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
1. 개요
지윤은 고려 말기의 권신으로, 공민왕 시기 군졸에서 시작하여 재상까지 올랐으나, 우왕 대에 권력을 남용하고 부정을 저질러 몰락했다. 그는 군공을 세워 공민왕에게 중용되었으며, 서북면원수 등을 역임했다. 우왕 초 이인임의 심복으로 친원 정책을 지지하며 신진사대부들을 탄압했다. 이인임과의 갈등으로 반란을 꾀했으나 실패하여 처형되었다. 사후 그의 딸들은 이성계의 아들들에게 시집갔으나, 《고려사》에는 반역자로 기록되었다.
-
신돈 -
공민왕
-
신돈 -
우왕
우왕은 고려 제33대 국왕으로 공민왕의 아들이며, 이인임의 추대로 10세에 즉위하여 명덕태후의 섭정을 받았으나, 술과 여색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고 왜구 침입, 명나라와의 관계 설정 문제, 요동 정벌 명령, 위화도 회군 등의 사건을 겪으며 폐위되어 처형되었다. -
고려의 상원수 -
나세
나세는 원나라에서 귀화하여 고려 말 홍건적과 왜구 토벌에 기여하고, 진포 해전에서 왜선을 격파하는 등 활약하다가 조선 시대에 왜적을 막다 사망한 무관이다. -
고려의 상원수 -
심덕부
심덕부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명나라 사신, 왜구 토벌, 위화도 회군에 참여하고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조선 개국 후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고, 한양의 성곽과 경복궁, 종묘 등을 완성하는 데 기여했다. -
권문세족 -
이인임
이인임은 고려 말 공민왕, 우왕 대에 권력을 행사하며 홍건적 격퇴, 원나라 토벌 등의 공을 세웠으나, 권문세족으로서 친원 정책과 전횡을 일삼다 최영, 이성계 등에 의해 제거되었다. -
권문세족 -
기철
기철은 고려 말 원나라 기황후의 오빠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친원 세력을 구축해 국정을 농단했으나, 공민왕의 반원 정책으로 인해 처형당하며 고려의 자주적인 국가로의 전환에 기여했다.
2. 생애
지윤은 우왕 초기에 권신(權臣)이었던 이인임의 심복이 되어 임견미, 염흥방 등과 함께 친원 정책을 비판하는 임박, 정도전, 정몽주, 박상충 등의 친명파 신진사대부들을 탄압하였다. 그는 관직과 옥을 팔아 재산을 모으고, 심복들을 대간에 배치하여 언론을 장악하는 등 부귀와 권세를 누렸다.
하지만 아들 익겸을 왜구 토벌 지휘관으로 파견하는 문제 등으로 이인임과 사이가 멀어졌고, 이인임이 지윤의 심복들을 유배시키자 위기의식을 느꼈다. 결국 지신사 김윤승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이인임과 최영 등을 제거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지윤의 할아버지 지흡(池翕)은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아버지 지덕명(池德溟)은 원외랑(員外郞)을 지낸 귀족이었지만, 어머니가 무녀라 신분이 높지 않았다. 지윤은 군졸에서 시작해 군공을 세웠고, 그의 용맹함을 높이 산 공민왕은 재위 후반에 그를 판숭경부사(判崇敬府事)로 임명했다. 이후 서북면원수, 경상도상원수 등 출정군(出征軍)의 지휘관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우왕 즉위 초 북원(北元)에서 사신이 오자 이인임(李仁任)과 함께 사신을 맞이하고자 했으나, 정도전(鄭道傳), 김구용(金九容), 이숭인(李崇仁), 권근(權近) 등이 나서서 지윤을 비난했다. 우왕 때에는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 등을 역임하였다.
찬성사(贊成事)로서 서북면도원수가 되어 북원의 사신을 방비하였고, 도체찰사(都體察使)로서 고려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심왕(瀋王) 모자의 반역을 간파하고 토벌하였으며, 정방제조(政房提調)를 역임했다.
2.2. 권력 장악과 전횡
지윤은 군졸에서 시작해 군공을 세우고 공민왕의 신임을 얻어 판숭경부사가 되었다. 이후 서북면원수, 경상도상원수 등 출정군의 지휘관에 임명되었다. 우왕 즉위 초 북원에서 사신이 오자 이인임과 함께 사신을 맞이하려 했고, 정도전, 김구용, 이숭인, 권근 등이 나서서 지윤을 비난했다. 우왕 때에는 문하찬성사, 판판도사사 등을 역임하였다.
찬성사로 서북면도원수가 되어 북원의 사신을 방비하였고, 도체찰사로 고려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심왕 모자의 반역을 간파하고 토벌하였으며 정방제조를 역임했다.
