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세테라
1. 개요
피터 세테라는 미국의 가수, 작곡가, 베이시스트로, 시카고 출신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하여 여러 밴드를 거쳐 1967년 시카고에 합류, 베이스 연주와 보컬을 맡아 "If You Leave Me Now", "Hard to Say I'm Sorry"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었다. 1985년 시카고를 탈퇴하고 솔로 활동을 시작하여 "Glory of Love" 등으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2019년 은퇴를 발표했다. 그는 뛰어난 보컬과 작곡 능력으로 인정받았으며, 그래미상 등을 수상했다.
| 출생 이름 | Peter Paul Cetera Jr. (피터 폴 서테라 주니어) |
|---|---|
| 출생일 | 1944년 9월 13일 |
| 출생지 | 시카고, 일리노이주, 미국 |
| 활동 년도 | 1962년–2019년 |
| 악기 | 보컬 베이스 기타 |
| 장르 | 록 소프트 록 재즈 퓨전 |
| 직업 | 가수, 작곡가 |
| 레이블 | 워너 브라더스, 리버 노스 |
| 관련 그룹 | 시카고, 데이비드 포스터 |
| 웹사이트 | https://petercetera.com |
| 과거 멤버 | 시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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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미상 명예의 전당 | 2014년 (Chicago - If You Leave Me Now) |
|---|---|
|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 | 2017년 헌액 |
| 배우자 | 재니스 실리 (1968–1973) 다이앤 니니 (1982–1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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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출생 -
릴 테르셀리우스
릴 테르셀리우스는 위키백과 문서에서 관련 문서와 추가 자료를 제시하는 데 사용되는 구성 요소이다. -
1944년 출생 -
펠레티 세벨레
펠레티 세벨레는 통가의 정치인으로, 캔터베리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통가 입법회 의원, 노동상공부 장관, 총리 권한대행 및 총리를 역임했으며, 종신 귀족 작위를 받았다. -
시카고 출신 음악가 -
샘 쿡
샘 쿡은 "소울의 왕"으로 불리는 미국의 영향력 있는 싱어송라이터이자 기업가로, 1957년부터 1964년 사이에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하고 자신의 음반 레이블을 설립했으며 흑인 민권 운동에도 참여했지만 1964년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
시카고 출신 음악가 -
주니어 웰스
주니어 웰스는 1950년대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한 미국의 시카고 블루스 하모니카 연주자이자 가수로, 머디 워터스 밴드 참여와 《Hoodoo Man Blues》 앨범 발표를 통해 시카고 블루스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
폴란드계 미국인 -
시어도어 카진스키
미국 수학자이자 "유나바머"로 알려진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뛰어난 수학적 재능으로 대학 조교수를 지냈으나 산업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18년간 우편 폭탄 테러를 감행, 체포되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 사망했다. -
폴란드계 미국인 -
나프탈리 베네트
나프탈리 베네트는 이스라엘의 정치인으로, 기업가 출신이며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이스라엘 총리를 역임했고, 우익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며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외교 관계 수립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2. 어린 시절
피터 세테라는 1944년 9월 13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폴란드계 이민자 부모 슬하에서 태어났다.Piotr Cetera폴란드어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자랐으며, 어린 시절부터 교회 합창단에서 활동했다. 폴란드인 모임에서 아코디언과 기타를 배웠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어머니의 바람으로 사제 예비 신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11살 때 부모님이 기타 대신 아코디언을 사주면서 음악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12살 때 아코디언 연주로 지역 재능 경연 대회에서 우승했다. 15살 때 클럽에서 밴드 공연을 본 후 가수의 꿈을 키우며 기타를 구입했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지역 댄스 무대에서 공연하며 리드 보컬을 맡았다.
2.1. 가족
세테라는 피터 폴 세테라(Peter Paul Cetera Sr.)와 마가레타(베크톨드)(Margareta (Bechtold) Cetera) 사이에서 일리노이주 시카고 남쪽 끝자락에 있는 모건 파크(Morgan Park, Chicago)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섯 자녀 중 둘째로, 폴란드계와 헝가리계 혈통이다. 그의 아버지는 기계공으로 일했다. 세테라의 형제로는 남동생 팀 세테라(1970년대 초 리키 넬슨과 함께 앨범을 녹음했다)와 케니 세테라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시카고와 세테라의 솔로 음반 일부에 참여한 뮤지션으로 기록되어 있다.
2.2. 학력
세테라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사제가 되기 위해 아치비숍 퀴글리 예비 신학교에 고등학교 1학년 동안 다녔다. 이후 멘델 가톨릭 예비 고등학교로 전학하여 1962년에 졸업했으며, "주목할 만한 동문"으로 기록되었다.
2.3. 음악적 시작
세테라는 어머니가 "항상 집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말하며, 집안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화음을 맞춰 노래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의 형제 케니 또한 자라면서 가족들이 함께 화음을 맞춰 노래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세테라는 자신이 받은 긍정적인 반응을 바탕으로 11살이나 12살 무렵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테라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 11살 때 부모님이 그가 원했던 기타 대신 아코디언을 사주면서 더욱 깊어졌다. 그는 자신이 "폴카 신동과 같은 존재였다"고 말하며, 12살 때 아코디언 연주로 지역 재능 경연 대회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방송국이 다음 주에 방송했던 그의 라디오 데뷔 방송을 놓쳤는데, 그 이유는 FM 수신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가수로서의 경력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15살 때, 고등학교 선배 몇 명이 그를 클럽으로 데려가 레벨 로커스(Rebel Rockers)라는 밴드의 공연을 보게 했고, 이를 계기로 그는 몽고메리 워드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구입했다. 그는 결국 일렉트릭 베이스를 배우게 되었고, 고등학교 친구들(드러머, 기타리스트, 색소폰 연주자)과 함께 지역 댄스 무대에서 공연을 시작하여 기타리스트와 함께 리드 보컬을 나눠 불렀다.
