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연고지
1. 개요
K리그 연고지는 한국 프로 축구 리그인 K리그의 구단들이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1983년 K리그 출범 당시에는 전국 순회 방식으로 운영되었으나, 1987년부터 광역 지역 연고제를 도입하여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을 시작했다. 이후 1990년 도시 지역 연고제로 전환되었고, 1996년부터 구단명에 지역명을 포함하는 완전 지역 연고제를 시행했다. 현재 K리그는 도시 연고와 광역 연고를 모두 포함하며, 2021년 기준 K리그1과 K리그2 총 22개 구단이 연고지를 두고 있다.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서울을 연고로 하던 구단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K리그의 대도시 연고 활성화가 미흡하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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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
슈퍼컵 (대한민국)
슈퍼컵 (대한민국)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K리그와 FA컵 우승팀 간의 단판 승부로 우승팀을 가리는 대회였으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최다 우승 구단이다. -
K리그 -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 정부 주도로 프로축구 활성화를 위해 추진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서울 연고 구단들을 지방으로 이전시켜 서울을 연고 공동 지역으로 만들었으나, 경쟁력 약화와 팬심 이탈을 초래하여 2004년 FC 서울의 복귀로 사실상 철폐되었다.
2. 지역 연고제 미시행 기간 (1983–1986시즌)
수퍼리그가 1983년에 출범했을 때, 각 구단은 형식적으로 연고지를 배정받았지만, 실제로는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이 아닌 전국 도시를 순회하는 방식으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1984시즌에는 현대 호랑이, 럭키금성 황소, 한일은행이 리그에 새로 참가하면서 연고지 조정이 이루어졌다. 할렐루야의 기존 연고지(강원, 충남, 충북)는 할렐루야(강원)와 럭키금성(충남, 충북)으로 분리되었고, 유공의 연고지(서울, 인천, 경기)는 유공(서울)과 현대(인천, 경기)로 나뉘었다. 한일은행의 연고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1985시즌에는 국민은행이 리그에서 빠지면서 할렐루야가 전남과 전북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1986시즌에는 할렐루야가 실업축구단으로 전환되어 수퍼리그에서 탈퇴했고, 현대는 할렐루야의 이전 연고지였던 강원을 포함하여 인천, 경기, 강원을 연고지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전국 도시 순회 방식은 1983년부터 1986년까지 4시즌 동안 계속되었다. 1986년에 축구대제전 위원회는 리그 흥행을 위해 지역 연고제와 홈 앤드 어웨이 방식 도입을 추진했으나, 당시 체육부는 "지역 감정 유발"을 이유로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1987년 1월, 대한축구협회는 홈 앤드 어웨이 시스템으로 리그를 운영하는 것을 확정하였다.
2.1. 수퍼리그 참가 구단과 연고지 현황 (1983)
1983년에 수퍼리그라는 이름으로 프로축구단 2개와 실업축구단 3개, 총 5개의 구단으로 출범하였다.
형식상 모든 구단들이 연고지를 배정받고 출범했지만,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이 아닌, 서울, 부산, 대구 등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경기를 치르는 '전국 도시별 순회 개최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체육부는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에 프로 선수 출전 여부가 불확실하고, 지역감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지역 연고지 제도를 실시하지 않았다.
2.2. 전국 도시별 순회 개최 방식
1983년 수퍼리그 출범 당시부터 지역 연고지 제도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리그 운영이 계획되었으나,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 출전 문제와 지역감정 심화 우려로 인해 유보되었다. 당시 IOC는 아마추어리즘을 강조했기 때문에, 프로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이 제한될 수 있었고, 이는 대한민국 대표팀 전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또한, 지역감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정부의 우려도 작용하여, 결국 '전국 도시별 순회 개최 방식'으로 리그가 운영되었다.
이 방식은 모든 구단이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경기를 치르는 방식이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부산 시리즈', '광주 시리즈'와 같이 해당 도시 이름을 붙여 표현했다.
1986년 축구대제전 위원회는 리그 인기 증진을 위해 지역 연고제 도입을 추진했으나, 체육부는 또다시 "지역 감정 유발"을 이유로 불허했다. 결국 '전국 도시별 순회 개최 방식'은 1983시즌부터 1986시즌까지 4시즌 동안 유지되었다.
