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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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성유는 1928년 경성부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예편한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1957년 《한국일보》에 장편소설 《비극은 없다》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신사조》 주간,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호방한 문체로 역사소설을 주로 썼으며, 대표작으로는 김두한을 중심으로 한 《인생극장》이 있으며, 이후 《장군의 아들》로 제목이 바뀌어 발간되었다. 또한, 식도락가로 《한국 맛있는 집》 시리즈를 발간하기도 했다. 2002년 뇌출혈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대한민국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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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유 - [인물]에 관한 문서 | |
---|---|
홍성유 정보 | |
이름 | 홍성유 |
원어 이름 | 洪性裕 |
출생일 | 1928년 10월 4일 |
출생지 | 경성부 |
사망지 | 서울특별시 |
사망일 | 2002년 11월 24일 (향년 74세) |
활동 기간 | 1951년 ~ 2002년 |
국적 | 대한민국 |
언어 | 한국어 |
필명 | 호(號)는 백파(伯坡) |
학력 | 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
직업 | 소설가 식도락가 평론가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중위 |
종교 | 천주교(세례명: 토마스 모어) |
배우자 | 임설자 |
자녀 | 홍다영(딸) |
장르 | 소설 미식평론 스포츠 평론 |
2. 학력
3. 생애
홍성유는 호방하고 활달한 남성적 문체와 시대 의식이 짙게 묻어나는 역사소설을 많이 썼다. 김종철 시인은 그가 고스톱의 복잡미묘한 규칙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일본 학생들을 두드려 패어 감옥에 들어간 그는 감옥에서 배운 기술로 도박의 달인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딸의 순한 눈빛 때문에 도박판에서 손을 씻었다고 한다. 야구를 좋아해 한때 서울 잠실구장에는 그의 지정석까지 마련돼 있었다.[1]
식도락가로도 유명해 1987년 전국 각지의 맛있는 음식점을 소개한 《한국 맛있는 집 666점》에 이어 1999년 《한국 맛있는 집 1234점》을 발간하였다. 2002년 11월 24일 0시 11분, 뇌출혈 후유증으로 사망했다.[1]
3. 1. 초기 생애 및 군 복무
1928년 10월 4일 경성부에서 태어나 경동고등학교를 거쳐 1951년 서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1951년 9월 육군 갑종사관 제10기로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육군본부 헌병사령부 기관지 《사정보》(司正報) 기자·편집장을 지냈다.[1] 1952년 육군보병학교를 졸업하고, 1953년 국방부 군사잡지 《명랑》(明朗) 편집장을 거쳐 1955년 2월에 육군 중위로 예편하였다.[1]3. 2. 작가 활동 및 사회 활동
1957년 《한국일보》에 장편소설 《비극은 없다》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1] 이후 《신사조》 주간 및 집필위원 겸 편찬위원,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이사, 한국저작권협회 부회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소설가협회 회장,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위원,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분과 회장,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호방하면서도 활달한 남성적 문체와 시대 의식이 짙게 묻어나는 역사소설을 많이 쓴 작가로, 김두한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그린 《인생극장》이 일간지에 연재됐다가, 뒤에 《장군의 아들》(전8권)로 제목이 바뀌어 발간되었다. 그 밖의 저서로는 《수평선에 별 지다》, 《비극은 없다》, 《정복자》, 《홍건적》 등이 있다.[1]
3. 3. 작품 세계 및 특징
홍성유는 호방하고 활달한 남성적 문체와 시대 의식이 짙게 묻어나는 역사소설을 많이 쓴 작가이다. 김종철 시인은 그가 도박을 좋아하여 고스톱의 복잡미묘한 규칙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라고 회고했다. 홍성유는 학창 시절 일본 학생들을 두드려 패 감옥에 들어갔고, 감옥에서 배운 기술로 도박의 달인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딸의 순한 눈빛 때문에 도박판에서 손을 씻었다고 한다. 또한, 야구를 좋아해 한때 서울 잠실구장에는 그의 지정석까지 마련돼 있었다.[1]김두한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그린 《인생극장》은 일간지에 연재됐다가, 뒤에 《장군의 아들》(전8권)로 제목이 바뀌어 발간되었다.
3. 4. 김두한과 《장군의 아들》
대표작으로는 김두한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그린 《인생극장》이 일간지에 연재됐다가, 뒤에 《장군의 아들》(전8권)로 제목이 바뀌어 발간되었다.[1]3. 5. 미식가로서의 활동
홍성유는 식도락가로도 유명했는데, 1987년 전국 각지의 맛있는 음식점을 소개한 《한국 맛있는 집 666점》을 발간하였고, 1999년에는 《한국 맛있는 집 1234점》을 발간하였다.[1]3. 6. 사망
뇌출혈 후유증으로 2002년 11월 24일 0시 11분에 사망했다.[1]4. 작품 목록
제목 | 출판 연도 | 비고 |
---|---|---|
비극은 없다 | 1957년 | 한국일보 장편소설 당선작 |
수평선에 별 지다 | ||
정복자 | ||
홍건적 | ||
인생극장 | 김두한 중심의 한국 현대사 이면을 다룬 작품, 후에 《장군의 아들》(전8권)로 제목 변경 | |
장군의 아들 | 전8권, 《인생극장》에서 제목 변경 | |
한국 맛있는 집 666점 | 1987년 | 전국 음식점 소개 |
한국 맛있는 집 1234점 | 1999년 | 전국 음식점 소개 |
5. 수상 경력
연도 | 상 이름 |
---|---|
1980년 | 대한민국예술상 |
1984년 |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
1990년 | 예술문화대상 |
1996년 | 보관문화훈장 |
2001년 | 대한민국 예술원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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