세테라의 초기 음악적 영향은 보 디들리, 리치 발렌스, 리틀 리처드, 지미 리드, 그리고 벤처스를 포함한다. 음악 경력을 시작한 후, 비틀스는 그가 20대 초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프로 음악 경력
1967년, 시카고의 전신 밴드인 더 빅 싱에 보컬 겸 베이시스트로 합류하여 로버트 램, 테리 캐스와 함께 밴드의 중심 멤버가 되었다. 시카고는 1969년 데뷔 앨범을 발표했고, 피터 세테라는 "긴 밤(If You Leave Me Now)" 등의 히트곡에서 메인 보컬을 맡았다. 시카고는 브래스 록 밴드로서 "Beginnings", "Questions 67 & 68", "25 or 6 to 4", "Saturday in the Park", "Dialogue", "Feelin' Stronger Every Day", "Just You 'n' Me" 등 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또한, 미국 자유주의적 록 밴드의 대표적인 존재로서 베트남 전쟁 반대와 민주당 자유주의를 지지했다. 하지만 1974년경부터 음악성이 변화하여 "If You Leave Me Now"는 비판을 받았다. 1975년에는 일시적으로 브래스 록 사운드를 부활시켜 "Dear Mr. President"와 "Old Days"를 히트시켰지만, 1976년 이후 시카고는 AOR/어덜트 컨템포러리 밴드로 변모해 갔다.
1980년 앨범은 시카고의 LP 판매량으로서는 과거 최저치를 기록했고, 시카고의 인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카고 재적 중이던 1981년에 세테라는 첫 번째 솔로 앨범을 발표했지만, 당시 시카고의 침체기였기 때문에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듬해인 1982년, 레이블을 이적한 시카고는 음악 감독으로 데이비드 포스터를 맞이하고 키보디스트 로버트 램 대신 피터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 앨범 Chicago 16을 대히트시켰다. "Hard to Say I'm Sorry"는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했다.
1984년 앨범 Chicago 17도 미국에서 700만 장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브래스 록 시대에 비해 음악 평론가와 음악 매체의 평가는 낮았다. 1985년, 세테라는 솔로 가수로서 성공할 자신감을 굳히고 시카고를 탈퇴했다.
3.1. The Exceptions
세테라는 1960년대 중반 미드웨스트 지역을 순회 공연한 인기 지역 록 밴드인 더 익셉션스를 포함하여 시카고 지역의 여러 그룹에서 연주했다. 세테라는 "열여덟 살 때 아버지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고 말했다.
세테라는 더 익셉션스와 함께 몇몇 싱글과 "록 앤 롤 매스"라는 제목의 다섯 곡이 수록된 7인치 EP를 녹음했다. 그중 "컴 온 홈"이라는 곡은 세테라에게 첫 작곡 크레딧을 안겨주었다. (이 곡에는 칼 데이비드와 마티 그레브도 참여했다.) 1966년에는 머큐리 레코드에서 발매된 시카고 포크 가수이자 작곡가인 딕 캠벨의 앨범 "딕 캠벨 플레이즈 웨어 잇츠 앳"에서 전기 베이스를 연주했다. 더 익셉션스가 사이키델릭 사운드로 방향을 바꾸기로 결정했을 때 세테라는 밴드를 떠났다.
3.2. 시카고 (Chicago)
1967년 12월, 피터 세테라는 "빅 씽(The Big Thing)"이라는 밴드를 보고 호른 세션을 결합한 연주에 감명받아 2주 만에 합류했다. 이 밴드는 곧 시카고로 이름을 바꾸고 1969년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데뷔 앨범 시카고 트랜짓 오소리티를 발매했다. 세테라는 앨범에서 "Questions 67 & 68", "I'm a Man", "Someday"의 리드 보컬을 맡았는데, 그의 테너 음색은 로버트 램과 테리 캐스의 베이스 바리톤 음색과 잘 어울렸다.
다음 앨범 시카고는 밴드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세테라가 리드 보컬을 맡은 "25 or 6 to 4"는 첫 히트 싱글이 되었고, 그가 처음으로 작곡한 "Where Do We Go From Here?"도 수록되었다.
1970년대에 세테라는 작곡가로 활발히 활동하며 1974년 앨범 시카고 VII에 "Wishing You Were Here" (비치 보이스 멤버들 참여, 차트 11위)와 "Happy Man"을 수록했다. 프로듀서 제임스 게르시오는 "Happy Man"을 "발매되지 않은 넘버 원 곡"이라 평가했다. 1976년 시카고 X에 수록된 세테라의 발라드 "If You Leave Me Now"는 미국 및 전 세계 차트 1위, 미국 레코딩 산업 협회(RIAA) 골드 및 플래티넘 인증, 최고 팝 보컬상을 수상했다. 1977년 시카고 XI의 "Baby, What a Big Surprise"는 차트 4위에 올랐다.
세테라는 비치 보이스의 칼 윌슨이 제작한 리치 마틴의 앨범 Beached(1977), 빌리 조엘의 싱글 "My Life"(1978)에 백킹 보컬로 참여했다.
