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로아
1. 개요
카를로스 로아는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라싱 클루브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CA 라누스를 거쳐 RCD 마요르카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8강 진출에 기여했다. 1999년 종교적인 이유로 은퇴했으나, 2000년에 복귀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알바세테를 거쳐 고환암으로 인해 다시 은퇴했으며, 2006년 올림포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여, CA 리버 플레이트와 CD 과달라하라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 본명 | 카를로스 앙헬 로아 |
|---|---|
| 출생일 | 1969년 8월 15일 |
| 출생지 | 산타페, 산타페 주, 아르헨티나 |
| 키 | 191cm |
| 포지션 | 골키퍼 |
| 유소년 클럽 | 해당 정보 없음 |
|---|---|
| 선수 경력 | 1988-1993: 라싱 클루브 (109경기 0골) 1994-1997: 라누스 (107경기 1골) 1997-2002: 마요르카 (75경기 0골) 2002-2004: 알바세테 (53경기 0골) 2005-2006: 올림포 (27경기 0골) |
| 총 출전 | 371경기 1골 |
| 청소년 국가대표 | 1992: 아르헨티나 U-23 |
|---|---|
| 국가대표 | 1997-1999: 아르헨티나 (16경기 0골) |
| 현재 소속팀 | AEK 아테네 (골키퍼 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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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루브 올림포의 축구 선수 -
가브리엘 아리아스 (축구 선수)
아르헨티나 출신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인 가브리엘 아리아스는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여러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2018-19 시즌 라싱 클럽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했으며, 외조부모 혈통으로 2018년 칠레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201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주전 골키퍼로 뛰었다. -
클루브 올림포의 축구 선수 -
오스카르 메나
오스카르 메나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에는 수비수로 활동하며 RCD 마요르카에서 라 리가 5위와 코파 델 레이 준우승에 기여했고, 은퇴 후에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소년팀과 B팀 감독을 역임했다. -
CA 라누스의 축구 선수 -
오스카르 루헤리
오스카르 루헤리는 아르헨티나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보카 주니어스, 레알 마드리드 등에서 활약했으며,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으로 1986년 FIFA 월드컵 우승, 1990년 FIFA 월드컵 준우승을 경험하고 1991년 남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
CA 라누스의 축구 선수 -
미겔 알미론
미겔 알미론은 파라과이 출신의 축구 선수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서 공격수로 뛰며, MLS 올해의 신인상 수상 및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
세군다 디비시온의 축구 선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
세군다 디비시온의 축구 선수 -
리카르도 알로스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인 리카르도 알로스는 세군다 디비시온 득점왕과 라리가 공동 득점왕을 차지하며 발렌시아 CF 등 여러 클럽에서 활동했다.
2. 선수 경력
아르헨티나 산타페 출신으로, 1988년 18세의 나이에 라싱 클럽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4년 라누스로 이적하여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1996년 코파 CONMEBOL 우승을 경험했다.
1997년 스페인의 마요르카로 이적하여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다. 마요르카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997년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했다. 이듬해 1998년 FIFA 월드컵에서는 주전 골키퍼로 나서 조별리그 무실점과 잉글랜드와의 16강전 승부차기에서의 눈부신 선방으로 팀의 8강 진출을 이끌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월드컵 이후 1998-99 시즌에는 라리가에서 35경기 29실점(평균 0.76 실점)이라는 뛰어난 기록으로 리그 최소 실점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사모라 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그러나 1999년 여름, 독실한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신자로서 종교적인 이유로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축구계를 떠났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영입 제안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 1년 간의 공백 끝에 2000년 마요르카로 복귀했지만, 이전과 같은 기량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2002년 알바세테로 이적하여 팀의 1부 리그 승격에 기여했으나, 2004년 고환암 진단을 받고 다시 선수 생활을 중단해야 했다. 암 치료 후 잠시 아마추어 팀에서 활동하다가 2005년 고국 아르헨티나의 올림포 데 바히아 블랑카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뒤 2006년 최종적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골키퍼 코치로 활동하며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마티아스 알메이다 감독 아래에서 리버 플레이트, 반필드, 과달라하라 등에서 코치직을 역임했다.
2.1. 클럽 경력
아르헨티나 산타페 출신인 로아는 1988년, 18세의 나이에 라싱 클럽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 6일, 19세의 나이로 프리메라 디비시온 데뷔전을 치렀다. 라싱 클럽 소속으로 아프리카 여름 투어 중 말라리아에 걸렸으나 완전히 회복했다.
1994년 라누스로 이적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주를 연고로 하는 이 팀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그는 라누스에서 세 시즌 동안 거의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팀이 리그에서 연속으로 3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으며(1995년 클라우수라, 1996년 아페르투라 및 클라우수라), 1996년에는 코파 CONMEBOL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97년, 로아는 라누스 시절 팀 동료였던 오스카 메나와 함께 스페인의 마요르카로 이적했다. 이적 첫 해인 1997-98 시즌, 그는 25경기에 출전하여 발레아레스 제도를 연고로 하는 마요르카가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승격하자마자 1부 리그에서 5위를 차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팀은 1997-98 코파 델 레이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바르셀로나에게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배했다.
