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미국 대통령 선거
1. 개요
1928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공화당의 허버트 후버와 민주당의 알 스미스가 경쟁하여 후버가 압승을 거둔 선거였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후버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고, 민주당에서는 알 스미스가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금주당, 사회당, 노동자당 등 여러 정당에서도 후보를 내세웠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스미스의 종교와 금주법, 반가톨릭주의가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었고, 후버는 남부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으며 승리했다. 스미스는 대도시에서 득표율을 높였고, 이는 1932년 선거에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승리에 기여하는 기반이 되었다.
| 선거 이름 | 1928년 미국 대통령 선거 |
|---|---|
| 국가 | 미국 |
| 국기 연도 | 1912년 |
| 선거 유형 | 대통령 선거 |
| 선거 진행 여부 | 아니오 |
| 이전 선거 | 19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
| 이전 선거 연도 | 1924년 |
| 다음 선거 |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
| 다음 선거 연도 | 1932년 |
| 투표율 | 56.9% (8.0% 증가) |
| 선거 날짜 | 1928년 11월 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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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 | 허버트 후버 |
|---|---|
| 정당 | 공화당 |
| 색상 | 공화당 |
| 기반 주 | 캘리포니아 |
| 러닝 메이트 | 찰스 커티스 |
| 선거인단 투표수 | 444 |
|---|---|
| 승리 주 | 40 |
| 득표수 | 21,427,123 |
| 득표율 | 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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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 | 알 스미스 |
|---|---|
| 정당 | 민주당 |
| 색상 | 민주당 |
| 기반 주 | 뉴욕 |
| 러닝 메이트 | 조지프 T. 로빈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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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인단 투표수 | 87 |
|---|---|
| 승리 주 | 8 |
| 득표수 | 15,015,464 |
| 득표율 | 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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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전 대통령 | 캘빈 쿨리지 |
|---|---|
| 선거 전 정당 | 공화당 |
| 선거 후 대통령 | 허버트 후버 |
| 선거 후 정당 | 공화당 |
| 선거 이름 (영어) |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 1928 |
|---|---|
| 필요한 선거인단 수 | 266 |
| 투표율 증가 | 8.0 pp |
| 선거인단 수 | 531 |
| 지도 캡션 | 대통령 선거 결과 지도. 빨간색은 후버/커티스가 승리한 주, 파란색은 스미스/로빈슨이 승리한 주를 나타냄. 숫자는 각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 수를 나타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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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11월 -
1928년 11월 12일 일식
1928년 11월 12일 일식은 1928년 11월 12일에 발생한 부분 일식으로, 첫 번째 반그림자 외부 접촉은 07시 33분 47.2초 (UTC)에 시작되었고, 최대 일식은 09시 48분 24.3초 (UTC)에 관측되었으며, 마지막 반그림자 외부 접촉은 12시 03분 24.1초 (UTC)에 일어났으며 태양 사로스 122 주기에 속한다. -
1928년 미국 -
1928년 미국 상원의원 선거
1928년 미국 상원의원 선거는 1928년 11월 6일에 실시되어 공화당이 압승하며 다수당의 위치를 확고히 했고, 금주법, 종교, 경제 문제 등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
1928년 미국 -
1928년 미국 하원의원 선거
1928년 미국 하원의원 선거는 1928년 11월 6일에 치러졌으며, 공화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여 435명의 하원의원을 선출했다. -
미국의 반가톨릭주의 -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존 F. 케네디가 리처드 닉슨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승리했으며, 텔레비전 토론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선거 부정 의혹과 앨라배마주 선거 결과 불확실성 등 다양한 논란을 남겼다. -
미국의 반가톨릭주의 -
웨스트보로 침례교회
웨스트보로 침례교회는 프레드 펠프스가 설립한 미국의 독립 침례교회로, 극단적인 교리와 혐오 시위, 특히 동성애, 유대교, 이슬람, 미국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 시위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2. 후보자 지명
금주당 전당대회는 1928년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시카고에서 개최되었다. 알 스미스는 금주법에 대한 반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알코올과의 전쟁에 미온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금주당 내에서는 당의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스미스의 당선을 막기 위해 허버트 후버 지지를 선언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 선출 투표 결과 윌리엄 F. 바니가 68표 대 45표(후버)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캘리포니아주 후보 명단에는 후버가 금주당 후보로 등재되었다.
