여 금속 표면이 매우 단단해졌고, 이는 랜섬이 "자동 연마" 쟁기로 광고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이 발견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제임스 스몰은 수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제임스 앤더슨 오브 허미스턴의 스코틀랜드 쟁기를 개선한 단일 철 조각으로 주조된 형태에 도달했다. 단일 조각 주철 쟁기는 찰스 뉴볼드가 미국에서 개발하여 특허를 받았다. 이는 뉴욕주 스키피오의 대장장이인 제스로 우드에 의해 다시 개선되었는데, 그는 부러진 조각을 교체할 수 있는 3부분 스코틀랜드 쟁기를 만들었다. 1833년 존 레인은 강철 쟁기를 발명했다. 1837년 존 디어는 강철 쟁기를 도입했는데, 이는 철 디자인보다 훨씬 강력하여 이전에 농업에 부적합하다고 생각되었던 미국의 토지를 경작할 수 있었다.
1900년대 초까지 강철 쟁기는 다양한 용도, 모양, 이름을 갖게 되었다. "두 마리 말 파쇄 쟁기"는 토양 표면을 파쇄하고 흙을 뒤집는 데 사용되었다. "삽 쟁기"는 줄을 긋는 데, "써레 쟁기"는 심어진 씨앗을 덮는 데 사용되었다. "스크래처" 또는 "지위즈"는 잡초를 제거하거나 작물을 경작하는 데, "황소 혀"와 "쓸어내기"는 줄의 중간을 쟁기질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모든 금속 쟁기 팁은 거칠고 바위가 많은 땅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약 10일마다 다시 연마해야 했다.
2.4. 한국에서의 쟁기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쟁기를 사용해 왔으며, 가라스키(唐犂), 구비키스키(頸木鋤), 우시비키스키(牛引鋤) 등으로 불렸다. 쇼소인에는 758년 정월 행사에 사용되었다고 전해지는 자일수신(子日手辛鋤)이 소장되어 있다. 다이카 개신 시대에 장상려(長床犂)가 도입되었고, 이후 한반도에서 무상려(無床犂)가 전래되었다. 메이지 시대 이후 장상려와 무상려의 장점을 결합한 단상려(短床犂)가 개발되어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개화기 이후 서양식 쟁기(플라우)가 도입되어 밭농사뿐만 아니라 논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3. 구조
현대 쟁기의 기본적인 부품은 다음과 같다:
* 빔
* 히치 (영국 영어: 헤이크)
* 수직 조절기
* 칼날 (그림에는 칼날형 칼날이 있지만, 원반형 칼날도 흔함)
* 쇠날 (앞 쟁기날)
* 보습 (주 쟁기날)
* 굴곡판
이 외에도 개구리 (또는 프레임), 러너, 랜드사이드, 신, 트래시보드, 손잡이 등이 있다. 현대 쟁기와 일부 구형 쟁기는 굴곡판이 보습 및 러너와 분리되어 있어, 이 부품들이 마모되어 교체할 때 굴곡판을 함께 교체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결국 토양과 접촉하는 모든 부품은 마모된다.
괭이날, 밭날, 굴곡판은 프로그에 볼트로 고정된다. 프로그는 쟁기 몸체 바닥에 있는 불규칙한 주철 조각으로, 토양과 닿아 마모되는 부품들이 볼트로 고정되는 부분이다. 괭이날은 흙을 수평으로 잘라 고랑 조각을 아래 토양에서 분리하는 가장자리이다. 괭이날이 마모되면 무뎌져 쟁기가 흙을 통과하는 데 더 많은 힘이 필요하게 된다. 밭날은 쟁기 바닥의 측면 추력을 고랑 벽으로 전달하고 가하는 평판으로, 굴곡판에 고랑 조각이 가하는 측면 압력을 견디는 데 도움을 준다. 괭이날 뒤쪽에서 쟁기 뒤쪽으로 뻗어 있는 러너는 쟁기의 방향을 제어한다. 프로그(표준)는 쟁기 바닥의 중앙 부분으로, 바닥의 다른 구성 요소가 부착된다.
