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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바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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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노바 대성당은 5~6세기경 제노바의 주교 성 시로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당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되었으며, 십자군 원정으로 얻은 재정으로 건설되었다. 1118년 교황 젤라시오 2세에 의해 축성되었고, 1133년 대주교좌로 승격되었다. 1296년 화재 이후 재건되었으며, 14~15세기에 여러 제대와 경당이 추가되었다. 1550년 갈레아초 알레시가 설계를 맡았고, 17세기에 건설이 완료되었다. 1894년부터 1900년까지 돔과 중세 건물 요소가 복원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포탄 공격을 받았으나 불발되어 보존되었으며, 이를 기념하는 비문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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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바 대성당
기본 정보
제노바 대성당 서쪽 정면
제노바 대성당 서쪽 정면
위치제노바, 이탈리아
종교로마 가톨릭교회
교구제노바 대교구
봉헌 연도1118년
건축
건축 양식고딕 건축
착공1110년
완공17세기
규격
명칭
이탈리아어Cattedrale Metropolitana di San Lorenzo

2. 역사

5세기 또는 6세기경 성 시로가 대성당을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대성당 건물 앞 포장도로 발굴 결과, 로마 시대의 외벽, 포장도로, 석관 등 그리스도인들의 공동묘지 흔적이 발견되었다. 원래 열두 사도를 모신 성당이 있었으나, 성 라우렌시오 순교자를 모신 로마네스크 양식의 새 성당으로 대체되었다. 새 성당 건축 비용은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제노바 선단의 무역사업으로 충당되었다.

1155년 외벽 건축으로 성당 건물을 변형, 도시화했으며, 고대 도시 세 곳(카스트룸, 치비타스, 부르구스)을 합병하여 도시의 심장이 되었다. 당시 대성당 앞 광장은 중세 시대 제노바의 유일한 공공장소였다. 1118년 교황 젤라시오 2세가 대성당을 축성했고, 1133년 제노바 교구가 대교구로 격상되면서 대주교좌 성당이 되었다.

1296년 구엘프와 기벨린 간의 싸움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부분적으로 복원 및 재건되었다. 1307년-1312년 건물 외곽이 완성되었고, 내부 주랑은 재건되고 기둥 머리가 추가되었다. 로마네스크 구조는 유지되었고, 종교적인 벽화가 추가되었다.

14세기-15세기 여러 제대와 경당이 추가되었다. 1455년 북동쪽 첨탑에 작은 외랑이, 1522년 맞은편에 매너리즘 양식의 외랑이 세워졌다. 1550년 갈레아초 알레시가 전체 건물 설계를 위임받았지만, 회중석, 돔, 포장, 측랑만 설계하였다.

대성당 건설은 17세기에 완료되었다. 1894년-1900년 돔과 중세 건물 요소들이 복원되었다.

2. 1. 초기 역사 (5세기 ~ 13세기)

5세기 또는 6세기경, 제노바의 주교였던 성 시로가 제노바 대성당의 전신인 열두 사도 성당을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성당 부지를 발굴한 결과, 로마 시대의 벽, 포장도로, 석관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1]

11세기에 성 라우렌시오에게 봉헌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새 성당으로 대체되었으며, 십자군 원정으로 얻은 재정 지원을 받았다. 1118년 교황 젤라시오 2세가 대성당을 축성했고, 1133년 제노바 교구가 대교구로 승격되면서 제노바 대성당은 대주교좌 성당이 되었다. 1155년 성벽 건설과 도시 통합으로 제노바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중세 시대에는 대성당 앞 광장이 제노바의 유일한 공공장소 역할을 했다.[1]

2. 2. 중세 후기 ~ 근대 (14세기 ~ 17세기)

1296년 구엘프와 기벨린 간의 분쟁으로 인해 대성당에 화재가 발생했다.[3] 1307년에서 1312년 사이에 건물 외곽이 완성되었으며, 내부 주랑은 재건되고 기둥 머리가 추가되었다.[3] 로마네스크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벽화가 추가되었다.[3]

14세기와 15세기에는 여러 개의 제대와 경당이 추가되었다.[4] 1455년에는 북동쪽 첨탑에 작은 외랑이 건설되었고,[4] 1522년에는 맞은편에 매너리즘 양식의 외랑이 건설되었다.[4] 1550년, 페루자 출신의 건축가 갈레아초 알레시가 대성당 전체 재건축을 위임받았으나,[4] 회중석, 돔, 포장, 측랑 부분만 설계하였다.[4]

대성당 건설은 17세기에 완료되었다.

