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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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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노버가는 독일의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가문으로, 1714년부터 1901년까지 영국의 왕위를 계승했다. 1636년 하노버로 왕궁을 옮긴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선제후가 되면서 하노버 선제후국이 시작되었고, 1701년 왕위 계승법에 따라 1714년 조지 1세가 영국의 왕이 되면서 영국과 하노버는 동군연합을 이루었다. 1814년 하노버는 왕국으로 승격되었으나,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로 동군 연합이 해체되고 하노버 왕가는 영국 왕위에서 분가했다. 1866년 하노버 왕국은 프로이센에 병합되었고, 하노버 가문은 현재까지도 가문의 수장과 후계자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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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가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개요
이름하노버 왕가
원어명Haus Hannover (독일어)
로마자 표기Haus Hanobeo (독일어)
국가영국
아일랜드
영국
하노버 왕국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국
앵글로-코르시카 왕국
가문보나파치 가문
오베르텐기 가문
에스테 가문
벨프 가문
창립1634년
창시자게오르크
현재 수장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하노버 공
폐지하노버: 1866년 – 하노버의 게오르크 5세가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에서 프로이센에 영토를 잃음
브라운슈바이크: 1918년 – 브라운슈바이크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패배 후 퇴위 강요당함
문장
하노버 왕가의 문장
하노버 왕실 깃발
주요 구성원
영국 및 아일랜드 연합 왕국의 왕과 여왕
인도 여제
영국 국왕
아일랜드 국왕
프랑스 국왕 (주장)
하노버 국왕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
신성 로마 제국 대재무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공작/여공작모데나 공작부인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부인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비
신성 로마 황후
오라녜 공비
맨 섬의 군주
분가
사생아 가문피츠클래런스 가문 (절멸)

2. 역사

1636년, 브라운슈바이크와 뤼네부르크의 공작이었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자신의 왕궁을 하노버로 옮겼다.[2] 1692년, 신성 로마 제국선제후로 승격되었고, 그의 왕궁이 하노버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영지는 하노버 선제후국으로 불리게 되었다.[2]

1701년 영국에서 1701년 왕위 계승법이 제정되어, 로마 가톨릭교도는 왕위에 오를 수 없게 되었다.[2] 이에 따라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의 주요 개신교 후손이었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아내 팔라티네이트의 조피아가 잉글랜드 왕위 계승자로 선언되었다.[2]

1714년 조피아의 아들 게오르크 루이는 어머니의 사망으로 영국 왕위를 상속받아 영국의 조지 1세가 되었고, 하노버와 영국은 동군연합을 이루었다.[2] 1814년 하노버 선제후국은 하노버 왕국으로 승격되었으며, 영국의 국왕이 하노버 국왕을 겸임하였다.

그러나 윌리엄 4세가 죽고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의 왕이 되자, 살리카법을 따르는 하노버 왕국과의 동군연합은 깨지게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였으므로, 그녀의 사후 영국에선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시대가 열렸고, 하노버 왕가는 보오전쟁에서 오스트리아의 편을 들었다가 패배하여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되었다.

1913년 하노버 왕가 출신이 독일 제국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되며 다시 하노버 왕국을 재건하려고 하지만, 독일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지위를 잃어버리게 된다.[1]

