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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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1995년 대한민국 정부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를 위해 서울 연고 3개 프로 축구 클럽을 다른 도시로 강제 이전시킨 정책이다. 이 정책은 축구의 전국적인 인기 확산과 축구 전용 구장 확보를 목표로 시행되었으나, 구단들의 반발과 팬들의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강행되었다. 유공 코끼리는 부천으로, 일화 천마는 천안으로, LG 치타스는 안양으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이후 2004년,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로 복귀하면서 정책은 철폐되었지만, 정부의 강압적인 정책 추진, 프로축구 성장 저해, 수도권 집중 심화 등 여러 문제점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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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경

1993년 김영삼 정부는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와 지방자치제도 확대 공약을 내걸고, 대한축구협회 주도로 대회 유치 활동을 적극 추진했다. 정부는 월드컵 유치를 위해 국내 축구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판단, 프로축구팀 창단 등 축구 발전 계획을 세웠다. 대한축구협회는 삼성, 금호 등 대기업에 프로축구단 창단을 권유했다.

1990년대 초, K리그는 도시지역연고제를 도입하여 구단들의 연고지 정착을 유도했다. 당시 서울 연고 3개 구단(일화 천마,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은 팬 확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LG 치타스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서울 지역에서 지역연고제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1995년 당시 K리그 참가 구단과 연고지 현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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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연맹은 축구의 전국적인 인기를 확산시키고,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를 위해 축구 전용 구장을 확보하고자 1995년까지 서울에 있던 3개 구단 (일화 천마,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을 다른 도시로 이전하도록 청와대와 함께 강제했다.

이 정책은 해당 클럽들과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았으며, 클럽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K리그 연맹은 클럽들이 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리그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연맹은 서울에 축구 전용 경기장을 건설할 경우, 3개 클럽 중 1개 클럽에게 서울로 복귀할 우선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3개 클럽 모두 이전에 동의했다.

3.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시행

1995년까지 서울에는 일화 천마,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 등 3개의 프로 축구 클럽이 있었다. K리그 연맹은 축구의 전국적인 인기를 확산시키고,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를 위해 축구 전용 구장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K리그와 청와대는 서울에 있는 3개 클럽 모두를 다른 도시로 이전하도록 강제했다.

이 정책은 해당 클럽들과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았으며, 클럽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K리그 연맹은 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리그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서울에 축구 전용 경기장을 건설할 경우, 3개 클럽 중 1개 클럽에게 서울로 복귀할 우선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하고, 3개 클럽 모두 이전에 동의했다. 이 계획이 발표되자, 많은 지방 정부들이 이 클럽들을 유치하기를 희망했다.

3.1. 지역 연고 재조정 논의 시작

1994년 미국 월드컵 이후 1994년 7월 13일 문화체육부가 직접 프로축구의 지역연고제 개선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고, 이에 발맞추어 대한축구협회는 서울 연고지 재조정을 발표하며 기존 추진 중이던 공동화 방안과 서울 연고 3개 구단들을 서울 지역 내에서 강남과 강북으로 분할하는 두 가지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였다.

3.2. 한국프로축구연맹 출범과 연고지 조정 조율

1994년 7월 20일 프로축구만을 전담하는 새로운 행정기구인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공식 출범하였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정부의 지원 계획에 따라 국내 프로팀 수를 늘리고 J리그를 5년 안에 추월한다는 목표 아래 연고지의 재조정, 서울 연고 3개 구단을 각 시, 도로 분산시키는 것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1994년 12월 16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역연고제 시행을 발표하였고, 12월 20일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서울 연고 3개 구단이 서울을 포함한 연고 도시를 선택하지 못 할 경우 강제로 연고 도시를 배정하고 구단의 의사와 관계없이 1995 시즌을 시행할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1994년 12월 20일 열린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는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 일화 천마가 몰려있는 서울 지역의 연고지 재배치는 현행대로 공동 구역으로 하자는 안과 지역적으로 3등분하자는 안이 나와 추후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논의하기로 하면서, 강제로 연고 도시가 배정되지는 않고 연고지 조정이 뒤로 미루어졌다.

