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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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우식은 일제강점기 서양화가, 시인, 문학평론가로 활동했으며, 친일 행적으로 인해 비판받는 인물이다. 1937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을 시작으로, 일본 도쿄에서 문단에 등단하여 초현실주의 관련 글을 발표했다. 1941년부터 일제에 협력하여 학병, 지원병, 징병을 선전하고 침략 전쟁을 찬양했으며, 조선문인보국회 간사 등을 역임했다.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고,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광복 이후 서울신문사 등에서 근무했으나, 이후의 행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조우식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조우식
본명백천영이 (白川榮二, 시라카와 에이지)
직업시인, 작가, 화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국적일제 강점기 조선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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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조우식의 초기 행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1937년부터 1940년까지의 행적, 1941년부터 1945년까지의 친일 행적, 1945년 광복 이후부터 1950년까지의 행적은 각각 하위 문단을 참조하면 된다.

2.1. 초기 생애 (1937년 ~ 1940년)

1937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작품 《남(男)》으로 입선했다. 1938년 일본 니혼 미술 학교 재학 중 매일신보에 산문 〈쉬르레알리슴(초현실주의) 회화소론〉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39년 경성제국대학 갤러리에서 화가 주현과 함께 2인전을 열었고, 같은 해 일본 모더니즘 시 모임 '신료도' 및 미술 집단 '마마' 회원으로 활동했다.

2.2. 친일 행적 (1941년 ~ 1945년)

1941년 1월 잡지 《조광》에 산문 〈예술의 귀향 - 미술의 신체제(藝術의 歸鄕 - 美術의 新體制)〉를 발표하면서부터 문학과 언론 활동에 전념하는 한편 일제의 식민 통치에 적극 협력하게 된다. 1942년부터 1943년까지 《조광》, 《동양지광》, 《문화조선》 등에 기고한 산문과 시를 통해 학병, 지원병, 징병을 선전, 선동하는 한편 일본의 침략 전쟁과 전사자를 찬양했다.

1942년 12월 3일 조선문인협회와 조선연극문화협회, 동양극장이 주최하고 국민총력조선연맹의 후원으로 열린 대동아 전쟁(태평양 전쟁) 1주년 기념 국민시(國民詩) 낭독회에서 시를 낭독했으며, 1943년 2월 3일 국민총력조선연맹 주최로 열린 예술 부문 관계자 연성회에 참석했다. 또한 《동양지광》, 《문화조선》 등에 내선일체와 황민화 정책을 선전하는 내용을 담은 산문, 바람직한 총후봉공 자세를 선전하는 시와 산문을 기고했다.

1943년 5월 30일부터 6월 4일까지 실시된 조선군 보도반 연습훈련에 참가했으며, 《국민문학》, 《문화조선》 등에 연습훈련 참가 소감과 결의를 담은 산문을 기고했다. 1943년 5월 27일 조선문인보국회 주최로 열린 해군 찬양 시 낭독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자작시 〈바다의 서설(海の序說)〉를 낭독했고, 1943년 6월 13일 조선문인보국회 시부회 간사로 선임되었다. 1943년 6월 15일부터 6월 20일까지 《문화조선》 편집부 주최로 열린 〈연성하는 반도 청년〉 특집 사진전에서 시를 헌정하는 한편, 내선 시 낭독 연구 좌담회(1943년 7월 12일 개최), 국민총력조선연맹 주최 미소기 연성회(1943년 8월 5일 개최) 등에 참석했다.

이러한 경력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문화/예술 부문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1943년부터 1944년까지 잡지 《문화조선》 촉탁기자(1943년 4월 전후 ~ 1944년 2월), 《농공지조선》 편집장(1944년 3월), 조선문인보국회 시부회 기관지 《국민시가》 편집위원(1944년 3월) 등을 역임했다.

2.3. 해방 이후 (1945년 ~ 1950년)

1945년 광복 이후부터 1950년 3월까지 서울신문사, 경향신문사에서 근무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3. 주요 작품

조우식은 시와 산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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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발표 지면발표 시기
조광, 동양지광, 국민시가, 춘추, 문화조선, 국민문학1942년 3월 ~ 1943년 12월
산문매일신보, 조광, 동양지광, 문화조선, 춘추, 국민문학1938년 9월 11일 ~ 1944년 2월
기타문화조선 등1943년 2월 ~ 1944년 2월

* 1943년 2월, 좌담 《시단의 근본문제》에 참여했다.
* 1943년 4월 ~ 10월, 《문화조선》 연재 《정신(挺身)하는 문화인》에서 최재서, 유진오 등을 인터뷰했다.
* 1944년 2월 전후, 海の序說일본어이라는 일본어 시집을 출간했다.

3.1.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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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게재지발표 시기
〈아가(雅歌) - 전선에 보낸다〉조광1942년 3월
〈싸워 죽어라 - 징병령 발포일에〉조광1942년 6월
〈신의 나라의 바람〉동양지광1942년 8월
〈애가(哀歌)〉국민시가1942년 8월
〈동방의 신들 - 아홉 군신의 영령에 바친다〉조광1942년 8월
〈고향에서〉동양지광1942년 11월
〈역정(歷程)〉국민시가1942년 11월
〈싸우는 봄에 종(鍾)은 울렸노라〉조광1943년 1월
〈아침〉춘추1943년 2월
〈봄과 더불어 - 너는 가고〉조광1943년 4월
〈백암(白岩)의 밤〉문화조선1943년 4월
〈비약에 대하여 - 반도의 소년들은 단련된다〉문화조선1943년 6월
〈가족송가〉국민문학1943년 6월
〈바다의 찬가 - 반도의 소년이여 바다가 부른다〉조광1943년 7월
〈학병 출정하다〉조광1943년 12월

3.2.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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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발표 지면발표일
쉬르레알리슴 회화 소론매일신보1938년 9월 11일
초현실주의의 기원매일신보1938년 10월 16일
부르통의 《통저기》 - 초현실주의와 물체 소론매일신보1939년 3월 5일
속 초현실주의론매일신보1939년 3월 19일
예술의 귀향 - 미술의 신체제조광1941년 1월
역사의 자각과 함께동양지광1943년 1월
사랑과 기도의 노래 - 국민시 소고조광1943년 2월
선감학원 견학기문화조선1943년 4월
아마가사키토요에게조광1943년 3월
삭풍의 심림에서 자연과 싸우는 백계 러시아인의 마을을 방문하고동양지광1943년 4월
섬에 맹세하는 소국민들(아이들)조광1943년 4월 ~ 1943년 5월
백무 산림지대춘추1943년 4월 ~ 1943년 5월
유성 농민도장을 보다동양지광1943년 6월
독후감 〈싸우는 지원병〉동양지광1943년 6월
흙에 기도하고 단련하는 농민혼 - 유성 농민도장 견학기문화조선1943년 6월
부여 중견청년수련소 방문기동양지광1943년 7월 ~ 1943년 8월
출발국민문학1943년 7월
떳떳한 마음에 부쳐조광1943년 8월
연련일기초문화조선1943년 8월
벽지에 봉사하는 선로반문화조선1943년 10월
동해바다의 고래잡이조광1943년 11월
일본해에서 거경(巨鯨, 큰 고래)을 뒤쫓는다문화조선1943년 12월
싸우는 항공창문화조선1944년 2월

3.3. 기타

1943년 2월, 좌담 《시단의 근본문제》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4월부터 10월까지 《문화조선》에 연재된 《정신(挺身)하는 문화인》에서 최재서, 유진오 등을 인터뷰하였다. 1944년 2월 전후에는 海の序說일본어이라는 일본어 시집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