2. 1. 가문의 기원과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게오르크는 하노버 가문의 첫 번째 구성원이었다.[2] 1635년에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이 분할되면서 게오르크는 칼렌베르크 공국을 상속받아 거처를 하노버로 옮겼다. 그의 아들인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크리스티안 루이는 게오르크의 형제로부터 뤼네부르크 공국을 상속받았다. 칼렌베르크와 뤼네부르크는 1705년 그의 손자이자 조지 1세가 된 게오르크에 의해 통합될 때까지 게오르크의 아들들 사이에서 분할되었다. 이들은 모두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이름역할비고
게오르크하노버 가문의 첫 번째 구성원
크리스티안 루이게오르크 공작의 장남, 칼렌베르크 공 (1641–1648) 및 뤼네부르크 공 (1648–1665)뤼네부르크 공이 되면서 칼렌베르크를 포기했다.
게오르크 빌헬름게오르크 공작의 차남, 칼렌베르크 공 (1648–1665) 및 뤼네부르크 공 (1665–1705)형제 크리스티안 루이의 죽음으로 뤼네부르크 공이 되면서 칼렌베르크를 포기했다.
요한 프리드리히게오르크 공작의 3남, 칼렌베르크 공 (1665–1679)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게오르크 공작의 4남, 칼렌베르크 공 (1679–1698)형제 요한 프리드리히의 죽음으로 칼렌베르크 공이 되었다. 1692년 신성 로마 제국선제후로 승격되었다.
게오르크 루이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공작과 조피의 아들1698년 칼렌베르크 선제후 겸 공이 되었고, 1705년 삼촌 게오르크 빌헬름이 사망하자 뤼네부르크 공이 되었다. 1714년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영국 왕위에 대한 권리를 상속받았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아내인 팔라티네이트의 조피아는 1701년 왕위 계승법에 의해 잉글랜드 왕위 계승자로 선언되었는데, 이 법은 로마 가톨릭교도는 왕위에 오를 수 없다고 규정했다. 조피아는 당시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의 적격한 주요 개신교 후손이었다.

30년 전쟁 종전 후 베스트팔렌 조약(1648년)은 오스나브뤼크 주교령을 가톨릭 주교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방계 가문에게 번갈아 가며 수여했다.[4] 조약은 상속자나 통치 군주보다 방계 가문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오스나브뤼크는 하노버 가문의 분봉령(교대로) 형태가 되었다.

이름재위 기간비고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1662–1698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게오르크의 넷째 아들
요크와 올버니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1715–1728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여섯째 아들
요크와 올버니 공작 프레데릭1764–1802조지 3세의 둘째 아들



오스나브뤼크는 1803년 하노버에 병합되었다.

2. 2. 하노버 선제후와 영국 왕위 계승

1636년, 브라운슈바이크와 뤼네부르크의 공작이었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자신의 왕궁을 하노버로 옮겼다.[2] 1692년, 신성 로마 제국선제후로 승격되었고, 그의 왕궁이 하노버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영지는 하노버 선제후국으로 불리게 되었다.[2]

1701년 영국에서 1701년 왕위 계승법이 제정되어, 로마 가톨릭교도는 왕위에 오를 수 없게 되었다.[2] 이에 따라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의 주요 개신교 후손이었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아내 팔라티네이트의 조피아가 잉글랜드 왕위 계승자로 선언되었다.[2]

1714년 조피아의 아들 게오르크 루이는 어머니의 사망으로 영국 왕위를 상속받아 영국의 조지 1세가 되었고, 하노버와 영국은 동군연합을 이루었다.[2] 1814년 하노버 선제후국은 하노버 왕국으로 승격되었으며, 영국의 국왕이 하노버 국왕을 겸임하였다.

그러나 윌리엄 4세가 죽고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의 왕이 되자, 살리카법을 따르는 하노버 왕국과의 동군연합은 깨지게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였으므로, 그녀의 사후 영국에선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시대가 열렸고, 하노버 왕가는 보오전쟁에서 오스트리아의 편을 들었다가 패배하여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되었다.

2. 3. 영국-하노버 동군연합 시대

1692년, 하노버에 왕궁을 둔 하노버 선제후국의 선제후였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아들 게오르크 루드비히는 1701년 제정된 영국의 왕위계승법에 따라 1714년 영국의 조지 1세가 되면서 영국과 하노버는 동군연합을 이루었다.[3] 1814년 하노버 선제후국은 하노버 왕국으로 승격되었고, 영국의 국왕이 하노버 국왕을 겸임하였다.

조지 1세, 조지 2세, 조지 3세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선제후이자 공작으로서, 비공식적으로 하노버의 선제후로도 활동했다. 이들은 영국과 하노버의 이중 군주로서, 하노버군과 외교 정책을 통제했다.

