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 (잡지)
1. 개요
조광은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잡지이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선전하며 친일 논설과 문학 작품을 게재하여 일제의 침략 전쟁을 찬양하고 조선 청년들의 전쟁 참여를 독려했다. 발행인 방응모를 비롯한 주요 필진 다수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친일 언론의 대표적인 사례로 비판받는다. 해방 후 복간 시도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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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폐간 -
인민과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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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창간 -
머슬앤피트니스
1939년 조 웨이더가 창간한 머슬앤피트니스는 보디빌딩, 건강, 피트니스, 영양 관련 기사를 제공하는 남성 피트니스 잡지로, 2020년에는 제이크 우드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
1935년 창간 -
흑군단
흑군단은 나치즘과 친위대의 이념을 선전하고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1935년에 창간된 잡지로, 새로운 엘리트주의 옹호, 여성의 역할 제한, 가톨릭 교회 비판, 반유대주의 조장, 히틀러 숭배, 전쟁 참여 독려 등의 활동을 했으며 1945년에 종간되었다. -
한국의 파시즘 -
10월 유신
10월 유신은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비상 조치로, 국회 해산, 헌법 정지, 유신헌법 제정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고 사실상 종신 집권을 가능하게 한 체제이다. -
한국의 파시즘 -
송진우 피살 사건
송진우 피살 사건은 1945년 12월 30일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송진우가 서울 자택에서 청년단원들에게 암살당한 사건으로, 모스크바 삼상회의 신탁통치 결정 후 송진우의 미군정 협력 및 신탁통치 주장이 암살의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창간과 초기 활동
《조광》은 조선일보의 자매지로 1935년 10월에 창간되었다. 초기에는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종합 잡지였다.
일제 강점기 말기 방응모는 조선일보 폐간에 대비하여 조선일보사 출판부를 개편해 조광사를 설립하였다. 1940년 8월, 조선일보는 폐간되었고, 조선일보사 출판부가 발행하던 《조광》, 《여성》, 《소년》은 조광사가 발행하게 되었다. 이 가운데 《여성》과 《소년》은 1940년 12월에 폐간되었다.
3. 친일 변절과 선전 활동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 《조광》은 일제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고 식민 통치를 미화하는 친일 매체로 변절했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는 완전한 친일 잡지로 변모하여 징병제 실시에 대한 감사, 근로 동원 고취, 일본어 상용 주장, 태평양 전쟁 찬양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었다. 친일 문예 작품을 싣기도 했으며, 사설에서는 일장기,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국기를 게재하고 이들 간의 군국주의 삼국동맹을 "인류 역사상 획기적 대사건"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3.1. 친일 논설 및 기사 게재 (1937~1944)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 친일 성향이 크게 증가했고,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는 완전한 친일 잡지로 변모하였다. 이 시기에는 징병제 실시에 대한 감사, 근로 동원 고취, 일본어 상용 주장, 태평양 전쟁 찬양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친일 문예 작품을 싣기도 했다. 이 시기 사설에서 일장기와 나치 독일 하켄크로이츠,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국기를 게재하고 이들 간의 군국주의 삼국동맹을 "인류 역사상 획기적 대사건"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주요한, 김활란 등 당대 지식인들이 친일 논설을 기고하며, 일제의 침략 전쟁을 찬양하고 조선 청년들의 전쟁 참여를 독려했다.
다음은 1940년 3월호부터 1944년 9월호까지 조광에 게재된 주요 친일 논설 및 기사 목록이다.