2. 3. 현대 (19세기 ~ 현재)

1894년에서 1900년 사이에 돔과 중세 건물 요소들이 복원되었다.[4]

1941년 2월 9일, 제노바가 그로그 작전의 일환으로 포격을 받았을 때, 영국 전함 가 381mm 철갑 포탄을 성당 본당 남동쪽 모서리에 발사했다. 다행히 포탄은 불발되었고, 현재까지도 그 자리에 남아있다.[4]

1941년 2월 9일 제노바 대성당의 본당에 떨어진 철갑탄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비문은 다음과 같다.

QUESTA BOMBA LANCIATA DALLA FLOTTA INGLESE PUR SFONDANDO LE PARETI DI QUESTA INSIGNE CATTEDRALE QUI CADEVA INESPLOSA IL IX FEBBRAIO MCMXLI|이 폭탄은 영국 함대가 발사한 것으로, 이 훌륭한 대성당의 벽을 뚫고 들어왔지만 1941년 2월 9일 이곳에 불발탄으로 떨어졌다.it

A RICONOSCENZA PERENNE GENOVA CITTÀ DI MARIA VOLLE INCISA IN PIETRA LA MEMORIA DI TANTA GRAZIA|영원한 감사의 마음으로, 제노바, 마리아의 도시가 이러한 은총의 기억을 돌에 새기기를 원했다.it

3. 예술과 건축

제노바 대성당은 여러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건축 양식이 융합된 결과물이다. 최초의 대성당은 5~6세기경 성 시루스에게 헌정되었고, 이후 열두 사도에게 헌정된 교회를 거쳐 성 라우렌시오에게 헌정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으로 재건되었다. 십자군 전쟁에서 제노바 함대의 성공적인 활동으로 얻은 자금이 대성당 건립에 사용되었다.

1118년 교황 젤라시오 2세에 의해 봉헌되었고, 1133년 대주교좌 성당이 되었다. 1296년 화재로 인해 건물이 손상되자 부분적인 복원과 재건이 이루어졌다. 1307년에서 1312년 사이에 정면이 완성되었고, 내부는 기둥과 마토네움이 추가되어 재건되었다. 14세기와 15세기에는 다양한 제단과 예배당이 건립되었으며, 1455년에는 정면 북동쪽에 작은 로지아가, 1522년에는 매너리즘 양식의 로지아가 추가되었다. 1550년, 페루자 출신 건축가 갈레아초 알레시가 건물 전체 재건축을 위촉받았으나 본당과 측랑의 지붕, 포장 도로, 돔, 앱스만 완성했다.

대성당 건설은 17세기에 완료되었으며, 1894-1900년에 돔과 중세 부분이 복원되었다. 현재 7개의 종은 C 장조 음계로 조율되어 있다.

내부에는 루카 캄비아소, 페데리코 바로치, 조반니 안드레아 안살도, 라차로 타바론, 가에타노 프레비아티 등 여러 예술가들의 프레스코화와 도메니코 가기니, 안드레아 산소비노, 마테오 치비탈리, 타데오 칼로네, 자코모 델라 포르타, 구글리에르모 델라 포르타 등의 조각 작품들이 있다.[3]

