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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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탐피코는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에 위치한 도시로, 와스텍어에서 유래된 이름은 "수달의 장소"를 의미한다. 스페인 식민 시대에 선교지가 세워지고, 1823년 멕시코 독립 이후 현재의 도시가 설립되었다. 1901년 석유 채굴이 시작되어 경제적 부흥을 이루었으나, 자원 고갈로 쇠퇴했다. 현재는 셰일 오일 조사가 진행 중이며, 멕시코 혁명 당시 탐피코 사건으로 미국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탐피코는 열대 사바나 기후를 보이며, 멕시코만과 파누코강 사이에 위치해 있다. 주요 산업은 항만, 석유, 관광이며, 음식, 스포츠, 건축, 교육 등 다양한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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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피코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 |
기본 정보 | |
이름 | 탐피코 |
원어 이름 | Tampico |
별칭 | 없음 |
표어 | 없음 |
상위 행정 구역 | 타마울리파스주 |
설립 | 1823년 4월 13일 |
시장 | 모니카 비야레알 아나야 (MORENA) |
지리 | |
면적 | 92.73 제곱킬로미터 |
해발 고도 | 10 미터 |
인구 통계 | |
인구 (2015년) | 314,418명 |
인구 밀도 | 4338 명/제곱킬로미터 |
도시권 인구 | 929,174명 |
데모님 | 탐피코 사람 (스페인어: Tampiqueño) |
경제 | |
GDP (PPP, 2015년 불변 가치) | 234억 달러 (2023년) |
시간대 | |
시간대 | 북미 중부 표준시 |
UTC 오프셋 | -6 |
기타 정보 | |
우편 번호 (중심) | 89000 |
웹사이트 | www.tampico.gob.mx |
이미지 | |
![]() |
2. 역사
"탐피코"라는 이름은 와스텍어에서 유래되었으며, ''tam-piko''는 "수달의 장소"를 의미한다. 이 도시는 파누코강 삼각주의 강과 석호로 둘러싸여 있으며, 많은 수달이 서식하는 곳이었다. 이 지역에는 초기 와스텍 문명 정착지가 있었으며, 그중 라스 플로레스는 서기 1000년에서 1250년 사이에 번성했다.
1532년, 스페인 식민 시대에 안드레스 데 올모스 신부가 이 지역에 선교지와 수도원을 세웠다. 그의 요청에 따라 1554년에 스페인 관리들은 산 루이스 데 탐피코라는 정착지를 건설했다. 그러나 잦은 해적 공격으로 1684년에 주민들은 파누코강 남쪽으로 이주해야 했다.
1823년 4월 13일,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현재의 도시가 걸프 해안에서 10km 떨어진 파누코강 북쪽 강둑에 설립되었다. 탐피코는 은 수출을 기반으로 경제를 구축했으며, 농업 지역의 무역 중심지이자 시장 도시로 발전했다. 1829년 8월, 스페인은 쿠바에서 병력을 파견하여 탐피코를 침공했지만, 9월에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 장군이 스페인 군대를 항복시키면서 멕시코의 통제권이 재확립되었다.[4]
1901년, 멕시코 최초의 유정이 탐피코에서 시추되면서 석유 산업이 시작되었다.[6] 20세기 초, 미국의 광범위한 투자로 탐피코는 석유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에바노, 파누코, 우아스테카, 툭스판 등 도시로부터 160km 반경 내에 위치한 유전들은 ""황금 지대"”라고 불릴 정도로 생산적이었다.[6] 치홀 운하는 1901년부터 건설되어 석유 수송을 개선했다.[5]
1910년부터 1920년까지의 멕시코 혁명 기간 동안, 1914년 탐피코 사건이 발생하여 미국이 베라크루스를 점령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정권의 몰락과 베누스티아노 카란사의 집권에 영향을 미쳤다.