| | 제목 || 필자 | ||
|---|---|---|
| 1940년 3월호 | 내선일체에 대한 이념 | 윤치호 |
| 1940년 5월호 | 내선일체와 총후청년의 임무 | 현영섭 |
| 1940년 6월호 | 국민정신과 우리의 임무 | 현영섭 |
| 1940년 9월호 | 근위내각의 신정책 | 함상훈 |
| 1940년 10월호 | 조선통치 30년 소사(小史) | 편집부 |
| 1940년 12월호 | 일본정신의 정화(精華) | 김한경 |
| 1940년 12월호 | 우리들과 지원병 | 함대훈 |
| 1941년 2월호 | 신체제와 이도선양(吏道宣揚) | 편집부 |
| 1942년 1월호 | 왜 미국을 치나 | 유광렬 |
| 1942년 1월호 | 제국해군의 위용 | 이창수 |
| 1942년 1월호 | 미일외교 80년사 | 이홍직 |
| 1942년 1월호 | 대미·영전과 우리의 각오 | 주요한, 이종린, 김활란 |
| 1942년 1월호 | 성지참배통신 | 이석훈 |
| 1942년 2월호 | 선전일(宣戰日)의 교훈 | 방영태 |
| 1942년 2월호 | 전필승(戰必勝) 공필취(攻必取) | 유억겸 |
| 1942년 2월호 | 광명의 천지를 향하여 | 박흥식 |
| 1942년 2월호 | 타도 동아의 공구자(恐仇者) | 방응모 |
| 1942년 2월호 | 신성한 의무 | 여운홍 |
| 1942년 2월호 | 광휘의 일생은 이것 | 서은숙 |
| 1942년 2월호 | 총후여성의 힘 | 허하백 |
| 1942년 2월호 | 필승의 신념 | 정인과 |
| 1942년 2월호 | 여성의 무장 | 김활란 |
| 1942년 5월호 | 문학의 일본심(日本心) | 서두수 |
| 1942년 6월호 | 사상전·모략전·스파이 | 고원섭 |
| 1942년 8월호 | 징병제 실시에 감사합시다 | (권두언) |
| 1942년 9월호 | 1억 군민 총궐기 | (권두언) |
| 1943년 9월호 | 조선민족의 발전적 해소론 | 김문집 |
| 1943년 10월호 | 총후는 오로지 증산전에 | 편집부 |
| 1943년 10월호 | 미소기 연성회 참가기 | 김지효 |
| 1943년 12월호 | 보람 있게 죽자 | 최남선 |
| 1943년 12월호 | 뒷일은 우리가 | 김활란 |
| 1943년 12월호 | 천재일우의 때 | 이헌구 |
| 1944년 1월호 | 성수무강(聖壽無疆) | 편집부 |
| 1944년 1월호 | 승패를 결정하는 해 | 한상룡 |
| 1944년 1월호 | 대동아전쟁 3년 | 유광렬 |
| 1944년 6월호 | 고하(古賀) 원수를 따르라 | 편집부 |
| 1944년 8월호 | 국어를 상용합시다 | 편집부 |
| 1944년 8월호 | 이 시련을 극복하라 | 이창수 |
| 1944년 9월호 | 국민징용과 성업익찬 | 이창수 |
5. 주요 필진
《조광》의 주요 필진은 다음과 같다.
* 함상훈
* 유광렬
* 이창수
* 서두수
* 서춘
* 현영섭
* 이헌구
* 김기진
* 정교원
* 김활란
이들 중 함상훈, 유광렬, 이창수, 서두수, 현영섭, 이헌구, 김기진, 김활란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5.1.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주요 필진 중 상당수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함상훈, 유광렬, 이창수, 서두수, 현영섭, 이헌구, 김기진, 김활란 등이 대표적이다.
6. 평가 및 비판
朝光일본어은 일제강점기 친일 언론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朝光일본어의 친일 행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일제의 식민 통치와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조선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려 한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평가가 있다.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 친일 성향이 크게 증가했고,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는 완전한 친일 잡지로 변모하였다. 이 시기에는 징병제 실시에 대한 감사, 근로 동원 고취, 일본어 상용 주장, 태평양 전쟁 찬양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친일 문예 작품을 싣기도 했다. 이 시기 사설에서 일장기와 나치 독일 하켄크로이츠 깃발,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국기를 게재하고 이들 간의 군국주의 삼국동맹을 "인류 역사상 획기적 대사건"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도 친일 행적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 없이 복간을 시도한 점은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