3.3.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정책 결의

1995년 2월 13일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는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를 위한 전국적인 축구 열기 확산과 지방 축구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1995년 말까지 서울에 축구전용구장 건립계획을 수립하는 구단에 대해서는 서울 잔류를 허용하고, 그렇지 않은 구단은 1996년 1월 1일부로 연고지를 이전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서울 연고 3개 구단과 합의했다.

연고지 이전 이후에도 서울에 축구전용구장 건립을 약속하면 서울 연고 복귀 시 우선권을 준다는 단서 조항을 만들어, 당시 축구계 숙원인 서울의 축구전용구장 건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1996년 6월 1일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 확정에도 불구하고, 대한축구협회 정몽준 회장은 서울에서의 축구전용구장 건설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K리그 연맹은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와 축구의 전국적인 인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축구 전용 구장을 확보하고자 했다. K리그 연맹은 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리그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연맹은 서울에 축구 전용 경기장을 건설할 경우, 3개 클럽 중 1개 클럽에게 서울로 복귀할 우선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3.4. 3개 구단의 합의 번복과 강제 시행

서울 연고 구단들은 연고지 이전에 반발했으며, 특히 유공은 구단 운영 포기까지 거론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에 K리그 연맹은 1995년 연말까지 서울을 떠나지 않을 경우 1996시즌부터 리그 참여를 금지시키는 내부 방침을 정하고, 각 구단에 서울 이전 계획서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청와대는 프로축구연맹을 통해 이들 3개 구단에 연고지 이전 지침을 내렸다. 축구 관계자들은 2002 FIFA 월드컵 유치를 위해 정부와 자주 교류하던 축구계에서 정부에 압력을 넣어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결국 각 구단은 서울 연고지를 고수하기 위해 연맹의 정책에 저항하고 팬들의 반대 시위도 있었지만, 일화 천마,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는 다른 지방으로 이전하여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 강제 시행되었다.

3.4.1. 유공 코끼리의 이전

1996년 1월 4일, 구단 해체까지 불사하겠다던 유공 코끼리는 부천으로 연고지를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유공 코끼리는 부천 신시가지 2만 평 터에 550을 들여 2만 석 규모의 주경기장과 2개의 연습구장을 갖춘 전용구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또한 클럽 명칭을 유공 코끼리에서 부천 유공으로 변경했다.

유공 코끼리는 처음에는 서울에서 연고 이전을 해야 할 경우 구단을 해체하겠다고 K리그에 압력을 넣었다. 하지만 부천시가 2만 석 규모의 부천종합운동장과 훈련장 2개, 축구 전용 경기장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부천종합운동장이 완공될 때까지 임시 홈 구장으로 서울 목동운동장을 사용하기로 했다. 1996년 1월 4일, 정책에 따라 구단 명칭을 부천 유공으로 변경했다.

3.4.2. 일화 천마의 이전

1996년 3월 30일, 일화 천마는 선문대, 일화 청원공장통일교가 기반을 다져놓은 천안으로 연고지 이전을 발표했다. 대구에서 제안이 왔으나, 통일교가 대구에 연고가 없고 불교세가 강한 지역이라 무산되었다.

천안시는 1.2을 들여 오룡경기장축구전용구장으로 바꾸고, 백석동에 2001년까지 국제 규모의 종합운동장을 건설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따라 구단 명칭을 천안 일화 천마Cheonan Ilhwa Chunma영어로 변경했다.

3.4.3. LG 치타스의 이전

LG 치타스는 서울 연고지 고수를 강력히 희망했지만, 1996년 4월 27일 축구열기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안양으로 연고지를 결정하고, 안양 LG 치타스로 구단 명칭을 변경했다. 1996년 4월 26일, 연고 공동화 정책의 일환으로 창원으로의 연고 이전도 고려했으나, 해당 지역의 축구 인프라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안양으로 연고 이전을 최종 결정했다.