1970년대 후반 디스코 열풍으로 시카고의 인기는 하락했고, 1980년 시카고 XIV는 빌보드 200 71위에 그쳤다. 컬럼비아 레코드는 계약을 해지했다. 1981년 세테라는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에서 솔로 앨범 Peter Cetera를 발매했지만, 실패했다.
1982년 데이비드 포스터가 프로듀싱한 시카고 16으로 시카고는 부활했다. 세테라와 포스터의 "Hard to Say I'm Sorry"는 차트 1위에 올랐고, 영화 섬머 러버스에 삽입되었다. "Love Me Tomorrow"는 빌보드 핫 100 22위를 기록했다. 1984년 시카고 17은 밴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앨범이 되었다. 세테라가 부른 싱글 "Stay the Night"(16위), "Hard Habit to Break"(3위), "You're the Inspiration"(3위), "Along Comes a Woman"(14위)이 모두 히트했다.
MTV의 인기로 세테라는 시카고의 '얼굴'이 되었다.
3.2.1. 시카고 합류
세테라는 시카고 17 (Chicago 17) 홍보를 위한 밴드의 광범위한 투어 일정에 관심이 부족했다. 1985년 5월 17일 투어가 끝났을 때, 시카고의 매니지먼트와 밴드의 여러 멤버들은 그 해 여름에 또 다른 투어를 예약하고 그룹의 다음 앨범 작업을 시작하고 싶어했다. 양측은 의견 차이를 해소할 수 없었고 세테라는 1985년 7월 밴드를 떠났으며, 제이슨 셰프 (Jason Scheff)가 베이시스트이자 리드 보컬로 그를 대체했다. 세테라는 필 콜린스 (Phil Collins)와 제네시스처럼, 제네시스의 멤버로 투어를 하면서 동시에 솔로 작업도 하는 합의를 원했다고 말했다. 그의 전 밴드 동료인 대니 세라파인 (Danny Seraphine)은 그룹이 그렇게 했어야 했다는 데 동의했다. 1987년 인터뷰에서 세테라는 그룹과의 결별에 대해 "우호적이지는 않았지만 최악도 아니었다. 내가 히트를 치고 그들이 히트를 치면 더 나아질 일이다."라고 말했다.
3.2.2. 시카고 탈퇴
1985년, 세테라는 솔로 가수로서 성공할 자신감을 굳히고 시카고를 탈퇴했다. 메인 보컬이었던 그는 시카고가 그동안 해왔던 잦은 투어가 체력적으로 부담이 너무 크다고 느껴 개인적인 자유 시간을 원했지만, 다른 멤버들은 부정적이었다. 탈퇴의 진상에 대해서는 그가 밴드 활동과 솔로 활동을 동시에 하지 않는다는 확약이 포함된 계약서에 서명을 강요받았고, 그것을 그가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본인이 직접 밝히고 있다. 1987년 피플지 인터뷰에서 세테라는 "밴드 멤버들과의 이별은 좋지 않았지만 최악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피터 탈퇴 후 시카고는 그와 비슷한 음색의 제이슨 셰프를 새로운 보컬로 맞이했다. 피터는 21세기에 들어서도 시카고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렸고, 자신의 베스트 앨범에서도 시카고 시절 곡은 재녹음을 수록하고 있다.
2016년, 시카고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당시 재결합 논의도 진행되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밴드 측과의 논의가 결렬되어 최종적으로는 공연에도 파티에도 참석하지 않고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러 갔다고 한다. 그 여러 가지 이유 중에는 피터가 자신의 현재 밴드의 곡을 연주하고 싶어 했던 것, 히트곡 "긴 밤"의 키를 A에서 E로 낮추고 싶어 했던 것(브라스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큰 키 변경은 어려웠다)이 키보디스트 로버트 램의 《롤링 스톤》지 인터뷰에서 알려져 있다.
3.3. 솔로 경력
1980년 시카고의 앨범 판매량이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밴드의 인기는 하락했다. 1981년, 세테라는 첫 솔로 앨범을 발표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82년, 데이비드 포스터를 음악 감독으로 영입하고 로버트 램 대신 세테라가 작사, 작곡에 참여한 시카고의 앨범 Chicago 16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Hard to Say I'm Sorry"는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1984년 앨범 Chicago 17 역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나, 음악 평론가들의 평가는 이전보다 낮았다. 1985년, 세테라는 솔로 활동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시카고를 탈퇴했다. 잦은 투어에 지친 그는 개인적인 시간을 원했지만, 다른 멤버들은 부정적이었다. 세테라는 밴드 활동과 솔로 활동을 병행하지 않겠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거부하며 탈퇴했다고 밝혔다. 1987년 피플지 인터뷰에서는 "밴드 멤버들과의 이별은 좋지 않았지만 최악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1985년 영화 《카라테 키드 2》의 주제가 "Glory of Love"와 1986년 에이미 그랜트와의 듀엣곡 "Next Time"은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고, 두 곡이 수록된 앨범 Solitude/Solitaire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87년 보비 콜드웰이 작곡한 "Stay With Me"는 일본 영화 《竹取物語》의 주제가로 사용되어 오리콘 차트 해외 싱글 차트에서 4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1988년 "One Good Woman"은 빌보드 차트 4위, 1989년 셰어와의 협업곡 "After All"은 빌보드 차트 6위에 올랐다.