1938년, 멕시코 정부는 석유 산업을 국유화했다.[6] 1970년대에는 시우다드 마데로를 합병하여 탐피코 대도시권의 일부가 되었다. 2014년부터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석유 산업에 대한 민간 기업의 참여를 다시 허용하는 정책 변화를 추진했다.[6] 미국 에너지 정보청에 따르면 멕시코는 세계 8번째 셰일 오일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탐피코 인근 지역에서 셰일 오일 개발이 기대된다.[6]
2. 1. 초기 역사
"탐피코"라는 이름은 와스텍어에서 유래되었으며, ''tam-piko''는 "수달의 장소" (문자 그대로 "물개")를 의미한다. 이 도시는 파누코강 삼각주의 강과 석호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곳은 많은 수의 수달이 서식하는 곳이었다. 수세기 동안 이 지역에는 여러 차례 인간 정착지가 있었다. 이 지역에는 여러 초기 와스텍 문명 정착지가 있었으며, 그중 라스 플로레스는 서기 1000년에서 1250년 사이에 번성했다.1532년, 스페인 식민 시대에 안드레스 데 올모스 프란체스코회 신부가 이 지역에 선교지와 수도원을 세웠으며, 이전 와스텍 마을 위에 건축했다. 그의 요청에 따라 스페인 관리들은 1554년에 산 루이스 데 탐피코라는 정착지를 건설했다. 1684년, 해적의 빈번한 공격으로 인해 이 지역은 버려졌으며, 주민들은 파누코강 남쪽으로 이주했다. 이 지역은 거의 150년 동안 버려졌다.
현재의 도시는 멕시코가 멕시코 독립 전쟁을 통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1823년 4월 13일, 걸프 해안에서 10km 떨어진 파누코강 북쪽 강둑에 설립되었다.
2. 2. 스페인 식민 시대
1532년, 스페인 식민 시대에 안드레스 데 올모스 프란체스코회 신부가 이 지역에 선교지와 수도원을 세웠으며, 이전 와스텍 마을 위에 건축했다.[4] 그의 요청에 따라 1554년에 스페인 관리들은 산 루이스 데 탐피코라는 정착지를 건설했다.[4] 1684년, 이 지역은 해적의 빈번한 공격으로 버려졌으며, 주민들은 파누코강 남쪽으로 이주했다. 특히 라우렌스 데 그라프에게 파괴적인 약탈을 당했다. 이후 이 지역은 거의 150년 동안 버려졌다.2. 3. 독립 이후
1823년에 현재의 탐피코 시가 설립되었다.멕시코 혁명 중이던 1829년 8월, 쿠바에서 온 스페인군이 탐피코를 침공했다.[4] 같은 해 9월,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 지휘 하의 군대가 스페인군을 항복시키고 멕시코의 재지배 하에 들어갔다.[4] 이후 탐피코는 멕시코 대통령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통치 하에 발전을 이루었다.
1901년, 멕시코에서 최초의 유정이 건설되어 석유 채굴이 시작되었다. 석유는 탐피코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매장량이 적어 1930년대에는 자원이 고갈되었다. 현재는 채굴이 어려운 셰일 오일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2. 4. 20세기와 석유 붐
1901년, 캘리포니아 출신의 에드워드 도헤니가 멕시코 최초의 유정을 에바노 인근 탐피코에서 시추했으며, 멕시칸 석유 공사를 설립했다.[6] 20세기 초, 탐피코의 석유 개발에 대한 광범위한 미국의 투자가 이루어졌고, 이와 관련하여 상당한 규모의 미국인 해외 거주자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에바노, 파누코, 우아스테카, 툭스판으로 알려진 유전은 모두 도시로부터 160km 반경 내에 있었다. 석유는 종종 강을 따라 바지선을 통해 운송되었다. 항구로의 석유 수송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1901년부터 치홀 운하를 건설했다. 이 운하는 깊이가 약 1.83m이고 폭이 약 7.62m이며, 유전을 지나 툭스판까지 120km 뻗어 있었다.[5]
멕시코 혁명 중이던 1914년 4월 9일, 멕시코 군인 10명과 미 해군의 USS ''돌핀''에서 온 선원 9명이 의사소통 실패로 대치했으며, 이는 미국군이 연료 공급을 얻으려 시도하면서 발생했다. 이 탐피코 사건으로 인해 미국은 해군과 해병대를 베라크루스 항구로 파견하여 7개월 동안 도시를 점령했다. 미국의 점령은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장군의 몰락에 기여했고, 베누스티아노 카란사가 대통령이 되었다.