4. 주요 사건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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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사건
1993년 2월김영삼 정부,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 적극 추진 지시.
1993년 6월 1일대한축구협회 주도로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 활동 시작.
1993년 11월 1일김영삼 대통령, 월드컵 유치 활동에 대한 정부 지원 약속. 문화체육부 장관, 프로축구팀 창단을 비롯한 정부 주도 축구발전계획 발표.
1993년 말대한축구협회, 삼성과 금호에 프로축구단 창단 권유.
1994년 4월대한축구협회, 서울 연고 3개 구단 (일화 천마,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의 연고권 분산 추진.
1994년 5월 30일대한축구협회 정몽준 회장, 서울 연고 3개 구단 지방 분산 추진 언급.
1994년 7월 4일문화체육부, 프로축구 지역연고제 개선 계획 발표.
1994년 7월 15일대한축구협회, 서울 연고 3개 구단을 각 시,도에 분배 또는 서울 지역 내 분할 검토 발표.
1994년 7월 20일한국프로축구연맹 출범, J리그 추월 목표로 연고지 재조정 및 서울 연고 3개 구단 분산 계획 발표.
1994년 12월 16일연맹 이사회, 서울 연고 3개 구단 연고 도시 미선택 시 강제 배정 계획 발표.
1994년 12월 20일연맹 이사회, 서울 지역 내 분할 방식 제시로 연고 도시 결정 연기.
1995년 1월 12일연맹 이사회, 일화, 유공 - 서울 공동화 원칙 합의 시 이동, LG는 차기 이사회에서 논의.
1995년 1월 13일서울 연고 3개 구단 연고 도시 선택 불투명.
1995년 2월 13일연맹 이사회, 조건부 서울 공동화 결정 발표.
1995년 2월–10월 사이
(정확한 합의 시기는 미상)
서울 3개 구단, 연맹 이사회 결정에 합의.
1995년 10월 20일연맹 이사회, 유공 단장 서울 잔류 실패 시 구단 운영 포기 언급하며 합의 번복.
1995년 11월 초청와대, 연고 이전 지침 한국프로축구연맹에 하달. 3개 구단 공동화 불이행 시 연맹 리그 참가 불허 공지 발표.
1995년 12월서울 지역 3개 구단, 연고지 이전 준비와 잔류 모색 병행.
1996년 1월 4일유공 코끼리, 부천으로 연고지 이전 확정.
1996년 3월 29일일화 천마, 천안으로 연고지 이전 확정.
1996년 4월 26일LG 치타스, 안양으로 연고지 이전 확정.
2017년 9월 1일FC 서울 구단, 1995년 서울 공동화 결의에 관한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 문건 공개.

5. 정책의 철폐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시행 이후, 언론과 연맹은 서울 연고 프로축구 활성화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했다. 1999년 연맹은 서울 연고 구단을 다시 만들기로 결정했고, 2000년에는 창단 또는 이전을 통해 2개의 서울 연고 구단이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2002년 FIFA 월드컵 이후 서울특별시는 서울월드컵경기장 활용 방안으로 서울시 프로축구단 창단을 추진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서울시에 내야 할 서울월드컵경기장 건설 분담금을 프로축구단 유치를 통해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높은 창단 비용 때문에 국민은행, KT 등이 창단을 주저했다. 서울시는 축구단 창단 기업에 100을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금호그룹은 창단 계획을 철회했다.

한편, 안양 LG 치타스이석용 안양시장이 약속했던 축구 전용 구장과 훈련장, 숙소 부지 제공이 지켜지지 않았고, 2003 시즌 후 안양시와 시설 확충을 협의했지만,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지 못하자 2003년 12월 서울 연고 이전을 발표했다. 연맹은 신생팀 창단 우선 원칙을 내세웠지만, 대한축구협회의 서울월드컵경기장 건설 분담금 문제와 맞물려 결국 기존 구단의 서울 연고 이전이 허용되었다.