피터 세테라 탈퇴 후, 시카고는 제이슨 셰프를 새 보컬로 영입했다. 세테라는 21세기에도 시카고에 대한 언급을 꺼렸고, 자신의 베스트 앨범에 시카고 시절 곡을 재녹음하여 수록했다.
2009년, 2010년, 2012년에는 도쿄에서 공연을 가졌고, 특히 2010년에는 데이비드 포스터와 함께 후지TV의 《정보 프레젠터 도쿠다네!》에 출연하여 "Hard to Say I'm Sorry"를 불렀다.
최근 세테라는 베이스를 다시 연주하며 "If You Leave Me Now", "Hard to Say I'm Sorry" 등 시카고 시절 곡을 연주하고 있으며, 라이브에서 시카고 곡의 비중이 늘고 있다.
3.3.1. 초기 솔로 활동과 성공
1981년, 피터 세테라는 자신의 이름을 딴 첫 솔로 앨범 《Peter Cetera》(한국어 제목: 《꿈의 라임라이트》)를 발표했다. 1983년에는 폴 앵카와 함께 "Hold Me 'Til the Mornin' Comes"를 발표했다. 1986년에는 두 번째 솔로 앨범 《Solitude/Solitaire》를 발표하여 미국에서 23위를 기록했다. 이 앨범에서 싱글로 발매된 "Glory of Love"와 에이미 그랜트와 함께 부른 "The Next Time I Fall"은 큰 인기를 얻었다.
1987년에는 전 아바 멤버 아그네타 푈츠코그와 함께 "I Wasn't the One (Who Said Goodbye)"을 불렀고, "Big Mistake", "Only Love Knows Why"를 싱글로 발표했다. 같은 해, 영화 「카구야 이야기」(1987년 영화)의 주제가 "Stay With Me"를 발표했다.
1988년에는 세 번째 솔로 앨범 《One More Story》를 발표하고, "One Good Woman", "Best of Times", "You Never Listen to Me"를 싱글로 발매했다. 1989년에는 셰어와 함께 "After All (Love Theme From Chances Are)"를 불렀다.
3.3.2. 계속된 솔로 활동
시카고를 탈퇴한 후, 피터 세테라는 솔로 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1986년에는 두 번째 솔로 앨범 Solitude/Solitaire를 발표하여 미국에서 23위를 기록했다. 이후 1988년 One More Story, 1992년 World Falling Down, 1995년 One Clear Voice, 2001년 Another Perfect World, 2004년 You Just Gotta Love Christmas 등의 앨범을 발매했다.
1997년에는 You're the Inspiration: A Collection이라는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으며, 2017년에는 The Very Best of Peter Cetera라는 또 다른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다.
3.3.3. 시카고와의 재결합 무산
세테라는 종종 인터뷰에서 시카고와의 재결합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았으며, 밴드 탈퇴를 부부의 이혼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매력적인 금전적 제안에도 불구하고 밴드와 함께 공연하는 것을 거절했지만, "절대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5년 12월, 로버트 램, 리 러프네인, 월터 파라자이더, 제임스 팽코우, 대니 세러파인, 테리 캐스를 포함한 시카고의 원년 멤버 7명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것이라고 발표되었고, 2016년 4월 8일 뉴욕 브루클린의 바클레이스 센터에서 헌액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세테라와 현 밴드 멤버들이 헌액식에서 함께 공연할 가능성을 고려했으나, 결국 세테라는 이를 거절했다. 그는 2016년 2월 8일과 2월 25일자 자신의 웹사이트 게시글을 통해 이 결정을 발표했고, 밴드 멤버들과 공연 제작자들과 공연 세부 사항을 조율하려 했던 것에 대한 좌절감을 표현했다. 세테라는 상을 받기 위해서조차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그와 시카고의 재결합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징후들이 있었다.
2016년 시카고의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시 재결합 논의가 있었으나, 여러 이유로 밴드 측과의 논의가 결렬되어 세테라는 공연과 파티에 모두 불참했다. 키보디스트 로버트 램은 《롤링 스톤》지 인터뷰에서 그 이유 중 일부를 밝혔는데, 세테라가 자신의 현재 밴드의 곡을 연주하고 싶어 했던 것과 히트곡 "긴 밤"의 키를 A에서 E로 낮추고 싶어 했던 것(브라스 때문에 큰 키 변경은 어려웠다) 등이 있었다고 한다.
3.3.4. 은퇴
2019년 11월, 마크 패티슨과의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세테라는 자신이 "은퇴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목소리를 잃기 전에 공연을 그만두고 싶었다고 설명했고, 투어에 수반되는 많은 여행도 언급했다. 그는 이제 "직업 없는 가수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마지막 라이브 공연은 2018년 11월 23일 아이다호주 케첨에 있는 아르기로스 공연예술센터(Argyros Performing Arts Center) 개관 공연이었다.
4. 음악성
세테라는 테너 음색으로 음악 평론가들에게 "독특"하고 "잊을 수 없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AXS TV의 프로그램 Top 10 Revealed에서 그는 최고의 "고음 히터" 톱 10 중 9위에 올랐다. 그의 독특한 가창 스타일은 1969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경기에서 싸움에 휘말린 후 한동안 턱을 봉합한 상태로 노래해야 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세테라는 비틀즈와 비치 보이스 멤버가 되는 것을 꿈꿨으며, 시카고와 비치 보이스의 합동 공연 도중 링고 스타와 함께 비틀즈의 노래를 연주하며 꿈을 이루기도 했다.