그러나 윌리엄 4세가 죽고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의 왕이 되자, 하노버 왕국은 살리카 법에 따라 여성의 왕위 계승을 인정하지 않아 빅토리아 여왕의 삼촌인 컴벌랜드 공작이 왕위를 계승하여 영국과의 동군연합은 해체되었다.[3]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였으므로, 그녀의 사후 영국에선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고, 하노버 왕가는 보오전쟁에서 오스트리아의 편을 들었다가 패배하여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된다.[3]

2. 4. 동군연합의 해체와 하노버 왕국

1701년 제정된 영국의 왕위계승법으로 인해, 1714년 하노버의 게오르크 1세는 영국의 조지 1세가 되었고, 하노버와 영국은 동군연합을 이루었다.[1] 1814년 하노버 선제후국은 하노버 왕국으로 승격되었으며, 영국의 국왕이 하노버 국왕을 겸임하였다.[1] 그러나 윌리엄 4세가 사망하고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의 왕이 되자, 하노버와 영국의 동군연합은 해체되었다.[1] 살리카 법을 따르는 하노버 왕국은 빅토리아 여왕이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1]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였으므로, 그녀의 사후 영국에선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하노버 왕가는 보오전쟁에서 오스트리아 편을 들었다가 패배하여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된다.[1] 1913년 하노버 왕가 출신이 독일 제국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되며 다시 하노버 왕국을 재건하려고 하지만, 독일 제국이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지위를 잃어버리게 된다.[1]

1837년 윌리엄 4세 사망 이후 하노버 왕가의 왕들은 다음과 같다.[1]

  •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837–1851 재위)
  • 게오르크 5세 (1851–1866 재위, 폐위)


하노버 왕국은 1866년 프로이센 왕국에 병합되면서 멸망했고, 하노버의 왕(이자 컴벌랜드 공작)은 오스트리아로 망명해야 했다.[1] 1866년 하노버 가문과 호엔촐레른 가문 사이의 갈등은 마지막 왕의 손자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의 1913년 결혼으로 해결되었다.[1]

2. 5.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하노버 왕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게오르크는 하노버 가문의 첫 번째 구성원이었다.[2] 1635년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이 분할되면서 게오르크는 칼렌베르크 공국을 상속받아 거처를 하노버로 옮겼다. 그의 아들인 크리스티안 루이는 게오르크의 형제로부터 뤼네부르크 공국을 상속받았다. 칼렌베르크와 뤼네부르크는 1705년 그의 손자이자 조지 1세가 된 게오르크에 의해 통합될 때까지 게오르크의 아들들 사이에서 분할되었다. 모든 구성원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게오르크, 하노버 가문의 첫 번째 구성원.
  • 크리스티안 루이, 게오르크 공작의 장남, 칼렌베르크 공 (1641–1648) 및 뤼네부르크 공 (1648–1665). 뤼네부르크 공이 되면서 칼렌베르크를 포기했다.
  • 게오르크 빌헬름, 게오르크 공작의 차남, 칼렌베르크 공 (1648–1665) 및 뤼네부르크 공 (1665–1705). 형제 크리스티안 루이의 죽음으로 뤼네부르크 공이 되면서 칼렌베르크를 포기했다.
  • 요한 프리드리히, 게오르크 공작의 3남, 칼렌베르크 공 (1665–1679).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게오르크 공작의 4남, 칼렌베르크 공 (1679–1698). 형제 요한 프리드리히의 죽음으로 칼렌베르크 공이 되었다. 그는 1692년 신성 로마 제국선제후로 승격되었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아내인 팔라티네이트의 조피아는 1701년 왕위 계승법에 의해 잉글랜드 왕위 계승자로 선언되었는데, 이 법은 로마 가톨릭교도는 왕위에 오를 수 없다고 규정했다. 조피아는 당시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의 적격한 주요 개신교 후손이었다.
  • 게오르크 루이,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공작과 조피아의 아들, 1698년 칼렌베르크 선제후 겸 공이 되었고, 1705년 삼촌 게오르크 빌헬름이 사망하자 뤼네부르크 공이 되었다. 그는 1714년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영국 왕위에 대한 권리를 상속받았다.


