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정두영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정두영은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부산, 울산, 경남 등지에서 8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다. 그는 1986년에도 살인을 저질러 11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출소 후 절도 행각을 벌이다 연쇄 살인을 시작했다. 정두영은 부유층과 여성을 주로 범행 대상으로 삼았으며, '비 오는 목요일의 살인마'라는 별칭을 얻었다. 2000년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 대전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정두영 사건은 대한민국에 범죄 프로파일링 시스템 도입을 촉진했으며, 유영철 연쇄 살인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정씨 - 정현석 (야구인)
    정현석은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 후 한화 이글스에서 외야수로 활동하며 야구 월드컵 국가대표로도 참가, 위암을 극복하고 복귀하여 역전 만루 홈런을 기록했으며 은퇴 후 한화 이글스 육성군 타격코치로 활동 중인 야구 선수이다.
  • 정씨 - 정용운
    정용운은 KIA 타이거즈에서 데뷔하여 LG 트윈스를 거쳐 은퇴한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로, 통산 6시즌 동안 57경기에 출전하여 4승 4패를 기록했으며, 은퇴 후에는 청소년 야구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 대한민국의 사형수 - 유영철
    유영철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에서 부유층 노인과 여성 마사지사들을 주로 살해하며 사회에 큰 충격을 준 20명 살해 연쇄 살인범으로, 사형 선고 후 현재까지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며 그의 범행은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소재가 되었다.
  • 대한민국의 사형수 - 지존파 사건
    지존파 사건은 1994년 김기환을 중심으로 결성된 지존파가 부유층에 대한 증오를 명분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납치, 살해한 흉악 범죄로, 인질의 탈출과 신고로 세상에 알려져 범인들은 사형당했으며 사회적 불평등 문제 제기와 모방 범죄 야기 등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대한민국의 연쇄살인자 - 온보현
    온보현은 1994년 9월 서울에서 여성 4명을 납치, 강간, 살해한 연쇄살인범으로, 자수 후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되어 지존파 사건 직후 사회적 공포를 야기하고 심야 택시 기피 현상을 초래하는 등 큰 사회적 충격을 주었다.
  • 대한민국의 연쇄살인자 - 이춘재
    이춘재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시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30여 건의 강간 및 강간미수 범행을 저지른 연쇄살인범으로, 1994년 처제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 2019년 DNA 및 자백을 통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밝혀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정두영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정두영
원어 이름鄭斗英
출생일1968년 12월 31일
출생지부산
신장164 cm
체중64 kg
범죄 정보
죄명연쇄살인
상해
강도
절도
도주
현황수감 중
피해자 수18명
사망자 수10명
부상자 수8명
체포 일자2000년 4월 12일
수감처대전교도소
재판 정보
유죄 판결살인
형벌사형
범죄 기간
시작 연도1986년
종료 연도2000년
범죄 위치
국가대한민국
지역부산
추가 정보
희생자 수9명

2. 생애

정두영은 1968년 정부 직할 부산시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2]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보육원 등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으며, 체포 후 진술에서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갖고 싶었다고 말했다.[2] 그의 친형은 정두영의 범행 과정에서 장물을 처리하는 역할을 했으나, 정두영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2. 1. 불우한 어린 시절

정두영은 1968년 정부 직할 부산시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2] 하지만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삼촌 집에 맡겨졌다. 5살이 되던 해에는 삼촌마저 조카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7살 때 어머니가 보육원으로 찾아와 잠시 새아버지 집으로 데려갔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경제적 부담과 이부형제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처럼 정두영은 어린 시절 대부분을 고아원에서 보냈으며,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2] 그는 체포 후 진술에서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갖고 싶었다고 말했다.[2]

2. 2. 범죄의 시작과 수감 생활

정두영은 1968년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2] 그는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재혼하여 삼촌의 보살핌 아래 자랐으며, 어린 시절 대부분을 고아원에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2] 그는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고, 체포 후 진술에서 평범한 가정을 갖고 싶었다고 밝혔다.[2]

18세이던 1985년 5월,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 돈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마주친 교사를 로 찌르고 달아났다.[17] 한 달 뒤인 1985년 6월, 자신을 검문하는 방범대원을 골목길로 유인해 가슴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17] 그는 이 살인 사건의 이유를 방범대원이 자신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2] 이 사건으로 소년원에서 12년간 복역했으며, 복역 중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기도 했다.[17]

