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ND DOG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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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HOUND DOG는 1976년 결성된 일본의 록 밴드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1980년 싱글 '폭풍의 금요일'로 데뷔했다. 라이브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일본 무도관 15일 연속 공연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81년부터 록앤롤 올림픽을 개최하여 야외 록 페스티벌의 선구자 역할을 했으며, 자선 활동에도 참여했다. 2005년 멤버 변동과 소송을 겪었지만, 현재는 오토모 코헤이 1인 체제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여러 곡이 광고,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 사용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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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ND DOG (밴드)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국적 | 일본 |
장르 | 록 |
활동 기간 | 1976년 - 현재 |
레이블 | CBS・소니 (1980년 - 1986년) MOTHER&CHILDREN→MMG→이스트웨스트 재팬 (1987년 - 1994년) 일본 컬럼비아 (1995년 - 2001년) R and C (2002년 - 2005년) |
프로덕션 | 플라잉 하우스 (1980년 - 1983년) 마더 엔터프라이즈 (1983년 - 2004년) iehok (2005년 - 현재)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구성원 | |
현재 구성원 | 오토모 코헤이 (보컬) |
과거 구성원 | 타마테 요시히로 (베이스) 사토 쇼 (드럼스) 하타야마 히로시 (기타) 카이토 세츠오 (베이스) 후지무라 잇세이 (드럼스) 다카하시 요시히데 (기타) 미노와 타다시 (키보드) 사메지마 히데키 (베이스) 야시마 준이치 (기타) 하시모토 쇼지 (드럼스) 니시야마 타케시 (기타) |
관련 활동 | |
대표곡 | |
ff (Fortissimo) (1985) | , "ff (Forutishimo)" |
BRIDGE~When Crossing the Bridge~ (1992) | , "BRIDGE~ano hashi wo wataru toki~" |
2. 역사
HOUND DOG는 1976년 도호쿠 가쿠인 대학교 재학 중이던 다카하시 요시히데가 오토모 코헤이에게 밴드 결성을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밴드 이름은 오토모 코헤이가 존경하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에서 따왔다.[1] 1980년 싱글 '폭풍의 금요일'로 데뷔한 이후,[1] 1984년 멤버 교체 등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일본 록 씬에서 꾸준히 활동해 왔다.
HOUND DOG의 활동은 주로 라이브 공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히트곡이 없는 상태에서도 일본 무도관 첫 공연에 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3년간의 라이브 투어를 진행했다. 학교 지침으로 공연에 오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졸업장을 티켓으로 활용하여 무료 공연을 다시 개최하고,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공연 종료 시간을 앞당기는 등, 이전에는 없던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1989년에는 일본 무도관에서 15일 연속 라이브 공연을 펼쳐,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최장 공연 기록을 세웠다.[1]
1981년부터 센다이시 외곽에서 록큰롤 올림픽을 개최하여 일본 야외 록 페스티벌의 선구자 역할을 했으며, 히로시마 평화 콘서트, 유메노시마 라이브 등 자선 공연을 통해 사회 참여 활동도 활발히 펼쳤다.
사잔 올 스타즈의 쿠와타 케이스케는 HOUND DOG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1980년 함께 공연했을 때 오토모 코헤이의 관객을 열광시키는 능력에 감탄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2. 1. 결성 및 초기 활동 (1976년 ~ 1984년)
1976년 도호쿠 가쿠인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기타리스트이자 창립 멤버인 다카하시 요시히데가 오토모 코헤이에게 "함께 하자!"라고 말하며 밴드 결성을 촉구했다. 이후 오토모는 자신이 매우 좋아했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동명의 히트곡에서 밴드 이름을 따왔다.[1] 1980년 밴드는 싱글 嵐の金曜日|아라시노 킨요-비|폭풍의 금요일일본어로 데뷔했다.[1] 초기 멤버는 오토모, 다카하시, 야시마 준이치, 미노와 히토시, 카이토 세쓰오, 후지무라 카즈키요였다.[2] 1984년 멤버 교체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HOUND DOG는 이후 일본 록 신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갔다.[1]2. 2. 전성기 (1985년 ~ 1995년)
1989년 일본 무도관에서 사상 최다인 15일 연속 라이브를 진행했다. 이 기록은 2021년 현재도 깨지지 않고 있다.[1]1990년부터 1999년까지 여름 야외 라이브 '꿈의 섬'을 개최하였다. 제1회 꿈의 섬은 1990년 8월 25일에 도쿄 꿈의 섬 공원에서 열렸다.