부산 아이콘스도 서울 이전을 희망했으나 철회했고, 결국 안양 LG 치타스가 2004년 3월 서울로 복귀하면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사실상 철폐되었다.

5.1. 정책 시행 직후의 비판과 변화

1996년 정책 시행 이후 동아일보 등 언론에서는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위주로 프로축구 연고지를 재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1998년 11월 연맹 주최 공청회에서도 서울 프로축구 활성화 대책 수립에 대한 의견이 제시되었고, 연맹은 1999년부터 서울 연고지에서 중립경기를 확대하겠다고 답변하며 1999년 시즌 5경기를 동대문구장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1999년 10월, 연맹은 서울 연고 구단을 다시 만들기로 결정했으며, 2000년 5월 12일 이사회에서 창단이든 이전이든 2개의 서울 연고 구단이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서울 연고 구단은 창단 가입금 10억 원과 발전기금 242억 원 이상을 내야 했다. 단, 이 결정은 ‘선 신생팀 창단, 후 기존 구단 이전’ 원칙이었다.

이러한 연맹의 공동화 정책 철폐 움직임과 함께 과거 서울 연고 3개 구단이 서울 복귀에 관심을 나타냈다. 추적 60분 2001년 3월 25일 방송분에서 성남시 축구협회장은 1999년 9월 당시 부천 SK 단장에게서 안양 LG가 상암구장 사용을 신청하니 부천 SK도 서울 상암구장 사용 신청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2000년 6월 당시 안양 LG 치타스 단장은 연맹에서 기존 구단의 서울 입성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니 서울 연고지 복귀 가능성을 두고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5.2. 서울시 프로축구단 창단 논의

2002년 FIFA 월드컵이 끝난 후, 서울특별시는 서울월드컵경기장 활용 방안으로 대한축구협회와 함께 서울시 프로축구구단 창단을 논의했다. 당시 서울월드컵경기장 건설비 2천억원 중 250억원 가량을 서울특별시에게 내야 하는 대한축구협회는 이 금액을 2~3개의 프로축구구단을 유치하여 해결하려고 했다.

2003년, 국민은행KT가 축구단 창단을 검토하였으나, 축구발전기금과 연맹가입금 등을 포함한 창단 비용(약 250억원)이 부담되어 쉽게 창단을 결정하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서울 프로축구단 창단에 걸림돌이 되는 분담금 250억원의 탕감을 서울시에 요청했지만, 서울시는 창단 계획을 먼저 제출하면 탕감을 논의해 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대한축구협회는 기존 K리그 팀들 중에서도 분담금이 100억원 정도로 줄어든다면 연고지 이전을 하겠다는 팀들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서울시는 2003년 9월 3일, 서울 연고 프로축구팀을 창단하는 기업에 100을 출연하는 '축구발전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금호그룹이 창단을 검토했으나, 2003년 10월 13일 창단 계획 백지화를 발표했다.

5.3. 안양 LG의 이전 선언과 '선 신생팀 창단' 원칙 폐지

이석용 안양시장이 약속했던 축구 전용 구장과 훈련장, 숙소 부지 제공은 지켜지지 않았다. 2003 시즌 후 안양시와 시설 확충을 협의했지만, 안양 LG 치타스는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지 못했다.

결국 2003년 12월 16일, 안양 LG 치타스는 누적 적자를 해소하고 흑자 경영으로 축구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구단에 따르면 서울시와 원칙적인 이전 합의를 마쳤고, 서울시도 환영 의사를 밝혔지만, 프로축구연맹은 "기존 팀의 이전은 언제든지 가능하다"면서도 신생팀 창단 우선 원칙을 내세웠다.

