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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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주종은 일제강점기 만주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광복 후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을 지냈으나, 반혁명 사건으로 구속되어 권력에서 밀려났다. 이후 대한주택공사 총재를 역임했으며,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최주종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씨명최주종
국어 표기최주종
함자 표기최주종한국어
출생일1922년 10월 5일
출생지함경북도성진군
사망지서울특별시
묘소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1묘역 72호
군사 경력
소속 조직만주국군
최종 계급 (만주국군)소위
소속 조직대한민국 육군
최종 계급 (한국 육군)소장
제대 후대한주택공사 총재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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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최주종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만주국에 세운 신경군관학교를 제3기로 졸업하고 만주군 장교로 근무했다. 박정희에게는 신경군관학교 1년 후배가 된다. 태평양 전쟁 종전 시점에 만주군 중위였다.

광복 후 미군정 하에서 대한민국 국군 창군 작업에 참여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가 되었다. 한국 전쟁에 연대장으로서 참전해 베티고지 전투와 노리고지 전투 등에서 공을 세우기도 했다. 부산 교두보 전투에서는 제3연대 제2대대장으로 경주 전투에 참가했다. 1952년 3월 20일, 제1사단 제11연대장을 역임했다. 1954년 7월 31일, 육군 정훈학교 교장(초대)을 역임했다. 1957년,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장을 역임했다.

1961년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정변에 가담했다. 쿠데타 세력이 조직한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최고위원을 지냈고, 1961년, 제31사단장(준장)을 역임했고 소장으로 진급했다. 같은 해 11월, 제8사단장을 역임했다. 5·16 군사정변 직후 김책공업종합대학 출신의 조카 최하종이 '혁명 주체'인 작은 아버지 최주종을 만나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내려왔다가 체포되어 비전향 장기수가 된 일이 있다.

1963년에 적발된 반혁명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권력에서 밀려났다. 이후 1965년, 군수기지사령관을 역임했고, 1967년, 육군 전투발전사령관을 역임했다. 1968년 육군 소장으로 전역했다. 박정희의 배려로 1970년대에 1971년, 대한주택공사 총재를 지냈으며, 묘지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 부문에 포함되었다.

2.1.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

최주종은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났다.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제3기 예과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제58기로 유학했다. 종전 후에는 신징 보안사령부 경비대 책임자를 역임했다.

1946년 1월,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군번 10010번)하여 제1연대 창설에 참여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중위로 복직하여 제1대 게릴라대장으로서 포항 부근의 치안을 담당했으며, 부산 교두보 전투에서는 제3연대 제2대대장으로 경주 전투에 참가했다. 1952년 3월 20일, 제1사단 제11연대장(대령)을 역임했다.

2.2. 한국전쟁 참전

최주종은 함경북도 성진 출생이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중위로 복직하여 제1대 게릴라대장으로서 포항 부근의 치안을 담당했다. 부산 교두보 전투에서는 제3연대 제2대대장으로 경주 전투에 참가했다. 1952년 3월 20일, 제1사단 제11연대장(대령)을 역임했다.

2.3. 5.16 군사정변 가담 및 이후 활동

최주종은 일제강점기만주국의 신경군관학교를 제3기로 졸업하고 만주군 장교로 근무했다. 박정희와는 신경군관학교 1년 선후배 관계였다. 태평양 전쟁 종전 당시 만주군 중위였다. 광복 후 미군정 하에서 대한민국 국군 창군 작업에 참여하여 대한민국 육군 장교가 되었다. 한국 전쟁에 연대장으로 참전하여 베티고지 전투와 노리고지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다.

1961년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정변에 가담했다. 쿠데타 세력이 조직한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을 지냈고, 8사단장, 5관구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5·16 군사정변 직후 김책공업종합대학 출신의 조카 최하종이 '혁명 주체'인 작은 아버지 최주종을 만나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내려왔다가 체포되어 비전향 장기수가 된 일이 있다.

그러나 1963년 반혁명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권력에서 밀려났다. 이후 군수기지사령관을 거쳐 1968년 육군 소장으로 전역했다. 박정희의 배려로 1970년대에 대한주택공사 총재를 지냈으며, 묘지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2.4. 반혁명 사건 연루 및 말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만주국에 세운 신경군관학교를 제3기로 졸업하고 만주군 장교로 근무했다. 박정희에게는 신경군관학교 1년 후배가 된다. 태평양 전쟁 종전 시점에 만주군 중위였다.

광복 후 미군정 하에서 대한민국 국군 창군 작업에 참여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가 되었다. 한국 전쟁에 연대장으로서 참전해 베티고지 전투와 노리고지 전투 등에서 공을 세우기도 했다. 부산 교두보 전투에서는 제3연대 제2대대장으로 경주 전투에 참가했다. 1952년 3월 20일, 제1사단 제11연대장을 역임했다.

1961년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정변에 가담했다. 쿠데타 세력이 조직한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최고위원을 지냈고, 8사단장, 5관구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1963년에 적발된 반혁명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권력에서 밀려났다. 이후 군수기지사령관을 거쳐 1968년 육군 소장으로 전역했다. 박정희의 배려로 1970년대에 대한주택공사 총재를 지냈으며, 묘지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 부문에 포함되었다.

3. 논란

3.1. 친일 행적 논란

4.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