1938년, 멕시코 정부는 석유 산업을 국유화했다.[6] 1970년대, 탐피코는 항구 도시이자 교외 지역인 시우다드 마데로를 합병했으며, 현재 이곳은 탐피코 대도시권의 일부를 구성한다. 탐피코는 멕시코시티와 미국으로 연결되는 철도 및 항공 연결망을 갖춘 현대적인 항구를 갖추고 있다.[5]
2014년 11월,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페멕스의 독점을 종식시키고 민간 기업을 석유 및 가스 산업에 다시 참여시키는 정책 변화를 발표했다. 2015년 초, 멕시코 정부는 169개 블록에 대한 입찰을 받기로 계획했으며, 이 중 47개 블록은 탐피코에서 약 112.65km 이내에 위치해 있다.[6] 이 지역에는 광범위한 셰일 오일 매장량이 있으며, 미국 에너지 정보청은 멕시코가 세계에서 8번째로 큰 셰일 오일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한다.[6]
2. 5. 멕시코 혁명과 탐피코 사건
1910년부터 1920년까지 지속된 멕시코 혁명이 발발하자, 미국은 자국민과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황을 감시했다. 1914년 4월 9일, 멕시코 군대와 미 해군 USS ''돌핀''에서 온 선원 간의 의사소통 실패로 대치가 발생했는데, 이는 미국군이 연료 공급을 얻으려 시도하면서 발생했다.[6]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장군의 시내 병력은 북부와 남부 양쪽의 여러 그룹으로부터 위협을 받았다. 미국인들은 체포되었다가 나중에 풀려났지만, 미국은 우에르타가 어떤 인정을 요구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그 결과 발생한 탐피코 사건에서, 미국은 해군과 해병대를 베라크루스 항구로 파견하여 무력 시위로 7개월 동안 도시를 점령했다.[6] 그 결과 양쪽 해안에서 반미 시위가 발생했기 때문에, 다른 미 해군 함선들이 일부 미국 시민들을 미국 남부 도시의 난민 캠프로 대피시키는 데 사용되었다.[6] 미국의 점령은 우에르타의 몰락에 기여했고, 베누스티아노 카란사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이 행동에 대한 미국에 대한 지속적인 적대감 때문에,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멕시코가 중립을 유지하도록 보장했다.[6]2. 6. 석유 산업 국유화와 이후
1901년, 멕시코 최초의 유정은 캘리포니아 출신의 에드워드 도헤니에 의해 에바노 인근 탐피코에서 시추되었으며, 그는 멕시칸 석유 공사를 설립했다.[6] 20세기 초, 탐피코의 석유 개발에 대한 광범위한 미국의 투자가 이루어졌고, 이와 관련하여 상당한 규모의 미국인 해외 거주자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석유 생산 지역은 매우 생산적이어서 ""황금 지대"”라고 불렸다.[6] 에바노, 파누코, 우아스테카, 툭스판으로 알려진 유전은 모두 도시로부터 160km 반경 내에 있었다. 석유는 종종 강을 따라 바지선을 통해 운송되었다. 항구로의 석유 수송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1901년부터 치홀 운하를 건설했다. 이 운하는 깊이가 약 1.83m, 폭이 약 7.62m이며, 유전을 지나 툭스판까지 120km 뻗어 있다.[5]멕시코 혁명 기간 중 1914년 4월 9일, 멕시코 군인 10명과 미 해군의 USS ''돌핀''에서 온 선원 9명이 의사소통 실패로 대치했는데, 이는 미국군이 연료 공급을 얻으려 시도하면서 발생했다.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장군의 시내 병력은 북부와 남부 양쪽의 여러 그룹으로부터 위협을 받았다. 미국인들은 체포되었다가 나중에 풀려났지만, 미국은 우에르타가 어떤 인정을 요구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그 결과 발생한 탐피코 사건에서, 미국은 해군과 해병대를 베라크루스 항구로 파견하여 무력 시위로 7개월 동안 도시를 점령했다. 그 결과 양쪽 해안에서 반미 시위가 발생했기 때문에, 다른 미 해군 함선들이 일부 미국 시민들을 미국 남부 도시의 난민 캠프로 대피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미국의 점령은 우에르타의 몰락에 기여했고, 베누스티아노 카란사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이 사건으로 미국에 대한 지속적인 적대감을 품고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멕시코가 중립을 유지하도록 했다.