시카고의 원년 드러머 대니 세러파인은 1960년대 밴드 결성 당시 세테라를 "시카고에서 가장 뛰어난 가수"였다고 회상한다. 세테라가 밴드를 떠난 후에도, 원년 멤버 월터 파라자이더는 세테라를 "세계 최고의 가수 중 한 명"이라고 칭했다. 전 시카고 멤버 빌 챔플린(Bill Champlin)은 세테라를 "우리 시대의 주요 가수 중 한 명"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테너 두 명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2016년 다큐멘터리에서 원년 멤버 로버트 램은 "세테라처럼 들리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세테라는 주로 독학으로 음악을 배웠으며, 십 대 시절부터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다. 그는 James Jamerson, Paul McCartney, Andy Fraser를 자신의 베이스 연주에 영향을 준 인물로 언급한다. 그의 첫 베이스 기타는 Danelectro Shorthorn이었으며, 이후 Höfner 500/1를 거쳐 1963년형 Fender Precision Bass를 주로 사용했다.
세테라는 시카고 시절 베이스 연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러 리뷰에서 그의 베이스 연주를 "훌륭하다"고 평가했으며, "록의 최고 베이시스트 중 한 명"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옐로우 재킷스의 베이시스트 Jimmy Haslip과 윌 리는 세테라를 자신들의 연주에 영향을 준 인물로 꼽았다.
세테라는 "Hard to Say I'm Sorry", "You're the Inspiration", "Glory of Love" 등 여러 히트곡을 작곡하여 미국 작곡가, 작사가 및 출판인 협회(ASCAP)로부터 "가장 많이 연주된 곡" 상을 받았다. 그의 곡 "If You Leave Me Now"는 100여 명의 다른 아티스트들에 의해 커버되었다. 2017년에는 시카고 멤버로서 로버트 램, 제임스 펜코우와 함께 작곡가 명예의 전당(Songwriters Hall of Fame)에 헌액되었다.
4.1. 보컬
세테라의 테너 음색은 음악 평론가들에게 "독특"하고 "잊을 수 없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2018년 AXS TV의 프로그램 Top 10 Revealed에서 그는 최고의 "고음 히터" 톱 10 중 9위에 올랐다.
세테라의 독특한 가창 스타일은 1969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경기에서 싸움에 휘말린 후 한동안 턱을 봉합한 상태로 노래해야 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2009년 인터뷰에서 세테라는 40년 동안 활동해 온 가수로서 "가장 오래도록 활동하는 가수 중 한 명"이라고 언급하며, 목 관리 비결을 묻는 질문에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습니다. 최대한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규칙적으로 발성 연습을 합니다."라고 답했다.
윌리엄 제임스 룰만에 따르면, 세테라에게 있어 시카고 VII의 "Wishing You Were Here" 녹음은 비치 보이스 멤버들과 함께 작업했기에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는 세테라의 말을 인용하며 "제가 항상 되고 싶었던 두 사람이 있는데, 바로 비틀즈 멤버나 비치 보이스 멤버였습니다. …제가 배경 하모니를 맡았는데, 저와 칼 윌슨, 데니스 윌슨, 그리고 알 자딘이 함께 했습니다. 하룻밤 동안 저는 비치 보이스 멤버였습니다."라고 적었다. 세테라는 어떤 의미에서 비틀즈와 비치 보이스 멤버 모두가 될 기회를 얻었다. 2015년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는 시카고와 비치 보이스의 합동 공연을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회상했는데, 두 그룹이 무대에서 함께 공연하던 중 전 비틀즈 드러머 링고 스타가 합류하여 비틀즈의 노래 "Got to Get You into My Life"를 함께 연주했다.
세테라의 전 시카고 밴드 동료들은 그의 목소리와 가창력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밴드 시카고의 원년 드러머 대니 세러파인은 1960년대 시카고에서 밴드가 결성될 당시 고음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당시 세테라는 "시카고에서 가장 뛰어난 가수"였다고 회상한다. 세테라가 밴드를 떠난 지 7년 후인 1992년 인터뷰에서 원년 멤버이자 관악기 연주자인 월터 파라자이더는 세테라를 "세계 최고의 가수 중 한 명"이라고 칭하며 자신이 선택한 최고 가수 5명 안에 세테라를 포함시켰다. 2009년 인터뷰에서 전 시카고 멤버 빌 챔플린(Bill Champlin)은 세테라에 대해 "그는 우리 시대의 주요 가수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고, 세테라는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테너 두 명 중 한 명"이라고 믿었다고 밝혔다. 2016년 그룹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원년 멤버이자 키보디스트인 로버트 램은 "록 음악에는 많은 테너 보컬이 있었고 있지만, 세테라처럼 들리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2022년 인터뷰에서 램은 다시 한번 세테라가 시카고에 있었을 때 "놀라운 보컬리스트"였다고 칭찬했다.
음반 산업계는 그래미 후보 지명을 통해 세테라의 가창력을 인정했다. 세테라가 리드 또는 공동 리드 보컬을 맡은 5곡 – "If You Leave Me Now", "Hard to Say I'm Sorry", "Hard Habit to Break", "Glory of Love", 그리고 "The Next Time I Fall" – 이 팝 보컬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었으며, "If You Leave Me Now"는 해당 부문에서 수상했다.
세테라는 1990년대 이후로 빌보드 차트에 오른 노래가 없지만, 그가 시카고 멤버로서 그리고 솔로 아티스트로서 불렀던 노래들은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광고 및 라이브 무대극 사운드트랙에 계속 등장하고 있다.