영국 하노버 왕가의 문장 (1816–1837)


하노버 왕국문장 (1837)


1636년, 브라운슈바이크와 뤼네부르크의 공작이었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자신의 왕궁을 하노버로 옮겼다. 1692년, 선제후가 되었고, 그의 왕궁이 하노버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영지는 하노버 선제후국으로 불리게 되었다.

1701년 만들어진 영국의 왕위계승법으로 인해, 1714년 하노버의 게오르크 1세는 영국의 조지 1세가 되었고, 하노버와 영국은 동군연합을 이루었다. 1814년 하노버 선제후국은 하노버 왕국으로 승격되었으며 영국의 국왕이 하노버 국왕을 겸임하였다. 그러나 윌리엄 4세가 죽고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의 왕이 되자, 하노버와 영국의 동군연합은 깨지게 된다.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였으므로, 그녀의 사후 영국에선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고, 하노버 왕국의 하노버 왕가는 보오전쟁에서 오스트리아의 편을 들었다가 패배하여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된다.

1913년 하노버 왕가 출신이 독일 제국의 브라운슈바이크의 공작이 되며, 다시 하노버 왕국을 재건하려고 하지만, 독일 제국이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지위를 잃어버리게 된다.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913–1918)


1884년, 벨프 가문의 장자 분파가 단절되었다. 반 살리카법에 따라 하노버 가문이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을 계승해야 했지만, 하노버의 게오르크 5세나 그의 아들인 컴벌랜드 공작이 독일 제국의 구성국을 승계하는 것에 대해 강한 프로이센의 압력이 있었다. 최소한 독일 헌법에 대한 선서와 같은 강력한 조건을 포함하지 않고는 말이다. 1879년 법에 따라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은 공작 사망 시 인계하고 필요하다면 섭정을 임명하기 위해 임시 섭정 위원회를 설립했다.

컴벌랜드 공작은 공작의 죽음과 함께 스스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자처했고, 긴 협상이 이어졌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프로이센의 알브레히트 왕자가 섭정으로 임명되었다. 1906년 그가 사망한 후, 메클렌부르크의 요한 알베르트 공작이 그의 뒤를 이었다. 컴벌랜드 공작의 장남은 1912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차남인 어니스트 오거스터스에게 브라운슈바이크를 포기했고, 그는 같은 해 카이저의 딸인 빅토리아 루이세와 결혼하고 독일 제국에 충성을 맹세했으며 1913년 11월 공국의 왕위에 오르는 것을 허락받았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소장이었지만, 1918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의 아버지 또한 "영국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1919년 영국의 작위를 박탈당했다.

브라운슈바이크 궁전을 떠난 후, 공작과 그의 가족은 오스트리아 군덴에 있는 망명지인 컴벌랜드 성으로 돌아갔지만, 1924년 브라운슈바이크 자유국과의 합의를 통해 블랑켄부르크 성과 기타 일부 영지를 받았고, 1930년 그곳으로 이사했다. 1945년 말, 블랑켄부르크가 동독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영국과 미국 군대에 의해 소련군에게 넘겨지기 며칠 전, 가족들은 모든 가구를 싣고 조지 6세 국왕의 명령에 따라 영국군 트럭으로 이동하여 마리엔부르크 성 (하노버)으로 급히 이주했다.[5] 어니스트 오거스터스 공작은 1953년 마리엔부르크 성에서 사망했다. 하노버에 있는 그의 헤렌하우젠 궁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의 장남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자는 1961년 헤렌하우젠 정원에 있는 남은 재산을 매각했지만, 1720년 조지 1세가 딸 안나 루이세를 위해 지은 작은 궁전인 인근의 왕자 저택을 소유했다. 현재는 그의 손자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개인 저택이다.