1998년 6월에 출소했으나, 같은 해 9월에 절도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6개월간 복역했다.[17] 1999년 3월 10일 홍성교도소에서 두 번째로 출소했다.[17] 출소 전까지 이전의 절도 및 강도 행각으로 모은 돈을 쓰지 않고 통장에 모아두었는데, 그 금액은 1.3억에 달했다.[17][2] 그는 앞으로 강도 행각을 통해 총 10억을 모아 결혼하고, PC방과 아파트를 마련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17][2]

3. 연쇄 살인 사건

정두영은 18세이던 1986년, 전과가 없음에도[3] 경찰관 김찬일(당시 43세)을 살해하여 11년 형을 선고받았다.[1] 대한민국은 당시 사형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으나(1997년까지 집행[4][5]), 비교적 가벼운 형을 받았다. 출소 후 여러 차례 절도로 수감 생활을 하던 그는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 체포될 때까지 본격적인 연쇄 살인을 저질렀다.[3][6] 이 기간 동안 그는 부산, 울산, 경남, 천안 등 여러 지역을 돌며 총 8명을 살해했다.[1]

정두영은 주로 부유층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으며,[7]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그는 특히 비가 오는 목요일에 살인을 저지르는 경향을 보여 '비 오는 목요일의 살인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8] 구체적인 범행 내용은 하위 문단에서 상세히 다룬다.

3. 1. 범행 개요

정두영은 18세이던 1985년 5월,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 침입하여 돈을 훔치려다 교사를 로 찌르고 도주했다. 약 한 달 뒤인 1986년, 그는 칼을 소지하고 다니다 자신을 검문하려던 방범대원 김찬일(당시 43세)을 골목길로 유인해 칼로 가슴을 찔러 살해했다.[3][1] 이 사건으로 그는 소년원에서 11년(또는 12년, 출처 간 상이)간 복역했으며, 복역 중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998년 6월에 첫 출소한 정두영은 같은 해 9월에 절도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6개월간 복역했고, 1999년 3월 10일 홍성교도소에서 두 번째로 출소했다. 그는 출소 후 강도 범행을 계획하며 이전에 절도 및 강도로 모은 돈을 사용하지 않고 통장에 보관했는데, 그 금액은 1.3억에 달했다. 정두영은 강도 행각을 통해 총 10억을 모아 결혼하고 PC방과 아파트를 마련할 계획이었다고 진술했다.[17]

그의 연쇄 살인은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 체포될 때까지 이어졌다.[3][6] 이 기간 동안 그는 부산, 울산, 경남, 천안 등지에서 9명을 살해했다.[1]

  • 1999년 6월 2일: 부산 서구 부민동의 부유층 주택가에서 혼자 집을 지키던 가정부 이영자를 둔기로 머리와 얼굴 부위를 심하게 가격하여 살해했다. 당시 피해자의 집이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관사 옆집이라는 점이 주목받았으나, 우연의 일치로 밝혀졌다.
  • 1999년 9월 15일: 부산 서구 동대신동의 고급 빌라에서 금품을 훔치던 중 또 다른 가정부를 잔혹하게 폭행하여 살해했다.
  • 1999년 10월 21일 ~ 10월 22일: 범행 장소를 울산으로 옮겼다. 10월 22일 오전 10시경, 울산 남구 옥동의 고급 주택에서 1층에 있던 53세 여성을 폭행하고, 이를 제지하던 2층의 24세 아들과 격투 끝에 현관에 있던 망치로 두 사람 모두 수십 차례 가격하여 살해했다. 경찰은 이 사건에서 일반 강도 살인과 다른 '과잉 공격' 경향을 인지했지만, 부산 사건과의 연관성은 파악하지 못했다.
  • 2000년 3월 11일: 부산 서구의 한 고급 주택에서 야구 방망이를 들고 두 여성을 공격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이 아기가 있다고 말하자 공격을 멈추고 살려주었다. 생존자의 진술을 토대로 경찰은 키가 크고 20~30대로 보이는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전국에 알렸다.
  • 2000년 4월 8일: 부산 동구에서 76세 정진태와 그의 가정부를 칼로 찔러 살해하고, 정진태의 할머니도 폭행했다. 그는 현장에서 2430만 상당의 수표를 훔쳤다. 병원으로 이송되던 할머니는 병원에 파견된 경찰관에게 천안에서 체포된 정두영의 사진을 보고 그가 범인이라고 지목했다. 이후 정두영은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정두영은 주로 부유층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으며,[7]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그는 비 오는 목요일에 살인을 저지르는 경향을 보여 '비 오는 목요일의 살인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8]

