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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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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지는 닥나무 껍질과 황촉규를 주원료로 하여 만들어지는 한국 전통 종이이다. 삼국 시대에 제지술이 전래된 이후, 고려 시대에는 닥종이가 중국에서 '고려지'로 불리며 명성을 얻었고, 팔만대장경과 직지심체요절 제작에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 주도로 한지 생산이 관리되었으며, 다양한 생활용품과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현대에는 서예, 공예, 문화재 복원 등 특수한 분야에 사용되며, 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된 한지장(장인)에 의해 전통 기술이 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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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개요
전주 한지 문화 축제에서 한지 제작 과정 시연
전주 한지 문화 축제에서 한지 제작 과정 시연
종류창호지
장판지
백지
색지
닥종이
갱지
습자지
용도서예
회화
공예
닥종이 공예
한지 공예
지승 공예
창호
벽지
장판
포장
기록
필기
어원
어원한국의 종이
역사
기원삼국 시대 이전
초기 재료
주요 생산지전주
재료
주재료닥나무
부재료무궁화 뿌리

해초
제작 과정
재료 준비닥나무 껍질 벗기기
삶기
햇볕에 말리기
닥풀 만들기닥풀 뿌리 채취
물에 불리기
찧기
종이 뜨기닥 섬유 물에 풀기
닥풀물 첨가
외발 또는 쌍발 사용하여 종이 뜨기
물기 제거뜬 종이 압착
물기 제거
건조종이 말리기
특징
내구성질기고 오래감
통기성공기 잘 통함
보온성따뜻함
활용성다양한 용도로 사용 가능
문화재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
관련 정보
관련 축제전주 한지 문화 축제
관련 인물장인

2. 역사

한지는 삼국 시대부터 시작되어 조선 시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했다. 한지라는 용어는 조선 시대 말엽에 전래된 서양식 기계 종이와 전통 종이를 구분하여 부르게 되면서 생긴 말이다.[22]

고려 시대에는 고려지(高麗紙)라 불리는 한지가 그 품질의 우수성으로 인해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송나라의 손목(孫穆)은 《계림유사》에서 고려의 닥종이는 빛이 희고 윤이 나서 사랑스러울 정도라고 극찬하였다. 조선 시대 초기에도 종이 산업은 지속적으로 번성하여 책, 가정용품, 부채, 담뱃대 등 다양한 품목을 통해 한국인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었다.

조선 시대의 종이는 삼으로 만들어져 기름으로 코팅되었으며, 우산, 방수 코트, 모자, 창문, 문 등에 사용될 정도로 튼튼했지만, 현재의 한지와는 다른 종류였다. 명나라의 동월(董越)은 조선에 와서 종이를 태워 섬유임을 확인할 때까지 중국에서는 고려지가 견지(繭紙)라고도 불리며 비단을 섞어 만든 것으로 여겨졌다. 조선에서는 종이 장인을 지장(紙匠)이라 불렀으며, 이들은 조지서(造紙署)라는 관청에 소속되어 있었다.

현대에는 한지가 가진 다양한 특성이 주목받으며 특수한 분야에서 주로 사용된다. 한지는 다른 종이보다 먹이 알맞게 스며들어 서예동양화를 그릴 때, 새해 인사 카드나 편지지, 편지 봉투, 포장지 등으로 쓰인다. 최근에는 한지가 전통 공예품으로도 거듭나고 있으며, 한지로 만든 닥종이 인형이 대표적이다.

2. 1. 삼국 시대

중국의 채륜의 제지술이 삼국시대에 전래되어 개량되고 정착되었으리라 추정된다.[19] 1931년 낙랑군의 묘지에서 한지 조각이 발견되었다.[20] 제지술은 중국에서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 전해졌으며, 한국에서의 기원은 3세기에서 6세기 말 사이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삼과 모시 헝겊 조각(마지|maji한국어)으로 거칠게 종이를 만들었다.[9]

삼국 시대(기원전 57년~서기 668년) 각국은 공식적인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종이를 사용했다. 593년 고구려에 제지법이 전해졌으며, 610년 고구려 승려 담징이 일본에 종이와 먹 제작법을 전하였다.[10][21]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은 불교 다라니경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대한민국 국보 제126호로 지정된 이 경전은 704년경 한지에 인쇄되었으며, 종이 제작자 이름이 새겨져 있고, 여전히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신라는 제지 산업을 한국 문화에 깊이 정착시켜 '계림지'라 불렀다.

