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의 교육
1. 개요
한국 근대 교육은 개항 이후 서구 문물을 수용하고 제국주의 열강에 맞서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개화 사상가들의 주도와 갑오개혁을 통해 근대 학교 설립이 가속화되었으며, 기독교 선교 단체와 국가 주도로 다양한 학교가 설립되었다. 1886년 동문학교와 육영공원 설립을 시작으로 관립 학교가 세워졌고, 1895년 고종의 교육 조서 발표 이후 한성사범학교 등 여러 관립 학교가 설립되었다. 갑오개혁 이후 민간 사립학교 설립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민족 의식을 고취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 교육이 억압받았지만,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국권 회복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었다.
-
한국의 교육 -
대한민국의 교육과정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은 정부 수립 후 교육 목표, 내용, 방법 등을 규정하는 국가 수준의 문서로, 일제강점기 조선교육령 시행 후 광복을 거쳐 1954년 제1차 교육과정 제정 이후 시대적 요구와 교육 철학 변화를 반영하여 현재까지 개정되어 왔다. -
한국의 교육 -
고입선발고사
대한민국에서 중학교 졸업생의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시행되었던 고입선발고사는 전국적으로 시행되다가 1998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되어 2019년 제주를 끝으로 모든 지역에서 폐지되었으며, 9과목으로 구성되어 중학교 전 과정을 범위로 객관식으로 출제되었고, 폐지 후에는 내신 성적만으로 입학이 결정된다. -
교육사 -
마음
마음은 의식, 사고, 지각, 감정, 동기, 행동, 기억, 학습 등을 포괄하는 심리적 현상과 능력의 총체이며,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인간 삶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
교육사 -
중세 대학
중세 대학은 대성당학교와 수도원학교에서 발전하여 전문 성직자 수요 증가에 따라 교수와 학생들의 학문적 길드로 발전, 7자유과 중심의 교과 과정과 학위 제도를 통해 학문적 위계를 확립하고 법학, 신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발전시키며 과학 혁명에도 기여한 교육기관이다.
2. 근대 교육의 발흥
개항 이후 조선 정부는 전통적인 유교 교육을 청산하고 서구의 신문화를 섭취하기 위한 신식 교육을 실시하였다.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맞서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민간 유지들에 의해 민중 교육 운동이 추진되었고, 조선에 진출한 기독교계 선교 단체들에 의해 선교 계통의 학교도 설립되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라는 구호처럼, 이 시기 교육운동은 국권 수호를 위한 결의였으며, 생존을 위한 실력 배양을 목적으로 하였다. 민중 교육 운동은 보통 교육, 중등 교육, 전문 교육, 여성 교육, 기술 교육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문호 개방 직후 박영효, 김옥균 등 개화사상가들은 개화 운동의 일환으로 교육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유길준, 윤치호 등과 독립협회 회원들도 부국강병을 위한 근대 교육 실시를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개화사상가들의 노력과 시대적 요청에 의해 조선에서도 근대적 교육기관이 설립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3. 근대 학교 성립기의 교육
갑오개혁을 통해 신학제가 확립되면서 근대 학교 설립이 가속화되었고, 한국 교육의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졌다.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배재학당 등의 선교 학교들은 근대 교육의 요소를 담고 있었으며, 이는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설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후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근대 교육은 주체성을 상실하고 반식민지 교육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민족 감정과 국권 회복을 이념으로 하는 민족 교육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많은 사립 교육 기관이 설립되었다.
1886년 동문학교와 육영공원 설립을 시작으로 국가 주도의 근대 학교 설립 노력이 나타났다. 1894년 갑오개혁의 개혁 정부는 교육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1895년 1월, 학무아문은 국정 쇄신을 위한 영재 교육의 시급성을 강조하고, 소학교와 사범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할 뜻을 밝혔다. 1895년 2월에는 근대 교육에 대한 고종의 교육 조서가 발표되었다.
고종의 교육입국 정신에 따라, 1895년 한성사범학교를 시작으로 외국어학교, 법관양성소, 경성의학교, 관립중학교, 농상공학교, 한성고등학교 등 관립 학교가 설립되었다.
갑오개혁 이후, 민간인 주도의 사립학교 설립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선각자들은 학교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신교육을 통해 민중을 계몽하며, 교육입국(敎育立國)을 통한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였다. 1905년을 전후하여 민족의 각성이 교육구국(敎育救國)의 일념으로 승화되어, 민족 교육의 생성과 전개가 국민 운동의 염원으로 전개되었다. 1895년부터 1909년까지 흥화학교, 양정의숙, 보성학교, 중동학교, 기호학교, 대성학교, 오산학교 등 중요 민간 사립학교들이 설립되었다.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설립된 근대사학기관은 5,000여 개에 달하였으나, 1908년 사립학교령에 의해 많은 사학이 폐쇄되었다.
