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비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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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키비타스는 고대 로마 시대에는 로마 국가, 도시, 로마 시민권을 의미했지만,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에는 지방 행정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는 도시적 집락을 나타내는 다양한 용어 중 하나로, 중세 시대에는 주교좌가 있는 도시를 지칭하다가 점차 도시 일반을 의미하게 되었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로마 속주의 자치 공동체 및 지방 정부 행정 구역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홉스와 로크의 사회 계약론에서 국가 개념을 설명하는 데 활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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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비타스 | |
|---|---|
| civitas | |
| 로마 시민권의 개념 | |
| 어원 | |
| 라틴어 | civitas |
| 발음 (IPA) | /ˈkiːwɪtaːs/ |
| 복수형 | civitates |
| 시민 | cives |
| 정의 및 개념 | |
| 초기 의미 | 법으로 결합된 사람들의 협의회 및 모임 (concilium coetusque hominum jure sociati) |
| 의무 | munera |
| 정치적 의미 | concilium 또는 res publica와 동의어 |
| 일반적인 의미 | 시민권, 국가, 부족, 도시, 또는 모든 시민의 집합체 |
| Cicero의 정의 | 공동의 법률 및 권리에 의해 연합된 사람들의 집합 (coetus hominum jure sociati) |
| 시민 (civis)의 의미 | civitas의 구성원 |
| Civitas의 진화 | |
| 어원적 기원 | "함께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co-viria에서 파생. vir는 "남자"를 의미. |
| 초기 civitas의 구성원 | co-viri (함께 사는 남자들), 즉 cives (시민) |
| 어원학적 연결 | 영어 단어 "city"와 관련 |
| Civitas의 다양한 의미 | |
| 일반적인 의미 | 국가, 도시, 부족, 또는 모든 시민의 집합체 |
| 법률적 의미 | 시민권 |
| 도시로서의 Civitas | urbs와 구별되는 개념. 시민의 공동체 강조. |
| municipium과의 관계 | 자치권을 가진 도시 (mūnicipī). 로마 시민권을 부여받은 도시. |
2. 역사
키비타스가 의미하는 범위에는 역사적 변천이 보인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는 키비타스와 우르부스 외에도, 오피둠(oppidum|오피둠la), 카스텔룸(castellum|카스텔룸la), 카스트룸(castrum|카스트룸la), 위쿠스(vicus|위쿠스la) 등 다양한 도시적 집락이 라틴어 문서에 기록되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메로빙거 왕조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주교좌가 설치된 곳은 키비타스(우르부스)라고 불렸지만, 8세기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 처음 주교좌가 설치된 곳은 드물게 키비타스(우르부스)라고 불렸다.
중세 시대가 되면서 주교좌가 설치된 도시는 역사적 전통과 관계없이 키비타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키비타스가 가리키는 범위는 견고한 성벽을 가진 대도시 전반으로 확대되었고, 중세 후기에는 도시 일반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는 도시 성벽의 일반화도 영향을 주었다.
2. 1. 고대 로마
고대 로마 시대의 키비타스는 로마 국가, 도시, 로마 시민권을 의미했다. 그러나 민족 대이동기에는 서로마 제국의 지방 행정구를 가리키는 말로 변화했다. 이 행정구는 도시를 중심으로 주변의 종속 농촌을 더한 범위로 구성되었다.[13]이 시기 로마의 키비타스에서는 시민들이 정세 불안과 세금 상승을 피해 지방의 장원에 세워진 자급자족 빌라로 유출되면서 상공업이 쇠퇴하고, 도시의 성격은 군사적인 요새로 변모해 갔다.
2. 2. 중세
민족 대이동기에는 서로마 제국의 지방 행정구를 가리키는 말로 변화했다. 이 행정구는 도시를 중심으로 주변의 종속 농촌을 더한 범위로 구성되었다.[13] 이 시기의 로마 국가의 키비타스에서는 시민들이 정세 불안과 세금 상승을 피하여 지방의 장원에 세워진 자급자족의 빌라로 유출되면서 상공업이 쇠퇴하고, 도시의 성격이 군사적인 요새로 변모해 갔다.시대가 흘러 카롤링거 왕조 시대가 되면 동시대 라틴어 문서에 기록된 도시적 집락은 다양하게 분화되어, 키비타스와 우르부스 외에도, 원래 보루로 둘러싸인 도시를 가리킨 오피둠(oppidum|오피둠la, 복수형 oppidī|오피디la)[14], 군사적인 성채를 가리킨 카스텔룸(castellum|카스텔룸la, 복수형 castellī|카스텔리la)[15], 로마 군단이 야영할 때 설치한 숙영을 가리키는 카스트룸(castrum|카스트룸la, 복수형 castrī|카스트리la)[16], 소행정구를 가리킨 위쿠스(vicus|위쿠스la, 복수형 vicī|위키la)[17] 등이 등장한다. 고대 로마 시대 이래의 키비타스와 우르부스는, 메로빙거 왕조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주교좌가 설치된 곳에만 적용되었다. 때문에, 전통 있는 도시라도 8세기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주교좌가 설치된 곳은 드물게 키비타스(우르부스)라고 불렸다.
