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시아 콘도르
1. 개요
조시아 콘도르는 1852년 런던에서 태어난 건축가로, 영국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고딕 리바이벌 건축가 윌리엄 버지스의 사무소에서 일했다. 1877년 일본으로 건너가 고부대학교(현 도쿄대학)에서 건축학 교수로 활동하며, 다쓰노 긴고, 가타야마 도쿠마 등 일본 근대 건축을 이끈 제자들을 양성했다. 그는 일본 미술에도 관심을 가져 가와나베 교사이에게 그림을 배우고, 일본의 꽃꽂이 예술에 대한 저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콘도르는 50개 이상의 건물을 설계했으나, 간토 대지진과 도쿄 대공습으로 인해 많은 작품이 소실되었으며, 현재는 이와사키 저택 정원, 쓰나마치 미쓰이 클럽 등이 주요 작품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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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타 안리
오키타 안리는 1986년 영국에서 태어난 일본의 AV 배우, 그라비아 아이돌, 인플루언서이며, 2010년 그라비아 모델로 데뷔하여 2011년 AV 배우로 활동하다 2016년 은퇴 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2024년 SPA! 그라비안 혼 어워드에서 미우라 준 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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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애덤스
윌리엄 애덤스는 1564년 잉글랜드에서 태어나 일본에 표류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항해사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하며 일본에 서양 문물을 전파하고 영국과의 통상 관계 수립에 기여했으며, 하타모토 지위와 영지를 하사받고 1620년 일본에서 사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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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트 포르셰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체코 출신의 자동차 기술자로서 전기 자동차 개발에 참여하고, 폭스바겐 비틀과 아우토 우니온 레이싱카 등을 설계했으며, 1999년 세기의 자동차 엔지니어 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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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도른베르거
발터 도른베르거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V-2 로켓 개발을 주도한 군인이자 로켓 공학자로, 현대 로켓 기술 발전에 기여했지만 강제 노동 동원으로 전쟁 범죄에 연루되었고, 전후 미국에서 미사일 개발에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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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널드 블라이스
레지널드 블라이스는 영국 출신의 영문학자로,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며 선불교와 하이쿠 연구에 헌신했고, 서구 사회에 선불교와 하이쿠를 알리는 데 기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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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체 베아토
펠리체 베아토는 19세기 주요 역사적 사건과 에도 시대 일본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한 영국 국적의 사진작가로서, 그의 사진들은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2. 생애
조시아 콘도르는 1852년 런던 켄싱턴에서 태어났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가 1864년 급서하면서, 1865년 베드포드 상업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여 3년간 다녔다. 이후 건축가를 지망하여 친척인 토마스 로저 스미스의 집에 하숙하면서 사우스켄싱턴 미술학교와 런던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1873년 윌리엄 버제스 건축 사무소에 조수로 들어갔다. 1875년에는 버제스 사무소를 나와 스테인드글라스를 배웠고, 1876년 영국왕립건축가협회에서 손 메달(Soane Medal)을 수상하며 건축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1877년 일본 정부와 5년간 계약을 맺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부대학교(현 도쿄대학 공학부 건축학과) 교사 및 공부성 영선국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콘도르는 디자인 이론, 건축사, 드로잉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쳤으며, 다쓰노 긴고, 가타야마 도쿠마 등 훗날 일본 건축계를 이끌어갈 인재들을 양성했다.
콘도르는 제임스 퍼거슨의 이론을 바탕으로 오리엔트 건축사를 가르쳤으며, 사라센 양식이 현대 일본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초기 작품에 이를 활용했다. 1884년 다쓰노 긴고가 교수로 취임하면서 고부대학교에서 해임되었고, 1886년에는 제국대학 공과대학 강사로 임명되었다. 1888년 강사직을 사임하고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개설하여 본격적인 건축 활동을 시작했다.
콘도르는 일본 미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가와나베 교사이에게 그림을 배우고 '아키히데'(暁英)라는 호를 받기도 했다. 1893년에는 일본 무용가 마에나미 구메와 결혼하였고, 1914년에는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0년 사망하여 아내와 함께 고코쿠지에 묻혔다. 콘도르는 건축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 연구에도 힘써 "일본의 꽃과 꽃꽂이 예술", "일본의 조경" 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2.1. 영국에서의 초기 활동 (1852-1876)
1852년 런던 켄싱턴(22 Russel Grove, Brixton, Surrey)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은행원이었다. 1864년 아버지가 급서했고, 1865년 장학금을 받아 베드퍼드 상업학교에 3년간 다녔다. 하지만 건축가를 지망하여 1869년부터 친척 토마스 로저 스미스Thomas Roger Smith영어(어머니의 사촌, 훗날 런던 대학교 교수)의 집에 하숙하면서 사우스켄싱턴 미술학교와 런던 대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스미스는 영령 인도의 공공 건축 설계를 담당한 적이 있었다.