멕시코 정부는 1938년에 석유 산업을 국유화했으며, 86년 동안 이를 유지해 왔다. 2014년 11월,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페멕스의 독점을 종식시키고 민간 기업을 석유 및 가스 산업에 다시 참여시키는 정책 변화를 발표했다. 분석가들은 가장 큰 유전이 해상에 있을 것으로 믿고 있지만, 새로운 기술을 통해 탐피코와 같은 성숙한 유전에서도 석유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6] 2015년 초, 정부는 169개 블록에 대한 입찰을 받기로 계획했으며, 이 중 47개 블록은 탐피코에서 약 112.65km 이내에 위치해 있다.[6] 이 지역과 같은 성숙한 유전에서는 소규모 회사들이 활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지역에는 광범위한 셰일 오일 매장량이 있으며, "미국 에너지 정보청은 멕시코가 세계에서 8번째로 큰 셰일 오일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한다."[6]
3. 지리
탐피코는 멕시코만에서 내륙으로 약 10km 떨어진 파누코강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베라크루스주의 바로 북쪽에 위치한다.
탐피코는 열대 사바나 기후(쾨펜 기후 구분)(''Aw'')를 가지고 있으며, 1월 평균 기온은 18°C이며 강수 패턴을 기준으로 정의된다.[8][9]
3. 1. 기후
탐피코는 멕시코만에서 내륙으로 약 10km 떨어진 파누코강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베라크루스주의 바로 북쪽에 위치한다.3. 1. 1. 기후 상세 정보
탐피코는 열대 사바나 기후(쾨펜 기후 구분) (쾨펜 기후 구분 ''Aw'')를 가지고 있다.[8][9] 봄과 가을에는 날씨가 비교적 온화하지만 여름에는 덥다. 8월 평균 최고 기온은 32°C이며, 평균 최저 기온은 23°C이다. 겨울은 따뜻하며, 1월 평균 최고 기온은 23°C이고, 1월 평균 최저 기온은 13°C이다. 6월부터 10월까지 강우가 잦다.탐피코는 매우 습한 도시로, 여름철 체감 온도는 40°C에 이른다. 이 도시는 파누코 강과 멕시코 만과 인접한 광대한 습지 사이에 위치해 있다. 가을과 겨울에는 만을 통과하는 한랭 전선의 영향을 받아, 최대 50km의 강풍과 최대 70km~80km의 돌풍이 불 수 있다. 탐피코는 또한 허리케인 지역에 위치해 있지만, 1966년 10월 이후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적은 없다.
