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토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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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케토이섬은 쿠릴 열도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면적은 71.25km²이며, 두 개의 주요 봉우리인 케토이산(1,172m)과 팔라스산(993m)을 포함한다. 이 섬은 칼데라, 용암류, 가파른 절벽 등 다양한 지형을 가지며, 1843년부터 1846년 사이에 팔라스산에서 대규모 화산 폭발이 있었고, 1960년에 마지막으로 분화했다. 케토이섬은 역사적으로 러시아 제국, 일본 제국을 거쳐 현재는 러시아 연방이 실효 지배하고 있으며, 일본은 영유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케토이섬은 쿠릴 열도 중부에 위치한 섬으로, 복잡한 지형과 두 개의 주요 봉우리, 칼데라 호수를 가지고 있다.
2. 지리
2. 1. 지형 및 지질
케토이섬은 거의 원형이며, 길이 약 10km, 폭 약 9km이다. 면적은 71.25sqkm이고, 해안선 길이는 38.3km이다.[1] 섬은 성층 화산, 칼데라, 용암류, 화산 고원, 다양한 계곡, 높고 가파른 해안 절벽, 해안 단구, 암석 해변 등 복잡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동쪽과 남쪽 절벽은 30m에서 60m, 서쪽과 북쪽은 더 높다. 해변은 큰 바위와 돌로 이루어져 있다. 강과 시내는 많으며, 대부분 남쪽과 동쪽으로 흐른다. 지형은 구불구불하고 가파르며 수많은 언덕이 있고, 두 개의 주요 봉우리가 솟아 있다.
가장 높은 곳은 '''케토이산'''(влк Кетойru; 일본어 計吐夷岳; ''Ketoidake'')으로, 높이 1172m이며, 너비 1.5km의 담수 칼데라 호수 동쪽에 있다. 호수는 깊이 110m, 해발 667m에 위치하며,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스토치니 개울의 수원이다. 호수의 온천수는 스트론튬을 함유하고 있다.
두 번째 봉우리는 섬 중앙의 '''팔라스산'''(влк Палласаru; 일본어 白烟山; ''Shirokemuriyama'')으로, 높이 993m의 활화산이다. 1846년부터 1847년까지 대규모 화산 폭발이 있었고, 1960년에 마지막으로 분화했다. 2013년과 2018년에도 분화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3] 팔라스산에는 약 300m 너비, 40m 깊이의 산성 호수인 글라족 호수가 있다.
신지시마 북동쪽, '''신치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약 20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름 약 8 킬로미터의 원형 화산섬이다. 섬 전체가 산악 지형이며 주요 산은 다음과 같다.
산 이름 | 해발 높이 | 러시아어 표기 | 영어 표기 | 비고 |
---|---|---|---|---|
케토이 산 | 1172m | Кетойru | Ketoy영어 | 칼데라호 서쪽에 있는 최고봉 |
시로케무리 산 | 993m | Палласаru | Pallas영어 | 섬의 정중앙에 위치 |
섬 중앙 남서쪽에는 폭 약 1.5 킬로미터의 칼데라호인 '''케토이 호'''(계토이호)가 담수를 담고 있다. 시로케무리 산의 지름 550 미터 정도의 분화구 안에도 청록색 물을 담은 분화구 호수가 있다. 1843년~1846년 사이에 시로케무리 산에서 큰 규모의 분화가 있었으며, 1960년에 마지막으로 분화했다.
해안은 절벽이 이어져 배를 대기 어렵고, 일부 절벽은 약 500m에 달한다. 남쪽 해안의 '''미나미 만'''이 상륙 지점이었다. 본섬은 쿠릴 열도에서 사사의 북쪽 한계이다.[6] 홋카이도 대학의 다테와키 미사오는 "중부 쿠릴에서 가장 고독하고 음울한 섬"이라고 칭했다.[7]
2. 2. 호수
케토이섬에는 두 개의 주요 호수가 있다.- 케토이 호(계토이호): 섬 중앙 남서쪽에 있는 칼데라호로, 폭은 약 1.5km이다. 담수를 담고 있으며, 호수 표면은 해발 667m에 위치한다. 깊이는 110m이며,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스토치니 개울의 수원이다. 호수의 온천수는 스트론튬을 함유하고 있어 야금 산업에 잠재적으로 흥미로운 요소가 될 수 있다.
- 글라족 호수: 섬 중앙에 위치한 팔라스산(시로케무리 산)의 칼데라호로, 약 300m 너비, 40m 깊이의 산성 물을 가지고 있다. 시로케무리 산의 분화구 안에는 청록색 물을 담은 분화구호도 존재한다.
2. 3. 해안
케토이섬의 해안선 길이는 38.3km이다. 섬은 성층 화산, 칼데라, 용암류, 화산 고원, 다양한 계곡, 높고 가파른 해안 절벽, 해안 단구, 그리고 암석 해변 등 복잡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1] 동쪽과 남쪽의 가파른 절벽은 30m에서 60m에 이르며, 서쪽과 북쪽은 더 높다. 섬의 해변은 큰 바위와 돌로 이루어져 있다. 강과 시내는 많으며, 대부분 남쪽과 동쪽으로 흐른다.해안은 절벽이 이어져 배를 접안하기 어렵고, 일부 절벽은 약 500 미터에 달할 정도로 험준하다. 남쪽 해안에 있는 '''미나미 만'''이 그나마 상륙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2. 4. 기타
홋카이도 대학의 다테와키 미사오는 케토이섬을 "중부 쿠릴에서 가장 고독하고 음울한 섬"이라고 칭했다.[7] 해안은 절벽이 이어져 배를 대기 어렵고, 일부 절벽은 약 500 미터에 달할 정도로 험준하다. 남쪽 해안에 있는 미나미 만이 그나마 상륙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섬은 사사의 북쪽 한계선에 위치한다.[6]3. 역사
케토이섬은 과거 아이누족이 라스슈아섬에서 사냥을 위해 방문했던 곳이다. 1855년 러일 통호 조약으로 러시아 제국령이 되었다가,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일본 제국에 주권이 넘어갔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을 거쳐 현재 러시아 연방이 실효 지배하고 있으며, 사할린주에서 관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섬의 귀속이 미확정이라고 주장한다.