라디오 진행자 닥 리노는 2024년에 "피터 세테라가 사실상 사랑 노래의 제왕일지도 모른다"고 썼다. 리노의 의견에 따르면 시카고의 노래 "Hard Habit to Break"는 "세테라의 순수한 보컬 스타 파워를 가장 잘 보여주는 노래이며... 다른 어떤 파워 발라드보다 낫다."
4.2. 베이스 연주
주로 독학으로 음악을 배우고 십 대 시절부터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한 세테라는 자신이 "지식이 풍부한" 베이스 연주자는 아니며, 악보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코드에 대한 지식은 "'메이저인가 마이너인가?'를 넘어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베이스 연주에 영향을 준 인물로 James Jamerson, Paul McCartney, Andy Fraser를 언급하며 John Entwistle과 Jack Bruce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세테라의 첫 번째 베이스 기타는 Danelectro Shorthorn이었다. 그는 익셉션스(The Exceptions)와 함께 연주하기 위해 Höfner 500/1로 바꿨다. 호프너의 사운드가 시카고에게는 "베이스가 부족하거나 강렬하지 않다"고 판단되자 그는 1963년형 Fender Precision Bass로 교체했다. 펜더는 그의 최애 악기가 되었고, 그가 밴드에서 17년 동안 활동하는 동안 주로 사용하던 악기였다.
세테라가 연주했던 다른 베이스로는 Fender Jazz Bass(프렛과 프렛리스 버전 모두), Gibson EB-3, Gibson Ripper, Rickenbacker 4001, Steinberger, Ibanez, Music Man StingRay 및 스펙터(Spector) 모델이 있다. 그의 앰프는 Ampeg, Orange, Kustom, Acoustic Control Corporation, Phase Linear 및 사운드 시티(Sound City) 등 다양했다.
그는 현재 윌킨스(Wilkins) 베이스와 [[펜더 뮤지컬 인스투르먼츠 코퍼레이션|펜더(Fender Musical Instruments Corporation)] 프리시전 베이스, 그리고 타우러스(Taurus) 베이스 앰프를 홍보하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라벨라(LaBella) 플랫와운드 베이스 현을 사용해왔다. 그는 한때 라벨라 라운드와운드 현으로 바꾸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플랫와운드로 돌아왔다. 그는 또한 펜더 미디엄 피크를 사용한다.
세테라는 시카고 시절 그의 베이스 연주로 높은 찬사를 받았다. 1969년 하트퍼드 대학교(University of Hartford)에서 열린 시카고의 콘서트에 대한 그의 리뷰에서 켄 크루익셱크는 "그들의 베이시스트, 피터 세테라는 아마도 내가 들어본 가장 빠르고 훌륭한 연주자일 것이다"라고 썼다. 1972년 로스앤젤레스 그리스 극장(Greek Theater)에서 열린 시카고의 라이브 공연을 리뷰하며, 샌 버나디노 선-텔레그램에 기고한 헨리 멘도사는 세테라의 베이스 연주를 "훌륭하다"고 평가하며 세테라가 "록의 최고 베이시스트 중 한 명으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1973년 미들 테네시 주립 대학교(Middle Tennessee State University) 공연 후, 작가 마이크 웨스트는 세테라를 베이시스트라기보다는 가수로 보는 그의 견해가 바뀌었다고 보고하며, "그의 베이스 연주는 훌륭했고, 소울 사운드의 정점에 도달했다"라고 썼다. 작가 브라운 버넷은 세테라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인 피터 세테라(1981) 리뷰에서 세테라의 베이스 연주를 "뛰어나다"라고 불렀다. 2018년 리뷰에서 작가 밥 헬름은 "핫 스트리츠"라는 노래에서 세테라의 베이스 연주를 "놀랍다"라고 평가하며 세테라를 "놀라운 베이시스트"라고 불렀다. 2019년 "25 or 6 to 4" 녹음에 대한 기사에서 매트 허위츠는 세테라를 "뛰어난 베이스 연주자"라고 부른다.
세테라는 2007년 12월호 베이스 플레이어 잡지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칸소 주 전 주지사인 Mike Huckabee가 텔레비전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것을 보았다. 세테라는 그 당시 2008년 공화당 대선 경선(2008년 공화당 예비선거)의 대선 후보였던 허커비에게 칭찬과 함께 해당 호 사인본을 보냈다. 허커비는 "피터 세테라에게 편지를 받고 완전히 압도당했습니다. … 내 세대 최고의 베이시스트 중 한 명이 칭찬을 해주는 것은 뉴햄프셔에서 승리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옐로우 재킷스의 베이스 기타 연주자인 Jimmy Haslip은 그에게 영향을 준 베이스 기타 연주자 중 한 명으로 피터 세테라를 언급한다.
베이시스트 윌 리는 피터 세테라가 그의 연주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며, 세테라의 연주를 "느슨한 맥카트니 같지만, 시카고 특유의 펑크와 동등한 취향과 멜로디가 넘치는 연주"라고 비유했다.
4.3. 작곡
피터 세테라는 작곡 능력으로 인정받아 미국 작곡가, 작사가 및 출판인 협회(ASCAP) 회원이며, "Hard to Say I'm Sorry", "Love Me Tomorrow", "You're the Inspiration", "Glory of Love", "Restless Heart" 등의 곡으로 ASCAP "가장 많이 연주된 곡" 부문에서 수상했다. SecondHandSongs 웹사이트에 따르면, "If You Leave Me Now"는 1976년부터 2018년까지 전 세계 약 100명의 다른 녹음 아티스트들에 의해 커버되었다. 2017년 2월 22일, 세테라는 시카고 멤버로서의 활동을 인정받아 로버트 램, 제임스 펜코우와 함께 2017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Songwriters Hall of Fame) 헌액자로 선정되었다. 1986년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포스터는 세테라에 대해 "내가 함께 작업했던 최고의 작곡 파트너"라고 말했다.
