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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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황상규는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교육 사업에 헌신하여 고명학원 교사로 재직하며 역사 교재를 저술하고, 동화학원을 인수하여 청년들을 양성했다. 1918년 일제의 탄압으로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대한정의군정사, 의열단에서 활동하며 무장 독립 투쟁을 전개했다. 옥고를 치른 후에는 신생활사 창건, 신간회 및 조선어학회 간부로 활동하며 교육 운동을 펼치다 고향에서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헌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황상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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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규
다른 이름호: 백민(白民)
출생일1891년 4월 19일
출생지조선 경상도
사망일1931년 9월 2일
사망 원인알 수 없음
국적조선→대한제국
본관창원
관련 활동독립운동
소속의열단
상훈건국훈장 독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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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밀양 출신으로, 교육 사업에 뜻을 두었다. 밀양 고명학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역사 교재 東國史鑑한국어을 저술하였다. 전홍표가 경영하던 동화학원을 인수하여 200여 명의 청년 학도를 양성하였다.

2.1. 교육 계몽 운동 (1910년대 이전)

경남 밀양 출신으로, 일찍부터 교육 사업에 뜻을 두었다. 밀양 고명학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역사 교재 東國史鑑한국어을 저술하였다. 전홍표가 경영하던 동화학원을 인수하여 200여 명의 청년 학도를 양성하였다.

2.2. 망명과 무장 독립 투쟁 (1918년 ~ 1921년)

1918년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 길림(吉林)으로 망명하였다. 이곳에는 여준, 유동열, 김동삼, 김좌진 등 주요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는데, 이들과 함께 3·1독립선언에 앞서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를 발표하였다. 1919년 4월 대한정의군정사에 가담하여 회계과장 일을 맡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1919년 11월 9일 김원봉 등과 함께 의열단을 조직하여 일제 기관 파괴, 침략자 및 매국노 암살 등을 계획하였다. 이를 위해 김원봉, 이성우 등은 중국 상해(上海)에서 폭탄과 권총 등을 구입하였고, 1920년 5월 13일 황상규는 곽재기 등과 함께 서울에 잠입하여 거사 대상을 물색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경기도 경찰부에 탐지되어 같은 해 6월 한인 형사 김태석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1921년 7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3. 문화/교육 운동과 최후 (1920년대 후반 ~ 1931년)

만기 출옥 후에도 조국 광복 투쟁에 매진하여, 신생활사를 창건하고 신간회 중앙 간부, 조선어학회 간부 등을 역임하였다. 1920년대 후반에서 1931년 9월 1일 고향에서 별세하기까지 고향에서 노동야학원과 여자야학원을 설립하여 교육을 통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3.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