3. 1. 러시아 통치 시기 (1855년 이전)
케토이섬은 유럽인과 접촉하기 전에는 영구적인 거주지가 없었지만, 아이누족이 사냥을 위해 여름에 라스슈아섬에서 방문했다.[8] 1811년 러시아 탐험대는 "신"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나무 십자가 잔해를 발견했는데, 이는 아이누족의 점진적인 기독교화와 러시아화의 증거로 제시되었다.[9] 그러나 1831년 인구 조사에서는 영구적인 거주자가 발견되지 않았다.- 1644년 (쇼호 원년) - 쇼호 어국 그림 지도가 제작되었을 때, 마쓰마에 번이 막부의 명령에 따라 제출한 자번령 지도에는 "쿠나시리", "에토로후", "우루프" 등 39개의 섬이 그려져 있었다.
- 1715년 (쇼토쿠 5년) - 마쓰마에 번주는 막부에 홋카이도 본섬, 사할린, 치시마 열도, 캄차카가 마쓰마에 번령이라고 보고했다.
- 1855년 (안세이 원년) - 러일 통호 조약에 의해 러시아 제국령이 되었다.
3. 2. 일본 통치 시기 (1875년 ~ 1945년)
케토이섬은 유럽인과 접촉하기 전에는 영구적인 거주지가 없었지만, 아이누족이 사냥을 위해 여름에 라스슈아섬에서 방문했다.[8]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 따라 다른 쿠릴 열도와 함께 일본 제국으로 주권이 넘어갔으며, 홋카이도 네무로 지청 산하 시무시르 군의 일부로 관리되었다.[9]- 1931년 (쇼와 6년) - 북태평양 항로를 조사하던 찰스 린드버그 부부의 비행기가 섬 남동쪽 해상에 불시착했다. 섬에는 접안 가능한 해안이 제한되어 있어[8] 비행기를 시무시르 섬의 부르톤 만으로 옮겨 수리했다.[9]
- 1945년 (쇼와 20년) - 8월, 소련군이 상륙하여 섬을 점령했다. 일본 항복 후 9월 2일에 발표된 일반 명령 제1호에 의해 소련 점령지가 되었다.
1945년 이전에는 월년사가 세워져 있었고, 홋카이도 네무로 진흥국 관내의 시무시르 군에 속했다.
3. 3. 소련/러시아 통치 시기 (1945년 ~ 현재)
1945년 8월, 소련군이 케토이섬에 상륙하여 점령하였다. 일본이 항복한 후 9월 2일에 발표된 일반 명령 제1호에 의해 소련 점령지가 되었다.[8] 1946년 GHQ 지령으로 일본의 시정권이 정식으로 정지되었고, 직후 소련이 영유를 선언하였다.[9] 1952년 일본국과의 평화 조약에서 일본은 케토이섬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였으나, 소련은 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후 일본 정부는 치시마 열도의 귀속이 미확정이라고 주장한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 연방이 실효 지배를 계승하고 있다.현재 러시아 연방이 케토이섬을 실효 지배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는 국제법상 귀속 미정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4. 영토 분쟁
1855년 (안세이 원년) 러일 통호 조약에 의해 러시아 제국령이 되었다가,[8] 1875년 (메이지 8년) 가라후토-치시마 교환 조약에 의해 일본령이 되었다.[8]
1945년 (쇼와 20년) 8월, 소련군이 상륙하여 점령하였다. 일본이 항복한 9월 2일에 발표된 일반 명령 제1호에 의해 소련 점령지가 되었다.[8] 1946년 (쇼와 21년) GHQ 지령에 의해 일본의 시정권이 정식으로 정지되었고, 직후 소련이 영유를 선언하였다.[8] 1952년 (쇼와 27년) 일본국과의 평화 조약에서 일본은 영유권을 포기하였으나 (소련은 미조인), 이후 일본 정부는 치시마 열도의 귀속은 미확정이라고 주장한다.[8] 1991년 (헤이세이 3년) 소련의 붕괴 후에 성립된 러시아 연방이 실효 지배를 계승하였다.[8]
현재는 러시아 연방이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국제법상 귀속 미정지라고 하고 있다.[8]
참조
[1]
웹사이트
International Kuril Island Project(IKIP)
http://www.washingto[...]
University of Washington Fish Collection or the respective authors
2009-12-03
[2]
gvp
2021-06-25
[3]
gvp
2021-06-25
[4]
웹사이트
International Kuril Island Project(IKIP、国際千島調査、英文)
http://www.washingto[...]
University of Washington Fish Collection or the respective authors
2009-07-24
[5]
웹사이트
Global Volcanism Program
http://www.volcano.s[...]
미국 국립자연사박물관
2009-07-14
[6]
간행물
北海道における最終間氷期以降のササの地史的動態 -ササを指標とした積雪・温量環境の推定-
http://hisbot.jp/jou[...]
日本植生史学会
[7]
서적
千島縦断
北海道新聞社
1994
[8]
뉴스
千島の無人島沖合に不時着
大阪毎日新聞
1931
[9]
뉴스
機体を引航して武魯頓湾で修理
東京朝日新聞
193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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