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족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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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립민족예술단은 1947년 창립된 조선고전음악연구소 등을 전신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예술 단체이다. 창극, 민족가극, 민요를 다루며, 평양예술극단, 모란봉예술단 등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가 1992년 현재 명칭으로 확정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춘향전, 심청전 등이 있으며, 민족 악기를 중심으로 한 악단이 연주를 담당한다. 김진명, 박동실 등 많은 성악가들이 국립민족예술단에서 활동했으며, 차학철, 한시형 등이 주요 작곡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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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족예술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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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족예술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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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종류 | 국악 |
개설 | 1951년 |
설립 목적 | 대한민국의 민족 예술의 보존 및 발전 |
주무 기관 | 문화체육관광부 |
상위 기관 | 국립극장 |
위치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
상세 정보 | |
연혁 | 1951년: 국립국악원 창설 1962년: 국립무용단, 국립창극단, 국립가무단 창설 1973년: 국립극단 이관 1986년: 국립민족예술단으로 통합 |
조직 | 예술감독 국립무용단 국립창극단 |
주요 활동 | 정기 공연 특별 공연 해외 공연 교육 프로그램 |
웹사이트 | https://www.ntok.go.kr/kr/performance/nationalGroup 국립민족예술단 웹사이트 |
2. 연혁
1947년에 창립된 '조선고전음악연구소'와 '국립민족예술극장' 등을 전신으로 하며, 초기에는 창극, 민족가극, 민요를 주로 공연했다. 1972년 '평양예술극단'으로 창립하여 혁명가극 '밀림아 말하라', '금강산의 노래' 등을 상연했고, 이듬해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모란봉예술단'(1975년), '평양예술단'(1987년)으로 개칭되었다가 1992년 현재의 '국립민족예술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대표적인 공연으로는 민족가극 '춘향전'과 '심청전', 민속무용소곡 '평양성 사람들' 등이 있다. 현재는 관현악단 외에 민족악기 중심의 악단도 활동하며, 봉화예술극장을 주요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2. 1. 창립 초기 (1947년 ~ 1971년)
1947년 창립된 '조선고전음악연구소'와 '국립민족예술극장' 등을 전신으로 한다. 이 시기에는 주로 창극과 민족가극, 민요를 다루었다.2. 2. 평양예술극단 및 모란봉예술단 시기 (1972년 ~ 1991년)
1972년에 '평양예술극단'으로 창립하여 혁명가극 '밀림아 말하라', '금강산의 노래'를 창작·상연했다. 1973년에는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았으며, 1975년에는 '모란봉예술단'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87년에 다시 '평양예술단'으로 개칭되었고, 이듬해인 1988년에는 민족가극 '춘향전'을 재공연했다. 1991년에는 같은 작품으로 일본 공연을 진행했다.2. 3. 국립민족예술단 시기 (1992년 ~ 현재)
1992년에는 현재의 명칭인 '국립민족예술단'으로 개칭되었다. 같은 해 민족가극 '심청전'을 상연했으며, 1997년에는 민속무용소곡 '평양성 사람들'을 상연했다.관현악단 외에도, 수년 전부터는 민족악기를 중심으로 구성된 악단이 주로 연주를 맡고 있다. 주요 공연 극장은 봉화예술극장을 사용하고 있다.
3. 주요 작품
(내용 없음)
4. 단원 구성
국립민족예술단은 성악가, 연주자, 작곡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로 구성되어 북한의 민족 음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성악 부문은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서도민요, 판소리 명창들과 해방 이후 활동한 양악성악, 민족성악 가수들이 함께 활동하며 전통 계승과 새로운 창작 활동을 병행했다. 이들은 국립민족예술단의 주요 공연 및 가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재일조선인 출신 성악가들도 포함되어 활동했다. 역대 주요 성악가들의 활동 내역은 하위 문서를 통해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작곡 부문에는 북한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주요 작곡가들이 소속되어 민족적 색채가 담긴 다양한 음악 작품들을 창작하고 있다. 주요 작곡가 명단은 하위 문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민족 악기 및 양악기 연주자들로 구성된 관현악단 등이 포함되어 풍부한 음악적 표현을 담당하고 있다.