3. 주요 인물


  • 루카의 리치볼드 (700–761)
  • 게오르크[2]: 하노버 가문의 첫 번째 구성원. 1635년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 분할 상속으로 칼렌베르크 공국을 상속받아 거처를 하노버로 옮겼다.
  • 크리스티안 루이: 게오르크 공작의 장남, 칼렌베르크 공 (1641–1648) 및 뤼네부르크 공 (1648–1665). 뤼네부르크 공이 되면서 칼렌베르크를 포기했다.
  • 게오르크 빌헬름: 게오르크 공작의 차남, 칼렌베르크 공 (1648–1665) 및 뤼네부르크 공 (1665–1705). 형 크리스티안 루이의 죽음으로 뤼네부르크 공이 되면서 칼렌베르크를 포기했다.
  • 요한 프리드리히: 게오르크 공작의 3남, 칼렌베르크 공 (1665–1679).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게오르크 공작의 4남, 칼렌베르크 공 (1679–1698). 1692년 신성 로마 제국선제후로 승격되었다.
  • 팔라티네이트의 조피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아내. 1701년 왕위 계승법에 의해 잉글랜드 왕위 계승자로 선언되었다.
  • 게오르크 루이: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공작과 조피아의 아들. 1698년 칼렌베르크 선제후 겸 공, 1705년 뤼네부르크 공이 되었다. 1714년 영국 왕위에 대한 권리를 상속받았다.

3. 1. 영국 국왕 (하노버 왕조)

조지 1세가 1714년 하노버 왕가의 첫 번째 영국 군주가 되었다.[3] 이 왕조는 6명의 영국 군주를 배출했다.

대영 제국, 아일랜드 및 하노버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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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브리튼 왕국아일랜드 왕국의 군주 (1801년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으로 변경):

# 조지 1세 (1714–1727)

# 조지 2세 (1727–1760)

# 조지 3세 (1760–1820)

# 조지 4세 (1820–1830)

# 윌리엄 4세 (1830–1837)

# 빅토리아 (1837–1901)

조지 1세, 조지 2세, 조지 3세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선제후이자 공작으로서, 비공식적으로 하노버의 선제후(''개인 연합'')로도 활동했다. 1814년 나폴레옹 전쟁 이후 하노버가 왕국이 되면서, 영국 군주는 하노버 왕이 되었다.

1837년 윌리엄 4세가 사망하면서 영국과 하노버의 왕위의 개인 연합은 종료되었다. 하노버 왕위 계승은 반 살리카 법에 의해 규제되었고, 빅토리아 여왕이 아닌 그녀의 삼촌인 컴벌랜드 공작에게 넘어갔다.[3]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했을 때, 그녀의 아들이자 상속자인 에드워드 7세는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첫 번째 영국 군주가 되었다.[3]

3. 2. 하노버 국왕

나폴레옹 전쟁 이후 1814년 하노버가 왕국이 되면서, 영국 군주는 하노버 왕이 되었다.[3]

재위 기간이름
1814년 - 1820년조지 3세
1820년 - 1830년조지 4세
1830년 - 1837년윌리엄 4세



1837년 윌리엄 4세가 사망하면서 영국과 하노버의 왕위의 개인 연합은 종료되었다. 하노버 왕위 계승은 반 살리카 법에 의해 규제되었고, 빅토리아 여왕이 아닌 그녀의 삼촌인 컴벌랜드 공작에게 넘어갔다.[3]

3. 3. 기타 주요 인물


  • 빅토리아 여왕 (1837–1901): 하노버 왕국은 살리카 법을 따르므로 하노버의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다. 인도의 여제가 되었다.[2]
  • 게오르크[2]: 하노버 가문의 첫 번째 구성원. 1635년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 분할 상속으로 칼렌베르크 공국을 상속받아 거처를 하노버로 옮겼다.
  • 크리스티안 루이: 게오르크 공작의 장남, 칼렌베르크 공 (1641–1648) 및 뤼네부르크 공 (1648–1665). 뤼네부르크 공이 되면서 칼렌베르크를 포기했다.
  • 게오르크 빌헬름: 게오르크 공작의 차남, 칼렌베르크 공 (1648–1665) 및 뤼네부르크 공 (1665–1705). 형 크리스티안 루이의 죽음으로 뤼네부르크 공이 되면서 칼렌베르크를 포기했다.
  • 요한 프리드리히: 게오르크 공작의 3남, 칼렌베르크 공 (1665–1679).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게오르크 공작의 4남, 칼렌베르크 공 (1679–1698). 1692년 신성 로마 제국선제후로 승격되었다.
  • 팔라티네이트의 조피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아내. 1701년 왕위 계승법에 의해 잉글랜드 왕위 계승자로 선언되었다.
  • 게오르크 루이: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공작과 조피아의 아들. 1698년 칼렌베르크 선제후 겸 공, 1705년 뤼네부르크 공이 되었다. 1714년 영국 왕위에 대한 권리를 상속받았다.