근대 사학의 설립은 민족의 각성과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이라는 민족적 요구에 의해 이루어졌다. 1905년 이후 민간인에 의한 사학 설립 정신은 모두 개화 운동과 더불어 국권 회복을 위한 민족 의식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국권을 되찾는 방법이 근대 교육을 빨리 시행하여 청년을 개화시킴으로써 가능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용익이 세운 보성학교, 남궁억이 세운 '현산학교', 안창호가 세운 대성학교,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 등이 유명했다.
안창호는 대성학교의 건학 정신을 '점진적으로 대성하는 인물'에 두고, 교훈을 '무실역행', '주인 정신'에 두었다. 그에 따르면 '무실역행'이란 공리공론을 하지 않고, 우선 나 한 사람부터 성실하고 실력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한다는 것으로, 이렇게 함으로써만 민족 중흥에 새 힘이 될 수 있다고 보았고, '주인 정신'이란 책임·독립 정신을 뜻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당시 민간인 사립학교의 건학 정신은 모두 민족 의식을 고취하고 새 지식 계발로 국권을 찾는 데 두었다.
3.1. 선교사들에 의한 학교 설립
1885년 배재학당 설립 이후 1910년까지 선교계 학교는 기독교 사상 포교를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나, 한국 사회의 근대화를 위한 이념을 제시하였다. 선교계 학교는 기독교적 민주주의 교육과 기독교 국가 인재 양성, 자주 정신에 입각한 한국인 양성, 평등사상에 기반한 교육, 근대식 교육과정 구성, 근대 학제 설립 등을 특징으로 하였다.
3.2. 국가에 의한 근대 학교 설립
1886년 동문학교와 육영공원 설립을 시작으로 국가 주도의 근대 학교 설립 노력이 나타났다. 이후 1894년 갑오개혁의 개혁 정부는 교육 개혁을 추진하였다. 1895년 1월, 학무아문은 국정 쇄신을 위한 영재 교육의 시급성을 강조하고, 소학교와 사범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할 뜻을 밝혔다. 1895년 2월에는 근대 교육에 대한 고종의 교육 조서가 발표되었다.
1894년 6월, 관제 개혁으로 6조 중 예조는 학무아문으로 개편되었다. 학무아문은 교육 및 학무를 관장하는 문교 행정 기관이었다. 1895년, 고종은 '홍범 14조'를 발표하여 서양 학술 및 기술 도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고종의 교육입국 정신에 따라, 1895년 한성사범학교를 시작으로 외국어학교, 법관양성소, 경성의학교, 관립중학교, 농상공학교, 한성고등학교 등 관립 학교가 설립되었다. 갑오개혁은 일본의 영향으로 이루어졌으며, 관학 설립은 일본을 모방한 것이었다.
당시 국가에 의해 설립된 각급 학교의 공통된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소학교·중학교·전문학교·대학으로 연결되는 교육 체제 확립
* 근대 선진 국가의 교육 과정 수용
* 국민 교육으로서 초등 교육 의무화의 기초 확립
* 기회 균등의 원칙 설정으로 인한 민주화에의 공헌
* 교과목에서 외국어 장려
3.3. 민간 주도의 사립 학교 설립
갑오개혁 이후 관·공립학교보다 더 활발하게 전개된 것은 민간인 사립학교의 설립이었다. 선각자들은 학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정부에 학교설립을 건의하는 한편, 신교육을 외면하는 당시 민중을 계몽하여 교육입국(敎育立國)의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였다. 1905년을 전후하여 민족의 각성이 교육구국(敎育救國)의 일념으로 승화되어, 민족교육의 생성과 전개가 국민운동의 염원으로 전개되었다.
1895년부터 1909년까지 설립된 중요 민간인 사립학교는 다음과 같다.
* 흥화학교
* 양정의숙
* 보성학교
* 중동학교
* 기호학교
* 대성학교
* 오산학교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설립된 근대사학기관은 5,000여 교에 달하였으며, 1908년 사립학교령에 의해 많은 사학이 폐쇄되었다. 근대 사립학교의 공통된 특징은 ① 국민회복을 위한 민족운동가의 양성, ② 배일교과(排日敎科)에 의한 민족의식의 고양(高揚), ③ 과외활동을 통한 민족의식의 고취, ④ 교육실천을 통한 항일운동 등을 들 수 있다.