2. 2. 고려 시대

고려 시대는 한지의 전성기로, 인쇄술의 발전과 함께 한지의 품질과 사용량이 크게 늘었다. 고려에서 생산된 종이, 즉 고려지(高麗紙)는 그 품질이 우수하여 중국에서도 널리 알려졌으며, 송나라의 손목(孫穆)은 《계림유사》에서 고려의 닥종이가 희고 윤이 나서 사랑스러울 정도라고 극찬했다. 고려지는 중국과의 주요 무역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23]

4대 일 칸 아르군필리프 4세에게 보낸 1289년 몽골어와 고전 몽골 문자로 된 편지, 서문의 세부 사항. 이 편지는 부스카렐 드 기솔페에 의해 프랑스 왕에게 보내졌다. 봉인은 대칸의 것으로, 한자 "輔國安民之寶"가 새겨져 있으며, 이는 "국가를 돕고 백성에게 평화를 제공하는 보물"을 의미한다. 종이는 고려 시대에 제작된 것이다. x. 프랑스 국립 문서 보관소.


고려 시대에는 지폐, 불교 경전, 의학 서적, 역사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지가 사용되었으며, 정부는 닥나무 재배와 한지 생산을 장려하여 12세기에는 전국적으로 닥나무가 재배되었다.

이 시기에는 한국 인쇄술과 종이 역사에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팔만대장경의 제작이다. 몽골의 침략으로 소실된 것을 다시 제작하여 1251년에 완성된 팔만대장경은 8만 개가 넘는 목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다. 두 번째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직지심체요절)의 인쇄이다. 1377년에 금속 활자로 인쇄된 이 책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 인쇄본으로,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앞선다. 직지심체요절은 한지로 인쇄되었으며,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2. 3. 조선 시대

조선 시대에는 국가 주도로 태종 때부터 조지서를 설치하여 한지 생산을 관리하고 품질 개량을 추진했다.[23] 닥나무 외에 색지, 소나무 껍질, 볏짚, 대나무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한지를 제작했는데, 이는 책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종이 생산 전담 행정 기관을 만들었으며, 군대에 방수 기능과 단열성이 뛰어나고 화살과 칼로부터 보호해 주는 종이 갑옷(지갑)을 공급했다.[23]

한지는 책, 가정용품, 부채, 담뱃대 등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군사적 목적으로도 활용되었다. 기름을 먹인 한지는 1450년경 온실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는데, 천연 재료로 만들어진 종이가 온도, 습도 및 빛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15세기부터 불교 경전을 위해 이미 한지를 생산하고 있던 불교 승려들에게 한지 생산량을 늘리도록 압박했다.

1884년 서양식 종이 대량 생산 방식이 도입되면서 전통 한지 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했다.[23]

2. 4. 현대

19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전통 가옥이 사라지면서 한지 수요가 감소했다.[11] 값싼 중국산 종이의 등장으로 국내 한지 산업이 위협받고 있다.[12][13][14][15][16]

2009년 기준 대한민국에는 26개의 한지 공장이 운영되고 있다.[11][12][13][14][15][16] 이 공장들은 예술가, 서예가, 보존 전문가, 사찰, 일반 대중을 위해 한지를 생산한다.

현대 한국 종이 예술의 예


근대 이후의 한지도 전통적인 기법이 사용되는 한편, 화지(和紙)나 양지(洋紙)의 영향도 받아 수입 닥나무와 표백제가 사용되는 한지도 많아졌다.

최근 대한민국에서는 한지를 사용하는 한지공예라는 전통 공예가 재조명되어, 소품함이나 램프, 그릇 등 다양한 공예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지의 산지로는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가 있다.

3. 제지법

한지는 닥나무 껍질과 황촉규(닥풀)를 주원료로 하여 만들어진다. 닥나무는 아시아에서 흔히 재배되는 식물로, 햇볕이 잘 드는 산기슭에서 주로 자라며, 보통 3미터까지 성장한다. 한국 역사에서 사람들은 이 나무의 섬유로 옷을 만들었고, 고려 시대부터 이를 종이의 원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조선 시대에는 더 많은 닥나무를 재배하도록 권장했다. 황촉규는 보통 10월에 성장을 마친다. 그 뿌리에는 끈적한 점액질(닥풀)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종이를 묶어주고 닥나무 껍질에 점성을 부여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고대 한국인들은 대개 겨울에 한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는 여름 더위로 인해 황촉규의 점액이 쉽게 발효되었기 때문이다. 고대 한국인들은 한지 제작을 시작하기에 좋은 날씨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으며, 순조로운 과정을 기원하기 위해 종종 영혼에게 종교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여 한지 제작 공정을 개선한다. 예를 들어, 한지 제작자들은 종이의 모든 부분에 브러싱하는 가열된 스테인리스 스틸 드럼을 사용한다. 이는 전통적인 한지 제작자들이 따뜻한 방의 바닥에서 건조했던 방식을 응용한 것으로, 종이를 균일하게 건조시키는 방법이다.[18]

최근 대한민국에서는 한지를 사용하는 한지공예라는 전통 공예가 재조명되어, 소품함이나 램프, 그릇 등 다양한 공예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지의 산지로는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가 있다.

