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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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예는 조형 예술의 한 갈래로, 순수 미술과 디자인 사이에 위치하며 실용성과 미학적 가치를 모두 중시하는 분야이다. 한국에서는 전통 공예와 현대 공예의 정의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으며, 재료와 제작 기법에 따라 도자, 칠, 금속, 상아, 목재, 유리, 섬유, 종이 공예 등으로 분류된다. 공예는 고대부터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으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독특한 특징을 나타낸다.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미술 공예 운동은 장인 정신을 강조했으며, 현대에는 스튜디오 공예가 발달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전통 공예 보존 및 육성을 위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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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예의 특징 및 정의
공예는 조형 예술의 한 갈래로서 순수 미술과 디자인 사이에 위치하며, 실용성과 미학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현대 미술 또는 응용 미술의 하나로 간주된다.[1]
공예 기술의 본질은 도구와 재료를 경험하는 특별한 방식, 관찰 학습과 모방, 공예 이해의 집단적 본질, 생산 과정에서 재료의 협력자 역할 등으로 설명된다.[2],[3],[4],[5],[6],[7]
2. 1. 한국 공예의 정의 문제
한국에서는 서구에서 도입된 현대 공예와 전통적으로 계승된 전통 공예 간의 충돌로 인해 공예를 정의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1] 하지만,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충돌은 한국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도 나타나는 경향이다.[1] 근대 디자인 형성 이후, 동서양 공예의 정의는 그 모호성으로 인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1]3. 공예의 분류
공예는 조형예술의 다른 부분에 비해 그 고유한 영역을 규정하기가 어렵다. 근대 이전에는 공업과 미술의 중간 위치를 점유하고 있으며, 특히 19세기 중엽 이후부터는 점차로 공업적인 요소가 도입되는 한편, 미술과의 교류가 광범위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작가의 수공예로 만들어진 일품제작(一品製作)으로서 특히 완상에 중점을 두고 실용성에는 별로 치중하지 않은 것을 미술공예라 하고, 일정한 규격을 바탕으로 기계에 의해서 양산되는 것을 생산공예라고 하여 서로 대립시키기도 한다. 산업혁명을 경계로 하여 공예의 양상이 일변해서 대세로서는 생산공예 편으로 기울고 있으나, 오늘날에도 수공예(handicraft)는 존중되며, 전통공예라는 명칭으로 기계공예와 구별된다. 민예(民藝) 또한 이 수공예의 일종이며 특정 작가의 것이 아니라 지역적·민족적 특성이 농후한 것이다.
수공예는 유용하고 장식적인 장치를 완전히 손으로 만들거나 간단한 도구만 사용하여 만드는 유형의 작업이다. 품목의 개별적인 장인 정신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며, 이러한 품목은 종종 문화적 및/또는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 대량 생산이나 기계로 만든 품목은 수공예품이 아니다. 오스만 제국과 같은 지역에서 공예가 시작될 때[8] 상품 제작에 숙련된 도시 구성원들에게 시내 중심부에 상점을 열도록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사람들은 점차 자급 농민(이웃과 거래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서 상품을 만드는) 역할을 멈추고 오늘날 우리가 "장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대표하기 시작했다.
수공예는 전통적인 상품 외에도 공예 관행과 기술을 결합하여 컴퓨팅 분야에 기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968년 아폴로 8호 우주선의 코어 메모리는 손으로 전자기 코어 주위와 통과하여 엮은 전선으로 구성되었다. 코어 로프 메모리에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료하는 데 사용된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다.[9]
공예와 장인은 학문적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 스테파니 번은 인류학자가 되기 전에는 예술가였으며, 공예 과정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발전시켰다. 그녀는 물건이 "제품"이 되기 전에 일어나는 일이 연구할 가치가 있는 영역이라고 주장한다.[10]
3. 1. 재료에 따른 분류
공예는 사용되는 재료에 따라 여러 종류로 분류된다.- 도자공예(ceramics)는 도토(陶土)를 빚어서 구워 만드는 공예이며 자기(磁器), 도기(陶器), 토기(土器)로 구분된다.