작곡 과정에 대해 세테라는 "저는 시험 전날에만 공부하는 아주 나쁜 학생과 같아요! 저는 목적이 있을 때만 노래를 쓰는 경향이 있어요. 새로운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작곡을 시작해요."라고 말했다.
윌리엄 제임스 룰만에 따르면, 1969년 아폴로 달 착륙, 월터 크롱카이트 그리고 턱이 부러진 후 요양은 세테라에게 시카고의 두 번째 앨범에 수록된 그의 첫 번째 곡 "Where Do We Go from Here?"를 작곡할 영감과 시간을 제공했다. 그때까지 그는 자신을 작곡가로 여기지 않았으며, 룰만에게 "저는 톱 40곡을 발표하는 밴드(The Exceptions)에서 왔고… 특히 비틀즈가 등장했을 때는, 첫째로 모든 멜로디가 이미 다 쓰였고, 둘째로 어떤 사람들은 작곡가이고 어떤 사람들은 가수였으며, 저는 제 자신을 작곡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세테라는 또한 룰만에게 곡들이 "번개처럼" 떠오를 수 있지만, 녹음 장치가 없으면 "마치 나타났던 것처럼 공중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카고 VII의 곡 "Happy Man"에 대해 "그것은 제가 오토바이를 타고 샌디에이고 프리웨이를 자정에 달리는 동안 쓴 곡이에요… 제가 가사와 음악을 모두 기억했던 유일한 곡이었고, 집에 가서 하루 뒤에 테이프에 불렀고, 그렇게 해서 그 노래가 나온 거예요."라고 말했다.
5. 사생활
세테라의 첫 번째 부인은 재니스 쉴리였다.
1982년 다이앤 니니와 결혼했고, 1983년에 딸을 낳았다. 작가 멜린다 뉴먼에 따르면, 1992년 7월 그의 앨범 World Falling Down이 발매될 무렵에는 이미 결혼 생활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 세테라는 밴드 동료 로버트 램(Robert Lamm)과 다이앤과 줄리 니니 자매와 결혼했던 기간 동안 매제 사이였다.
1997년, 세테라는 당시 여자친구였던 블라스 웨버와 두 번째 딸을 낳았다. 그는 리버 노스 레코드/플래티넘 레코드에서 일하던 웨버를 만났다.
아이댁호주 케첨에 오랫동안 거주해 온 세테라는 1980년대 중반부터 아이댁호주에 살고 있으며 스포츠 애호가이다.
6. 수상 및 영예
| 연도 | 상 | 부문 | 곡 | 결과 |
|---|---|---|---|---|
| 1984년 | 그래미상 | 2인 이상 보컬 편곡 | "Hard Habit to Break" | 후보 |
| 1984년 | ASCAP 팝 음악상 | 가장 많이 연주된 곡 | "하드 투 세이 아이엠 소리", "Love Me Tomorrow" | 수상 |
| 1986년 | ASCAP 팝 음악상 | 가장 많이 연주된 곡 | "You're the Inspiration" | 수상 |
| 1987년 | 그래미상 | 최고 남자 팝 보컬 | "글로리 오브 러브" | 후보 |
| 1987년 | 그래미상 | 최고 듀오/그룹 팝 보컬 | "넥스트 타임 아이 폴" | 후보 |
| 1987년 | 아카데미상 | 최고 주제가상 | "글로리 오브 러브" | 후보 |
| 1987년 | 골든 글로브상 | 최고 주제가상 | "글로리 오브 러브" | 후보 |
| 1987년 | ASCAP 어워드 | 영화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 곡 | "글로리 오브 러브" | 수상 |
| 1987년 | 미국 비디오 어워드 | 최고 신인상 | 수상 | |
| 1994년 | ASCAP 팝 음악상 | 가장 많이 연주된 곡 | "Restless Heart" | 수상 |
| 1997년 | 그래미상 | 최고 R&B 듀오/그룹 보컬 | "Hard to Say I'm Sorry (Remix)" | 후보 |
7. 음반 목록
| 연도 | 제목 | 최고 차트 순위 | 음반 | |||||||||
|---|---|---|---|---|---|---|---|---|---|---|---|---|
| 미국 캐시박스 | 미국 빌보드 핫 100 | 미국 어덜트 컨템포러리 | 미국 어덜트 팝 | 미국 메인스트림 록 | 미국 팝 | 호주 ARIA 차트 | 독일 GfK | 영국 싱글 차트 | 일본 오리콘 싱글 차트 | |||
| 1981 | "Livin' in the Limelight" | — | — | — | — | 6 | — | — | — | — | — | 피터 세테라 |
| 1982 | "On the Line" | — | — | — | — | — | — | — | — | — | — | |
| 1986 | "글로리 오브 러브" | 1 | 1 | 1 | — | — | — | 9 | 24 | 3 | — | 솔리튜드/솔리테어 |
| "넥스트 타임 아이 폴" (에이미 그랜트와 함께) | 3 | 1 | 1 | — | — | — | 90 | — | 78 | — | ||
| "Big Mistake" | 55 | 61 | — | — | — | — | — | — | — | — | ||
| 1987 | "Only Love Knows Why" | — | — | 24 | — | — | — | — | — | — | — | |
| "Queen of the Masquerade Ball" (프로모션) | — | — | — | — | — | — | — | — | — | — | ||
| "Stay with Me"(독일/일본 한정) | — | — | — | — | — | — | — | — | — | 40 | 문의 공주 | |
| 1988 | "원 굿 우먼" | 6 | 4 | 1 | — | — | — | — | — | 82 | — | 원 모어 스토리 |