유진 V. 뎁스가 1926년에 사망하면서 새로운 대표 인물이 필요했던 사회당은, 장로교 목사이자 산업민주연맹 공동 의장이었던 노먼 토머스를 후보로 지명했다. 토머스는 이후 5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계속해서 사회당 후보로 출마했다.
2.1. 공화당
1928년 공화당 전당대회는 1928년 6월 12일부터 15일까지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개최되었다. 현직 대통령 캘빈 쿨리지가 재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미국 상무부 장관이었던 캘리포니아주 출신 허버트 후버가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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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경선에서 후버는 일리노이주 주지사 프랭크 로던, 캔자스주 출신 상원 원내총무 찰스 커티스 등과 경쟁했다. 일부 예비 선거에서 후버는 예상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교착 상태가 되면 쿨리지 대통령이나 찰스 G. 도스 부통령이 지명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로던이 전당 대회 시작 직전 사퇴하면서 후버가 대선 후보로 지명되는 길이 열렸다.
전당 대회 결과, 후버는 837표를 얻어 74표를 얻은 로던과 64표를 얻은 커티스를 제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후버는 러닝메이트 선정에 관여하지 않으려 했으나, 당 지도부는 농민 표를 얻기 위해 커티스를 부통령 후보로 제안했다. 커티스는 이를 수락하여 1차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는 미국 원주민 출신으로는 최초로 주요 정당의 전국 선거 후보로 지명된 인물이다.
후버는 전당 대회 8주 후 수락 연설에서 "오늘날 우리는 빈곤에 대한 최종적인 승리에 이 땅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곧 하나님의 도움으로 빈곤이 이 땅에서 사라질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대공황 기간 동안 후버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2.2. 민주당
1928년 민주당 전당대회는 1928년 6월 26일부터 28일까지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개최되었다. 티팟 돔 스캔들(공유지 유전 이권을 둘러싼 유착 스캔들)의 영향력이 잦아들고 경제 호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윌리엄 기브스 맥아두와 같은 유력 정치인들은 불출마를 선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뉴욕주 주지사 앨 스미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당 지도부는 스미스와는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었던 아칸소주 출신 조셉 테일러 로빈슨 상원 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할 것을 대의원들에게 요청했고, 로빈슨이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스미스는 주요 정당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최초의 로마 가톨릭 신자였으며, 그의 종교는 선거 운동에서 문제가 되었다. 많은 개신교 신자들은 스미스가 국가 정책을 결정할 때 바티칸의 교회 지도자들의 지시를 따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 대통령 투표 | 1차 투표(변동 전) | 1차 투표(변동 후) | 부통령 투표 | 1차 |
|---|---|---|---|---|
| 알 스미스 !!724.67!!849.19!! 조셉 테일러 로빈슨 !!1,035.17 | ||||
| 코델 헐 !!71.84!!50.84!! 앨번 W. 바클리 !!77 | ||||
| 월터 F. 조지 !!52.5!!52.5!! 넬리 테일로 로스 !!31 | ||||
| 제임스 A. 리드 !!48!!52!! 헨리 터먼 앨런 !!28 | ||||
| 애틀리 포머린 !!47!!3!! 조지 L. 베리 !!17.5 | ||||
| 제시 H. 존스 !!43!!43!! 댄 무디 !!9.33 | ||||
| 에반스 울렌 !!32!!7!! 덩컨 U. 플레처 !!7 | ||||
| 패트 해리슨 !!20!!8.5!! 존 H. 테일러 !!6 | ||||
| 윌리엄 A. 에어스 !!20!!3!! 루이스 스티븐슨 !!4 | ||||
| 리처드 C. 와츠 !!18!!18!! 에반스 울렌 !!2 | ||||
| 길버트 히치콕 !!16!!2!! 조셉 패트릭 투멀티 !!1 | ||||
| A. 빅터 도나헤이 !!5!!5!! !! | ||||
| 휴스턴 톰슨 | 2 | 2 | ||
| 시어도어 G. 빌보 !!0!!1!! !! |
2.3. 기타 정당
1928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기타 정당 후보는 다음과 같다.
