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만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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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타만 반도는 흑해와 아조프해 사이에 위치한 반도로, 늪을 의미하는 체르케스어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고대에는 신디케 헤르소네소스라고 불렸으며, 그리스 식민 도시와 트무타라칸이 건설되었다. 마에오타이족과 신디족이 거주했으며, 보스포루스 왕국의 일부였다. 훈족, 대불가리아, 하자르를 거쳐 키예프 루스, 킵차크, 몽골의 지배를 받았고, 1419년에는 제노바의 소유가 되었다. 15세기에는 기졸피 가문이 통치했고, 이후 크림 칸국,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으로 소유권이 변경되었다. 1828년 러시아에 최종적으로 귀속되었으며, 이후 독일군과 루마니아군이 점령했다가 소련군에 의해 탈환되었다. 2018년에는 고대 그리스 악기 유물이 발견되었다.
"타만"이라는 이름은 늪을 뜻하는 체르케스인의 단어 "테멘"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마에오타이와 신디족 등 여러 민족이 고대부터 이 지역에 정착했다. 고대 시대에 보스포루스 왕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사르마티아인, 그리스인, 아나톨리아 출신의 폰토스 정착민, 그리고 유대인이 거주했다. 4세기에는 훈족에게 넘어갔고, 이후 대불가리아의 수도가 되기도 했으나 7세기 중반에 하자르에게 함락되었다. 하자르 카간국 붕괴 후에는 다비드라는 통치자 아래 하자르 유대교 계승 국가의 일부가 되었다가, 980년대 후반에는 키예프 루스와 루스인의 트무타라칸 공국이 대부분 소유하게 되었다. 1100년경에는 킵차크에게 넘어갔고, 1239년에는 몽골이 이 지역을 점령했다. 1419년에는 크림 반도의 가자리아와 함께 제노바의 소유가 되었다.
[1]
웹사이트
Greek colonization in the northern Black Sea area
https://archive.toda[...]
German Archaeological Institute
2010-04-04
2. 지명
3. 역사
15세기 대부분 동안 제노바 유대인 시메오네 데 기졸피가 설립한 기졸피 (기솔피) 가문이 가자리아를 대신하여 반도를 통치했다. 유대인 영사, 사절 또는 군주에 의한 이 지역의 통치는 이 기간 동안 남부 러시아에서 하자르 유대교가 어느 정도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2] 크림 칸국은 1483년에 타만 반도를 점령했고, 1783년에는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었고, 카파 에얄레트 산자크가 되었다. 1791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1787-1792) 동안 러시아 제국의 통제를 받게 되었으나, 1792년에 오스만 제국에 반환되었다. 최종적으로 1828년에 러시아에 귀속되었다.[2]
그 이후의 세기 동안 이 지역은 인구가 희박했다. 가장 큰 정착지는 코사크 마을(나중에 ''스타니차'')인 타만이었고, 현대에는 항구 도시인 템류크가 그 뒤를 이었다. 미하일 레르몬토프는 자신의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에서 타만 마을을 폄하하여 묘사한다.
독소전에서는 독일 국방군이 1942년에 청색 작전 과정에서 타만 반도를 점령했지만, 이듬해인 1943년에 붉은 군대가 탈환했다.[3] 영화 ''철십자''의 이야기는 쿠반 교두보에서 독일군이 후퇴하는 동안 베르마흐트 연대 지도부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2018년, 고고학자들은 볼나 정착지 근처 고대 묘지에서 고대 그리스 악기인 하프와 리라의 유물을 발견했다. 이 악기들은 기원전 6세기 2분기부터 서기 4세기까지 보스포루스 왕국에 속했던 그리스 폴리스의 존재를 보여준다.[4]
3. 1. 고대
이 지역은 지난 2천 년 동안 섬의 연쇄에서 오늘날의 반도로 진화했다. 고대 시대에 이 반도는 그리스인에게 ''신디케 헤르소네소스''(Σινδική χερσόνησος, 그리스어: 신디족의 반도)로 알려졌으며, 헤르모나사와 파나고리아의 폰토스 그리스인 식민지가 반도에 세워졌고, 이후 트무타라칸 도시가 세워졌다.[1]
마에오타이와 신디족은 고대부터 이 지역에 정착했다. 고대 시대에 보스포루스 왕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주민으로는 사르마티아인, 그리스인, 아나톨리아 출신의 폰토스 정착민, 그리고 유대인이 있었다. 서기 4세기에 이 지역은 훈족에게 넘어갔고, 이후 대불가리아의 수도가 되었으며 7세기 중반에 하자르에게 함락되었다.