1873년 윌리엄 버지스 건축 사무소에 조수로 입사했다. 버지스는 터키와 영령 인도에 세워진 건축물을 설계한 적이 있었고, 런던 만국 박람회에서 일본 미술에 대한 기사를 집필하기도 했다. 1875년 버지스 사무소를 나와 호라티오 월터 론즈데일Horatio Walter Lonsdale영어 밑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배웠다. 1876년 "컨트리 하우스의 설계"로 손 상을 수상했다.
2.2. 일본에서의 교육 및 건축 활동 (1877-1920)
1877년(메이지 10년) 일본에 도착하여 고부대학교 조가학(工部大学校 造家学, 현 도쿄대학 공학부 건축학과) 교사 및 공부성(工部省) 영선국(営繕局) 고문이 되었다. 헨리 다이어가 이끄는 영국인 강사들이 1873년부터 강의를 시작했고, 콘도는 5년 계약으로 조가학(건축) 교사에 취임했다.
콘도는 디자인 이론, 건축사, 드로잉, 기술 제도 등 기술 과목과 실습을 모두 가르쳤다. 다쓰노 긴고, 가타야마 도쿠마, 소네 다쓰조, 사타치 시치지로 등 졸업생 대부분은 현대 일본 건축 발전에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요리나카 쓰마키와 졸업 전에 공학대학을 떠난 시모다 기쿠타로도 성공한 건축가가 되었다.
콘도는 제임스 퍼거슨의 작품을 사용하여 오리엔트 건축사를 가르쳤는데, 그는 무굴 건축을 제외하고는 오리엔트에 실질적인 건축물이 없다고 주장했다. 무굴 건축은 사라센 건축의 일종이었다. 콘도는 사라센 양식을 기반으로 한 스타일이 현대 일본에 적합하다고 믿고, 도쿄 국립 박물관, 홋카이도 개발청의 소매점, 로쿠메이칸을 포함한 그의 초기 작품에 유사 사라센 양식으로 활용했다.
1884년(메이지 17년) 다쓰노 긴고의 교수 취임으로 고부대학교에서 해임되었다. 1886년(메이지 19년) 제국대학공과대학 강사(4월)가 되었고, 관청 집중 계획의 일환으로 학생들을 인솔하여 독일로 출장(10월~)을 가기도 했다. 1888년(메이지 21년) 강사를 사임하고 건축사무소를 개소했다.
콘도는 일본 미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오랜 청원 끝에 화가 가와나베 교사이와 함께 그림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1881년(메이지 14년) 가와나베 쿄사이(河鍋暁斎)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1883년(메이지 16년) 가와나베 쿄사이에게서 '아키히데'(暁英)라는 호를 받았다. 콘도는 또한 엔슈류 이케바나를 공부했다. 그의 연구는 "일본의 꽃과 꽃꽂이 예술"(1891), "일본의 조경"(1893), "가와나베 교사이의 그림과 연구"(1911) 등의 출판물로 이어졌다.
1893년(메이지 26년) 일본 무용 하나야기류(花柳流)의 무용가 마에나미 구메(前波くめ)와 결혼했다.
1914년(다이쇼 3년)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0년(다이쇼 9년) 도쿄에서 사망하여 아내와 함께 고코쿠지(護国寺)에 매장되었다.
2.3. 일본 문화 연구
조시아 콘도르는 일본의 문화에 심취하여 우키요에(浮世絵) 화가 가와나베 교사이에게 일본화를 배웠으며, '교에이'(暁英)라는 호를 받았다. 가와나베 교사이는 콘도르에게 가노파(狩野派)의 화법을 가르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엔슈류의 화도를 배워 저술한 "The Flowers of Japan and the Art of Floral Arrangement"는 꽃꽂이에 대한 영어로 된 최초의 책으로 여겨진다. 콘도르는 오이소의 요시다 시게루 저택 근처에 별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3. 주요 작품
조시아 콘도르는 유럽과 식민지 양식을 결합한 다양한 스타일의 건축물을 설계했다. 일본에서 50개 이상의 건물을 설계했지만, 1923년 간토 대지진 등의 사건으로 인해 현재는 많은 건물이 남아있지 않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로쿠메이칸, 구 이와사키 저택 정원, 쓰나마치 미쓰이 클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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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르의 주요 저서로는 "The Flowers of Japan And The Art of Floral Arrangement" (1891년), "Landscape Gardening in Japan" (1893년), "The Floral Art of Japan" (1899년), "Painting and Studies by Kawanabe Kyosai" (1911년) 등이 있다.