2002 FIFA 월드컵 이후 대한축구협회서울월드컵경기장 건설 분담금으로 서울특별시청에 25000을 지급해야 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서울에 새로운 클럽을 창단하여 분담금 전액을 납부하게 하려 했으나, 무산되었다. 서울특별시청은 새로운 서울 클럽에 대한 잠재적 투자가 분담금 액수로 인해 어려워지자, 10000을 삭감하기로 합의했다. 대한축구협회도 분담금 중 10000을 지급하여, 5000만 남게 되었다.

안양 LG 치타스는 서울로의 연고 이전을 선언했고 서울특별시청은 이를 환영했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신생 클럽 창단을 우선시했다. 그러나 KT, 금호아시아나그룹 등은 서울 연고 클럽 창단을 거부했다. 2004년 2월 6일, K리그 연맹은 기존 K리그 클럽의 서울 연고 이전을 공식 허용하고 모든 K리그 클럽에 연고 이전 제안을 보냈다. 대한축구협회는 기존 클럽이 서울로 이전하려면 15000을 지불해야 한다고 발표했지만, 며칠 후 분담금을 절반인 7500으로 삭감했다.

부산 아이콘스도 서울 연고 이전을 희망했지만, 이후 철회했다. 안양 LG 치타스는 2004년 3월 10일 서울로 복귀했다.

5.4. 부산 아이콘스의 이전 선언과 철회, 그리고 안양 LG의 서울 입성

2004년 1월 29일, 서울시는 30대 대기업에 창단을 권유했지만 창단 의향서를 제출한 기업이 없었고, 1월 30일 공개 모집 공고를 낸 후 2월 11일까지 기존 K리그 구단들에게 연고 이전 의향서를 받기로 하였다.

대한축구협회와 K리그로부터 제안을 받은 KT, 금호아시아나그룹 등은 서울 연고 클럽 창단을 거부했다. 2004년 2월 6일, K리그 연맹은 기존 K리그 클럽의 서울 연고 이전을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모든 K리그 클럽에 연고 이전 제안을 보냈다.

부산 아이콘스 역시 서울 연고 이전을 희망한다고 밝혔지만, 이후 의사를 철회했다. 안양 LG 치타스는 2004년 3월 10일 서울로 복귀했다.

6. 비판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여러 문제점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 프로축구단 관계자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서울 인구는 1041만여 명이었고 연고지 이전을 한 부천, 안양, 천안 인구를 모두 합쳐도 173만여 명에 불과했다며, 세계적으로 볼 때 연고지는 더 큰 시장으로 이전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를 뒤집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부의 규제로 인해 경쟁 스포츠인 프로야구가 최대 시장인 서울을 무혈 점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스포츠동아의 스포츠 2부 부장은 국내 프로스포츠 최대 시장인 서울 연고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은 당시 서울 연고지가 공동화(空洞化)되었기 때문이라며, 이는 한심스럽고 우매한 결정이었다고 비판했다.

풋볼리스트 기자는 프로축구 부흥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책이 시행되었지만, 결국 프로축구의 성장을 가로막아 폐지되었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 기자 역시 사람과 돈이 몰린, 프로스포츠 입장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덤벼들어야 할 시장을 다 같이 비워놓자는 희한한 발상이었다며, 대한축구협회가 나서서 프로축구 발전을 저해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스포츠서울 기자는 서울 연고 3개 구단을 밀어낼 때 중소도시인 안양, 부천, 천안보다는 월드컵 경기장을 유치한 더 큰 규모의 광역시로 이동하게 했다면 더 효과가 컸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2018년 11월 언론 인터뷰에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은 서울 연고 구단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이상한 현상을 만들어냈으며, 정부 지침이긴 하지만 프로축구 발전을 위해 당시에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7. 기타

FC 서울FC 안양은 2017년 FA컵에서, 제주 유나이티드와 부천 FC 1995는 2020년 K리그2에서 각각 맞대결을 펼친 적이 있는데, 이 경기를 언론 등에서 "연고이전 더비"라고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