제2회 이후의 '꿈의 섬' 야외 라이브 개요는 다음과 같다.
횟수 | 연도 | 날짜 | 장소 |
---|---|---|---|
제2회 | 1991년 | 7월 27일 | 세이부 구장 |
제2회 | 1991년 | 8월 3일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제3회 | 1992년 | 8월 8일 | 시즈오카 츠마고이 |
제4회 | 1993년 | 8월 1일 | 후쿠오카현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 야외 극장 |
제5회 | 1994년 | 8월 27일 | 도쿄 꿈의 섬 공원 |
제6회 | 1995년 | 8월 19일 | 미야기현 미치노쿠 숲의 호반공원 |
제7회 | 1996년 | 8월 3일 | 오사카 마이시마 스포츠 아일랜드 |
제8회 | 1997년 | 8월 23일 ~ 8월 24일 | 아이치현 나고야 상과대학 럭비장 |
제9회 | 1998년 | 8월 22일 | 효고현 아와지섬 웰니스 파크 고시키 특설 회장 |
제10회 | 1999년 | 8월 28일 | 시즈오카 ATAMI PORT SIDE AREA |
2. 3. NHK 홍백가합전 출연 사퇴 (1991년)
1991년(헤이세이 3년), '제42회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 가수로 선정되었지만, 이 해의 HOUND DOG는 특히 히트곡이 없는 상황이었다. NHK는 'ff (포르티시모)'를 선곡했지만, 멤버들은 "오래된 곡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며 이듬해 발매될 신곡 'BRIDGE〜저 다리를 건널 때〜'의 연주를 희망했다. 하지만 NHK는 그 요청을 거부했고, 결국 출연을 사퇴하게 되었다(대신 버블검 브라더스가 출연. 오토모와 버블검은 절친한 사이였으며, 버블검은 홍백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후 HOUND DOG에게 메시지를 보냈다).[1]2. 4. 멤버 변동과 법정 분쟁 (2005년 ~ 2009년)
2005년, 데뷔 25주년을 맞이하여 오토모 코헤이는 소속사 마더 엔터프라이즈와 의견 대립을 겪었고, 그 결과 개인 사무소 이에호크(iehok)를 설립하고 4월에 독립했다.[3] 마더 측은 7월 일본 무도관 공연을 기점으로 HOUND DOG에 관한 모든 업무를 종료한다고 발표했다.[3] 6월에 발매된 앨범 『OMEGA』에 대해 마더는 "사실상, 현 멤버에 의한 마지막 오리지널 앨범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며, 재킷이나 곡 제목이 해산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고 밝혔다.[3] 그러나 오토모는 소속사에 반발하며, 앞으로도 무대에 설 것을 무도관 공연 때 명언했지만, 해산이나 멤버 탈퇴는 부정하지 않았다.[3]8월, 오토모는 이에호크 공식 사이트에서 "밴드 내에 미래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생겼다"며 미노와 히토시, 사메지마 히데키를 제외한 4명(오토모, 야시마 준이치, 하시모토 준, 니시야마 타케시)으로 활동을 계속할 것을 표명했다.[3] 언론에서는 미노와와 사메지마가 "탈퇴"했다고 보도했지만, 당사자들은 "탈퇴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3] 사메지마는 그 후에도 탈퇴 부정 발언을 반복했지만, 섣달 그믐날 카운트다운 라이브나 2006년 2월부터의 투어는 두 사람을 제외한 4명에 서포트 멤버를 더하는 형태로 개최되었다.