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타임라인 바로가기

피천득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타임라인 바로가기

1. 개요

피천득은 대한제국 시기인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7년 사망한 대한민국의 시인, 수필가, 번역가, 영문학자이다. 그는 상하이에서 유학하고 서울대학교 영문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1930년 시 "서정소곡"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순수한 서정성을 특징으로 하며, 시집 《서정시집》, 수필집 《인연》, 《수필》 등을 저술했다. 그는 긍정적 평가와 비판적 평가를 동시에 받았으며,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인촌상 등을 수상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후장 대학 동문 - 주요한
    주요한은 일제강점기 시인이자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며, 친일 행위로 인해 논란이 있으며, 국회의원과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 후장 대학 동문 - 현정주
  • 홍천 피씨 - 피우진
    피우진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군 전투병과 장교이자 헬기 조종사로 군 복무 중 부당한 전역 조치에 맞서 승소 후 복직, 중령으로 전역하였으며 문재인 정부 초대 국가보훈처장으로 '따뜻한 보훈' 정책을 추진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에 힘썼다.
  • 홍천 피씨 - 피서영
    피서영은 대한민국의 물리학자이자 보스턴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서, 초기 우주의 양자역학적 요동 연구를 통해 급팽창 이론 발전에 기여했으며 빅뱅, 암흑 물질, 우주론 등을 연구하고 수필가 피천득의 딸이자 로먼 재키브의 배우자이며 스테판 피 재키브의 어머니이다.
  • 영어-한국어 번역가 - 안정효
    안정효는 소설가, 번역가, 언론인, 영문학자로서 《백년 동안의 고독》을 번역하며 번역가로 데뷔했고, 소설 《하얀 전쟁》으로 등단했으며, 2023년에 사망했다.
  • 영어-한국어 번역가 - 이윤기 (소설가)
    이윤기는 1947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소설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며, 1977년 등단 이후 소설, 에세이,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다 2010년에 사망했다.
피천득 - [인물]에 관한 문서
한국어 이름
한글피천득
한자皮千得
로마자 표기Pi Cheondeuk
기본 정보
출생일1910년 4월 21일
사망일2007년 5월 25일
국적대한민국
직업수필가
시인
영문학자
교육자
종교천주교 (세례명: 프란치스코)
활동 기간1930년 ~ 2007년
학력
대학교후장 대학 영어영문학과
출신 대학중화민국 장쑤성 상하이 후장 대학
작품 활동
데뷔 작품서정소곡 (抒情小曲)
주요 작품시: 파이프, 서정별곡, 서정소곡
수필: 인연, 은전 한 닢, 산호와 진주
가족 관계
배우자임진호
자녀피세영 (장남)
피수영 (차남)
피서영 (막내딸)
친척피윤범 (친손), 스테판 피 재키브 (외손)
부모피원근 (부), 김수성 (모)
기타 정보
필명금아(琴兒)
소속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웹사이트수필가 피천득

2. 생애

금아(琴兒) 피천득은 1910년 5월 29일 한성부(서울)에서 태어났다. 6살 때 아버지, 10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삼촌 집에서 자랐다. '금아'라는 호는 이광수가 지어주었다. 이광수의 권유로 중국 상하이로 유학을 떠나 상하이 공보국 중학교를 졸업하고, 후장 대학 영문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20살 때 안창호를 만났다.

스탠다드 오일 회사원,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사, 경성제대 예과 교수를 거쳐 1946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대학교 영문학 교수로 재직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1975년 이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되었다.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시는 순수한 감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으며, 수필은 일상생활의 감정을 섬세하고 친근한 문체로 표현하여 산문적인 서정시와 같은 느낌을 준다.

2007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8세.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으며, 외동딸 피서영보스턴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

주요 연보는 다음과 같다.

연도내용
1910년 5월 29일서울특별시 출생.[10]
1930년신동아』에 시 〈서정소곡〉, 〈소곡〉, 〈파이프〉 등 발표.
1947년『서정시집』 발표.
1991년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1995년제9회 인촌상 문학 부문 수상.
1999년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수상.
2007년 5월 25일사망.