| "Best of Times" | 50 | 59 | 22 | — | — | — | — | — | — | — | ||
| "Holding Out" | — | — | — | — | — | — | — | — | — | — | ||
| "You Never Listen to Me" (미국 프로모션) (데이비드 길모어와 함께) | — | — | — | — | 32 | — | — | — | — | — | ||
| 1990 | "No Explanation"(호주 프로모션 한정) | — | — | — | — | — | — | — | — | — | — | 프리티 우먼: 오리지널 모션 픽처 사운드트랙 |
| 1992 | "레스트리스 하트" | — | 35 | 1 | — | — | 36 | 89 | 53 | — | — | 월드 폴링 다운 |
| 1993 | "Feels Like Heaven" (차카 칸과 함께) | 68 | 71 | 5 | — | — | — | — | — | — | — | |
| "Even a Fool Can See" | 61 | 68 | 3 | — | — | — | — | — | — | — | ||
| "Man in Me" (유럽 한정) | — | — | — | — | — | — | — | — | — | — | ||
| 1995 | "(I Wanna Take) Forever Tonight" (크리스털 버나드와 함께) | — | 86 | 22 | 33 | — | — | 89 | — | — | — | 원 클리어 보이스 |
| 1996 | "One Clear Voice" (미국 프로모션) | — | — | 12 | — | — | — | — | — | — | — | |
| "Faithfully" (미국 프로모션) | — | — | 13 | — | — | — | — | — | — | — | ||
| "S.O.S." (미국 프로모션) (로나 리브스와 함께) | — | — | — | — | — | — | — | — | — | — | ||
| 1997 | "Hard to Say I'm Sorry" (애즈 옛과 함께) | — | 8 | 14 | — | — | — | 5 | 72 | 7 | — | Az Yet |
| "You're the Inspiration" (애즈 옛 피처링) | — | 77 | 29 | — | — | — | — | — | — | — | 유어 디 인스피레이션: 어 컬렉션 | |
| "Do You Love Me That Much" (미국 프로모션) | — | — | 6 | — | — | — | — | — | — | — | ||
| 1998 | "She Doesn't Need Me Anymore" (라디오 방송) | — | — | 27 | — | — | — | — | — | — | — | |
| 2001 | "Perfect World" (미국 프로모션) | — | — | 21 | — | — | — | — | — | — | — | 어나더 퍼펙트 월드 |
| "I'm Coming Home" (미국 프로모션) | — | — | — | — | — | — | — | — | — | — | ||
| 2005 | "You Just Gotta Love Christmas" (미국 라디오 방송) | — | — | 39 | — | — | — | — | — | — | — | 유 저스트 갓타 러브 크리스마스 |
| "Silent Night" (미국 라디오 방송) | — | — | 24 | — | — | — | — | — | — | — | ||
| "Something That Santa Claus Left Behind" (미국 라디오 방송) | — | — | 37 | — | — | — | — | — | — | — | ||
| "—"는 차트에 오르지 못한 곡을 나타냅니다. | ||||||||||||
| 연도 | 싱글 | 주요 가수 | 최고 차트 순위 | 앨범 | ||||||
|---|---|---|---|---|---|---|---|---|---|---|
| 미국 캐시박스 | 미국 빌보드 핫 100 | 미국 AC | 미국 R&B | 호주 ARIA 차트 | 독일 GfK | 영국 싱글 차트 | ||||
| 1983 | "Hold Me 'Til the Mornin' Comes" | 폴 앵카 | 38 | 40 | 2 | — | 49 | — | — | Walk a Fine Line |
| 1987 | "I Wasn't the One (Who Said Goodbye)" | 아그네타 팔츠코그 | — | 93 | 19 | — | — | — | — | I Stand Alone |
| 1989 | "After All" | 셰어 | 7 | 6 | 1 | — | 50 | — | 84 | Heart of Stone |
| 1991 | "Voices That Care" | 다양한 아티스트 | 24 | 11 | 6 | — | — | — | — | |
| 1997 | "Hard to Say I'm Sorry" | 애즈 옛 | — | 8 | 14 | 20 | 5 | 72 | 7 | Az Yet |
* 피터 세테라 (1981) – 빌보드 200 143위 (미국)
* 솔리튜드/솔리테어 (1986) – 미국 23위, RIAA 플래티넘
* 원 모어 스토리 (1988) – 미국 58위
* 월드 폴링 다운 (1992) – 미국 163위
* 원 클리어 보이스 (1995)
* 유어 디 인스피레이션: 어 컬렉션 (1997)
* 어나더 퍼펙트 월드 (2001)
* 유 저스트 갓타 러브 크리스마스 (2004)
* 피터 세테라와 심포니 오케스트라 - 라이브 인 솔트레이크시티 (2004)
* 프레시 테이크스 (2021)
* 피터 세테라 베스트 (2017) 미국 차트 134위
* 사랑, 영광, 명예 그리고 마음: 풀문과 워너 브라더스 레코딩 앨범 전곡''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