3.3.1. 사립 여자 학교 설립
개화와 더불어 시작된 일대 변혁 중 여성의 사회 진출과 여성 교육 기관의 성립은 현저한 바 있었다. 1906년 7월 진학신, 김운곡 등이 여자 교육과 사회 문명을 개진할 목적으로 여자교육회를 조직하였다. 이 학회의 부속 학교로서 1906년 양규의숙, 1907년 4월 신학원을 설립하였다. 그 외에 순전히 민간인 자본으로 설립된 여자 학교로는 1906년 4월에 진명여학교, 동년 5월에 명신여학교(그 뒤 숙명여학교), 1908년 3월에 동덕여학교가 세워졌다.
대체로 1910년까지 여자 사학 기관이 설립된 유형을 보면,
# 기독교 여자 선교사에 의한 학교,
# 진명·숙명 같은 귀족 계급의 출자에 의한 학교,
# 동덕 같은 순 민간인 출자에 의한 학교의 출현 등을 들 수 있다.
3.3.2. 사학의 정신과 구국 운동
근대 사학의 설립은 민족의 각성과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이라는 민족적 요구에 의해 이루어졌다. 1905년 이후 민간인에 의한 사학 설립 정신은 모두 개화 운동과 더불어 국권 회복을 위한 민족 의식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국권을 되찾는 방법이 근대 교육을 빨리 시행하여 청년을 개화시킴으로써 가능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용익이 세운 '보성학교', 남궁억이 세운 '현산학교', 안창호가 세운 '대성학교',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 등이 유명했다. 안창호는 대성학교의 건학 정신을 '점진적으로 대성하는 인물'에 두고, 교훈을 '무실역행', '주인 정신'에 두었다. 그에 따르면 '무실역행'이란 공리공론을 하지 않고, 우선 나 한 사람부터 성실하고 실력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한다는 것으로, 이렇게 함으로써만 민족 중흥에 새 힘이 될 수 있다고 보았고, '주인 정신'이란 책임·독립 정신을 뜻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당시 민간인 사립학교의 건학 정신은 모두 민족 의식을 고취하고 새 지식 계발로 국권을 찾는 데 두었다.
근대 사립학교 교육 활동에 나타난 공통된 정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국권 회복을 위한 민족 운동 지도자 양성
* 배일(排日)·애국 교과에 의한 민족 의식 고취
* 과외 활동을 통한 애국 사상 함양
한국 근대 교육은 선교사의 교육 활동에서 근원적 이념이 발생하였고, 1894년의 관제 개혁에 따라 근대 교육 이념이 국가 정책으로 수용되어 한국 사회에 새 교육의 전통이 수립되었으며, 이후 일제 침략에 의해 한국 교육이 식민지 교육으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이때도 민간인 사립학교가 중심이 되어 민족 각성을 통한 국권 회복의 구국 운동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4. 교육 기관
4.1. 육영공원
육영공원은 1886년(고종 23년)에 국가에서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현대식 교육기관으로는 한국 최초의 학교로 미국인을 교수로 초빙, 준재(俊才)를 선발하여 영어를 중심으로 수학·외국어·지리학·정치·경제 등을 가르쳤다. 교사로는 미국에서 초빙한 길모어(G. W. Gilmore:吉模)·벙커(D. A. Banker:房巨)·헐버트(Rev. H. G. Hulbert:轄甫) 세 사람이었다. 입학자격은 일반 고관 자제들만으로 한정하였다.
4.2. 기독교계 사립 학교
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고, 그 이듬해 여름 민영익 일행이 친선사절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뉴욕 감리회 선교 본부는 한국 선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일본에 머물던 감리회 선교사 매클레이(R. S. Macley)는 1884년 6월 한국에 도착하여 김옥균의 안내로 고종을 알현하고, 교육과 의료사업의 윤허(允許)를 받았다.
초기 선교사들은 의료와 교육을 선교 수단으로 삼아 한국인의 불행을 구제하고 계몽하려 하였다. 1885년 언더우드(H. G. Underwood)·아펜젤러(H. G. Appenzeller.)·스크랜턴(Mrs,M. F. Scranton) 등의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광혜원, 배재학당, 경신학교, 이화학당, 정신여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갑오개혁(1894년)을 전후하여 기독교계 학교가 많이 설립되었고, 처음 서울을 중심으로 세워지던 것이 차츰 지방으로 퍼져나가 거의 전국화되었으며, 남자학교보다 여자학교가 많았다. 1910년 2월까지 설립된 기독교계 학교는 총 796개교였으며, 종파별로는 장로파가 501개교, 감리파가 158개교, 성공회가 4개교, 안식교가 2개교, 천주교가 46개교 등이었다. 이처럼 기독교계 학교들은 1894년 정부의 교육개혁 이전까지 한국 근대교육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