* 금주당: 윌리엄 바니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금주당 전당대회는 1928년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시카고에서 개최되었다.
* 사회당: 장로교 목사이자 산업민주연맹의 공동 의장이었던 노먼 토머스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 미국 노동자당(공산당): 당 의장인 윌리엄 포스터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 1928년 금주당 후보 | |
|---|---|
| 윌리엄 F. 바니 | 제임스 A. 에저튼 |
| 대통령 후보 | 부통령 후보 |
| 뉴욕 출신 보험 판매원 | 버지니아 출신 시인이자 철학가 |
| 1928년 사회당 후보 | |
|---|---|
| 노먼 토머스 | 제임스 H. 모러 |
| 대통령 후보 | 부통령 후보 |
| 뉴욕 출신 장로교 목사 | 펜실베이니아 주 하원의원(1915–1919) |
| 1928년 노동자당 후보 | |
|---|---|
| 윌리엄 Z. 포스터 | 벤자민 기틀로 |
| 대통령 후보 | 부통령 후보 |
| 매사추세츠주 출신 당 의장 | 뉴욕주 의원(1918–1918) |
3. 선거 운동
1928년 가을의 선거 운동은 라디오, 뉴스 영화와 같은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면서 현대적인 대통령 선거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주요 후보였던 알 스미스와 허버트 후버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선거 운동을 펼쳤다.
스미스는 주요 정당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최초의 로마 가톨릭 신자였고, 그의 종교는 큰 논란거리였다. 많은 개신교 신자들은 스미스가 대통령이 되면 국가 정책 결정에 있어 교황의 명령을 따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시 교황 비오 11세가 미국으로 와 워싱턴 D.C.에서 미국을 통치할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었다. 스미스가 당선되면 교황에게 "짐을 풀어라"라는 전보를 보낼 것이라는 농담이 유행했을 정도였다.
남부 감리교회 목사 8,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스미스를 지지하는 사람은 단 4명뿐이었으며, 북부 감리교, 남침례교, 그리스도의 제자 교회도 비슷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많은 유권자들은 가톨릭 교회가 자유와 민주주의에 반하는 "비미국적"이고 "이질적인 문화"라고 믿었다.
전국 루터교 편집자 및 관리자 협회는 1928년 9월 성명을 발표하여, 가톨릭 신자가 "세속 문제"에서도 원칙과 이론상 우위를 "주장"하는 '외국 주권자'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한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가톨릭 교회가 정교 분리 원칙과 종교적 관용에 적대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4급 컬럼버스 기사단 회원들이 프리메이슨과 개신교도를 몰살하고 교회가 명령하면 누구에게나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맹세했다는 위조된 서약이 백만 부나 유포되기도 했다.
스미스는 개신교가 추진한 금주법에 반대했고, 태머니 홀과의 연관성 때문에 표를 잃었다. 많은 반가톨릭주의자들이 종교적 편견을 숨기기 위해 이러한 문제들을 이용했기 때문에, 스미스 선거 운동은 어려움을 겪었다.
밥 존스 시니어는 "우리가 직면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술 문제가 아니오. 나는 외국인들이 알 스미스를 대통령으로 뽑는 것을 보는 것보다 남부의 모든 구석에 술집이 있는 것을 더 보고 싶소."라고 말했다. 조지아의 한 감리교 신문은 가톨릭교를 "퇴폐적인 유형의 기독교"라고 불렀고, 남침례교회는 신도들에게 스미스에게 반대 투표를 하라고 명령하면서 그가 개신교 교회를 폐쇄하고, 예배의 자유를 종식시키고, 성경 읽기를 금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신교 작가 찰스 힐먼 파운틴은 가톨릭 신자들은 어떤 공직도 맡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윌리엄 앨런 화이트는 가톨릭교가 미국의 도덕적 기준을 침식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견고하고 질서 있는 국가를 건설한 전체 청교도 문명이 스미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허버트 후버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가톨릭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피했지만, 개인적인 편지에서 개신교의 행동을 옹호했다.