3.1. 쟁기의 종류
쟁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 보습 쟁기는 토양을 조각으로 자른다.
* 원판 쟁기는 보습 쟁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에서 사용할 수 있다.
* 로터리 쟁기는 파종상을 준비하는 데 사용된다.
4. 쟁기질의 영향
쟁기는 씨앗을 뿌리거나 심기 전에 흙을 부드럽게 하거나 뒤집는 데 사용되는 농기구이다. 쟁기는 전통적으로 소와 말이 끌었지만 현대 농장에서는 트랙터가 끈다. 쟁기는 흙을 자르고 느슨하게 하기 위해 칼날이 부착된 나무, 철 또는 강철 프레임으로 구성될 수 있다. 쟁기질의 주요 목적은 토양의 최상층을 뒤집어 신선한 영양분을 표면으로 가져오는 동시에 잡초와 농작물의 잔여물을 묻어 썩게 하는 것이다. 쟁기로 파낸 도랑을 고랑이라고 한다. 현대에는 일반적으로 쟁기질된 밭을 건조시킨 다음 심기 전에 써레질한다. 토양을 갈아서 경작하면 대부분의 식물 먹이 뿌리가 자라는 토양 상부 12cm~25cm 층의 함량이 균일해진다.
쟁기는 처음에는 사람이 사용했지만, 농장 동물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산업 혁명으로 증기 기관이 쟁기를 끌 수 있게 되었고, 20세기 초에는 내연 기관 트랙터로 대체되었다.
토양 손상과 침식으로 위협받는 일부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쟁기 사용이 감소하고, 얕은 쟁기질이나 덜 침습적인 보존 경운 기법이 사용된다.
4.1. 쟁기질의 장점
* 기온 변화가 있는 기후 지역에서 20cm 안쪽으로 쟁기질을 하면 흙이 부드러워지고 공기가 잘 통하게 된다. 이때 수확 후 남은 작물 잔여물, 퇴비, 석회, 화학 비료 등을 흙과 섞어주면 질소 손실을 줄이고 유기물 분해를 촉진하여 흙에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다.
* 타이어 자국이나 콤바인 바퀴 자국을 없애준다.
* 많은 다년생 잡초를 억제하고, 이듬해 봄까지 다른 잡초의 성장을 막아준다.
* 봄철 지온 상승과 수분 증발을 도와 토양 표면을 건조시켜 가벼운 파종기로 씨앗을 뿌리기 쉽게 해준다.
* 달팽이, 모기, 콩씨벌레, 천공충 등 작물에 해로운 해충을 억제한다.
* 흙 속에서 사는 지렁이(endogea) 수는 늘어나지만, 수직으로 굴을 파고 사는 지렁이(anecic)에게는 해롭다.
4.2. 쟁기질의 문제점
쟁기질은 여러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우선, 쟁기질은 바람과 물에 의한 토양 침식을 크게 가속화한다. 이는 흙이 다른 장소나 바다와 같은 수역으로 유실되어 퇴적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193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먼지 폭풍인 더스트 볼은 쟁기질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또한, 과도한 쟁기질은 경반층 형성을 초래할 수 있다. 경반층은 흙 표면 아래 깊숙이 굳어진 층으로, 식물의 뿌리가 통과하기 어렵고 물의 침투를 막아 작물 생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농부들은 심토 파쇄기와 같이 길고 날카로운 칼날을 가진 도구를 사용하여 경반층을 파쇄하기도 한다.
쟁기질은 토양의 유기물 함량을 빠르게 감소시킬 수 있다. 이는 토양의 기본 구조를 파괴하고 흙의 입단 구조를 손상시켜 장기적으로 토양의 질을 저하시킨다.
마지막으로 쟁기질은 토양을 압축하고 모세 공극을 잃게 하여, 공기와 물의 순환을 방해하고 뿌리 성장을 저해한다.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토양 유실 위험이 있는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쟁기 사용이 감소하고 있으며, 무경운 재배와 같이 쟁기질을 대체하는 방법들이 고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