드물게 이 도시에서는 이 지역에서 놀랍도록 낮은 기온을 경험하기도 한다. 2011년 1월 말과 2월 초에는 한파로 인해 기온이 5°C까지 떨어졌으며, 2월 4일 오전과 정오에는 최저 0°C까지 떨어졌다. 1895년 2월에는 탐피코에 눈이 내린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해안 지역에서 눈이 관측된 최남단 기록이며, 탐피코는 열대 지역 해수면에서 눈이 내린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이다.[10]
다음은 1951~2010년 동안의 탐피코 기후 상세 정보이다. (습도: 1981–2000[16][17], 일조 시간: 1961–1990[18])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연간 |
---|---|---|---|---|---|---|---|---|---|---|---|---|---|
최고 기온 기록 (°C) | 33°C | 36.5°C | 42°C | 40.5°C | 43.5°C | 38.5°C | 37°C | 37.5°C | 39°C | 37°C | 37.5°C | 36.2°C | 43.5°C |
평균 최고 기온 (°C) | 22.9°C | 24.3°C | 26.8°C | 29.3°C | 31.2°C | 32°C | 32°C | 32.4°C | 31.6°C | 29.9°C | 27°C | 24.1°C | 28.6°C |
평균 기온 (°C) | 18.8°C | 20.1°C | 22.8°C | 25.5°C | 27.7°C | 28.6°C | 28.5°C | 28.7°C | 27.9°C | 26°C | 22.9°C | 19.9°C | 24.8°C |
평균 최저 기온 (°C) | 14.7°C | 15.9°C | 18.8°C | 21.7°C | 24.2°C | 25.1°C | 24.9°C | 25°C | 24.2°C | 22°C | 18.8°C | 15.8°C | 20.9°C |
최저 기온 기록 (°C) | 1°C | 3°C | 8°C | 12°C | 15.2°C | 19.5°C | 20°C | 19.5°C | 16.5°C | 9°C | 6°C | -1.5°C | -1.5°C |
평균 강우량 (mm) | 26.3mm | 21.4mm | 17.2mm | 22.5mm | 53.5mm | 177.6mm | 146.8mm | 157.9mm | 280.4mm | 144.7mm | 44.5mm | 44.3mm | 1137.1mm |
평균 강우 일수 (≥ 0.1mm) | 5.8 | 5.0 | 3.6 | 3.9 | 4.5 | 9.7 | 11.6 | 12.0 | 14.6 | 9.6 | 6.8 | 6.5 | 93.6 |
평균 상대 습도 (%) | 78 | 78 | 77 | 77 | 78 | 78 | 78 | 77 | 78 | 77 | 78 | 77 | 78 |
평균 일조 시간 | 116.4 | 134.2 | 175.6 | 176.1 | 203.0 | 233.6 | 220.3 | 221.3 | 183.6 | 192.7 | 148.4 | 131.1 | 2136.3 |
4. 인구
INEGI 201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탐피코 시의 인구는 297,284명이고 탐피코 도시권의 인구는 297,554명으로, 둘 다 타마울리파스주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7] 탐피코-시우다드 마데로-알타미라 도시권의 인구는 2010년 기준으로 859,419명이었다. 시의 면적은 92.73km2이다.[7]
5. 교통
탐피코는 항만을 운행하는 훌륭한 철도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유조선 적재를 위한 창고와 장비도 잘 갖추어져 있다. 주요 도로는 범아메리카 고속도로와 연결된다.[5]
5. 1. 항공
탄피코, 시우다드 마데로, 알타미라를 포함하는 광역권은 헤네랄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미나 국제공항(IATA 공항 코드: '''TAM''')이 담당하며, 이 공항은 탄피코 시 북부에 있다. 이 공항은 주로 멕시코 시티와 몬테레이를 포함한 멕시코 내 여러 도시로 가는 노선을 운행하며,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가는 일일 항공편을 포함한 국제선도 운행한다.[5]탐피코는 멕시코 상업 항공의 발상지이다. 1924년, 탐피코의 헤네랄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미나 국제공항에서 멕시코시티의 멕시코시티 국제공항을 향해 아에로멕시코 항공의 비행기가 멕시코 최초의 상업 비행을 했다. 헤네랄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미나 국제공항은 멕시코에서 최초로 ILS를 도입한 공항이다.