- 칠공예는 동양 특산의 칠(lacquer)을 사용하여 만드는 장식가공(裝飾加工)을 총칭한다.
- 금속공예(metal craft)는 가공하는 방법에 따라서 주금(鑄金), 조금(彫金), 단금(鍛金), 판금(板金) 등으로 분류된다.
- 상아공예는 상아를 세공하여 만드는 공예이다.
- 목재공예(joinery)는 가구, 집기류가 주를 이룬다.
- 죽세공(竹細工)은 각종 죽재를 여러 가지 기법을 사용하여 가구, 기구(器具), 완구 등을 만드는 공예이다.
- 유리공예는 규산염초자에 착색 성분을 가해서 1400°C 이상의 고열로 용해하여 각종 기물을 만드는 것이다.
- 섬유공예(textile art)는 수공예와 공업을 통해서 포백(布帛)을 직조하고 편물하고 염색하고, 또는 자수(刺繡)하는 공작을 포함한다.
- 종이공예는 닥나무를 소재로 만들어진 한지 공예가 대표적이다.
- 이 밖에도 옥, 수정, 호박 등 보석이나 돌을 이용한 석(石)공예와 고무를 소재로 한 고무 공예, 다양한 형태와 재료로 만드는 비누 공예 등이 있다.
3. 2. 제작 기법에 따른 분류 (일본어 위키백과 참고)

인간의 창의성에는 예술, 공예, 과학의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예술은 직관적인 감각, 시각, 표현에 의존하고, 공예는 정교한 기술에, 과학은 지식에 의존한다.
4. 한국 공예의 역사
예로부터 미술성을 추구한 고가의 일품부터 실용적인 면만을 강조한 저렴한 대량 생산품까지 다양한 공예품이 존재했으며, 감상할 만한 것을 '''상수물(上手物)'''이라고 불렀고, 간소한 일반용품을 '''하수물(下手物)'''라고 불렀다.
에도 시대에는 실용품을 만드는 장인들은 일을 찾아 '떠돌이 장인'으로서 여러 지역으로 가서 기술을 퍼뜨렸다. 현재의 니가타현쓰바메시에서는 센다이에서 온 떠돌이 장인에 의해 추기(鎚起) 동기 기술이 전해졌고, 현대에도 타마가와도가 기술을 계승하는 등 지방 산업에 영향을 준 예가 있다.[11]
근대 공예의 본격적인 연구와 산업 육성은 1928년 (쇼와 3년)에 상공성이 미야기현센다이시에 센다이 육군 유년 학교 부지에 구니이 키타로를 소장으로 하는 "국립 공예 지도소"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공예 정책으로 인해 조선의 전통 공예는 쇠퇴하고 일본식 공예가 유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전통 공예의 맥을 잇고 민족 고유의 공예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꾸준히 이어졌다.
1940년 (쇼와 15년)에 본소가 도쿄로 이전되어 각지에 지도소가 설립되었고, 1959년 (쇼와 34년)에는 "산업 공예 시험소"로 개편되어 공업 기술 연구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1967년 (쇼와 42년)에 공업 기술 시험소로 개편되면서 연구는 공업 분야가 주류가 되었고, 국가 주도의 공예 연구는 종료되었다.
전통적인 민구 등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되면서 대대로 사용되어 온 것들 중에는 골동품으로 현존하는 것도 적지 않으며, "생활 골동" 분야에서는 이러한 시대를 거쳐 이용되어 온 공예품을 귀하게 여겨 고가로 매매하기도 한다.