2. 1. 출생과 성장

금아(琴兒) 피천득은 1910년 5월 29일 대한제국 한성부(서울) 종로에서 아버지 피원근(皮元根)과 어머니 김수성(金守成)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2] 아버지 피원근은 서울 종각에서 종로5가, 강남에서는 양재동까지 알짜배기 땅을 소유한 구한말의 거부(巨富)였다. 피천득이 6살 무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 일본인 대신이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1920년, 피천득이 10살 때 모친마저 병으로 세상을 뜨자 삼촌 집에서 자랐다. '금아'(琴兒)는 '거문고를 타고 노는 때 묻지 않은 아이'라는 뜻으로, 서화(書畵)와 음악에 능했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춘원 이광수가 붙여준 호이다.[10] 춘원 이광수는 피천득의 재능을 알아보고 중국 유학을 권유하였다. 피천득은 14살에 중국 상하이로 유학을 떠나 상하이 공보국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20살의 피천득은 존경하던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를 만났다. 그는 훗날 수필에서 안창호의 인간미를 회고하기도 한다.

2. 2. 학문 및 교육 활동

피천득은 상하이 공보국 부설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하이 후장 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여 학사 학위를 받았다.[2][3] 1954년부터 1955년까지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1년간 영문학을 연구했다.[4] 이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주임교수를 역임했다.[4]

피천득의 학문 및 교육 활동은 다음과 같다.

연도내용
1936년상하이 유학, Thomas Hanbury Public School에서 수학.
1929년상하이 후장 대학교 예과 입학.
1931년상하이 후장 대학교 영문학과 진학.
1937년상하이 후장 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1945년경성대학 예과 교수 역임.
1951년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1954년하버드 대학교 연구원[8]
1963년서울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주임교수.


2. 3. 문학 활동

피천득은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2] 이후 〈소곡〉(1931), 〈가신 님〉(1932) 등을 발표하며 시인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또한, 〈눈보라치는 밤의 추억〉(1933), 〈나의 파일〉(1934) 등의 수필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6]

그는 일체의 사상이나 관념을 배제하고 순수한 서정을 바탕으로 시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정조와 생활을 노래했다.[6] 그의 수필은 일상생활에 얽힌 서정적이고 섬세한 필치로 그의 다정다감한 세계관을 주관적인 명상으로 수필화하여 산문적인 서정시와 같은 느낌을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6]

1946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영미시(英美詩)를 강의하기 시작했다.[4] 1947년에는 시집 《서정시집》을 간행했다.[6] 1959년에는 《금아시문선》을, 1969년에는 《산호와 진주》를 간행하여 투명한 서정으로 일관된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6] 《산호와 진주》에는 그리움을 꿈으로 승화시킨 〈꿈〉, 〈편지〉, 소박하면서도 전통적인 삶의 서정을 노래한 〈사랑〉 및 순수한 동심과 자연을 기조로 한 작품들이 다수 실려 있다.[6]

1976년에는 수필집 《수필》과 번역 시집으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시집》을 간행하였다.[6] 특히 《수필》은 수필 형식으로 쓴 수필론으로, 은유법을 적절히 구사하여 수필의 본질과 특질을 잘 나타낸 그의 대표작이다. 〈은전 한 닢〉, 〈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 〈기다리는 편지〉 등의 수필에서는 생활에 얽힌 서정적이고 섬세한 필치로 그의 다정다감한 세계관을 주관적인 명상으로 수필화하고 있다.[6]

1980년에는 《금아문선(琴兒文選)》과 《금아시선(琴兒詩選)》을 출판하였으며, 1993년에는 시집 《생명》, 《삶의 노래》를 펴냈다. 1996년 수필집 《인연》을 출간했는데, 표제작인 〈인연〉은 각종 국정교과서에 실리는 등 독자들의 많은 호평을 받아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7]

피천득은 〈엄마〉, 〈유순이〉, 〈아사코〉, 〈서영이〉, 〈구원의 여상〉 등의 작품에서 특히 여성들을 찬미하고 그리워하며 연민의 정을 행간에 아름답게 풀어놓고 있다. 《수필》에서 수필문학의 본질을 ‘마음의 산책’, ‘독백’,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형식’으로 규정짓고 있어 수필의 문학성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였다.[7]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하며 〈붉은 악마〉라는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7]