* 원년 1983시즌–1986시즌 리그 참가 구단과 연고지 현황
| 구단 | 연고지 | 비고 |
|---|---|---|
| 할렐루야 축구단 | 전남+전북(1985) | 강원+충남+충북(1983) ▶ 강원(1984) ▶ 전남+전북(1984–1985시즌)을 끝으로 수퍼리그 탈퇴 |
| 유공 축구단 코끼리 | 서울(1984-1986) | 서울+인천+경기(1983) ▶ 서울(1984–1986) |
| 포항제철 아톰즈 | 대구+경북(1983–1986) | 연고지 이전 없음 |
| 국민은행 축구단 | 전남+전북(1983–1984) | 연고지 이전 없음: 1984시즌을 끝으로 수퍼리그 탈퇴 |
| 대우 로얄즈 | 부산+경남(1983–1986) | 연고지 이전 없음 |
| 현대 호랑이 | 인천+경기+강원(1986) | 인천+경기(1984–1985): 인천+경기+강원(1986) |
| 럭키금성 황소 | 충남+충북(1984–1986) | 연고지 이전 없음 |
| 한일은행 | 미상(1984–1986) | 연고지 이전 없음: 1986시즌을 끝으로 수퍼리그 탈퇴 |
2.3. 연고지 조정 (1984–1986)
1984시즌 수퍼리그에 현대와 럭키금성이 새로 참가하면서 기존 연고지 배분에 조정이 있었다. 할렐루야의 강원+충남+충북 연고지를 분할하여 할렐루야는 강원 연고 구단이 되고, 럭키금성이 충남+충북 연고 구단이 되었다. 유공의 서울+인천+경기 연고지는 유공이 서울, 현대가 인천+경기로 나누어 가졌다.
3. 최초 지역 연고지 제도 - 광역 지역 연고지 제도 시행 (1987–1989시즌)
1987년, K리그는 최초로 광역 지역 연고제를 도입하여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리그를 운영했다. 원년과 비교하여 구단별 연고지 현황은 할렐루야가 실업 축구단으로 전환하면서 비어있던 강원도 연고가 현대의 연고지로 재조정되고, 서울, 인천, 경기 광역 지역 연고지였던 유공은 서울을 제외하고 인천, 경기로 연고지 범위를 좁혔다.
당시 프로축구위원회는 1987년부터 서울을 연고지로 개방하지 않고 공동관리지역으로 묶어두었는데, 이는 1989년 일화 천마가 서울 연고 구단으로 리그에 참가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축구 종목 경기장으로 지정된 부산구덕운동장, 대구시민운동장, 대전한밭종합운동장이 사용 금지되면서, 대우는 부산 대신 마산, 럭키금성은 대전 대신 청주와 천안에서 홈경기를 개최하였다.
한편, 포항제철은 1987년 주연고지인 대구를 포기하고 포항을 새로운 연고지로 하여 대부분의 홈경기를 개최하면서 사실상 도시지역연고제로 전환하였으며, 대우 역시 1989년 부산, 경남 광역지역연고제하에서 경남 지역을 포기하고 부산을 연고지로 하여 대부분의 홈경기를 개최하며 사실상 도시지역연고제로 전환하였다.
1989년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이 서울시 단독 도시 연고 구단으로 창단하면서, 실질적으로 광역지역연고제를 전 프로축구단들이 시행한 해는 1987시즌 단 한 시즌이다.
* 1987-1989시즌 광역지역연고제 시기 중 실제 연고지에서의 홈경기 비율
| 구단 | 연고지 홈경기수 | 비연고지 홈경기수 | 홈경기수 합계 |
|---|---|---|---|
| 럭키금성 황소 | 충청 - 39경기(81%) | 비충청 - 9경기(19%) | 48경기 |
| 현대 호랑이 | 강원 - 40경기(87%) | 비강원 - 8경기(13%) | 48경기 |
3.1. 홈 앤드 어웨이 방식 도입
1987시즌부터 각 구단들은 광역지역연고제를 실시하여, 특정 도시를 순회하며 경기를 치르던 투어 리그 운영 시스템을 폐지하였다. 이에 따라 각 구단은 자신의 연고지에서 홈 경기를 개최하고, 상대 구단의 연고지를 방문하여 원정 경기를 치르는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을 도입하였다. 이는 한국 프로축구 사상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와 함께 입장 수입을 홈 구단이 관리하는 등 프로축구다운 운영이 시작되었으며, 아마추어 구단들을 배제하고 순수 프로 구단들만 리그에 참가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진정한 한국 프로축구의 원년은 1987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1987시즌 리그 참가 구단과 연고지는 다음과 같다.
| 구단 | 연고지 | 비고 |
|---|---|---|
| 포항제철 아톰즈 | 대구+경북 | 광역지역연고제 도입 |
| 유공 코끼리 | 인천+경기 | 광역지역연고제 도입 |
| 대우 로얄즈 | 부산+경남 | 광역지역연고제 도입 |
| 현대 호랑이 | 강원 | 광역지역연고제 도입 |
| 럭키금성 황소 | 충청 | 광역지역연고제 도입 |
1987시즌, 한국 프로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연고제(광역지역연고제)를 도입하여 모든 구단들이 연고지 내에서 홈경기를 개최하고 중립 도시에서의 경기를 최대한 줄이면서 지역 연고 정착을 위한 노력을 강력하게 시행했다.
3.2. 서울 연고지 공동 관리
K리그의 공식적인 지역 연고지 제도는 1987시즌 광역지역연고제로 시작되었다. 초창기에는 연고지 내에서만 홈경기를 개최하고 중립경기를 최대한 배제하는 방식으로 강력하게 시행되었다. 하지만 당시 지역별 거점 대도시에서의 흥행 실패로 인해 1990시즌부터 도시지역연고제로 전환이 시작되었고, 1991시즌 유공 코끼리를 마지막으로 모든 구단들이 도시지역연고제로 전환하였다.