그러나, 중세 시대가 흘러가면서 주교좌가 설치된 도시는 역사적 전통이 없더라도 키비타스라고 불리게 된다. 게다가 키비타스가 가리키는 범위는 견고한 성벽을 가진 대도시 전반으로 확대되어, 중세 후기에는 도시 일반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대도시 외에도 도시 성벽이 일반화된 것도 이러한 변화에 기여했다.
2. 3. 게르만족의 키비타스
로마인들이 초기 게르만족 자유민들의 민회로 운영되는 소규모 부족 국가와 접촉하게 되면서, 타키투스, 카이사르 등은 그들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이것을 키비타스로 간주하여 기술했다.[1]3. 로마 제국의 키비타스
키비타스(Civitas)는 로마 제국의 행정 구역 단위 중 하나였다. 키비타스는 토착 부족의 중심지를 기반으로 설치되었으며, 로마는 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방을 통치했다.
키비타스 지역은 공식적으로 분할되어 일부는 지역 주민에게, 일부는 민간 정부에 귀속되었다. 기본적인 도로망은 로마가 정비했지만, 이후 개발은 주민들에게 맡겨졌다. 때때로 황제가 새로운 공공 건물 건설을 지원하기도 했다.[1]
타키투스에 따르면, 로마-브리튼인들은 새로운 도시 중심지를 '문명'이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노예 상태를 보여주는 특징일 뿐이었다고 한다. (농업, 21)[1]
키비타스는 지역 시장 도시로서, 바실리카와 포럼을 갖춘 행정 및 경제 중심지였다. 키비타스 의회(''curia'')는 세금 징수와 원자재 생산 등 지역 경제 활성화를 담당했다.[1]
방어 시설은 제한적이었고, 어려울 때는 울타리를 치는 정도였다. 제국 말기에는 데쿠리온이 지휘하는 지방 민병대가 유일한 방어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일부 키비타스는 로마 철수 이후에도 로마화된 모습을 유지하며 인구 중심지 역할을 계속했다는 증거가 있다.[1]
특히 영국과 스페인 북부의 특정 ''civitates'' 그룹은 로마 제국 멸망 이후에도 뚜렷한 부족 집단으로 살아남았다.
3. 1. 유형
제국이 성장하면서, 외곽 로마 속주의 주민들은 "항복자"를 의미하는 ''dediticii''로 분류되거나 조약을 통해 어느 정도의 독립을 보장받는 종속국으로 취급받았다. 로마 통치하에서 자치적인 토착 공동체는 다음 세 가지 범주로 나뉘었다.- ''civitates foederatae''("동맹국"): 공식적으로 독립적이고 동등한 도시와 함께 형성되었으며, 공동 조약 (''foedus'')을 통해 체결되었다.
- ''civitates liberae'' ("자유 도시"): 로마로부터 세금 면제와 같은 특정 특권을 부여받은 공동체를 의미했다 (따라서 ''liberae et immunes'' ).
- ''civitates stipendariae'' ("조공국"): 내부 법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
마실리아와 메사나와 같은 명망 있고 경제적으로 중요한 정착지는 로마 공화국 시대에 반 자치권을 부여받은 지역의 예시이다. 몰타 섬은 제2차 포에니 전쟁 동안 로마에 대한 충성에 대한 보상으로 이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러한 종족의 새롭게 로마화된 도시 정착지도 ''civitates''라고 불렸으며, 일반적으로 로마 이전의 옛 수도 부근에 재건되었다. 예를 들어, 사이렌체스터에서 로마인들은 인근 부족의 ''oppidum''을 감독했던 군대 기지를 활용하여 ''civitas''를 만들었다.
후기 제국 시대에는 이 용어가 우호적인 토착 부족과 그들의 도시뿐만 아니라 민간 행정을 수행하는 평화로운 속주의 지방 정부 행정 구역에도 적용되었다. ''civitas''는 군사 주둔지 주변에 무질서하게 성장한 vici와 달랐으며, 퇴역 군인의 정착지인 ''coloniae'', 기존 정착지에서 만들어진 공식적인 정치 단체인 municipia와도 달랐다.