3. 2. 주요 범행 일지

정두영은 18세이던 1985년 5월,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 돈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마주친 교사를 로 찌르고 달아났다. 한 달 뒤에는 자신을 검문하는 방범대원 김찬일(당시 43세)을 유인하여 칼로 찔러 살해하였고, 이 사건으로 소년원에서 11년을 복역했다.[3][1] 복역 중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으며, 1998년 6월 출소했다. 그러나 출소 직후인 같은 해 9월, 절도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6개월간 복역했고, 1999년 3월 10일 홍성교도소에서 두 번째로 출소했다. 그는 이전 범행으로 모은 돈 1.3억을 쓰지 않고 통장에 모아두었으며, 강도 행각으로 총 10억을 모아 결혼하고 PC방과 아파트를 마련할 계획이었다고 진술했다.[17]

정두영은 1986년 방범대원 살해를 시작으로,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 체포될 때까지 약 10개월간 부산, 울산, 경남, 천안 등지에서 8명을 추가로 살해하는 연쇄 살인 행각을 벌였다.[3][6][1] 이 기간 동안의 주요 범행은 다음과 같다.

날짜장소사건 개요비고
1999년 6월 2일부산 서구 부민동부유층 주택에 침입하여 혼자 있던 가정부 이영자를 둔기로 머리와 얼굴 등을 심하게 가격하여 살해.[1]피해자의 집이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관사 옆집이었으나 우연으로 밝혀짐.
1999년 9월 15일부산 서구 동대신동고급 빌라에 침입하여 금품을 훔치던 중 가정부를 잔혹하게 폭행하여 살해.[1]
1999년 10월 21일울산 남구 옥동고급 주택에 침입하여 1층에 있던 53세 여성과 이를 제지하던 2층의 24세 아들을 망치로 수십 차례 내리쳐 살해.[1]경찰은 일반 강도살인과 다른 과잉 공격에 주목했으나 이전 사건과의 연관성은 파악하지 못함.
2000년 3월 11일부산 서구 서대신동고급 주택에 침입하여 야구 방망이로 여성 2명을 공격. 한 명이 "아기가 있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중상만 입히고 "아기 잘 키워라. 신고하면 죽인다"고 협박한 뒤 도주.[1]생존자의 진술을 토대로 키가 작고 왜소한 20~30대 용의자의 몽타주가 작성되어 전국에 수배됨.
2000년 4월 8일부산 동래구DCM 철강 정진태(76세) 회장 자택에 침입하여 정 회장과 가정부를 로 찔러 살해하고, 정 회장의 친척인 김 할머니를 폭행하여 실신시킴. 사망한 것으로 오인하고 보석, 현금, 수표 등 2430만 상당의 금품과 외제차를 훔쳐 달아남.[1]김 할머니는 병원으로 후송되어 목숨을 건졌고, 이후 정두영 검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함.
2000년 4월 11일경상남도 마산시 (현 창원시)소주 회사 회장 자택에 침입하여 김모 씨에게 중상을 입힘.