2. 4. 사회 활동 및 교류

피천득은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소설가 최인호, 박완서, 춘원 이광수, 이해인 수녀 등과 친분이 있었다. 20살의 피천득은 그가 존경하던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를 만나는 데 성공한다. 그는 훗날 수필에서 안창호에 대한 인간미를 회고하기도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도산 안창호 장례식에 가긴 갔는데, 거길 들어가면 내 몸이 위험해 겁이 나서 뒤로 물러서 있었다”며 “그때 왜 좀 더 용감하지 못했나”라고 술회한 바 있다.[14]

2. 5. 가족 관계

부인 임진호(林珍鎬) 여사 사이에서 2남 1녀를 두었다.[20] 피천득의 자손들은 문학, 의학, 화학, 물리학, 법학, 음악,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보였다.

이름설명
피세영(皮世英)피천득의 장남.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1960~70년대 연극배우, 탤런트, 성우, 라디오 DJ로 활동했다. 은퇴 후 30여 년간 캐나다에서 치기공사(dental technician)로 치과 기공소를 운영하다가 부친의 권유로 한국에 귀국하여 경북 문경에서 수목원을 운영하고 있다.
피수영(皮守英)피천득의 차남.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으로 미네소타 대학교 외과대학 소아과 교수, 서울아산병원 소아과 과장,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 교수를 역임했다. 수필 〈피가지변(皮哥之辯)〉에 등장하는 아들이다.[21]
피서영(皮瑞英)피천득의 막내 딸로 수필 〈서영이〉의 주인공이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토니브룩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보스턴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유학 시절에 이휘소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스테판 피 재키브(Stefan Pi Jackiw)피천득의 외손자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인 아버지 로먼 재키브(Roman Jackiw)와 보스턴대 물리학 교수인 피서영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교 출신으로 현재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 중이다.[22][23]


2. 6. 별세

2007년 5월 25일에 사망했다.[10]

3. 작품 세계

피천득은 시와 수필 모두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고 친근한 문체로 아름답게 표현하여, 한 편의 산문적인 서정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6] 평범한 소재를 단순하고 섬세하게 묘사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했다.[7]

1969년에 발표한 시문선 『산호와 진주한국어』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동경을 산호와 진주에 비유한 온화하고 따뜻한 시와 수필을 수록했다. 그는 《엘리자베스조의 규수시인》,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등 영문학 관련 작품도 번역했다.[6]

3. 1. 시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을 발표하고 뒤이어 〈소곡〉(1931), 〈가신 님〉(1932) 등을 발표하여 시인으로서 기반을 굳혔다.[5][6] 시집으로 《서정시집》(1947)과 《금아시문선》(1959)을 간행하였다.[5] 일체의 사상이나 관념을 배제한 순수한 서정을 기반으로 시정(詩情)이 넘치는 아름다운 정조와 생활을 노래하였다.[5][6] 1993년에는 시집 《생명》, 《삶의 노래》를 펴냈다.[5]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며 〈붉은 악마〉라는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5]

다음은 피천득의 주요 시 목록이다.

발표 연도작품 제목
1930년서정소곡|서정소곡한국어
1931년소곡|소곡한국어
1932년가신 님|가신 님한국어
1947년서정시집|서정시집한국어
1959년금아시문선|금아시문선한국어
1994년삶의 노래|삶의 노래한국어


3. 2. 수필

피천득은 수필을 통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고 친근한 문체로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의 수필은 한 편의 산문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며,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수필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6]

1933년 「눈보라치는 밤의 추억」, 1934년 「나의 파일」 등을 발표하며 호평을 받았다. 1976년에는 수필집 『수필』을 간행했는데, 이 책은 수필 형식으로 쓴 수필론으로, 은유법을 적절히 사용하여 수필의 본질과 특질을 잘 나타낸 그의 대표작이다.[5] 「은전 한 닢」, 「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 「기다리는 편지」 등에서는 생활 속 서정적이고 섬세한 필치로 다정다감한 세계관을 주관적인 명상으로 표현했다.[5]

1996년 수필집 『인연』을 출간했는데, 표제작 「인연」은 각종 국정교과서에 실리는 등 독자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다.[5] 그는 「엄마」, 「유순이」, 「아사코」, 「서영이」, 「구원의 여상」 등의 작품에서 여성들을 찬미하고 그리워하며 연민의 정을 아름답게 풀어냈다.[5]

