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 (제왕)
1. 개요
전영은 제나라의 인물로, 기원전 209년 형 전담, 아우 전횡과 함께 봉기하여 제나라를 부흥시켰다. 전담 사후, 전영은 제나라를 장악하고 왕이 되었으나, 항우와의 갈등으로 인해 세 제나라로 분할되었다. 그는 항우에게 반기를 들고 전도, 전시, 전안을 제거한 후 제나라를 통일했으나, 기원전 205년 항우에게 패하여 사망했다. 그의 사후, 동생 전횡이 제나라를 재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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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5년 사망 -
초 의제
초 의제는 진나라 멸망 후 항량에 의해 초나라 왕으로 옹립되었으나 실권을 갖지 못하고 항우에게 소외되어 유방과의 권력 다툼 끝에 암살당했으며, 그의 죽음은 초한 쟁패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
기원전 205년 사망 -
사마앙
사마앙은 조나라 장군 사마상의 아들로, 진나라 멸망 후 항우에 의해 은왕에 봉해졌으나 유방에게 항복한 뒤 팽성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그의 후손은 사마씨 가문을 이루어 훗날 서진과 동진 황실의 기반이 되었다. -
십팔제후왕 -
오예
오예는 진나라 말기에 봉기하여 형산왕과 장사왕을 역임했으며, 유방을 도와 진나라와 항우를 상대로 승리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
십팔제후왕 -
전한 고제
진나라 말기 혼란을 틈타 세력을 키워 초한쟁패에서 승리하고 한나라를 건국한 전한 고제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평민 출신 황제로서 민생 안정에 힘썼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기원전 209년, 진승·오광의 난으로 중국 전역이 혼란에 빠지자, 전영은 종형 전담, 아우 전횡과 함께 봉기하여 제나라를 복구했다. 전담이 제나라 왕이 되었으나, 진나라 장수 장한과의 전투에서 패사하자 전영은 동아로 달아났다. 제나라에서는 전건의 아우 전가를 왕으로 세웠으나, 전영은 이에 불만을 품고 전가를 몰아낸 뒤 전담의 아들 전시를 왕으로 옹립하고 자신이 실권을 잡았다.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킨 후 제후들을 분봉할 때, 전영은 항우에게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전시는 교동(膠東)으로 쫓겨났다. 이에 불만을 품은 전영은 항우에게 반기를 들고, 전시와 전안을 죽이고 스스로 제나라 왕이 되었다.
기원전 205년, 항우가 제나라를 공격하자 전영은 성양에서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고 평원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평원현 백성들에게 살해당하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후 전영의 아우 전횡이 제나라를 재건하고, 전영의 아들 전광을 왕으로 옹립했다.
2.1. 제나라 부흥 운동 (기원전 209년 ~ 기원전 206년)
기원전 209년, 전영은 종형 전담, 아우 전횡과 함께 봉기하여 제나라를 복구했고, 전담이 제나라 왕이 되었다.
전담이 진나라 장수 장한과 싸우다 패사하자, 전영은 동아로 달아났으나 장한에게 포위되었다. 제나라에서는 제왕 전건의 아우 전가를 왕으로, 전각을 상국으로, 전간을 장수로 세웠다. 초나라 항량이 용저와 함께 전영을 도와 장한의 군대를 격파하여 위기에서 벗어났으나, 전영은 본국에서 전가를 왕으로 세운 것에 분노하여 제나라를 공격해 전가와 전각을 몰아내고 전담의 아들 전시를 왕으로 옹립하고 자신은 상이 되어 사실상 제나라를 다스렸다.
전간이 조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러 간 뒤 돌아오지 않고, 전가가 초나라로, 전각이 조나라로 망명하자, 전영은 초나라와 조나라에 이들을 죽일 것을 요청했으나 초 의제와 조나라 모두 들어주지 않았다. 제나라는 항량을 돕지 않았고, 항량은 장한에게 패사하여, 특히 항량의 조카 항우의 원한을 샀다. 한편 전영의 수하 장수 전도는 전영의 조치에 반기를 들고 독자적으로 조나라를 도우러 출진했다.