[3] 오토모는 후술할 재판에서 미노와와 사메지마 해고 이유를 밝혔다. 미노와에 대해서는 "후쿠다 신 회장의 가을 해산 투어 안에 동의했기 때문"이며, 사메지마에 대해서는 "전 소속사와 밀접한 관계에 있어 정보가 새어나가 신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3] 또한, 오토모는 11월 8일자 닛칸 스포츠 신문에서 "HOUND DOG는 내 것입니다. 대학 시절에 내가 만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 혼자여도 괜찮다. 내가 노래하면 HOUND DOG니까"라는 발언을 했다.[3]
6월 18일, 오토모는 "HOUND DOG를 지키기 위해" 자신 혼자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이에호크 공식 사이트에서 표명했다.[3] 이에호크의 대표자(쿠스야마 스가코)는 "HOUND DOG를 조종하려는 움직임"이라는 표현으로 전 소속사의 간섭을 시사하고, 하시모토 등의 파티 개최를 그것에 삼켜진 것이라고 간주하여, 밴드가 오토모 혼자가 된 이유로 삼았다.[3]
이에 대해 하시모토의 사이트에는 하시모토, 야시마, 니시야마의 반론 코멘트가 게재되었다.[3] 하시모토는 "우리 셋은 탈퇴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다.[3] 그 후, 하시모토의 사이트와 파티에서 3명이 말한 바에 따르면, 이에호크는 처음부터 3명을 오토모의 백 밴드 취급했다.[3] 신곡의 권리를 모두 무상으로 이에호크에 양도할 것을 요구해 왔다.[3] 하시모토가 주식 매각을 위해 구 소속사와 연락한 것을 구실로 해고하고, 새 멤버를 오디션으로 더하려 했다.[3] 반발한 3명은 오토모와의 대화를 요구했지만, 오토모는 휴대폰 번호를 바꿔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었다.[3] 3명이 소속사에 불만을 품고 있던 중, 대리인 변호사로부터 휴대폰 메일로 일방적인 해고를 통보받았다.[3]
7월 22일, 오토모 외 전원 서포트 멤버로, HOUND DOG 명의의 라이브가 오사카 야외 음악당에서 개최되었다.[3] 야시마, 하시모토, 니시야마가 자비로 티켓을 구입하여 나타나, 회장은 소란스러워졌다.[3] 또한, 원래 6명으로 활동을 요구하는 서명 활동이 팬들에 의해 회장 밖에서 행해졌다(이 서명은 오토모에게 전달되었다고 한다).[3] 같은 해 9월 1일자 닛칸 스포츠에는 일부 뜻있는 사람들이 의견 광고를 게재하여, 6명으로 활동 재개를 요구했다.[3] 9월 2일에는 같은 서포트 멤버를 거느리고 "HOUND DOG로서 50번째"라고 칭한 일본 무도관 공연이 열렸다.[3] 오토모는 "후회는 없다. 한 걸음씩 앞을 향해 걸어가겠다"고 말하며, 구 멤버와 다시 할 생각이 없음을 암시했다.[3] 10월 31일, 오토모는 인터넷 잡지 "Manyo" 연재의 에세이에서, 일련의 경위에 관한 팬들에게의 메시지를 발표했다.[3] 그는 자신의 결의가 변하지 않음을 강조하며, "언젠가 시간과 양식과 여론이 진짜 답을 내어 이해해 줄 것이다"라고 맺었다.[3]
한편, 야시마, 하시모토, 니시야마 3명은 "신생 하운드 독"으로서, 야시마가 새로 쓴 "We are the Hound Dog"의 레코딩을 9월 14일에 했다.[3]
2. 5. 30주년 이후 (2010년 ~ 현재)