4. 1. 역대 주요 성악가
국립민족예술단과 그 전신 단체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하며 서도민요나 판소리 등 민족 음악의 전통을 이어온 명창들과 해방 이후 북한에서 활동한 성악가들이 함께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이미 명성을 얻었던 서도민요의 김진명, 김관보, 홍탄실이나 판소리와 남도민요의 박동실, 공기남, 림소향, 신우선 등은 월북 혹은 해방 후 북한에서 활동하며 민족 음악의 계승과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들은 국립민족예술단(및 전신 단체) 소속으로 활동하거나 김원균평양음악대학 등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역할을 맡았다.또한, 양악성악 분야의 손대원, 김의용, 김점순 등과 민족성악 분야의 김옥선, 김정화, 박용수 등 다양한 분야의 성악가들이 활동하며 북한 성악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들 중에는 혁명가극이나 민족가극의 주역으로 활약한 인물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재일조선인 출신으로 귀환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건너와 활동한 성악가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송성주(남성, 테너)와 렴진미(여성, 소프라노) 등이 국립민족예술단에서 활동하며 북한 음악계의 일원으로 기여하였다.
4. 1. 1. 남성 성악가
이름 | 칭호 | 전공 | 주요 활동 및 경력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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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金진명) | 인민배우 | 서도민요 | 일제강점기부터 서도민요 명창으로 활동하며 음반 취입. 작곡가로도 활동. 평양예술단 단장, 김원균평양음악대학 민족성악 강좌 고문, 조선음악가동맹 부위원장 역임. 윤이상관현악단 겸임 가수. | 1997년 83세로 사망. |
박동실(朴동실) | 인민배우 | 남도민요, 판소리 | 일제강점기부터 판소리 명창으로 활약하며 오케이레코드에서 음반 취입. 월북 후 조선고전음악연구소, 국립민족예술극장 전속으로 활동하며 다수의 민족가극 및 창극 창작. 김원균평양음악대학 민족성악 강좌 교원 역임. | 1968년 71세로 사망. |
손대원(孫대원) | 인민배우 | 테너 (양악성악) | 국립교향악단을 거쳐 국립민족예술단에서 활동.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에서 클라우스 대령 역으로 출연하는 등 영화배우로도 활동. 윤이상관현악단 겸임 가수. | 현재 김원균평양음악대학 양악성악 강좌 강좌장. |
공기남(孔기남) | 공훈배우 | 남도민요, 판소리 | 일제강점기부터 박동실에게 사사받아 남도민요, 판소리 명창으로 활약. | 만년에 황해북도 가무단으로 이적. 1971년 사망. |
김정화(金정화) | 공훈배우 | 테너 (민족성악) | 민족가극 "춘향전" 초대 이몽룡 역, 가극 "홍루몽" 초대 가보옥 역 담당. | 후에 만수대예술단으로 이적. 아들은 피바다 가극단 소속 공훈배우 김영하, 손자는 만수대예술단 소속 공훈배우 김일환. |
김의용(金의용) | 공훈배우 | 바리톤 (양악성악) | 함경남도예술단을 거쳐 국립민족예술단 소속. 혁명가극 "밀림아 말하라" 초대 주역 최병훈 역 담당. | |
강영필(姜영필) | 공훈배우 | 테너 (민족성악) | 민족가극 "춘향전" 이몽룡 역 담당. | |
렴동선(廉동선) | 바리톤 | 만수대예술단 전속 가수를 거쳐 국립민족예술단 초급 당비서 역임. | 현재 김원균평양음악대학 학장. | |
리호(리호) | 바리톤 (양악성악) | |||
송성주(宋성주) | 테너 (민족성악) | 민족가극 "춘향전" 주역 이몽룡 역 담당. 평안북도예술단을 거쳐 국립민족예술단 소속. | 1956년생 재일조선인. 1963년 귀환사업으로 북한으로 이주. | |
김용환(金용환) | 바리톤 | 민족가극 "춘향전" 방자 역 담당. | ||
최선오(崔선오) | 바리톤 | 민족가극 "춘향전" 변학도 역 담당. | ||
김국진(金국진) | 테너 (민족성악) | |||
한석복(韓석복) | 테너 (민족성악) | |||
김용국(金용국) | 바리톤 | |||
최의주(崔의주) | 바리톤 (양악성악) | |||
양성철(梁성철) | 바리톤 (양악성악) | |||
리성국(리성국) | 테너 (민족성악) | |||
한용철(韓용철) | 바리톤 (양악성악) | |||
김철민(金철민) | 테너 (민족성악) |
4. 1. 2. 여성 성악가
인민배우- '''김관보'''(金관보): 서도민요. 일제강점기부터 빅터 레코드에서 서도민요 가수로 활동했다. 국립민족예술극장 등에서 활동 후, 김원균평양음악대학 민족성악 강좌 고문을 맡았으며, 윤이상관현악단의 겸임 가수로도 활동했다.