4. 1. 삼국시대 이전
고조선 시대의 청동기 문화는 정교한 청동 거울, 청동 검 등을 통해 확인된다.4. 2. 삼국시대
'''고구려'''는 강한 기상을 담은 금속 공예와 웅장한 스케일의 고분 벽화 등이 발달했다. '''백제'''는 섬세하고 우아한 금동대향로를 비롯해 정교한 금속 공예 기술이 돋보였다. '''신라'''는 화려한 금관, 장신구 등 금속 공예가 발달했으며, 섬세한 불교 공예품도 제작되었다.4. 3. 통일신라시대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 문화가 융성하면서 불교 공예가 크게 발전하였다. 성덕대왕신종은 뛰어난 주조 기술과 아름다운 문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4. 4. 고려시대
고려를 대표하는 공예품으로는 비색 청자가 있으며, 상감 기법 등 독창적인 기술이 사용되었다.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옻칠한 표면에 붙여 장식하는 나전칠기는 고려시대에 크게 발달했다. 불교 관련 금속공예품이 많이 제작되었으며, 정교한 기술을 보여준다.4. 5. 조선시대
조선 시대의 백자는 실용성과 절제미를 강조하며 이 시대를 대표하는 공예품이다. 분청사기는 자유분방하고 활기찬 멋을 보여준다. 목공예 분야에서는 사랑방 가구, 반닫이 등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목가구가 제작되었다. 민화는 민중들의 삶과 소망을 담아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했다.4. 6. 근대 (일제강점기)
1928년 상공성 주도로 공예 지도소가 설립되어 근대 공예 연구와 산업 육성에 기여했다.[12] 이는 세계 대공황으로 악화된 지방 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책이었다. 브루노 타우트 등이 지도자로 초빙되어 공예 기술자를 육성했고, 겐모치 이사무 등은 연구자로서 공예 뉴스를 발행하여 공예를 소개했다.[12] 그러나 일제의 공예 정책으로 인해 조선의 전통 공예는 쇠퇴하고 일본식 공예가 유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전통 공예의 맥을 잇고 민족 고유의 공예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꾸준히 이어졌다.4. 7. 현대
현대 공예는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시도를 통해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1928년 상공성(현재의 경제산업성)은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구니이 키타로를 소장으로 하는 "국립 공예 지도소"를 설립하여 근대 공예 연구와 산업 육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12] 이는 세계 대공황으로 악화된 지방 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책의 일환이었다.[12] 기시 노부스케와 요시노 신지같은 상공성 관료들이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브루노 타우트 등이 지도자로 초빙되어 공예 기술자 육성에 힘썼으며, 겐모치 이사무 등은 연구자로서 공예 소개 및 연구에 매진하였다.[12]
1940년에는 본소가 도쿄로 이전하고 각지에 지도소가 설립되었으며, 1959년에는 "산업 공예 시험소"로 개편되어 공업 기술 연구도 함께 이루어졌다.[12] 그러나 1967년 공업 기술 시험소로 개편되면서 국가 주도의 공예 연구는 종료되었다.[12] 이후 시험소는 산업기술종합연구소로 개편되었지만, 공예 및 디자인 연구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12]
센다이의 지도소는 산총연 동북 센터에 통합되었지만, 설립 당시의 자료와 시제품은 보존되어 동북 센터 내 "공예 시제품 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다.[12] 또한 지도소 부지에 세워진 센다이 시립 미야기노 중학교에는 "근대 공예 발상지" 기념 플레이트가 남아 있다.
오늘날에도 전통 공예 기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며, 현대적인 디자인과 새로운 재료, 기법을 도입하여 실험적인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공예는 문화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중요한 분야로 인식되고 있다. 전통 민구 등 실용적인 용도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공예품들은 골동품으로 현존하며, "생활 골동" 분야에서는 이러한 공예품들이 고가에 매매되기도 한다.
5. 현대의 공예
현대 사회에서 공예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며, 조형 예술의 한 갈래로서 순수 미술과 디자인 사이에 위치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용성이 강조되기는 하지만 미학적 가치 또한 중요시되는 현대 미술, 혹은 응용 미술의 하나이다.