기원전 206년, 항우를 주축으로 한 제후연합군이 진나라를 멸망시킨 후 항우는 각지에 제후들을 새로이 분봉했다. 전영은 항우의 조나라 구원과 진나라 정복을 돕지 않은데다 항우의 원한을 샀기 때문에, 자신이 옹립한 전시는 교동으로 봉국이 옮겨졌고, 항우를 도와 진나라를 멸한 제나라 장수 전도가 제나라 왕이 되었으며, 제북군의 몇 성을 진나라에서 빼앗고 항우에게 항복한 전안은 제북왕이 되었다. 전영은 이 분봉에 불만을 품고 제나라 선비들을 겁박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고 거부하는 자들은 죽였으며, 조나라의 진여와 손을 잡고 항우에게 반기를 들어 전도를 공격해 초나라로 쫓아냈다.
전시가 항우를 두려워해 교동으로 옮기려 하자 전영은 전시를 죽이고, 제북왕 전안을 공격해 죽여 세 제나라를 아울렀고 자신이 제나라 왕이 되었다. 또 진여를 도와 군사를 주어 상산왕 장이를 내쫓게 했으며, 팽월에게 장군의 인수를 주어 서초의 일부인 양나라 땅을 휩쓸게 했다.
2.2. 항우와의 갈등과 삼제 분할 (기원전 206년)
기원전 206년, 항우가 이끄는 제후연합군이 진나라를 멸망시킨 후, 항우는 각지에 제후들을 새로이 분봉하였다. 그러나 전영은 항우의 조나라 구원과 진나라 정복을 돕지 않았고, 항우에게 원한을 샀기 때문에 왕으로 봉해지지 못했다. 전영에게 옹립되었던 전시는 교동(膠東)으로 봉국이 옮겨졌고, 항우를 도와 진나라를 멸망시킨 제나라 장수 전도가 제나라 왕이 되었다. 또한 제북왕(濟北王) 전안은 제북군의 몇 성을 진나라에서 빼앗고 항우에게 항복하여 제북왕이 되었다.
전영은 이러한 분봉에 불만을 품고 제나라 선비들을 겁박하여 자신을 따르게 하고, 거부하는 자들은 죽였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불만을 품은 조나라의 진여와 손을 잡고 항우에게 반기를 들었다. 전영은 전도를 공격하여 초나라로 쫓아냈고, 전시가 항우를 두려워하여 교동으로 옮기려 하자 그를 죽였다. 또한 제북왕 전안을 공격하여 죽이고 세 제나라를 통합하여 자신이 제나라 왕이 되었다. 그는 진여를 도와 군사를 주어 상산왕 장이를 내쫓게 했으며, 팽월에게 장군 인수를 주어 서초의 일부인 양나라 땅을 휩쓸게 했다.
2.3. 최후 (기원전 205년)
전영(田榮중국어)은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제후들을 분봉할 때, 항우의 조나라 구원과 진나라 정복을 돕지 않았고 항우의 원한을 샀기 때문에 왕으로 봉해지지 못했다. 전영에게 옹립되었던 전시는 교동(膠東)으로 봉국이 옮겨졌고, 항우를 도와 진나라를 멸한 제나라 장수 전도가 대신 제나라 왕이 되었으며, 제북군의 몇 성을 진나라에서 빼앗고 항우에게 항복한 전안은 제북왕(濟北王)이 되었다.