3. 2. 중세
마에오타이와 신디족은 고대부터 이 지역에 정착했다. 고대 시대에 보스포루스 왕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주민으로는 사르마티아인, 그리스인, 아나톨리아 출신의 폰토스 정착민, 그리고 유대인이 있었다. 서기 4세기에 이 지역은 훈족에게 넘어갔고, 이후 대불가리아의 수도가 되었으며 7세기 중반에 하자르에게 함락되었다.[1] 하자르 카간국이 약 969년에 붕괴된 후, 반도는 다비드라는 통치자 아래 하자르 유대교 계승 국가의 일부가 되었다. 980년대 후반에는 키예프 루스와 루스인의 트무타라칸 공국이 대부분 소유하게 되었고, 1100년경에는 킵차크에게 넘어갔다. 몽골은 1239년에 이 지역을 점령했고, 1419년에는 크림 반도의 가자리아와 함께 제노바의 소유가 되었다.[1]
고대 그리스의 문헌에는 마에오타이(마이오타이인, Maeotae)나 신디(신도이인, Sindi)와 같은 선주 민족의 이름이 나타난다. 여기에 그리스인들이 식민 도시를 건설하여 교역을 했고, 후에는 보스포로스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4세기에는 훈족이 이 주변을 정복했고, 그 후에는 대불가리아가, 더 나아가 7세기 중반에는 하자르가 지배했다. 969년경 하자르 칸국이 해체되면서 일시적으로 하자르 유대인의 후계 국가가 세워졌지만, 980년대 말에 키예프 루스가 반도를 정복하여 슬라브인의 국가인 톰타라칸 공국이 성립했다. 게다가 1100년경에는 킵차크가, 1239년에는 몽골 제국이 침입했으며, 1419년에는 제노바 공화국의 상인들이 타만 반도를 포함한 흑해 북안에 식민지를 건설했다.[1]
3. 3. 근세
마에오타이와 신디족이 고대부터 이 지역에 정착했다. 고대 시대에 보스포루스 왕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사르마티아인, 그리스인, 아나톨리아 출신의 폰토스 정착민, 그리고 유대인 등 다양한 민족이 거주했다. 4세기에는 훈족에게 넘어갔고, 이후 대불가리아의 수도가 되기도 했으나 7세기 중반에 하자르에게 함락되었다. 하자르 카간국 붕괴 후에는 다비드라는 통치자 아래 하자르 유대교 계승 국가의 일부가 되었다가, 980년대 후반에는 키예프 루스와 루스인의 트무타라칸 공국이 대부분 소유하게 되었다. 1100년경에는 킵차크에게 넘어갔고, 1239년에는 몽골이 이 지역을 점령했다. 1419년에는 크림 반도의 가자리아와 함께 제노바의 소유가 되었다.
15세기 대부분 동안, 제노바 유대인 시메오네 데 기졸피가 설립한 기졸피 (기솔피) 가문이 가자리아를 대신하여 반도를 통치했다. 유대인 영사, 사절 또는 군주에 의한 이 지역의 통치는 이 기간 동안 남부 러시아에서 하자르 유대교가 어느 정도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2] 1483년에 크림 칸국이 타만 반도를 점령했고, 1783년에는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어 카파 에얄레트 산자크가 되었다. 1791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1787-1792) 동안 러시아 제국의 통제를 받게 되었으나, 1792년에 오스만 제국에 반환되었다. 최종적으로 1828년에 러시아에 귀속되었다.[2]
3. 4. 근대 ~ 현대
고대 시대에 이 반도는 그리스인에게 ''신디케 헤르소네소스''(Σινδική χερσόνησος, Σινδική χερσόνησος|신디족의 반도grc)로 알려졌으며, 헤르모나사와 파나고리아에 폰토스 그리스인 식민지가 세워졌고, 이후 트무타라칸 도시가 세워졌다.[1]
마에오타이와 신디족은 고대부터 이 지역에 정착했다. 고대 시대에 보스포루스 왕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주민으로는 사르마티아인, 그리스인, 아나톨리아 출신의 폰토스 정착민, 그리고 유대인이 있었다. 서기 4세기에 이 지역은 훈족에게 넘어갔고, 이후 대불가리아의 수도가 되었으며 7세기 중반에 하자르에게 함락되었다. 하자르 카간국이 약 969년에 붕괴된 후, 반도는 다비드라는 통치자 아래 하자르 유대교 계승 국가의 일부가 되었다. 980년대 후반에는 키예프 루스와 루스인의 트무타라칸 공국이 대부분 소유하게 되었고, 1100년경에는 킵차크에게 넘어갔다. 몽골은 1239년에 이 지역을 점령했고, 1419년에는 크림 반도의 가자리아와 함께 제노바의 소유가 되었다.
15세기 대부분 동안, 제노바 유대인 시메오네 데 기졸피가 설립한 기졸피 (기솔피) 가문이 가자리아를 대신하여 반도를 통치했다. 크림 칸국은 1483년에 타만 반도를 점령했다. 1783년에는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었고, 카파 에얄레트 산자크가 되었다. 1791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1787-1792) 동안, 러시아 제국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러시아는 1792년에 오스만 제국에 반환했다. 최종적으로 1828년에 러시아에 귀속되었다.[2] 그 이후의 세기 동안 이 지역은 인구가 희박했다. 가장 큰 정착지는 코사크 마을(나중에 ''스타니차'')인 타만이었고, 현대에는 항구 도시인 템류크가 그 뒤를 이었다.
독소전에서는 독일 국방군이 1942년에 청색 작전 과정에서 타만 반도를 점령했지만, 이듬해인 1943년에 붉은 군대가 탈환했다.[3]
참조
[2]
서적
Atlas of the Ethno-Political History of the Caucasus
2004
[3]
서적
The Caucasus 1942–43: Kleist’s race for oil
[4]
뉴스
Russian archaeologists discover ancient Greek musical instruments near Crimea
http://tass.com/so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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