3. 1. 전통 제지법

한지의 주원료는 닥나무 껍질과 닥풀(황촉규)이다. 한지 제작 방법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1. 닥나무를 채취하여 찐다(닥무지).

2. 닥나무 껍질을 벗겨 말린 흑피(黑皮)를 만든다.

3. 흑피를 물에 담가 백피를 만든다.

4. 잿물에 백피를 삶는다.

5. 백피를 두드리는 고해(叩解) 과정을 거친다.

6. 닥풀을 섞은 물에 백피를 풀어 종이를 뜬다.

7. 종이를 말리고 건조시킨다.

8. 방망이질로 주름을 펴는 도침(陶枕)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닥나무 섬유의 질긴 속성을 유지하면서 얇고 질기며 보존성이 좋은 종이가 만들어진다.[22] 아흔아홉 번의 손질을 거쳐 마지막 사람이 백 번째로 만진다 하여 한지를 '백지'(百紙)라고도 불렀다.[23]

하지만 현대에는 생산 원가 절감 및 편의를 위해 수입 펄프나 화학 약품(팜)을 사용하기도 한다.[23]

한지 제작 과정: 닥나무 껍질 채취부터 종이 완성까지


전통적인 한지 제조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깨끗하고 튼튼한 닥나무 껍질을 모은다.

2. 껍질을 벗기고 말려 흑피(黑皮)를 만든다. 흑피는 흐르는 물에 10시간 이상 담가 껍질을 벗기기 쉽게 하고, 백피(白皮)로 만든다.

3. 콩이나 메밀 줄기를 태운 재를 물에 넣고, 이 물에 백피를 4~5시간 동안 삶는다.

4. 백피를 씻어 남은 껍질과 흙을 제거한다.

5. 깨끗하게 정돈된 백피는 평평한 돌판에 놓고 약 1시간 동안 찧는 고해(叩解) 과정을 거친다.

6. 황촉규(닥풀)에서 추출한 점액을 껍질에 바른다. 이 점액은 종이가 오랫동안 뭉쳐 있게 하고 해로운 화학 물질을 포함하지 않도록 돕는다.

7. 혼합물의 시트를 형성하고 시트에 더 많은 닥풀을 붓는다. 길고 나무 막대기로 저어주는 풀대질을 한다. 최종 물질은 평평한 대나무 틀에 올려 표면을 매끄럽고 균일하게 만든다. 이 과정은 장인의 숙련도가 매우 중요하며, 좋은 한지를 얻기 위해서는 수년간의 경험과 연습이 필요하다. 한지의 두께, 질감 및 전반적인 품질을 결정하는 이 절차에는 훌림, 가둠, 웨발 및 장판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며, 각 방법은 약간 다른 유형의 한지를 생산한다.

8. 한지 한 장이 만들어지면 무거운 돌 사이에 눌러 건조시키고 따뜻한 방에 둔다. 불 근처에서 건조시키지 않고 따뜻한 온도에서 서서히 건조시키면 종이가 더 질기고 튼튼해진다.

이처럼 한지 제작 과정은 매우 고된 일이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한지 제작자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내 아들을 종이 뜨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겠다"고 말하곤 했다.[17] 완벽한 한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생의 수련이 필요하며, 이것이 한국에서 큰 문화적 가치를 갖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씨 조선 시대의 종이는 삼으로 만들어져 기름으로 코팅되어 우산, 방수 코트, 모자, 창문, 문에 사용될 정도로 매우 튼튼했지만, 현재의 한지와는 다른 종류였다.

닥나무 종이에는 초지용 점착제를 사용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도 황촉규를 사용한다. 현대 한국에서는 溜め漉き(타메스)도 행해지지만, 전통적인 한지에서는 바닥에 쌓을 때 개별적으로 뜬 종이를 가로세로 교대로 겹쳐 2장으로 1장의 종이를 만드는 "타지"를 하여 균일성과 번짐 방지를 꾀하고 종이의 질을 개선하였다. "타지"를 통해 종이의 균일성이 확보되었고, 종이가 두꺼워져 튼튼했다.