그는 『수필』에서 수필문학의 본질을 '마음의 산책', '독백',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으로 규정하여 수필 문학성에 의미를 부여했다.[5] 평범한 소재를 단순하고 섬세하게 묘사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했다.[7] 주요 작품인 《인연》, 《수필》, 《플루트 연주자》는 한국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7]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출판 연도작품명
1933년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
1934년나의 파일
1977년수필
1996년인연


3. 3. 수필론: 《수필》

1976년에 간행된 수필집 《수필》은 수필 형식으로 쓴 수필론으로, 은유법을 적절히 구사하여 수필의 본질과 특질을 잘 나타낸 그의 대표작이다.[5][6] 이 책에서 피천득은 수필 문학의 본질을 '마음의 산책', '독백',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으로 규정하여 수필 문학성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였다.[5]

3. 4. 번역

피천득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너새니얼 호손의 《큰바위 얼굴》을 번역하였다.[5] 1976년에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시집』을 번역하여 출간하였다.[6]

4. 평가 및 영향

피천득은 간결한 문체와 명징한 사색으로 독특한 경지를 이룬 수필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글은 순수하고 고결한 정신세계를 영롱한 언어로 담아내어, 마치 운문을 읽는 듯한 경쾌함을 선사한다. 이양하와 함께 한국 수필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꼽히며, 한국 현대수필의 기초를 세운 선구자로 평가받는다.[16] 그는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라고 정의했으며, 그의 글 또한 담백하고 고운 특징을 지닌다. 평범한 일상도 그의 글을 통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울림을 전달한다.

4. 1. 긍정적 평가

피천득의 수필은 간결한 문체로 명징한 사색을 펼쳐 놓아 하나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순수하고 고결한 정신세계를 영롱한 언어로 담아낸 그의 수필은 운문을 읽는 듯 경쾌하며, 독특한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준다. 이양하와 함께 한국 수필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꼽히며, 한국 현대수필의 기초를 세운 선구자로 평가받는다.[16]

  • 피천득의 제자인 석경징 서울대학교 교수는 스승에 대해 “낭만주의 시와 스피노자를 좋아했고, 명석하고 군더더기 없는 삶을 사셨다”고 회고하며, 단순하고 치장이 없는 금아의 글은 영원불멸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수필로 알려진 〈인연〉은 사실 소설이며, 1959년 일조각에서 출판한 '금아시문선'에 수필로 묶여 나오면서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16]
  • 또 다른 제자인 심명호 서울대학교 교수는 "인간적인 깨끗한 심성이 바탕이 되어, 글에 지나치게 기교를 부리지 않고 차분하게 고은 작품을 쓰셨다"고 평가했다.[17]
  • 문학평론가 권오만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는 "피천득은 시에서도 빼어난 작품을 다수 남겼다"며 그의 시 작품이 강한 서정성을 지니고 있어 영롱한 진주 같다는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 이길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은 "언론에선 선생님의 작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제자들은 장식품 하나 없는 작은 아파트에서 책과 더불어 지내셨던 소탈한 인품을 더 그리워한다"고 회상했다.
  • 문학평론가 김우창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는 피천득을 '군밤을 주머니에 넣고 걸으면서 먹는 것, 딸(서영)의 말소리, 선술집에서 풍겨오는 불고기 냄새를 좋아한 사람'이라고 추억했다.[18]
  • 정정호 중앙대학교 교수는 피천득의 시가 수필보다 수준이 낮지 않지만, 우리 문단은 시와 수필 양쪽에서 모두 탁월한 피천득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피천득 수필의 특성은 시적이라는 데 있으므로, 그의 수필은 일종의 '산문시'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 번역가로서의 피천득을 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창국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는 피천득이 셰익스피어 소네트 154편 전부를 명쾌하게 번역했다며, 그의 번역은 분명하고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원문이 애매할 때 오히려 피천득의 번역문을 통해 뜻이 명확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19]

