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버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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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헨리 버제빈은 19세기 미국인 용병으로, 크림 전쟁에 참전하여 훈장을 받았으며, 청나라에서 상군 지휘관으로 활동했다. 그는 태평천국 운동 시기에 청나라 군대와 갈등을 겪고, 태평천국군에 가담했다가 다시 청나라에 투항하는 등 변절을 거듭했다. 결국 체포되어 호송 중 사망했는데, 일각에서는 그가 살해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헨리 버제빈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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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버제빈, 1862년경
본명헨리 앤드레스 버제빈
출생1836년 10월 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루턴
사망1865년, 청나라 산둥 성 타이안 근처
사망 원인익사 (정황 의심)
국적미국
직업군인, 용병
군사 경력
복무미국 육군 (초기)
상군 (常軍)
최종 계급준장 (청나라)
주요 참전태평천국의 난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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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기 생애

헨리 버제빈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군인이었다. 그는 청나라에서 용병으로 상승군에 가입하여 태평천국과의 전투에 참전했다.

2.1. 출생과 가족 배경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휘하에서 복무한 프랑스 장교였다. 그의 아버지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에서 프랑스어 강사로 일했으나, 자금 유용 혐의로 발각된 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싸움을 벌이다 사망했다. 이후 버제빈은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쉬포드에서 조부모 및 누이와 함께 살았다.

2.2. 어린 시절

케일럽 카(Caleb Carr)의 프레데릭 타운젠드 워드(Frederick Townsend Ward) 전기에 따르면, 버제빈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휘하에서 복무한 프랑스 장교의 아들이었으며,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에서 프랑스어 강사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대학교 총장에게 자금 유용 혐의로 발각된 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싸움을 벌이다 사망했다. 이후 버제빈은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쉬포드에서 조부모와 누이와 함께 살았다.

3. 군 경력

헨리 버제빈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프랑스 군인이었다. 청나라에 와서 용병 조직인 상승군에 가입하여 태평천국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프레드릭 타운센드 워드자계 전투에서 전사하자, 버제빈이 상승군의 2대 대장이 되었다.

버제빈과 청나라 관리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그는 도원(道員) 양방을 구타하고 군자금 40을 빼앗았다가 이홍장에 의해 대장에서 해임되었다. 1863년 7월, 이에 격분한 그는 일부 부하들과 함께 태평천국군에 투신했다. 당시 소주를 수비하고 있던 모왕 탄사오광으로부터 병사 훈련을 맡게 되었으나, 독립적인 지휘권을 원했던 버제빈은 소수의 병력만 주어진 것에 실망했다. 전황이 악화되자, 결국 같은 해 10월에 상승군의 찰스 고든에게 다시 투항했다.

이후 상하이로 돌아왔으나, 미국 영사에 의해 일본으로 호송되어 재입국이 금지되었다. 1864년 2월에 상하이에 다시 돌아왔지만, 미국 영사에 의해 다시 일본으로 보내졌다. 1865년, 장주에 있던 시왕 이세현에게 합류하려 했지만, 그 도중 샤먼에서 체포되었다. 청나라 관리는 호송 도중에 그를 익사시켰는데, 미국 측의 항의를 우려하여 불의의 사고였다고 발표했다.

3.1. 크림 전쟁 참전

워싱턴 D.C.에서 하원의원 및 상원의원 페이지로 활동하다가 인도, 하와이, 호주를 여행한 후 워싱턴으로 돌아와 크림 전쟁 기간 동안 프랑스군에 입대하여 용맹함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았다.

3.2. 태평천국 운동 시기

헨리 버제빈은 상승군의 2대 대장이 된 후, 청나라 관리와의 불화, 태평천국군 가담, 재투항 등 복잡한 행적을 보였다.

1863년 7월, 버제빈은 청나라 관리와의 갈등으로 상승군 대장직에서 해임되자, 일부 부하들과 함께 태평천국군에 투신하였다. 당시 소주를 수비하고 있던 모왕 담송광으로부터 병사 훈련을 맡게 되었으나, 독립적인 지휘권을 얻지 못하고 소수의 병력만 주어져 이에 실망하였다. 전황이 악화되자 같은 해 10월, 버제빈은 다시 상승군의 찰스 고든에게 투항하였다.

3.2.1. 상승군 지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프랑스 군인이었다. 청나라에 와서 용병인 상승군에 가입하여 태평천국과 전투에 참전했다. 프레데릭 타운센드 워드가 자계 전투에서 전사하자, 상승군의 2대 대장이 되었다. 워드는 충성스러운 필리핀 부하 마카나야를 후임 사령관으로 원했지만, 청나라 황실은 버제빈을 선택했다.

그와 청나라 관리와의 관계는 좋지 않아, 양방을 구타하고 군자금 40000CNY을 빼앗았다가 이홍장에 의해 대장에서 해임되었다.