2010년, HOUND DOG는 30주년 기념 공연을 개최했다. 오토모 코헤이는 앞으로도 밴드 활동을 계속할 의지를 표명했으며[3], 현재 HOUND DOG는 오토모 코헤이 1인 체제로 활동 중이다.3. 멤버
1976년, 도호쿠가쿠인 대학 재학 중이던 초대 기타리스트 타카하시 요시히데가 오토모 코헤이에게 함께 밴드를 하자고 제안하면서 HOUND DOG가 결성되었다. 밴드 이름은 오토모가 존경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에서 따왔다.[14] 1980년 싱글 '폭풍의 금요일'로 데뷔했을 당시 멤버는 오토모, 타카하시, 야시마 준이치, 미노와 히토시, 카이토 세쓰오, 후지무라 카즈키요였다. 이후 1984년 멤버 교체 등 여러 변화를 겪었지만, 일본 록 씬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2005년, 데뷔 25주년을 맞이하여 오토모와 소속사 마더 엔터프라이즈 사이에 의견 대립이 발생했고, 오토모는 개인 사무소(이에호크(iehok))를 설립하고 4월에 독립했다. 8월, 오토모는 이에호크 공식 사이트에서 "밴드 내에 미래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생겼다"며 미노와, 사메지마 히데키를 제외한 4명(오토모, 야시마, 하시모토 쇼지, 니시야마 타케시)으로 활동을 계속할 것을 표명했다. 언론에서는 미노와, 사메지마가 "탈퇴"했다고 보도했지만, 당사자들은 "탈퇴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3]
2006년 9월 1일, 야시마, 하시모토, 니시야마에 대해서는 소송 화해가 성립되었다.[4] 2009년 5월 법정 투쟁이 종결된 후[5], 5월 20일에 오토모 명의로 HOUND DOG의 곡 14곡을 재녹음한 「HOUND DOG ULTIMATE BEST」가 발매되었다.
3. 1. 역대 멤버
보컬 | 기타 | 기타 | 키보드 | 베이스 | 드럼 | |
---|---|---|---|---|---|---|
1980년 - 1984년 | 오토모 코헤이 | 야시마 준이치 | 타카하시 요시히데 | 미노와 히토시 | 카이토 세츠오 | 후지무라 카즈키요 |
1984년 - 2005년 | 니시야마 타케시 | 사메지마 히데키 | 하시모토 쇼지 | |||
2005년 - 2006년 | colspan="2"| | |||||
2006년 7월 - | colspan="5"| |
- 오토모 코헤이 (1956년 1월 1일 -, 보컬 & 드럼): 미야기현 시오가마시 출생.
- 야시마 준이치 (1956년 2월 19일 -, 기타): 미야기현 출신.
- 니시야마 타케시 (1962년 1월 7일 -, 기타): 가나가와현 출신.
- 하시모토 쇼지 (1955년 10월 11일 -, 드럼): 효고현 출신.
- 미노와 히토시 (1959년 12월 17일 -, 키보드): 미야기현 출신.
- 카이토 세츠오 (1958년 3월 3일 -, 베이스): 탈퇴 후에는 센다이를 거점으로 솔로 활동 및 시민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 타카하시 요시히데 (1956년 5월 7일 -, 기타): 아들은 배우 쿠로다 유키이다.[14]
- 후지무라 카즈키요 (드럼): 재적 중에는 악곡 제공도 하였으며, 『조롱당한 밤』, 『오늘 밤 하트에서』는 싱글로 발매되었다. 탈퇴 후에는 센다이를 거점으로, kacoo를 히라마 쿠니요시와 함께 결성하여 주로 라이브 활동 등을 하였다. 2022년 6월 사망.[15]
- 사메지마 히데키 (1955년 4월 19일 -, 베이스, 전 트위스트)
- '''사토 아키라''' (드럼): 프로가 될 생각은 없었고 프로 데뷔 전에 탈퇴.