5. 2. 해상
탄피코는 항만을 운행하는 훌륭한 철도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유조선 적재를 위한 창고와 장비도 잘 갖추어져 있다. 주요 도로는 범아메리카 고속도로와 연결된다.[5]5. 3. 육상
탐피코는 시우다드 마데로, 알타미라를 포함하는 광역권으로, 헤네랄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미나 국제공항(IATA 공항 코드: '''TAM''')이 이 지역의 항공 교통을 담당한다. 이 공항은 탐피코 시 북부에 위치하며, 멕시코 시티, 몬테레이 등 멕시코 내 여러 도시와 텍사스주 휴스턴행 국제선 항공편을 운행한다.[5]6. 건축
탐피코의 건축물은 다양한 양식이 혼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뉴올리언스의 영향을 받은 건축 양식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석유 붐 시대에 뉴올리언스에서 건축 자재를 많이 수입했기 때문이다. ''플라자 데 라 리베르타드''의 일부 발코니에는 앤드류 핸디사이드 앤 컴퍼니의 더비셔 대장간에서 제조되었음을 보여주는 명판이 부착되어 있기도 하다.[3]
6. 1. 주요 건축물
탐피코의 시내 건축물은 포르피리오 디아스 대통령 통치 시기인 ''포르피리아토'' 시대 동안 도시가 성장하면서 다양한 양식을 혼합하여 보여준다. 20세기 초 수십 년간의 석유 붐 시대 동안 많은 "웅장한" 건축물이 건설되었으며, 이로 인해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및 미국의 뉴올리언스와 비교되기도 했다.[3] 많은 건물에는 단철 발코니가 있는데, 20세기에는 대부분 영국산 주철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발코니는 뉴올리언스의 프랑스 및 스페인풍 건축물의 특징이기도 하다.주목할 만한 건물로는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의 시청사(또는 ''팔라시오 무니시팔'')와 부두에 있는 영국식 붉은 벽돌 세관이 있다. 뉴올리언스 스타일의 건축물이 많은 것은 석유 붐 시대의 영향 때문이다. 당시에는 돈이 많았던 것뿐만 아니라, 조립식 주택 구성 요소를 포함한 많은 건축 자재가 뉴올리언스에서 이 지역으로 운송되었다. 최근 ''아르마스 광장''과 ''플라자 데 리베르타드''의 역사적인 시내 지역은 역사적 매력을 강조하고 더 많은 유산 관광을 장려하기 위해 복원 및 개선되었다.
탐피코 대성당은 무염시태 성전이라고도 불리며, ''아르마스 광장''에 있다. 19세기 후반에 지어졌으며 여러 차례 복원되었다. 밝은 갈색 캔터로 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코린트식 기둥과 입구를 형성하는 세 개의 거대한 문이 특징이다. 두 개의 탑은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 탑에는 런던에서 제작된 대형 공공 시계가 있다. 최근 개조된 내부에는 여러 벽화와 기타 예술 작품이 있으며, 제단은 흰색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7. 문화
탐피코는 음식으로 유명하며, 특히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다. 현지인들은 게(자이바스)를 좋아하여 게 문양이 스포츠 로고, 버스, 공원 벤치 등 여러 곳에 사용된다.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토르타 데 라 바르다와 탐피케냐 스테이크가 있다.
지역 프로 축구팀 탐피코 마데로 FC는 1945년에 창단되었으며, 에스타디오 타마울리파스를 홈 구장으로 사용한다. 1953년 멕시코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우승하는 등 여러 차례 우승과 준우승을 기록했다.
7. 1. 음식
탐피코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해산물은 이 도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지인들은 비공식적으로 "자이바스"(게)로 알려져 있으며, 게 문양은 스포츠 로고에서부터 버스 옆면, 공원 벤치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이 지역의 대표적인 요리로는 12가지 이상의 토핑이 들어간 샌드위치인 "토르타 데 라 바르다"와, 콩 으깬 것과 "엔토마타다스"(토마토 소스와 치즈를 곁들인 토르티야)와 함께 제공되는 스테이크인 "탐피케냐"가 있다.7. 2. 스포츠
지역 프로 축구팀인 탐피코 마데로 FC(Tampico Madero F.C.)는 1945년에 창단되었으며, '라 자이바 브라바'(La Jaiba Brava)라고도 알려져 있다. 현재 멕시코 축구 리그 시스템의 2부 리그인 아센소 MX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1966년부터 에스타디오 타마울리파스(Estadio Tamaulipas)(19,415석 규모)를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1953년 탐피코 마데로는 멕시코 프리메라 디비시온(Primera División de México)에서 우승했으며, 캄페온 데 캄페오네스(Campeón de Campeones) 타이틀도 획득했다. '라 자이바 브라바'는 1960년과 1961년에 코파 MX(Copa México)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대부분을 강등으로 보냈지만, 1977-78 시즌에 프리메라 디비시온으로 복귀했다. 칠레 출신 감독 카를로스 레이노소(Carlos Reinoso)의 지휘 아래 1985–86 멕시코 프리메라 디비시온 시즌(1985 and 1986 Primera División tournaments)에서 2번 준우승을 차지한 후, 1990년대 초 다시 강등되었다.