1998-99 시즌은 로아의 전성기였다. 그는 마요르카가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우승하고 UEFA 컵 위너스 컵 결승에 진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 팀에는 전 라누스 동료였던 아리엘 이바가사와 구스타보 시비에로도 합류해 있었다. 이 시즌 로아는 라리가 35경기에 출전하여 단 29실점(평균 0.76 실점)만을 허용하는 놀라운 활약을 펼치며 리그 최소 실점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사모라 상을 수상했고, 팀은 리그 3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최고의 활약을 펼치던 1999년 여름, 로아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축구계를 떠났다. 그의 은퇴와 이후의 선수 생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에서 다룬다.
2.1.1. 갑작스러운 은퇴와 복귀
1998년 FIFA 월드컵에서의 인상적인 활약과 RCD 마요르카에서의 성공적인 시즌 이후, 로아는 1998-99 시즌 라리가에서 35경기에 출전해 단 29실점(평균 0.76 실점)만을 허용하며 최고의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사모라 상을 수상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999년 여름, 30세의 나이에 로아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독실한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신자였던 그는 세상의 종말(아마겟돈)이 임박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축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이 시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페테르 슈마이켈의 대체자로 그에게 76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을 제안했지만, 로아는 종교적인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그는 재산을 거의 포기하고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며 종교 활동에 전념했다.
은퇴 선언 후 약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0년 4월, 로아는 RCD 마요르카와의 계약 기간이 남아있어 팀에 복귀했다. 복귀 조건으로 안식일인 토요일에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것을 내걸었다. 하지만 공백기 이후 이전과 같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고, 아르헨티나 동료 골키퍼인 레오 프랑코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며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많아졌다.
2002년 여름, 로아는 스페인 2부 리그의 알바세테로 이적하여 39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1부 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그러나 2004년 시즌 중 고환암 진단을 받으면서 다시 선수 생활을 중단하게 되었다. 수술과 항암 치료, 재활 과정을 거친 그는 잠시 아마추어 팀에서 몸을 추스르다가 2005년 고국 아르헨티나의 올림포 데 바히아 블랑카에 입단하여 마지막 시즌을 보낸 뒤 2006년 최종적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1992년, 로아는 파라과이에서 열린 1992년 CONMEBOL 올림픽 예선 토너먼트에 아르헨티나 U-23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으나, 팀은 1992년 하계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스페인의 RCD 마요르카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고, 1997년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했다.
1998년에는 1998년 FIFA 월드컵 프랑스 대회에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참가했다. 그는 조별 예선 3경기에서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으며 팀의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16강에서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결정적인 선방을 기록하며 팀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8강전에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1-2로 패배하며 월드컵 여정을 마감했다.
2.2.1. 1998 FIFA 월드컵 16강 잉글랜드전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출전했다. 조별 예선 3경기에서는 단 한 골도 실점하지 않으며 팀의 16강 진출에 기여했다.
토너먼트 16강전 상대는 잉글랜드였다. 이 경기에서 로아는 앨런 시어러와 마이클 오언에게 각각 한 골씩 허용했지만, 아르헨티나 공격진 역시 두 골을 넣어 경기는 2-2 무승부로 연장전에 돌입했다. 로아는 연장전 동안 여러 차례 결정적인 선방을 펼치며 팀을 위기에서 구했다.
결국 승부는 승부차기로 이어졌고, 로아는 잉글랜드의 네 번째 키커 폴 인스와 다섯 번째 키커 데이비드 배티의 슛을 연달아 막아내며 아르헨티나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특히 마지막 배티의 슛을 막아낸 선방은 아르헨티나의 8강 진출을 확정짓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이 활약으로 로아는 아르헨티나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3. 플레이 스타일
190cm의 건장한 체격을 바탕으로 카리스마와 민첩성이 뛰어났으며, 수비 범위가 상당히 넓었다. 특히 어려운 공을 막아내는 능력과 페널티킥 선방 능력이 탁월하여 페테르 슈마이켈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깔끔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4. 은퇴 후
1998-99 시즌 RCD 마요르카에서 35경기 29실점으로 사모라 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낸 로아는 1999년 여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의 이적이 임박했으나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신자로서 아마겟돈이 임박했다고 믿어 이적을 거절하고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재산을 거의 포기하고 코르도바의 산촌에서 가족과 함께 지냈다.
그러나 예상했던 종말은 오지 않았고, 9개월 후인 2000년 4월 RCD 마요르카로 복귀했지만 이미 레오 프랑코에게 주전 자리를 내준 상태였다.
2002년 여름, 알바세테로 이적했으나, 2004년 고환암 진단을 받고 다시 은퇴를 선언했다. 다행히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아르헨티나의 클럽 올림포에 입단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2006년에 최종적으로 은퇴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2011년 마티아스 알메이다의 권유로 CA 리버 플레이트의 골키퍼 코치로 부임했으며, 이후 알메이다를 따라 멕시코의 CD 과달라하라 등에서 코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