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명국사
1. 개요
충명국사는 고려 희종의 아들이자 개성 왕씨이며, 생몰년은 미상이다. 부석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사세를 확장시켰으며, 1982년 보물 제735호로 지정된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이 충명국사 재임 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 등에는 그의 이후 행적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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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13세기 한국 사람 -
충선왕
충선왕은 고려 제26대 왕으로 즉위 후 원나라 간섭 속에서 심양왕에 봉해졌으며, 고려와 심양을 동시에 통치하는 동군연합을 이루었으나 개혁 정치는 실패하고 티베트로 유배되었다. -
13세기 한국 사람 -
원종 (고려)
원종은 고려 고종의 장남으로 몽골과의 강화 조약을 위해 원나라에 갔다가 즉위하여 원나라의 속국이 되었으며, 임연의 쿠데타와 삼별초의 항쟁을 겪고 개경으로 환도한 후 1274년에 사망했다. -
고려의 승려 -
현종 (고려)
현종은 고려 제8대 국왕으로, 왕위에 올라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 국방을 강화했으며, 중앙집권화 추진과 연등회 및 팔관회 부활 등 문화 사업에도 힘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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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
2. 생애
충명국사는 고려 희종과 성평왕후의 5남으로, 성은 왕, 본관은 개성이다. 생몰년은 명확하지 않으며, 형인 원정국사도 승려가 되었다.
출가 후 경상도 영주 부석사의 주지로 지내면서 부석사의 사세를 크게 발전시켰다.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은 충명국사가 주지로 있을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 등에는 충명국사의 이후의 삶에 대해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2.1. 출가 전
성은 왕, 본관은 개성이며, 생몰년은 명확하지 않다. 고려 제21대 왕 희종과 성평왕후의 5남이다. 희종에게는 5남 4녀의 자녀가 있었는데, 이 중 충명국사의 형 원정국사(대선사 경지)도 1220년(고종 7년)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2.2. 출가와 부석사
성은 왕, 본관은 개성이며, 고려 제21대 왕 희종과 성평왕후의 5남이다. 희종에게는 5남 4녀의 자녀가 있었는데, 이 중 충명국사의 형 원정국사(대선사 경지)도 1220년(고종 7년)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언제 출가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출가 후에는 경상도 영주 부석사의 주지로 지내면서 부석사의 사세를 크게 발전시켰다. 1982년 5월 22일 보물 제735호로 지정된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은 충명국사가 부석사의 주지로 있을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