8. 교육
타마울리파스 자치 대학교는 탐피코에 가장 큰 캠퍼스 두 곳 중 하나를 두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시우다드 빅토리아에 있다. 탐피코 캠퍼스에는 의학, 공학, 간호학, 치의학, 건축학, 경영학 관련 주요 학과들이 있다.
탐피코에는 사립 및 공립 고등학교가 여러 곳 있다.
9. 자매 도시
10. 유명 인물
- 후안 가르시아 에스퀴벨(1918–2002), "스페이스 에이지 팝"의 왕으로 알려진 피아니스트이자 라운지 음악 작곡가
- 에우제니오 실레르(1981년 출생), 배우
- 에르네스토 코리피오 아후마다(1919–2008), 멕시코 대주교
- 린다 크리스찬(1923–2011), 배우
- 마우리시오 가르세스(1926–1989), 배우, 본명 마우리시오 페레스 야즈베크
- 로베르토 칸토랄(1935–2010), 작곡가이자 작사가[15]
- 아나 마리아 라바테 이 세르비|아나 마리아 라바테 이 세르비es (1933–2010), 작가이자 시인. 그녀의 가장 잘 알려진 시 중 하나는 "En Vida, Hermano... en vida"였다.
- 카를로스 센스 렌돈(1941년 출생), 예술가, 탐피코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팔라시오 무니시팔의 대형 벽화로 가장 잘 알려진 벽화가
- 제임스 카를로스 블레이크(1947년 출생), 미국 소설가
- 에버렛 리 데골리에(1886–1956), 텍사스주 댈러스의 저명한 석유 사업가, 지구물리학자, 자선가
- 로드리고 곤잘레스(1950–1985), 록 음악가, 1985년 멕시코 시티 지진으로 사망
- 호세 앙헬 구르리아 트레비뇨(1950년 출생), 전 멕시코 재무부 장관이자 현재 OECD 사무총장
- 빅토르 마누엘 부세티치(1955년 출생), 은퇴한 축구 미드필더이자 현재 케레타로 FC의 감독
- 라파엘 세바스티안 기옌 비센테 (1957년 출생), 멕시코 정부가 수브코만단테 마르코스라고 주장하는 인물
- 호아킨 델 올모(1969년 출생), 은퇴한 국제 축구 미드필더
- 세실리아 수아레스(1971년 출생), 영화 및 텔레비전 배우
- 에리카 알코세르 루나(1974년 출생), 리얼리티 라 아카데미아의 우승자로 알려진 가수
- 에우제니오 실레르(1977년 출생), 배우이자 가수
- 키카 에드가(1977년 출생), 배우이자 가수
- 알레한드로 고메즈 몬테베르데(1977년 출생), 영화 감독
- 알리시아 바흐레다-쿠루스(1983년 출생), 폴란드 배우이자 가수
- 헤수스 산타 크루스(1986년 출생), 멕시코 축구 선수
- 로돌포 카사우본(1989년 출생), 프로 골프 선수 (Web.com 투어)
- 폴리나 고토(1991년 출생), 배우이자 가수, 팝 밴드 에메 15의 전 멤버이자 신생 텔레비전 시리즈 미스 XV의 주연 (원래 누에보 레온주 몬테레이 출신)
- 로돌포 피사로(1994년 출생), 축구 미드필더, C.F. 몬테레이 및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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