3. 2. 역할
제국이 성장하면서, 외곽 로마 속주의 주민들은 "항복자"를 의미하는 ''dediticii''로 분류되거나 조약을 통해 어느 정도의 독립을 보장받는 종속국으로 취급받았다. 로마 통치하에서 자치적인 토착 공동체는 세 가지 범주로 나뉘었다. 가장 높은 수준인 ''civitates foederatae''("동맹국")는 공식적으로 독립적이고 동등한 도시와 함께 형성되었으며, 공동 조약 (''foedus'')을 통해 체결되었다. 다음은 ''civitates liberae'' ("자유 도시")로, 로마로부터 세금 면제와 같은 특정 특권을 부여받은 공동체를 의미했다 (따라서 ''liberae et immunes'' ). 마지막으로, 가장 일반적인 그룹인 ''civitates stipendariae'' ("조공국")는 내부 법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1]마실리아와 메사나와 같은 명망 있고 경제적으로 중요한 정착지는 로마 공화국 시대에 반 자치권을 부여받은 지역의 예시이다. 몰타 섬은 제2차 포에니 전쟁 동안 로마에 대한 충성에 대한 보상으로 이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러한 종족의 새롭게 로마화된 도시 정착지도 ''civitates''라고 불렸으며, 일반적으로 로마 이전의 옛 수도 부근에 재건되었다. 예를 들어, 사이렌체스터에서 로마인들은 인근 부족의 ''oppidum''을 감독했던 군대 기지를 활용하여 ''civitas''를 만들었다.[1]
후기 제국 시대에는 이 용어가 우호적인 토착 부족과 그들의 도시뿐만 아니라 민간 행정을 수행하는 평화로운 속주의 지방 정부 행정 구역에도 적용되었다. ''civitas''가 될 토지는 공식적으로 분할되어 일부는 지역 주민에게, 일부는 민간 정부가 소유하게 되었다. 기본적인 도로망이 조사되었지만, 그 이후 ''civitas''의 개발은 주민들에게 맡겨졌으며, 때때로 새로운 공공 건물에 대한 황제의 지원이 이루어지기도 했다.[1]
타키투스는 로마-브리튼인들이 새로운 도시 중심지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들은 이러한 새로운 것들을 '문명'이라고 불렀지만, 이것은 실제로 그들의 노예 상태의 특징일 뿐이었다." (농업, 21)[1]
''civitates''는 군사 주둔지 주변에 무질서하게 성장한 vici와 달랐으며, 퇴역 군인의 정착지인 ''coloniae'', 기존 정착지에서 만들어진 공식적인 정치 단체인 municipia와도 달랐다. ''civitates''는 행정 및 경제적 중심지를 제공하는 바실리카와 포럼 단지를 갖춘 지역 시장 도시였다. ''Civitates''는 세금을 징수하고 원자재를 생산하기 위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했다. 이 모든 활동은 공직에 출마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성으로 구성된 ''ordo'' 또는 ''curia'', 즉 ''civitas'' 의회에 의해 관리되었다.[1]
''civitates''의 방어 시설은 제한적이었으며, 어려울 때도 거의 울타리를 치는 정도였다. 제국 말기에, ''civitates'' 자체의 지방 민병대는 데쿠리온의 지휘를 받았으며, 야만족의 위협을 받는 외곽의 로마화된 지역의 유일한 방어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일부 civitates가 공식적인 로마 철수 이후에도 제한된 자원으로 로마화 정도를 유지하고 인구 중심지 역할을 했다는 증거가 있다.[1]
4. 현대적 의의
토머스 홉스와 존 로크는 '코먼웰스'라는 용어를 라틴어 '키비타스'와 연결지었다.[18][19]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로크는 『통치론』에서 이를 언급했다.
4. 1. 홉스와 로크의 사회계약론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사회 계약적으로 형성된 국가를 영어로 "코먼웰스"라고 표현했는데, "라틴어로는 키비타스라고 불린다"라고 부기했다.[18] 이는 그리스·로마의 협약적인 국가 체제가 자신의 국가·사회 사상의 착상원임을 시사한다.존 로크도 저서 『통치론』에서 "내가 코먼웰스라는 말로 의미하는 것은, 라틴인이 키비타스라는 말로 표현한 독립적인 공동체이다."라고 말했다.[19]
4. 2. 한국 사회에서의 키비타스
(참조할 원문 소스가 비어있고, 이전 결과물도 없으므로 아무 내용도 출력하지 않습니다.)참조
[1]
Encyclopedia
CIVITAS (ROMAN)
https://penelope.uch[...]
John Murray
[2]
서적
The world of the citizen in republican Rom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3]
문서
History of Rome I.13.4.
[4]
Encyclopedia
city
Greenwich House
[5]
Encyclopedia
Civitas
https://www.perseus.[...]
Clarendon Press; Perseus Digital Library
[6]
웹사이트
キウィタスとは
https://kotobank.jp/[...]
[7]
서적
研究社
[8]
서적
研究社
[9]
서적
平凡社
[10]
서적
研究社
[11]
서적
平凡社
[12]
서적
研究社
[13]
서적
平凡社
[14]
서적
研究社
[15]
서적
研究社
[16]
서적
研究社
[17]
서적
研究社
[18]
서적
리ヴァイアサン
[19]
서적
統治二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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