4. 2. 비판적 평가

영문학자 이태동은 피천득의 수필이 산문에 속하는 수필에 시적인 요소를 너무 강조하여 내용이 단편적이고 감각적이라고 비판한다. 〈인연〉을 포함해 그의 작품 대부분은 주제의식, 도덕성 측면에서 정전이 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태동은 피천득의 죽음에 일간지 기자들이 〈인연〉을 세계적인 걸작처럼 평가한 것은 '눈먼 과찬'이며, 영문학자로서 깨끗하게 살면서 정갈한 수필을 겸허한 마음으로 써왔던 그를 ‘욕되게´ 만드는 슬픈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판하며 객관적 평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5]

4. 3. 논란: 〈인연〉의 장르

피천득의 수필 〈인연〉은 오랫동안 수필로 알려져 왔으나, 실제로는 소설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피천득의 제자인 석경징 서울대학교 교수는 〈인연〉에 등장하는 '아사꼬'와 청년의 관계가 허구이며, 피천득은 실제로는 아사꼬를 잠시 만났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959년 일조각에서 발간한 '금아시문선'에 〈인연〉이 수필로 포함되면서 잘못 알려졌다고 밝혔다.[16]

5. 수상 경력


  • 1991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 1995년 제9회 인촌상 문학 부문
  • 1999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6. 저서

종류제목
수필집인연, 생명
번역서나의 애창시, 소네트
시집서정시집|서정시집한국어 (1947), 금아시문선|금아시문선한국어 (1959)
기타산호와 진주|산호와 진주한국어 (1969), 수필|수필한국어 (1977), 삶의 노래|삶의 노래한국어 (1994), 내가 사랑하는 시|내가 사랑하는 시한국어 (1997)


7. 기타

서울 롯데월드 민속박물관 입구에 금아 피천득 기념관이 있다.[1]

참조

[1] 웹사이트 Pi Chunduk http://klti.or.kr/ke[...] 2013-09-21
[2] 웹사이트 Pi Chunduk http://klti.or.kr/ke[...] 2013-09-21
[3] 문서 Hujiang University
[4] 웹사이트 Pi Chunduk http://klti.or.kr/ke[...] 2013-09-21
[5] 뉴스 Master Essayist Dies https://www.koreatim[...] 2007-05-27
[6] 웹사이트 Pi Chunduk http://klti.or.kr/ke[...] 2013-09-21
[7] 웹사이트 수필가 피천득 http://pichyundeuk.i[...] 2018-02-12
[8] 웹사이트 피천득(皮千得) http://encykorea.aks[...] 2022-09-20
[9] 웹사이트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다워” 아버지 피천득의 유산 https://www.joongang[...] 2016-01-06
[10] 웹사이트 인물정보(人物情報) http://people.search[...] 2014
[11] 웹사이트 한국문학번역원 문인DB 피천득 http://www.klti.or.k[...] 2014
[12] 웹사이트 http://terms.naver.c[...] 2014
[13] 웹사이트 http://terms.naver.c[...] 2014
[14] 뉴스 MBC 스페셜…피천득의 ‘수필 같았던 삶’재조명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07-06-22
[15] 뉴스 눈먼 과찬은 비례다 http://www.seoul.co.[...] 서울신문 2007-07-05
[16] 뉴스 수제자 석경징 서울대 명예교수, 스승 피천득을 말하다 http://www.seoul.co.[...] 서울신문 2011-05-13
[17] 뉴스 `사랑하다 떠난 이' 琴兒 피천득 선생의 추모 1주기 https://news.v.daum.[...] 연합뉴스 2008-05-26
[18] 뉴스 29일 피천득 탄생 100주년…기념 세미나 등 개최 http://news.mk.co.kr[...] 매일경제 2010-05-27
[19] 뉴스 29일 그립습니다, 피천득 시인 http://news.donga.co[...] 동아일보 2012-05-17
[20] 뉴스 금아 피천득 선생 구순잔치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0-05-15
[21] 뉴스 피수영 교수가 말하는 '나의 아버지, 피천득' http://www.mt.co.kr/[...] 머니투데이 2008-07-25
[22] 뉴스 스테판 피 재키브 "난 아이돌 아닌 바이올리니스트" http://news.mk.co.kr[...] 매일경제 2011-06-27
[23] 뉴스 할아버지와의 인연은 축복이었습니다 http://news.donga.co[...] 동아일보 2008-05-22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