2000년 4월 12일, 수사망이 좁혀오자 정두영은 충청남도 천안의 한 고급 주택에서 현금 300만을 훔친 뒤 의도적으로 경찰에 검거되었다. 이후 2000년 3월 11일 사건의 생존자가 정두영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그의 연쇄 살인 행각 전모가 드러났고, 정두영은 모든 범행을 자백했다.[1]

정두영은 주로 부유층 주택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으며,[7]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특히 비가 오는 목요일에 범행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어 '비 오는 목요일의 살인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8]

3. 3. 체포 및 수사

2000년 4월 11일 오전 11시, 경상남도 마산시(현 창원시)의 한 소주 회사 회장 자택에 침입하여 김모 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다음 날인 4월 12일 오후 9시, 충청남도 천안의 고급 주택가에서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을 느낀 정두영은 일부러 단순 절도를 저질러 검거되기로 마음먹고, 한 주택에서 300만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검거 이후, 이전 사건(2000년 4월 8일 부산 동구 사건)의 생존자인 할머니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우연히 정두영을 보고 그가 범인임을 지목했다. 이를 결정적인 계기로 경찰은 정두영으로부터 부산, 경남 지역 연쇄 살인 사건 일체에 대한 자백을 받아냈다.

수사 결과, 정두영은 1986년(당시 18세)에도 전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3] 경찰관 김찬일(당시 43세)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11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1] 당시 대한민국사형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으나(1997년까지 집행[4][5]), 비교적 가벼운 형을 받은 셈이다. 출소 후에도 여러 차례 경미한 절도로 수감 생활을 반복했으며, 본격적인 연쇄 살인은 1999년 6월부터 시작되어 2000년 4월 체포될 때까지 이어졌다.[3][6] 이 기간 동안 그는 부산, 울산, 경남, 천안 등지에서 총 8명을 살해했다.[1] 밝혀진 주요 살인 사건은 다음과 같다.

날짜장소내용
1999년 6월 2일부산 부유한 주택가혼자 살던 가정부 이영자 살해. 얼굴 일부가 심하게 훼손됨. 피해자의 집이 부산고등검찰청 감찰실 바로 옆이었으나 우연의 일치로 결론.
1999년 9월 15일부산 서구 고급 빌라금품 절도 중 가정부 살해.
1999년 10월 21일울산 고급 주택 단지53세 어머니와 24세 아들 살해. 경찰은 다른 강도 사건과 달리 과잉 살해 양상에 주목했으나, 부산 사건과의 연관성은 즉시 밝혀내지 못함.
2000년 3월 11일부산 서구 고급 주택야구 방망이로 여성 2명 공격. 피해자 중 한 명이 아기가 있다고 애원하자 살려줌. 생존자의 진술을 토대로 경찰은 범인의 인상착의(키가 크고 20~30대)를 파악하고 전국 수배령을 내림.
2000년 4월 8일부산 동구76세 정진태와 그의 가정부를 칼로 살해하고, 정진태의 할머니도 폭행. 2430만 상당의 수표 절도. 생존한 할머니가 이후 병원에서 정두영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결정적 증언을 함.



정두영은 주로 부유층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으며,[7]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특히 비가 오는 목요일에 범행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어 "비 오는 목요일의 살인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8]

4. 재판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정두영은 2000년 7월 21일 부산지방법원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3] 이에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30일 부산고등법원은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9] 정두영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여 사형이 최종 확정되었고, 현재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4. 1. 1심 (부산지방법원, 2000년 7월 21일)

2000년 7월 21일, 부산지방법원은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두영에게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여 사형을 선고했다.[18][3] 또한, 장물취득 등의 혐의로 함께 기소된 정두영의 형 정부영과[18] 처남 김종영에게는[9]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18][9] 정두영을 포함한 피고인들은 이 판결에 불복하여 부산고등법원항소장을 제출했다.[18][9]

4. 2. 2심 (부산고등법원, 2000년 11월 30일)

2000년 11월 30일, 부산 고등법원은 정두영과 공범들에 대한 항소심에서 모든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정두영에게 사형, 그의 형 정부영과 공범 김종준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이 유지되었다. 정두영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여 사형이 확정되었고, 현재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5. 수감 생활 및 탈옥 미수

(내용 없음)

5. 1. 대전교도소 복역

정두영에 대한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다.[3] 대한민국은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종신형으로 복역할 것으로 보인다.[10]

2016년 9월 28일,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그는 작업장에서 비밀리에 제작한 사다리를 이용하여 탈옥을 시도하다 발각되었다. 교도소 담 3개 중 2개를 넘었으나 마지막 담을 넘는 데 실패했다.[11]

5. 2. 탈옥 미수 사건 (2016년)