근대 이후의 한지도 전통적인 "타지" 기법이 사용되지만, 화지(和紙)나 양지(洋紙)의 영향으로 수입 닥나무와 표백제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4. 특징

한지는 닥나무 섬유의 특성 덕분에 질기고 보존성이 뛰어나다. 신위가 남긴 ‘종이는 천 년을 가고 비단은 오백 년을 간다(紙一千年 絹五百)’라는 말은 한지의 우수성을 잘 보여준다.[22]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이를 증명한다.[22]

한지는 통풍과 단열 기능이 있어, 전통 가옥의 창호지로 사용될 경우 실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조상들은 이러한 한지의 특성을 활용하여 방 안의 벽, 방문, 창문에 발라 사용했다.

일반 종이는 산성(pH 4~5.5)이라 100년 안에 완전히 분해되지만, 한지는 중성(pH 7)에 가까워 쉽게 분해되지 않고 오래 보존된다. 닥나무 껍질에 포함된 리그닌과 호로셀룰로스, 그리고 황촉규 사용이 한지의 내구성에 기여한다.

5. 종류

한지는 재료, 용도, 색채, 크기, 두께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22]

구분설명
재료별
용도별
색상별
두께별



조선 시대의 한지는 삼으로 만들어져 오일로 코팅되었으며, 우산, 방수 코트, 모자, 창문, 문에 사용될 정도로 매우 튼튼했지만, 현재의 한지와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현대 한지는 주원료로 닥나무를 사용하며, 황촉규를 점착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한지는 여러 장을 겹쳐 만드는 "타지" 기법을 통해 균일성과 번짐 방지 효과를 높였다.

근대 이후에는 화지(和紙)나 양지(洋紙)의 영향으로 수입 닥나무와 표백제를 사용한 한지도 많아졌다. 최근 대한민국에서는 한지를 활용한 한지공예가 재조명받고 있으며,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가 주요 산지로 알려져 있다.

6. 쓰임

한지는 다양한 특성으로 여러 분야에 활용되었다. 평면 예술 분야에서는 색 한지를 사용해 그림처럼 표현하거나, 한지를 접고 구겨 입체감을 더했다. 한지로 만든 작품은 벽에 걸어 전시했다. 입체 한지 예술은 지지대 없이 세울 수 있는 조형물을 만들 수 있게 했다.

전통 한지 공예에는 지호, 지두, 지승이 있다. 지호는 한지 조각을 풀과 섞어 뚜껑 있는 그릇을, 지두는 틀에 한지를 붙여 바느질 바구니 등을, 지승은 한지를 꼬아 쟁반, 바구니 등 생활용품을 만드는 방법이다. 한지는 불교 사찰 장식용 꽃을 만드는 데도 쓰였다.[23]

조선 시대에는 삼으로 만든 종이에 기름을 발라 우산, 방수 코트, 모자, 창문 등에 사용했으나, 이는 현재의 한지와는 다르다.

고려 시대 한지(고려지)는 강도와 광택으로 중국에서 명성을 얻어 주요 무역 품목이 되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고려지를 비단으로 만든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근대 이후 한지는 전통 기법을 유지하면서도 화지나 양지의 영향을 받아 수입 닥나무와 표백제를 사용하기도 했다.

최근 대한민국에서는 한지 공예가 재조명되어 소품함, 램프, 그릇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가 주요 한지 산지이다.

6. 1. 전통적 용도

조상들은 한지의 여러 특성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만들었다. 한지는 바람과 추위를 잘 막아주어 방을 따뜻하게 해 주기 때문에 방 안의 벽은 물론 방문이나 창문에 한지를 발라 창호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때 한지는 햇빛이 은은하게 스며들게 하고, 방 안의 습도도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23]

한지는 가볍고 질겨서 부채를 만들 때도 사용했다. 부챗살에 한지를 붙이고 그림을 그려 부채를 만들었다. 또 한지를 여러 겹 풀칠로 덧대어 반짇고리필통 등의 생활용품도 만들어 사용했다. 한지를 여러 겹 겹쳐서 옻칠을 하면 가죽처럼 단단하고 질겨져서 그릇 같은 생활 용품이나 전쟁터에서 입는 갑옷도 만들었다. 옻칠을 입힌 몇 겹의 한지로 만든 지갑(紙甲)은 화살과 총알도 뚫지 못했다고 한다.[23]

조선 후기의 문신 신위가 남긴 ‘종이는 천 년을 가고 비단은 오백 년을 간다(紙一千年 絹五百)’라는 말에서 보듯이, 한지는 그 제작 방법의 특성상 보존성과 내구성이 우수하다.[22]

고려 시대에는 종이가 지폐, 불교 경전, 의학 서적, 역사책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고려지라고 불리기도 했던 한지는 강도와 광택으로 아시아에서 명성을 얻었으며, 중국으로의 주요 무역 품목이 되었다.