전영은 이 분봉에 불만을 품고 제나라 선비들을 겁박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고 거부하는 자들은 죽였으며, 같이 불만을 품은 조나라의 진여와 손을 잡고 항우에게 반기를 들었다. 전영은 전도를 공격해 초나라로 쫓아냈고, 전시가 항우를 두려워해 교동으로 옮기려 하자 그를 죽이고 제북왕 전안을 공격해 죽여 세 제나라를 아울렀으며 자신이 제나라 왕이 되었다. 또 진여를 도와 군사를 주어 상산왕 장이를 내쫓게 했으며, 팽월에게 장군의 인수를 주어 서초의 일부인 양나라 땅을 휩쓸게 했다.
한왕 2년, 항우가 제나라를 치자 성양(城陽)에서 회전을 벌여 패배하고 평원현(平原縣)으로 달아났으나, 평원현의 백성에게 살해당했다. 전영의 재위 기간은 8달이었다. 이후 초나라에서 전가를 대신 제나라 왕으로 삼았으나, 아우 전횡이 초나라에 맞서 전가를 내쫓고 전영의 아들 전광을 옹립해 제나라를 재건했다.
3. 가계
4. 평가
사마천과 야마구치 히사카즈는 전영을 비롯한 제나라에 대해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모두 내렸다.
4.1. 긍정적 평가
사마천은 "제후들이 항왕(항우)에게 반항했을 때, 오직 제나라만이 성양에서 항우에게 맞섰기 때문에 한나라는 마침내 팽성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연구자 야마구치 히사카즈는 "초한의 흥망이라는 더 큰 역사 속에서 볼 때, 전씨의 내분은 사실, 이를 토벌하기 위해 항우의 힘을 북쪽의 제나라로 분산시키고, 진정한 적이었던 서쪽의 한나라에 국력을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으며, 그것에 의해 항우로부터 일단 손에 넣은 천하를 빼앗는 역할을 했다. 청나라의 역사가인 왕명성이 '항씨(항우)의 패배는 반쯤 전씨에게 견인되었다'(『십칠사상각』)고 말한 것은 타당한 역사관일 것이다. 전담, 전영, 전횡 삼 형제가 얽힌 제나라의 내분은 그들의 공명심에서 비롯되었고, 그들의 권모술수에 의해 부추겨진 것이었지만, 그러나 초나라에서 한나라로의 역사의 추이에 크게 관련된 것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조 유방이 전씨 삼 형제를 '현명하다'고 부른 것은 바로 이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4.2. 부정적 평가
사마천은 『사기』에서 제나라가 항왕에게 맞섰기 때문에 한나라가 팽성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연구자 야마구치 히사카즈는 전씨의 내분이 항우의 힘을 제나라로 분산시켜 한나라에 국력을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고, 결과적으로 항우로부터 천하를 빼앗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청나라 역사가 왕명성은 '항우의 패배는 반쯤 전씨에게 견인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야마구치 히사카즈는 전담, 전영, 전횡 삼 형제의 내분은 공명심과 권모술수에서 비롯되었지만, 초나라에서 한나라로의 역사 추이에 크게 관련된 것도 사실이며, 고조 유방이 삼 형제를 '현명하다'고 부른 것은 이러한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5. 역사적 의의
사마천은 『사기』에서 제후들이 항왕(항우)에게 반항했을 때, 오직 제나라만이 성양에서 항우에게 맞섰기 때문에 한나라가 팽성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야마구치 히사카즈는 초한의 흥망이라는 더 큰 역사 속에서 전씨의 내분은 항우의 힘을 북쪽의 제나라로 분산시켜 서쪽의 한나라에 국력을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으며, 이를 통해 항우로부터 천하를 빼앗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청나라의 역사가 왕명성은 '항우의 패배는 반쯤 전씨에게 견인되었다'고 말했는데, 이는 타당한 역사관이라고 덧붙였다. 전담, 전영, 전횡 삼 형제가 얽힌 제나라의 내분은 그들의 공명심과 권모술수에서 비롯되었지만, 초나라에서 한나라로 역사의 추이가 바뀌는 데 크게 관련된 것도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고조 유방이 전씨 삼 형제를 '현명하다'고 부른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