3.2.2. 청나라와의 갈등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프랑스 군인이었다. 에 와서 용병인 상승군에 가입하여 태평천국과의 전투에 참전했다. 초대 대장이었던 프레드릭 타운센드 워드자계 전투에서 전사하자, 상승군의 2대 대장이 되었다.

그와 청나라 관리와의 관계는 좋지 않아 도원(道員)양방을 구타하고 군자금 40을 빼앗았다가 장쑤 순무였던 이홍장에 의해 대장에서 해임되었다. 1863년 7월 격노한 그는 일부 부하들과 함께 태평천국군에 투신했다. 그리고 당시 소주를 수비하고 있던 모왕(慕王) 탄사오광으로부터 병사 교련을 맡게 되었다. 버제빈은 본래 독립된 군을 이끌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병력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실망하고 있던 터에 전황이 악화되었고, 10월에 상승군 찰스 고든에게로 다시 투항했다.

상하이에 돌아온 뒤 미국 영사에 의해 일본에 호송되어 재입국이 금지되었다. 1864년 2월에 상하이에 돌아왔지만, 미국 영사에 의해 다시 일본에 돌려 보내졌다. 1865년, 장주에 자리를 잡고 있던 시왕(侍王) 리세셴에게 합류하려고 했지만, 그 중간에 샤먼에서 체포되었다. 청나라 관리는 호송 도중에 그를 익사시켰지만, 미국 측의 항의가 두려워 불의의 사고였다고 발표했다.

3.2.3. 태평천국군 가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출신이다. 아버지는 프랑스의 군인이었다. 청나라에 와서 용병인 상승군에 가입하여 태평천국과 전투에 참전했다. 초대 대장이었던 프레드릭 타운센드 워드자계 전투에서 전사하자, 상승군의 2대 대장이 되었다.

그와 청나라 관리와의 관계는 좋지 않아 도원(道員)양방을 구타하고 군자금 40을 빼앗았다가 강소순무였던 이홍장에 의해 대장에서 해임되었다. 1863년 7월 격노한 그는 일부 부하들과 함께 태평천국군에 투신했다. 그리고 당시 소주를 수비하고 있던 모왕 담소광으로부터 병사 훈련을 맡게 되었다. 버제빈은 본래 독립된 군을 이끌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병력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실망하고 있던 터에 전황은 악화되었고, 10월에 상승군 찰스 고든에게로 다시 투항했다.

3.2.4. 재투항과 최후

1863년 7월, 격노한 헨리 버제빈은 일부 부하들과 함께 태평천국군에 투신했다. 당시 소주를 수비하고 있던 모왕 담송광으로부터 병사 교련을 맡게 되었다. 버제빈은 독립된 군대를 이끌 것을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병력밖에 주어지지 않아 실망했다. 전황이 악화되자 10월에 상승군 찰스 조지 고든에게 다시 투항했다.

상하이로 돌아온 뒤 미국 영사에 의해 일본으로 호송되어 재입국이 금지되었다. 1864년 2월에 상하이에 돌아왔지만, 다시 일본으로 보내졌다. 1865년, 장주에 있던 시왕 이세현에게 합류하려 했지만, 샤먼에서 체포되었다. 청나라 관리는 호송 도중 그를 익사시켰지만, 미국 측의 항의를 우려하여 불의의 사고였다고 발표했다.

4. 의문점과 논란

크림 전쟁에 참전하여 프랑스군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버제빈은 태평천국 운동 초기에 청나라 군대에 합류하여 상승군의 부사령관으로 복무했다. 1862년 9월 츠시 전투에서 프레데릭 타운센드 워드가 사망한 후 상승군을 지휘하게 되었으나, 이는 워드가 원했던 바와는 달랐다. 워드는 자신의 충실한 필리핀 부하 마카나야를 후임으로 원했지만, 청나라 황실은 버제빈을 선택했다.

1865년 버제빈은 중국 샤먼에서 상하이로 가는 길에 청나라 경찰 10명과 함께 익사했는데, 일부 역사가들은 리훙장의 명령으로 살해되었다고 믿고 있다.

4.1. 잦은 변절

청나라 관리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버제빈은 도원(道員) 양방을 구타하고 군자금 40을 빼앗은 혐의로 장쑤 순무 이홍장에 의해 상승군 대장직에서 해임되었다. 1863년 7월, 이에 분노한 그는 일부 부하들과 함께 태평천국군에 투신했다. 당시 소주를 수비하고 있던 모왕(慕王) 담소광으로부터 병사 교련을 맡게 되었으나, 독립된 군대를 이끌 것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소수의 병력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실망하던 차에 전황이 악화되자, 1863년 10월 찰스 고든의 상승군에 다시 투항했다.

4.2. 죽음에 대한 의혹

1865년, 장저우에 자리를 잡고 있던 시왕 리세셴에게 합류하려고 했지만, 그 중간에 샤먼에서 체포되었다. 청나라 관리는 호송 도중에 그를 익사시켰지만, 미국 측의 항의가 두려워 불의의 사고였다고 발표했다. 일부 역사가들은 버제빈이 리훙장의 명령으로 살해되었다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