3. 1. 건축 양식

제노바 대성당은 여러 시기에 걸쳐 다양한 건축 양식이 융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 로마네스크 양식: 1118년 교황 젤라시오 2세가 봉헌한 초기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현재까지도 그 구조가 상당 부분 유지되고 있다.
  • 고딕 양식: 1296년 화재 이후 재건 과정에서 고딕 양식이 도입되었다. 특히 1307년에서 1312년 사이에 완성된 정면은 고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 마니에리즘 양식: 16세기에는 매너리즘 양식이 도입되어, 1522년에 정면의 로지아(loggia, 한쪽 면이 트인 회랑)가 이 양식으로 건설되었다.
  • 기타: 14세기와 15세기 사이에 다양한 제단과 예배당이 추가되었으며, 1550년에는 갈레아초 알레시가 건물 전체 재건축을 위촉받아 본당과 측랑의 지붕, 포장 도로, 돔 및 앱스(apse, 반원형으로 튀어나온 부분)를 재건축했다.

3. 2. 내부 예술 작품

교회 내부에는 루카 캄비아소가 그린 북쪽 예배당 천장 프레스코, 페데리코 바로치의 ''성인과 함께 한 십자가형(성 세바스찬의 환상)'', 오르간 앞 조반니 안드레아 안살도의 ''성 라우렌시오의 생애에서 한 에피소드'', 라차로 타바론이 그린 ''성 라우렌시오의 순교'' 사제관 천장 프레스코, 가에타노 프레비아티의 ''성모 승천''(1914)이 있다.[3] 교회에는 또한 주요 입구에 비잔틴 양식의 14세기 프레스코화가 있다.[3] 조각 작품으로는 도메니코 가기니의 성 요한 예배당에 있는 조각상, 안드레아 산소비노의 ''성모''와 ''세례자 요한''이 있다.[3] 다른 작품으로는 마테오 치비탈리, 타데오 칼로네, 자코모 델라 포르타와 구글리에르모 델라 포르타의 작품이 있다.[3]

3. 3. 조각 작품

도메니코 가기니의 성 요한 예배당 조각상과 안드레아 산소비노의 '성모'와 '세례자 요한' 상이 있다.[3] 이 외에도 마테오 치비탈리, 타데오 칼로네, 자코모 델라 포르타와 구글리에르모 델라 포르타의 작품들이 있다.[3]

3. 4. 보물 박물관

보물 박물관은 제노바 대성당 아래에 있으며, 9세기부터 현재까지의 보석과 은제품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는 구글리에르모 엠브리아코가 카이사레아 마리티마 정복 후 가져온 성배(:it:Sacro Catino)가 있는데, 최후의 만찬예수가 사용한 성배로 추정된다. 또한, 참 십자가의 유물로 추정되는 것을 보관하는 비잔틴 유물 보관함인 자카리아 십자가도 있다. 9세기와 13세기에 걸쳐 제작된 이 십자가는 원래 에페소스 대주교의 보물 중 일부였으며, 나중에 자카리아 가문에 의해 제노바로 옮겨져 대성당에 기증되었다.

4. 제2차 세계 대전 피해

1941년 2월 9일, 제노바가 작전 그로그의 일환으로 포격을 받았을 때, 대성당은 다행히 화를 면했다. 승무원의 실수로 영국 전함 HMS 맬러야(Malaya)는 381mm 철갑 포탄을 본당의 남동쪽 모서리에 발사했다. 비교적 무른 재료는 도화선을 터뜨리지 못했고, 포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4]

대성당의 기적적인 생존에 감사를 표하는 비문은 다음과 같다.

:"영국 해군이 발사한 이 폭탄은 이 훌륭한 대성당의 벽을 뚫고 들어왔지만, 1941년 2월 9일 이곳에 불발탄으로 떨어졌다. 영원한 감사의 마음으로, 제노바, 마리아의 도시가 이러한 은총의 기억을 돌에 새기기를 원했다."

참조

[1] 서적 Genoa in 4 Hour Edizioni GMT
[2] 웹사이트 Website of the Museo del tesoro di San Lorenzo http://www.genovagan[...]
[3] 웹사이트 Byzantine World https://byzantine-wo[...]
[4] 웹사이트 Obituary:Commander Henry Hatfield https://www.telegrap[...] Daily Telegraph 201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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