우왕 초 권신 이인임의 심복이 되어 임견미, 염흥방 등과 한패가 되어 친원 정책을 비판하는 임박, 정도전, 정몽주, 박상충 등의 친명파, 신진사대부들을 탄압하였다. 관직과 옥을 팔아 많은 재산을 모았으며, 심복들을 대간에 배치, 그들을 사주하여 언론을 장악하고 부귀와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아들 익겸을 왜구 토벌 지휘관으로 파견하는 문제 등으로 점차 이인임과 사이가 나빠졌는데, 기회를 엿보던 이인임이 지윤의 심복부하인 김승득, 이열, 화지원 등을 정부 비방죄로 몰아 유배시키자, 이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지신사 김윤승과 공모하여 군사를 일으켜 거병, 이인임, 최영 등을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체포, 식솔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2.3. 몰락과 최후
이인임의 심복이 되어 임견미, 염흥방 등과 한패가 되어 친원 정책을 비판하는 임박, 정도전, 정몽주, 박상충 등의 친명파, 신진사대부들을 탄압하였다. 관직과 옥(獄)을 팔아 많은 재산을 모았으며, 심복들을 대간에 배치, 그들을 사주하여 언론을 장악하고 부귀와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아들 익겸을 왜구 토벌의 지휘관으로 파견하는 문제 등으로 점차 이인임과 사이가 나빠졌는데, 기회를 엿보던 이인임이 지윤의 심복부하인 김승득, 이열, 화지원 등을 정부 비방죄로 몰아 유배시키자, 이에 위기의식을 느꼈다. 지신사(知申事) 김윤승(金允升)과 공모하여 군사를 일으켜 거병, 이인임 · 최영 등을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체포, 식솔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3. 인물됨과 평가
지윤은 공민왕의 인정을 받아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나, 권력을 남용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았다. 우왕의 유모와 간통하고, 궁녀에게 뇌물을 주어 총신들과 연줄을 맺었으며, 자신의 문객을 심어 자신에게 빌붙는 자는 등용하고 반대하는 자는 배척했다. 신돈 일파 숙청 시 처형당한 강을성의 아내를 첩으로 삼고 재산을 빼앗았으며, 재상 신순의 재산 또한 아들을 통해 차지했다. 30명이나 되는 첩을 거느리면서 처가의 재산만 따졌다는 기록도 있다.
1375년 (우왕 2년), 왕중귀의 미망인 기씨를 아내로 삼으려다 실패한 사건은 그의 탐욕과 횡포를 보여준다. 기씨에게 거절당하자 사병을 동원해 쳐들어갔으나, 기씨의 질책에 부끄러워하며 물러났다. 기씨는 지윤이 자신의 집을 탐내 이런 일을 벌였다고 말했다.
3.1. 부정적 평가
지윤은 공민왕의 인정을 받아 재상까지 이르렀으나, 우왕의 유모와 간통하고 궁녀에게 뇌물을 주어 총신들과 연줄을 맺는 등 권력을 남용했다. 자신의 문객을 심어 자신에게 빌붙는 자는 임용하고 반대하는 자는 배척했다. 신돈 일파 숙청 시 처형당한 강을성의 아내를 첩으로 삼고, 강을성이 바쳤던 포목 1천 5백 필을 차지했다. 재상 신순의 재산을 아들 지익겸을 신순의 딸과 결혼시켜 차지하기도 했다. 첩이 30명이나 되었는데, 처가의 부유함만을 따졌다고 한다.
1375년 찬성사 시절, 왕중귀의 미망인 기씨를 아내로 삼으려다 실패하고, 사병을 동원해 쳐들어갔으나 기씨의 질책에 물러났다. 기씨는 지윤이 자신의 집을 탐내 이런 일을 벌였다고 말했다.
4. 사후
그의 묘는 풍덕(豊德)에 안장되었다. 살아남은 세 딸은 이성계의 두 아들인 진안대군 방우와 영안대군 방과에게 시집갔다. 훗날 조선이 개창되고 정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지윤은 왕실 외척이 되었지만, 《고려사》 열전에는 그를 반역자로써 반역열전에 기록하였다. 화를 면하고 살아남은 일부 자손들은 향리로 전락하였다. 후일 17세기 경 윤휴가 고향인 풍악을 방문하다가 아전 지응룡(池應龍)을 만났던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5.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
| 조부 | 지흡(池翕) |
| 조모 | 조씨(趙氏) |
| 백부 | 지덕로(池德老) |
| 백모 | 광산 김씨 |
| 부 | 지덕명(池德溟) |
| 모 | 이름 미상, 무녀 |
| 정부인 | 순흥 안씨 |
| 계부인 | 원주 원씨 |
| 장자 | 지익겸(池益謙, ? - 1377년) |
| 장자부 | 영산 신씨, 재상 신순의 딸 |
| 차자 | 지득린(池得鱗) |
| 장녀 | 삼한국대부인 지씨(三韓國大夫人 池氏) |
| 장녀 사위 | 조선 태조의 장남 진안대군 |
| 외손자 | 봉녕군(奉寧君) 안강공(安簡公) 이복근(李福根, ? ~ 1421년 음력 11월 3일) |
| 외손녀 | 한산군주(韓山郡主, 경혜옹주) |
| 외손녀 사위 |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이숙묘(李叔畝) |
| 차녀 | 성빈 지씨(誠嬪 池氏), 조선 태조의 차남 영안대군(→정종)의 후궁 (충주지씨족보에는 차녀와 삼녀는 동일인(1인)으로 등재됨) |
| 외손자 | 덕천군 이후생(德泉君 李厚生, 1397년 ~ 1465년) |
| 외손자 | 도평군 이말생(桃平君 李末生, 1402년 ~ 1439년) |
| 삼녀 | 숙의 지씨(淑儀 池氏), 조선 태조의 차남 영안대군(→정종)의 후궁 (충주지씨족보에는 차녀와 삼녀는 동일인(1인)으로 등재됨) |
| 외손자 | 의평군(義平君) 이원생(李元生) - 전주 이씨 의평군파 파조 |
| 외손자 | 선성군(宣城君) 이무생(李茂生) |
| 외손자 | 임성군(任城君) 이호생(李好生) |
| 외손녀 | 함양옹주(咸陽翁主) |
| 첩 | 강을성의 처 등 약 30명 |
| 사촌 | 지환(池桓) |
| 종질 | 지용수(池龍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