2016년 9월 28일,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정두영은 작업장에서 몰래 만든 사다리를 이용해 탈옥을 시도했다.[11] 그는 교도소 담 3개 중 2개를 넘었으나, 마지막 담을 넘는 데 실패하여 붙잡혔다.[19]

6. 사회적 영향

정두영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 여러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은 범죄 프로파일링 시스템 도입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12][13][14] 이후 발생한 유영철 연쇄 살인 사건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6]

6. 1. 범죄 프로파일링 도입

정두영 사건 이전, 대한민국에는 범죄 프로파일링 시스템이 없었다. 1998년 김연아와 권일용은 한국 과학수사연구회를 설립하여 이 비정부 기구를 통해 경찰청에 범죄 프로파일링의 필요성을 제기했다.[12] 정두영 사건 이후 그 필요성이 인식되어, 경찰청은 2000년 권일용을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파일러로 지정했다.[13][14]

6. 2. 유영철 연쇄 살인 사건에 미친 영향

2004년, 유영철은 20건의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6] 검찰은 유영철의 많은 범행이 정두영의 범행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6] 유영철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살인을 저지른 연쇄 살인범으로 알려져 있다.[15] 유영철은 정두영의 범행 시간대를 모방하여, 주로 비가 오는 날에 우비를 입고 범행을 저질렀고,[16] 이 때문에 "우비 연쇄살인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16] 정두영 역시 살인에 비가 오는 목요일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어 "비 오는 목요일의 살인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8]

참조

[1] 뉴스 "Killed nine people in ten months". Confessed to murder of husband and wife couple http://www.donga.com[...] The Dong-a Ilbo 2000-04-16
[2] 뉴스 Serial killer Jeong Du-yeong wants to spend money from the committed crimes http://www.donga.com[...] The Dong-a Ilbo 2000-04-16
[3] 웹사이트 South Korea's most prolific serial killers https://www.crimeand[...] 2024-10-05
[4] 웹사이트 [Korean History] 23 executions in 1997, followed by a hiatus that continues to this day https://www.koreaher[...] 2024-10-05
[5] 웹사이트 Joint Letter: South Korea's Abolition of the Death Penalty https://www.hrw.org/[...] 2024-10-05
[6] 웹사이트 Where 'Raincoat Killer' Yoo Young-chul Is Now https://www.newsweek[...] 2024-10-05
[7] 웹사이트 Serial murders have long history in Korea https://koreajoongan[...] 2024-10-05
[8] 웹사이트 Through The Darkness – Details on The Real Cases Inside https://www.mugenmil[...] 2024-10-05
[9] 뉴스 Prosecutors, serial killer Jeong Du-yeong given the death penalty https://web.archive.[...] Yonhap News/Dong-A Ilbo 2000-07-07
[10] 웹사이트 Gov't Inspects Execution Facilities Amid Death Penalty Debate https://www.chosun.c[...] 2024-10-05
[11] 뉴스 Serial killer Jeong Du-yeong's Daejeon prison escape trial..Two out of three fences http://news.naver.co[...] Seoul Broadcasting System 2016-09-28
[12] 웹사이트 [TURNING 20] Beyond the evidence — how profilers help solve crimes https://koreajoongan[...] 2024-10-05
[13] 웹사이트 [Eye Interview] Inside criminal minds https://www.koreaher[...] 2024-10-05
[14] 웹사이트 Kim Nam-Gil Encounters Evil As A Profiler In ‘Through The Darkness’ https://www.forbes.c[...] 2024-10-05
[15] 웹사이트 South Korea’s most notorious serial killers https://www.koreaher[...] 2024-10-05
[16] 웹사이트 Netflix doc explores gruesome crimes of 'Raincoat Killer' https://nypost.com/2[...] 2024-10-05
[17] 웹인용 [연쇄살인범 정두영]"돈 마음껏 쓰고싶어 범행" http://www.donga.com[...] 동아일보 2000-04-16
[18] 웹인용 검찰, 연쇄살인범 정두영에 사형 구형 https://web.archive.[...] 연합뉴스/동아일보 2000-07-07
[19] 웹인용 '연쇄살인범 정두영' 대전교도소 탈옥 시도…담 3곳 중 2곳 넘어 https://news.naver.c[...] SBS 2016-09-28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