4. 하노버 왕가의 유산

영국 제국 전역의 많은 도시와 주들은 통치 가문인 하노버 가문과 그 구성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미국의 조지아 주, 하노버(매사추세츠), 하노버(뉴햄프셔), 하노버(펜실베이니아), 하노버 타운십(일리노이 주)와 같은 도시, 하노버 카운티(버지니아), 캐롤라인 카운티(버지니아), 브런즈윅 카운티(버지니아), 뉴 하노버 카운티(노스캐롤라이나), 브런즈윅 카운티(노스캐롤라이나), 킹 조지 카운티(버지니아), 뉴저지의 뉴브런즈윅 등이 그 예이다. 버몬트, 아칸소, 사우스다코타에는 조지아라는 이름이 붙은 지역이 있으며, 퀸 샬럿의 이름을 딴 미국과 캐나다의 7개 도시도 포함된다.

또한 캐나다의 뉴브런즈윅 주, 하노버(온타리오), 귈프, 온타리오, 빅토리아(브리티시컬럼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하노버(노던케이프), 호주의 빅토리아 주와 애들레이드 시도 하노버 가문의 영향을 받았다. 영국에는 6개, 미국에는 13개의 브런즈윅이라는 이름의 도시가 있으며, 호주와 뉴질랜드에는 각각 하나씩, 전 세계적으로 50개 이상의 빅토리아라는 이름의 도시가 있다.

하노버 스퀘어(웨스트민스터), 하노버 스퀘어(맨해튼), 하노버 스퀘어(시러큐스), 퀸 스트리트(브리즈번)과 같이 가문의 구성원의 이름을 딴 교차로가 있는 수많은 거리와 광장도 존재한다.

조지아 건축은 1714년에서 1830년 사이에 대부분의 영어권 국가에서 유행했던 건축 양식에 독특함을 부여하고 있다.

5. 같이 보기


  • 영국사에 대한 변화하는 시각: 1939년 이후 역사 저술에 관한 에세이
  • 역사 저널
  • 영국사에 대한 최근 시각: 1966년 이후 역사 저술에 관한 에세이

참조

[1] 웹사이트 Royal Arms of Britain http://www.heraldica[...] 2016-05-10
[2] 서적 Queenship in Britain 1660–1837: Royal Patronage, Court Culture and Dynastic Politics Manchester University Press 2002
[3] 서적 War of the Windsors: A Century of Unconstitutional Monarchy Mainstream Publishing
[4] 서적 Sophia of Hanover: From Winter Princess to Heiress of Great Britain, 1630–1714 Peter Owen Publishers
[5] 서적 The Kaiser's Daughter: Memoirs of H. R. H. Viktoria Luise, Duchess of Brunswick and Lüneburg, Princess of Prussia https://books.google[...] Prenticse-Hall
[6] 웹사이트 In der Prinzenrolle http://www.haz.de/Ha[...] 2018-01-22
[7] 웹사이트 Ernst August (geb.1954) Prinz von Hannover http://www.welfen.de[...] 2021-01-21
[8] 간행물 Attorney-General v HRH Prince Ernest Augustus of Hanover 1957
[9] 문서 ただし、ヴィクトリア女王の没後間もなく、孫娘[[ヴィクトリア・ユージェニー・オブ・バッテンバーグ|ヴィクトリア・ユージェニー]]がスペイン王家に嫁いでいる。また、アルバート王配の家系[[ザクセン=コーブルク=ゴータ家]]の一族から[[ベルギー]]の王家やポルトガルの王配が出ていたり、第二次世界大戦後にイギリス・スペイン両王家がそれぞれ[[ギリシャ王国|ギリシャ]]王家と縁組するなど、間接的な関係は成立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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