3.1. 현존하는 주요 작품
조시아 콘도르가 설계한 건축물은 유럽과 식민지 양식을 포함한 다양한 스타일을 통합한 것이 특징이다. 일본에서 50개 이상의 건물을 설계했지만, 현재는 많은 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 건축물명 | 준공 연도 | 소재지 | 지정 |
|---|---|---|---|
| 니콜라이도 | 1891년 | 도쿄도 지요다구 | 중요문화재 |
| 구 이와사키 저택 정원 양관 및 당구실 | 1896년 | 도쿄도 다이토구 | 중요문화재 |
| 이와사키 야노스케 다카나와 저택 (현 미쓰비시 가이토카쿠) | 1908년 | 도쿄도 미나토구 | |
| 웨스트상 좌대 | 1908년 | 도쿄도 분쿄구 (도쿄 대학 혼고 캠퍼스 구내) | |
| 이와사키가 묘 | 1910년 | 도쿄도 세타가야구 | |
| 이와나가 쇼이치 저택 (일부가 현 메구로가조엔 슌유키) | 1912년 | 도쿄도 메구로구 | |
| 쓰나마치 미쓰이 클럽 | 1913년 | 도쿄도 미나토구 | |
| 롯카엔 (旧諸戸清六邸일본어) | 1913년 | 미에현 구와나시 | 중요문화재 |
| 세이센 여자대학 본관 (島津家袖ヶ崎邸일본어) | 1915년 | 도쿄도 시나가와구 | |
| 구 후루카와 정원 오타니 미술관 (古河虎之助邸일본어) | 1917년 | 도쿄도 기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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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소실 또는 철거된 주요 작품
조시아 콘도르는 일본에서 50개 이상의 건물을 설계했지만, 1923년 간토 대지진 등의 사건으로 인해 많은 건물이 소실되거나 철거되었다. 다음은 소실 또는 철거된 주요 작품 목록이다.
| 건축물명 | 준공년도 | 소재지 | 현황 | 비고 |
|---|---|---|---|---|
| 훈맹원 | 1879년 | 도쿄도 주오구 | ✕ | 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파손 |
| 구 도쿄제실박물관 본관 | 1882년 | 도쿄도 다이토구 | ✕ | 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파손 |
| 구 궁내성 본관 | 1882년 | 도쿄도 지요다구 | ✕ | 1931년 철거 |
| 로쿠메이칸 | 1883년 | 도쿄도 지요다구 | ✕ | 1940년 철거 |
| 아리스가와미야 저택 양관 | 1884년 | 도쿄도 지요다구 | ✕ |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파손, 전후 철거 |
| 도쿄 대학 법문경제 교실 (구 법문과 대학) | 1884년 | 도쿄도 분쿄구 | ✕ |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화재로 소실 |
|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저택 양관 | 1884년 | 도쿄도 미나토구 | ✕ | |
| 이와사키 야노스케 후카가와 저택 양관 | 1889년 | 도쿄도 고토구 | ✕ | 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소실, 현 기요스미 정원 |
| 구 해군성 본관 | 1894년 | 도쿄도 지요다구 | ✕ |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소실 |
| 도쿄 기독교 청년회 회관 | 1894년 | 도쿄도 지요다구 | ✕ | 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소실 |
| 미쓰비시 제일호관 | 1894년 | 도쿄도 지요다구 | △ | 1968년 철거, 2009년 복원 |
| 미쓰비시 제2호관 | 1895년 | 도쿄도 지요다구 | ✕ | 1932년 철거, 부지는 메이지 생명관 |
| 성 안드레 교회 (이쿠라 교회) 2대 예배당 | 1895년 | 도쿄도 미나토구 | ✕ | 1894년 메이지 도쿄 지진으로 콘도르가 증축한 초대 예배당 붕괴, 다음 해 콘도르 설계로 목조 성당 준공 |
| 독일 공사관 (1906년 이후 독일 대사관) | 1897년 | 도쿄도 지요다구 | ✕ |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소실, 현 국립국회도서관 도쿄 본관 위치 |
| 릿쿄 여학교 교사·기숙사 | 1899년 | 도쿄도 주오구 | ✕ | 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소실 |
| 요코하마 야마테 성공회 2대 성당 | 1901년 |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 ✕ | 벽돌조 빅토리아 양식 |
| 마쓰카타 마사요시 저택 | 1905년 | 도쿄도 미나토구 | ✕ | |
| 나루세 마사유키 저택 | 1919년 | 도쿄도 미나토구 | ✕ | 후에 내각총리대신 별저 다이토아 영빈관, 만년 작품, 유일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 1944년 공습으로 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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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제 관계
콘도르는 토머스 로저 스미스와 윌리엄 버제스에게서 건축을 배웠다. 이후 일본 고부대학교에서 가타야마 도쿠마, 다쓰노 긴고, 소네 다쓰조 등 많은 일본인 건축가들을 제자로 양성하였다.
4.1. 스승
* 토머스 로저 스미스(1830년 ~ 1903년): 런던대학교 교수이자 왕립건축가협회 정회원으로, 콘도르의 숙부였다.
* 윌리엄 버제스(1827년 ~ 1881년): 고딕 부흥 건축의 선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