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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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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정은 삼국 시대 촉한의 반란군 지도자이다. 218년 신도현을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223년 옹개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왕을 칭하며 촉한에 대항했다. 오나라에 투항한 옹개와 함께 영창군을 공격했으나 실패했고, 225년 제갈량에게 붙잡혀 처형당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맹획의 사주를 받아 반란을 일으키고 제갈량의 이간계에 속아 옹개와 주포를 죽인 후 익주태수가 되는 인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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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중국)

2. 생애

고정은 건안 23년(218년)에 군사를 일으켜 신도현[2]을 포위했으나, 유비가 임명한 건위태수 이엄의 구원군에 격파되어 도주했다.[3]

건흥 원년(223년), 옹개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고, 장가태수 주포도 이에 호응했다.[4] 유비 사후, 고정은 월수태수 초황(焦璜)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촉한에 반란을 일으켰다.[5] 오나라에 투항한 옹개가 영창태수가 되었으나, 영창군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정은 옹개, 주포와 함께 영창군을 압박했으나 굴복시키지 못했다.[6]

건흥 3년(225년), 제갈량이 남방 4군(건위군, 장가군, 익주군, 영창군)의 난을 평정하면서[4] 옹개는 고정의 부하에게 살해당했고,[6] 고정은 제갈량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5]

2. 1. 초기 활동

218년(건안 23년), 고정은 군사를 보내 신도현[2]을 포위했으나, 유비가 임명한 건위태수 이엄의 구원군에 격파되어 도주했다.[3]

223년(건흥 원년), 옹개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으며, 장가태수 주포도 이에 호응했다.[4] 유비 사후, 고정은 월수태수 초황(焦璜)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촉한에 반란을 일으켰다.[5] 오나라에 투항한 옹개가 영창태수가 되었으나, 영창군의 오관연공조 여개 등은 이에 불복하고 옹개, 주포와 함께 온 고정을 핍박했으나 굴복시키지 못했다.[6]

2. 2. 반란과 죽음

218년 (건안 23년)에 병사를 보내 신도현[2]을 포위했으나, 유비가 임명한 건위태수 이엄의 구원군에 격파당해 도주했다.[3]

223년 (건흥 원년) 옹개와 함께 반란한 상태에서, 장가태수 주포도 반란을 일으켰다.[4] 유비가 죽은 후 고정은 월수태수 초황(焦璜)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촉한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5] 오나라에 투항하여 영창태수가 된 옹개를 영창군의 오관연공조 여개 등 영창군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자, 고정도 옹개, 주포와 함께 영창군을 압박했으나 굴복시키지 못했다.[6]

225년 (건흥 3년) 제갈량은 남방 4군(건위군, 장가군, 익주군, 영창군)의 난을 모두 평정하였고,[4] 옹개는 고정의 부하에게 살해당하였으나,[6] 결국 고정은 제갈량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5]

2. 3. 삼국지연의

유비 사후 촉에 불만을 품고, 남만왕 맹획에게 부추김을 받아 다른 익주 2군의 태수와 동조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부하 악환제갈량의 포로가 되고, 제갈량의 "이간계"에 의해 옹개주포의 사이가 갈라진다. 더군다나 옹개가 악환에게 토벌당한다.[1] 이 때문에 고정은 제갈량에게 귀순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제갈량에게 의심을 받아, 주포의 수급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1] 고정은 명령에 따라 주포를 공격하여 멸망시켰기 때문에, 그 공적으로 익주 남부 삼군을 맡게 되는 설정이다.[1]

참조

[1] 서적 華陽国志
[2] 문서 광한군의 속현이다
[3] 서적 삼국지 권40 유팽요이유위양전 http://zh.wikisource[...]
[4] 서적 삼국지 권33 후주전 http://zh.wikisource[...]
[5] 서적 화양국지 권4 남중지 http://zh.wikisource[...]
[6] 서적 삼국지 권43 황이여마황장전 http://zh.wiki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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