이러한 반가톨릭 정서 때문에 스미스는 고정 남부의 여러 주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흑인 인구가 많은 남부 주에서는 인두세, 제한된 예비 선거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흑인들이 투표를 할 수 없었다. 미시시피 주지사 테오도르 G. 빌보는 후버가 공화당 전국 위원회의 흑인 위원과 만나 춤을 췄다고 주장했고, 후버 선거 운동은 이를 "거짓되고 비열한 주장"이라고 즉시 부인했다.
한편, 스미스의 종교는 뉴잉글랜드의 로마 가톨릭 이민자들, 특히 아일랜드계 미국인과 이탈리아계 미국인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공화당 강세 지역이었던 매사추세츠와 로드 아일랜드에서 스미스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고, 뉴욕에서 2% 차이로 석패하는 데 기여했다.
4. 선거 결과
1928년 11월 6일에 실시된 투표 결과, 공화당 후보 허버트 후버가 58.2%의 득표율로 444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민주당 후보 앨 스미스는 40.8%의 득표율로 87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스미스는 미국 남부 여러 주와 뉴잉글랜드의 매사추세츠주와 로드아일랜드주에서만 승리했다. 특히, 스미스의 고향인 뉴욕주에서도 후버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스미스가 가톨릭 신자라는 점, 금주법 폐지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태머니 홀과의 연관성은 남부에서 약점으로 작용하여, 재건 시대 이후 처음으로 몇몇 남부 주들이 공화당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상당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인구가 있는 남부 주에서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대다수는 투표할 수 없었다) 후버가 인종 차별을 철폐하거나 적어도 인종 차별을 지속하는 데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반면, 스미스의 종교는 뉴잉글랜드의 로마 가톨릭 이민자들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전통적으로 공화당 강세 지역이었던 매사추세츠주와 로드아일랜드주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번 선거를 통해 민주당은 전국 인구가 많은 12개 도시를 포함한 대도시의 대다수를 처음으로 장악하면서, 이후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 주 | 허버트 후버 (공화당) | 앨 스미스 (민주당) | 격차 | |||
|---|---|---|---|---|---|---|
| 득표수 | 득표율(%) | 득표수 | 득표율(%) | 득표수 | 득표율(%) | |
| 앨라배마 | 120,725 | 48.49% | 127,797 | 51.33% | -7,072 | -2.84% |
| 애리조나 | 52,533 | 57.57% | 38,537 | 42.23% | 13,996 | 15.34% |
| 아칸소 | 77,751 | 39.33% | 119,196 | 60.29% | -41,445 | -20.96% |
| 캘리포니아 | 1,162,323 | 64.69% | 614,365 | 34.19% | 547,958 | 30.50% |
| 콜로라도 | 253,872 | 64.72% | 133,131 | 33.94% | 120,741 | 30.78% |
| 코네티컷 | 296,614 | 53.63% | 252,040 | 45.57% | 44,574 | 8.06% |
| 델라웨어 | 68,860 | 65.03% | 36,643 | 34.60% | 32,217 | 30.42% |
| 플로리다 | 144,168 | 56.83% | 101,764 | 40.12% | 42,404 | 16.72% |
| 조지아 | 99,369 | 43.36% | 129,602 | 56.56% | -30,233 | -13.19% |
| 아이다호 | 97,322 | 64.22% | 52,926 | 34.93% | 44,396 | 29.30% |
| 일리노이 | 1,769,141 | 56.93% | 1,313,817 | 42.28% | 455,324 | 14.65% |
| 인디애나 | 848,290 | 59.68% | 562,691 | 39.59% | 285,599 | 20.09% |