3.3. 주말 2연전 도입과 폐지
1987년 K리그는 선수들의 체력 부담과 부상 위험 증가 등의 문제로 주말 2연전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1년 만에 폐지하였다.
3.4. 호남 연고지 확대 실패 (1984–1990)
1980년대 프로야구가 영호남 지역주의를 이용하여 인기를 얻자, 한국프로축구위원회는 프로축구 전체의 열기를 높이기 위해 호남 연고 프로축구팀 창단을 추진했다.
1984년부터 쌍방울 등의 단독 창단 시도가 있었으나 무산되었고, 1987년 9월에는 광주고속, 미원, 쌍방울 등 8개 호남 연고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호남 프로축구 주식회사' 설립을 합의하며 창단이 기정사실화되는 듯 했다.
그러나 기업 간 지분 문제 등으로 창단이 연기되었고, 미원그룹은 단독 창단을 발표했다가 경영진과의 마찰로 번복했다. 당시 호남 축구인들은 금호그룹의 소극적인 태도와, 호남팀 창단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한수일 전북축구협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아쉬워했다.
1988년 호남 연고 기업들이 다시 모여 창단을 추진했으나, 당시 총선에서 창단을 주도하던 정치인들이 낙선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이후 대한축구협회장 김우중 회장이 금호그룹 박성용 회장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지만, 아시아나항공 설립 이후에도 프로축구단 창단은 무산되었다.
일화 천마를 호남 연고 구단으로 출범시키기 위해 선수단 절반을 호남 출신으로 채우는 등 노력했지만, 통일교라는 이유로 호남 지역에서 반발이 일면서 또다시 실패했다. 1989년 김우중 회장은 재신임 후 호남 연고 프로축구단 창단에 주력하겠다고 밝혔으며, 1990년에도 금호그룹에 창단을 권유했지만 실패했다. 대한축구협회는 김우중 회장의 말대로 대우팀을 호남 연고로 하는 방안까지 고려했지만 모두 무산되었다.
4. 광역 지역 연고제에서 도시 지역 연고제로 전환 완료 (1990–1993시즌)
1990년부터 광역 지역 연고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도시 지역 연고제로의 전환이 추진되었다. K리그는 중소도시 위주로 운영되었으며, 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했다. 1998년 한국프로축구연맹 주최 공청회에서 김종환 박사는 대도시 연고지 구조의 프로야구와의 경쟁력 강화와 축구 저변 확대를 위한 바람직한 전략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서울, 대구, 광주를 포함한 대도시 위주 연고지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언론에서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의 강제 시행과 그 후유증으로 서울이라는 국내 프로스포츠 최대 시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과 프로야구와 달리 대도시 연고지를 활성화시키지 못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4.1. 도시 지역 연고제 도입
1990년 포항 (대구, 경북→포항), 부산 (부산, 경남→부산), 울산 (강원→울산), 서울 (충청→서울) 등 도시 지역 연고제가 공식적으로 시행되었다. 1991년 유공 (인천, 경기→서울)의 연고지 변경으로 모든 구단의 도시 지역 연고제 전환이 완료되었다.
하지만 당시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K리그 저변 확대와 활성화를 위해 중소도시 위주 연고지 정책에 대해 당시 비어있던 서울, 대구, 광주를 포함한 대도시 위주 연고지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2018년 11월 언론 인터뷰에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서울 연고 구단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이상한 현상을 만들어냈는데 정부지침이긴 하지만 프로축구 발전을 위해 당시에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던 정책이라고 비판하였다.
4.2. 지역 연고 정착 노력
1996년에 시행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과 완전 지역 연고제 이후 K리그는 안양, 부천, 천안, 수원 등과 같은 중소도시 연고지 위주로 운영되었다. 1998년에 열린 한국프로축구연맹 주최 공청회에서 김종환 스포츠마케팅 박사(2017년 기준으로 대한축구협회 집행부 일반이사)는 프로축구 마케팅을 위한 틈새 아이디어로 대도시 연고지 구조의 프로야구와의 경쟁력 강화와 축구 저변 확대를 위한 바람직한 전략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K리그 저변 확대와 활성화를 위해서 중소도시 위주 연고지 정책에 대해 당시 비어있던 서울, 대구, 광주를 포함한 대도시 위주 연고지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최근 언론에서는 과거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의 강제 시행과 그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서울이라는 국내 프로스포츠 최대 빅마켓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과 프로야구와 달리 대도시 연고지를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 의견이 존재한다.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도 2018년 11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서울 연고 구단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이상한 현상을 만들어냈는데 정부 지침이긴 하지만 프로축구 발전을 위해 당시에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던 정책이라고 비판하였다.
5. 완전 지역 연고지 제도 시행 (1996시즌–현재)
1996년 서울특별시 연고 공동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서울 연고 구단들이 타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완전 지역 연고제가 시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