서구에서 도입된 현대 공예와 전통적으로 계승된 전통 공예 간의 충돌로 인하여 한국에서 공예를 정의하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과거와 현재의 충돌은 한국만이 아닌 서구에서도 보여지는 경향이다. 근대 디자인의 형성 이후, 동서양 공예의 정의는 그 모호성으로 인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오늘날 공예는 대량 생산 등 공업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일반 대중을 위한 저렴하고 실용적인 기구는 대량 생산품으로 충당하고, 특히 취미성, 의장성, 혹은 미술성이 요구되는 분야 등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제작되는 기구를 공예품이라 하고, 그것을 만드는 행위를 공예라고 구분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산업이 지금보다 더 소박했던 시절에는, 모든 공업 제품은 가내 수공업, 매뉴팩처 등 장인(견습공에서 기능공, 장인이 된 자)이 한 점 한 점 제작하는 것뿐이었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취미성이나 미술성을 추구하는 고가의 공예품에서, 실용성만을 추구하는 저렴한 공예품까지 다양한 것들이 존재했다.
현대 공예에서는 그것을 제작하는 행위 자체를 실리를 추구하지 않는 취미로 위치 지어 행하거나, 고도의 미술성을 실용품에 담기 위한 창작 활동(공예가에 의한 미술 공예)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전통 전통 문화로서 과거 전통 공예의 기술을 전승·부흥하려는 노력과, 과거에 한 번 쇠퇴하여 사라진 공예 기술을 재현하는 활동도 보인다.
공예는 전통 산업 등 확립된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의 분업 체제가 취해지기도 하지만, 여러 공정을 한 명의 장인이 모두 담당하거나, 어떤 것들은 거의 전부를 혼자 힘으로 수작업으로 제품을 만든다. 취미로 하는 경우는 그렇다 하더라도, 업태로서의 공예에서는 소재(재료)의 선정부터 다양한 공정에서 인건비가 많이 드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그 제품도 고가가 되기 쉽다. 그러나 공예를 통해 이루어지는 고도의 미술성이나 정교함, 혹은 소박하거나 개성적인 요소가 호평을 받아, 이에 대한 대가를 아끼지 않는 애호가·호사가 등에 의해 요구받고 있다.
5. 1. 미술 공예 운동 (19세기 후반)
미술 공예 운동은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며, 중세 시대를 연상시키는 장식 스타일이 특징이었다. 이 운동과 관련된 주요 예술가는 윌리엄 모리스이며, 그의 작품은 존 러스킨의 저작으로 강화되었다. 이 운동은 장인 정신의 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시에 예술이 경제 개혁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8]5. 2. 스튜디오 공예
개별 예술가 또는 소규모 그룹으로 작업하는 독립 예술가들이 실천하는 공예를 스튜디오 공예라고 한다. 스튜디오 공예에는 스튜디오 도예, 금속 공예, 직조, 목선반, 종이 및 기타 형태의 목공예, 유리 불기 및 유리 공예가 포함된다.[10]5. 3. 대한민국 공예의 현황
현대 대한민국 공예는 고도의 미술성을 실용품에 담기 위한 창작 활동(공예가에 의한 미술 공예)과 전통 문화로서 과거 전통 공예 기술의 전승·부흥을 꾀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전통 공예를 보존하고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며, 공예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공예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과거에 쇠퇴하여 사라진 공예 기술을 재현하는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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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ft learning as perceptual transformation: getting 'the feel' in the wooden boat work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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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ambri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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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al Fabulations: reworking the methods and margins of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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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rawing Anthropology: Materials, Movements, 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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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川堂の歴史 | 玉川堂について
http://www.gyoku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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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1984年に陶芸家の井口峰幸が名古屋工業技術研究所の特別研究生として釉薬の研究に従事した事例がある。
[13]
웹사이트
コトバンク パン・フラワー
https://kotobank.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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