| 아이오와 | 623,570 | 61.77% | 379,311 | 37.57% | 244,259 | 24.20% |
| 캔자스 | 513,672 | 72.02% | 193,003 | 27.06% | 320,669 | 44.96% |
| 켄터키 | 558,064 | 59.33% | 381,070 | 40.51% | 176,994 | 18.82% |
| 루이지애나 | 51,160 | 23.70% | 164,655 | 76.29% | -113,495 | -52.58% |
| 메인 | 179,923 | 68.63% | 81,179 | 30.96% | 98,744 | 37.66% |
| 메릴랜드 | 301,479 | 57.06% | 223,626 | 42.33% | 77,853 | 14.74% |
| 매사추세츠 | 775,566 | 49.15% | 792,758 | 50.24% | -17,192 | -1.09% |
| 미시간 | 965,396 | 70.36% | 396,762 | 28.92% | 568,634 | 41.44% |
| 미네소타 | 560,977 | 57.77% | 396,451 | 40.83% | 164,526 | 16.94% |
| 미시시피 | 27,153 | 17.90% | 124,539 | 82.10% | -97,386 | -64.20% |
| 미주리 | 834,080 | 55.58% | 662,562 | 44.15% | 171,518 | 11.43% |
| 몬태나 | 113,300 | 58.37% | 78,578 | 40.48% | 34,722 | 17.89% |
| 네브래스카 | 345,745 | 63.19% | 197,959 | 36.18% | 147,786 | 27.01% |
| 네바다 | 18,327 | 56.54% | 14,090 | 43.46% | 4,237 | 13.07% |
| 뉴햄프셔 | 115,404 | 58.65% | 80,715 | 41.02% | 34,689 | 17.63% |
| 뉴저지 | 925,285 | 59.77% | 616,162 | 39.80% | 309,123 | 19.97% |
| 뉴멕시코 | 69,645 | 59.01% | 48,211 | 40.85% | 21,434 | 18.16% |
| 뉴욕 | 2,193,344 | 49.79% | 2,089,863 | 47.44% | 103,481 | 2.35% |
| 노스캐롤라이나 | 348,923 | 54.94% | 286,227 | 45.06% | 62,696 | 9.87% |
| 노스다코타 | 131,441 | 54.80% | 106,648 | 44.46% | 24,793 | 10.34% |
| 오하이오 | 1,627,546 | 64.89% | 864,210 | 34.45% | 763,336 | 30.43% |
| 오클라호마 | 394,046 | 63.72% | 219,174 | 35.44% | 174,872 | 28.28% |
| 오리건 | 205,341 | 64.18% | 109,223 | 34.14% | 96,118 | 30.04% |
| 펜실베이니아 | 2,055,382 | 65.24% | 1,067,586 | 33.89% | 987,796 | 31.35% |
| 로드아일랜드 | 117,522 | 49.55% | 118,973 | 50.16% | -1,451 | -0.61% |
| 사우스캐롤라이나 | 5,858 | 8.54% | 62,700 | 91.39% | -56,842 | -82.85% |
| 사우스다코타 | 157,603 | 60.18% | 102,660 | 39.20% | 54,943 | 20.98% |
| 테네시 | 195,388 | 53.76% | 167,343 | 46.04% | 28,045 | 7.72% |
| 텍사스 | 367,036 | 51.77% | 341,032 | 48.10% | 26,004 | 3.67% |
| 유타 | 94,618 | 53.58% | 80,985 | 45.86% | 13,633 | 7.72% |
| 버몬트 | 90,404 | 66.87% | 44,440 | 32.87% | 45,964 | 34.00% |
| 버지니아 | 164,609 | 53.91% | 140,146 | 45.90% | 24,463 | 8.01% |
| 워싱턴 | 335,844 | 67.06% | 156,772 | 31.30% | 179,072 | 35.75% |
| 웨스트버지니아 | 375,551 | 58.43% | 263,784 | 41.04% | 111,767 | 17.39% |
| 위스콘신 | 544,205 | 53.52% | 450,259 | 44.28% | 93,946 | 9.24% |
| 와이오밍 | 52,748 | 63.68% | 29,299 | 35.37% | 23,449 | 2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