- '''타마테 요시히로''' (베이스)
- '''하타야마 히로시''' (기타)
4. 사회 참여 활동
HOUND DOG는 히로시마 "평화 콘서트", "드림 아일랜드 라이브 콘서트" 등 기금 마련 및 자선 라이브 활동을 수년간 펼쳤다.[7] 또한, 일본 무도관 첫 공개 데뷔 무대에 약 1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 약 3년 동안 라이브 투어를 진행했다. 학교 지침으로 공연에 오지 못한 지역 학생들을 위해 "음악은 정말 멋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같은 장소에서 다시 공연을 열기도 했다. 1989년에는 15일간의 라이브 콘서트 마라톤을 열어 일본 무도관 역사상 최장 공연 기록을 세웠으며, 이 기록은 2017년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4. 1. 록큰롤 올림픽
1981년부터 센다이시 외곽에서 매년 록큰롤 올림픽이 개최되었고, 이는 일본 야외 록 페스티벌의 선구자가 되었다.[7]4. 2. 자선 및 기금 마련 활동
1981년 센다이시 외곽에서 매년 록큰롤 올림픽이 개최되었으며, 이는 일본 야외 록 페스티벌의 선구자가 되었다. 또한, HOUND DOG는 사회 참여 행사의 일환으로 히로시마 "평화 콘서트" 및 "드림 아일랜드 라이브 콘서트"와 같은 기금 마련 및 자선 라이브 활동을 수년간 수행했다.[7]4. 3. '졸업 증서가 입장권' 에피소드
1990년 7월 29일, 구마모토현 야츠시로시에서 시제 50주년 기념 사업으로 HOUND DOG 야외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티켓 요금이 비싸다", "종료 시간이 늦다", "회장 주변에 민가가 없어 야간에는 위험하다", "록 음악을 들으면 불량배가 된다" 등의 이유로 교육위원회와 교직원들은 시내 10개 중학교 중 9개 학교에서 "'''지역 중학생의 콘서트 참가 금지'''"를 지시했다.[8][9][10][11]이에 "콘서트에 참가할 수 없다"며 반발한 지역 중학생들은 콘서트 참가를 위한 서명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교직원들은 금지 철회를 거부했고, 심지어 서명 활동을 한 학생에게 "그런 짓을 하면 내신서에 쓸 거다!"라며 협박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일부 교직원은 여름 방학 중 등교일에 "콘서트에 간 사람은 신고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8][9][10][11]
이 소식을 들은 오토모 코헤이는 크게 감동하여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 티켓 요금이 비싸다 → 졸업 증서를 가져온 학생은 무료 입장
- 종료 시간이 늦다 → 종료 시간을 19:00까지로 단축
- 회장 주변에 민가가 없어 야간에는 위험하다 → 야츠시로시 종합 체육관으로 장소 변경
결국 1991년 3월 29일, HOUND DOG는 참가가 금지되었던 중학생들을 위한 무료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졸업 증서가 입장권'''"으로 불리며 널리 알려졌다.[9][12][10][11][13]
당시 중학생이었던 한 사람은 훗날 구마모토현에서 중학교 교사가 되었고, 콘서트 개최 당시의 에피소드는 일반 사단법인 윤리 연구소의 회보지 "직장의 교양"에도 게재되었다.[10][13]
5. 음악 스타일 및 특징
HOUND DOG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에서 밴드명을 따왔다. 오토모 코헤이는 로드 스튜어트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으며, 이는 마이크 스탠드를 다루는 그의 퍼포먼스 스타일에서 엿볼 수 있다.[1][4]
사잔 올 스타즈의 쿠와타 케이스케는 HOUND DOG의 재능을 인정하며, 1980년 '80's JAM'에서 함께 공연했을 때 "오토모가 관객을 들뜨게 하는 것을 잘하네"라고 평가했다. 또한, HOUND DOG에게 완전히 압도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5]
6. 디스코그래피
HOUND DOG&극락 올스타즈 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