- '''김옥선'''(金옥선): 소프라노(민족성악). 민족가극 "춘향전"에서 주인공 성춘향 역을 맡았으며, 후에 조선인민군협주단에서 활동했다.
- '''김명득'''(金명득): 소프라노(민족성악). 후에 조선인민군협주단에서 활동했다.
- '''전순옥'''(全순옥): 소프라노(민족성악). 후에 피바다 가극단에서 활동했다.
공훈배우
- '''림소향'''(林소향): 남도민요. 일제강점기부터 남도민요와 판소리 분야에서 활동했다. 1978년 63세로 사망했다.
- '''신우선'''(申우선): 남도민요. 일제강점기부터 남도민요와 판소리 분야에서 활동했다.
- '''홍탄실'''(洪탄실): 서도민요. 일제강점기부터 서도민요로 명성을 얻었다. 1989년 69세로 사망했다.
- '''김점순'''(金점순): 소프라노(양악성악). 후에 성악 지도원, 조선인민군예술학원 교원으로도 활동했다. 남편은 국립민족예술단 작곡가 신영철이다.
- '''최청자'''(崔청자): 소프라노(민족성악).
- '''박용수'''(朴용수): 소프라노(민족성악). 창극 "춘향전"에서 주역 성춘향(초대), 가극 "홍루몽"에서 주역 임대옥(초대)을 연기했다.
- '''림춘영'''(林춘영): 소프라노.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 주역, 혁명가극 "밀림아 말하라"에서 복순(초대)을 연기했다. 현재 공로자명배우 선동대 소속이다.
- '''박태숙'''(朴태숙): 소프라노(민족성악).
- '''허신애'''(許신애): 메조소프라노(양악성악).
- '''렴길숙'''(廉길숙): 알토. 민족가극 "춘향전"에서 월매를 연기했다.
- '''오란희'''(吳란희): 소프라노(민족성악). 현재는 성악 지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김명순'''(金명순): 소프라노(민족성악).
기타 성악가
- '''김경주'''(金경주): 메조소프라노(양악성악). 2018년 제1회 평양국제성악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 '''김또순'''(金또순): 소프라노(민족성악).
- '''김성희'''(金성희): 소프라노(민족성악). 피바다 가극단을 거쳐 국립민족예술단으로 이적했다.
- '''김영화'''(金영화): 소프라노.
- '''김향란'''(金향란): 소프라노(대중가요). 평양영화음악녹음소를 거쳐 국립민족예술단으로 이적했다.
- '''김희숙'''(金희숙): 소프라노(민족성악).
- '''길은경'''(길은경): 소프라노(민족성악).
- '''량은미'''(梁은미): 소프라노(민족성악).
- '''량혜영'''(梁혜영): 소프라노(민족성악).
- '''렴진미'''(廉진미): 소프라노(민족성악). 도쿄 출신의 재일조선인으로, 1971년 도쿄조선중고급학교 졸업 후 귀환사업으로 북한으로 건너갔다. 여동생은 전 금강산가극단 소속의 렴민화이다.
- '''리은경'''(리은경): 소프라노(민족성악). 공훈국가합창단에 소속된 경력이 있다.
- '''박은주'''(朴은주): 소프라노(민족성악).
- '''백영련'''(白영련): 소프라노.
- '''송영숙'''(宋영숙): 소프라노(민족성악). 민족가극 "춘향전"에서 주역 성춘향을 연기했다.
- '''엄영애'''(嚴영애): 소프라노(민족성악).
- '''오향미'''(吳향미): 소프라노(민족성악). 공훈국가합창단 소속을 거쳐 다시 국립민족예술단으로 복귀했다.
- '''조강숙'''(趙강숙): 메조소프라노(대중가요).
- '''최금숙'''(崔금숙): 소프라노(민족성악). 인민보안성 예술선전대를 거쳐 국립민족예술단으로 이적했다.
- '''최수복'''(崔수복): 소프라노(민족성악). 민족가극 "춘향전"에서 향단을 연기했다.
- '''하은성'''(河은성): 소프라노(양악성악).
- '''허성희'''(許성희): 소프라노(민족성악).
- '''허영애'''(許영애): 소프라노. 만수대예술단 여성 중창조를 거쳐 국립민족예술단에 재적했다. 현재 김원균평양음악대학 교원이다.
4. 2. 주요 작곡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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