6. 2. 현대적 용도

현대에는 한지가 다양한 특성을 인정받아 특수한 분야에 주로 사용된다. 한지는 다른 종이보다 먹이 알맞게 스며들어 서예동양화를 그릴 때 쓰인다. 새해 인사 카드, 편지지, 편지 봉투, 포장재 등으로도 활용된다.[11][12][13][14][15][16] 닥종이 인형, 소품함, 램프, 그릇 등 다양한 한지 공예품도 제작되고 있다.[11][12][13][14][15][16]

7. 한지장

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된 한지장은 전통 한지 제조 기술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초대 한지장은 류행영(용인시 출생, 2013년 작고)이며, 그는 닥나무와 황촉규를 직접 재배하고, 한지 제작 전 과정에 대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한지를 제작했다. 특히 닥나무를 삶을 때 알칼리도가 높은 고추 줄기를 태운 재를 이용하는 등 한지의 품질 개량을 위해 노력했으며, 전통 방식인 외발뜨기 기술을 지켰다. 천연염료를 이용한 색지와 얇은 종이, 초상화지 제작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았다.[23]

2010년에는 장용훈과 임실군의 홍춘수가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2021년에는 문경시의 김삼식, 의령군의 신현세, 괴산군안치용이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안치용은 류행영의 제자이다.[24]

8. 관련 단체


  • 전통한지공예가협회
  • 한국한지공예협회
  • 한국한지문화산업발전연합회
  • 한지개발원
  • 한지진흥협회


9. 갤러리

창경궁 통명전의 문살에 창호지가 붙어있다.


인사동에서 파는 기념품


윤의 한지 미술 작품

10. 같이 보기

참조

[1] 웹사이트 New events http://www.korea.net[...]
[2] 웹사이트 한국학 용어,용례 사전 http://www.aks.ac.kr[...] 2009-02-16
[3] 간행물 Searching for Yupmuljil in the Korean Countryside Asa Press (CP) 2009
[4] 웹사이트 Traditional Korean Papermaking: analytical examination of historic Korean papers and research into history, materials and techniques of traditional papermaking of Korea, 2003, the research paper of the Getty Postgraduate Fellow, Hyejung Yum http://www.library.c[...]
[5] 웹사이트 Permanence, Durability and Unique Properties of Hanji http://ifides.com/im[...]
[6] 웹사이트 :: FIDES INTERNATIONAL :: http://ifides.com/wh[...]
[7] 웹사이트 :: FIDES INTERNATIONAL :: http://ifides.com/ma[...]
[8] 웹사이트 :: FIDES INTERNATIONAL :: http://ifides.com/hi[...]
[9] 웹사이트 Hanji Unfurled http://www.thelegacy[...]
[10] 서적 日本書紀(Nihon Shoki)
[11] 간행물 Buddhist Illumination of Korean Papermaking’s Past and Present 2010-04
[12] 간행물 Hanji: Korea's Traditional Paper 1996-12
[13] 서적 Paper and Threshold: The Paradox of Spiritual Connection in Asian Cultures The Legacy Press 2007
[14] 간행물 Kim Yeong Yon: A Korean Papermaker 1987-06
[15] 간행물 Papermaking in Korea Cannabis Press 1992
[16] 뉴스 100 uses for hand-made paper: Product of ancient Korean art valued for texture, durability The Korea Herald 1984-04-19
[17] 문서 The Story
[18] 문서 Song and Munn
[19] 웹인용 Hanji Unfurled http://www.thelegacy[...]
[20] 웹인용 Hanji Unfurled http://www.thelegacy[...]
[21] 서적 일본서기
[22] 웹인용 「한지장」보유자로 김삼식, 신현세, 안치용 씨 인정 예고 https://www.cha.go.k[...] 2021-05-26
[23] 웹인용 중요무형문화재 한지장(韓紙匠) 지정 및 보유자 인정 https://www.cha.go.k[...] 문화재청 2005-09-23
[24] 웹인용 「한지장」보유자로 김삼식, 신현세, 안치용 씨 3명 인정 https://www.cha.go.k[...] 문화재청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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