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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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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동삼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다.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1907년 협동학교를 설립하여 계몽 운동을 시작했고,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1919년 서로군정서 참모장으로 활동했으며, 무오 독립 선언에 참여했다. 이후 상하이에서 활동하다가 1931년 하얼빈에서 체포되어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헌을 기려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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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김동삼
원래 이름金東三
국가대한 임정
직책군무부 예하 대한통의부 상무위원장
정당무소속
임기1922년 3월 2일 ~ 1922년 6월 18일
대통령이승만 대한 임정 대통령
출생일1878년 6월 23일
국적대한제국
출생지조선 경상도 안동군
본관의성(義城)
사망지일제 강점기 경성부 서대문형무소
사망일1937년 4월 13일
총리신규식 대한 임정 총리 임시 권한대행
거주지대한제국 경상북도 의성군
경력정의부 참모장
군복무대한독립군 준장 전역
장관윤기섭 대한 임정 군무총장 직무대행 서리
노백린 대한 임정 군무총장
차관윤기섭 대한 임정 군무차장
서훈[[파일:건국훈장2대통령장.png|x10px]]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웹사이트독립유공자 공훈록

2. 생애

김동삼은 경상도 안동 출생으로, 경상도 의성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다. 안동의병 최고지도자였던 서산 김흥락(西山 金興洛)에게 배웠으며, 1907년 협동학교를 설립해 계몽 운동을 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1911년 서간도로 망명, 경학사와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참여했다.[4]

1919년상하이로 가 대한통의부(1922년), 국민대표회의(1923년), 정의부(1925년) 등에서 활동했다.[4] 1931년 하얼빈에서 체포, 10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 복역 중 1937년 옥사했다. 한용운이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2]

2. 1. 유년 시절과 계몽 운동 (1878년 ~ 1910년)

경상도 안동에서 김계락(金繼洛)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경상도 의성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고 안동의병의 최고지도자였던 서산 김흥락(西山 金興洛)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다. 근대 교육과 민족주의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1907년 유인식, 김후병 등과 함께 협동학교를 설립하여 계몽 운동을 벌였다. 협동학교는 보수적인 성격이 강한 안동 지역에서 개혁 유림 세력이 힘을 합쳐 세운 3년제 중등학교였다. 이 무렵 계몽 운동에 뛰어든 인사들 중 신민회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내다보고 해외 독립 운동 기지 설립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는데, 그도 양기탁 등과 함께 해외에서 독립군을 양성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1910년 마침내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자, 이 계획을 구체화하여 1911년 서간도로 망명했다.

2. 2. 서간도 망명과 독립운동 기지 건설 (1911년 ~ 1918년)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자, 김동삼은 1911년 이시영, 이동녕, 이상룡, 윤기섭 등과 함께 서간도로 망명했다.[4] 이들은 간도 지역에 자치 조직인 경학사와, 훗날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는 교육 기관인 신흥강습소를 설립하는데 참여했다.

김동삼은 무장 투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간도 지역에서 군정부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1919년에는 조직을 서로군정서(독판 이상룡)로 개편하고 참모장을 맡았다. 또한 3·1 운동의 단초 중 하나를 제공한 지린에서의 무오 독립 선언에 39인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2. 3. 무장 독립 투쟁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여 (1919년 ~ 1930년)

김동삼은 무장 투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간도 지역에서 군정부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썼고, 1919년 서로군정서(독판 이상룡)로 조직을 개편하고 참모장을 맡았다. 3·1 운동의 단초 중 하나를 제공한 지린에서 무오 독립 선언에 39인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1919년경, 김동삼은 상하이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1922년 만주 지역 독립군 단체가 통합한 대한통의부에 가담했고, 1923년 국민대표회의에 서로군정서 대표 및 의장으로 참가하였으며, 1925년 정의부 참모장에 취임했다.[4]

2. 4. 체포와 순국 (1931년 ~ 1937년)

1931년 하얼빈에서 이원일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37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5] 시신은 한용운이 수습하여 장례를 치렀다.[5]

3.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1]

독립기념관에는 옥중 유언인 다음 문구가 적힌 어록비가 세워져 있다.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내 죽거던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고향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278번지 생가 자리에는 그의 생가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2]

4. 평가

김동삼은 유교적 학식을 갖추었으며, '만주의 호랑이', '남만의 맹호'로 불릴 만큼 용맹한 기질을 겸비하여 김좌진, 오동진 등과 함께 3대 맹장으로 불렸다.[6][3]

참조

[1] 서적 한국사이야기21. 해방 그 날이 오면 한길사
[2] 웹사이트 만해 한용운의 일대기 - 7.심우장의 정절 http://www.manhae.or[...] 만해기념관
[3] 뉴스 2월에 기릴 인물, 독립운동가 오동진-문태수 선생 http://www.newsmissi[...] 뉴스미션 2008-02-01
[4] 서적 한국사이야기21. 해방 그 날이 오면 한길사
[5] 웹사이트 만해 한용운의 일대기 - 7.심우장의 정절 http://www.manhae.or[...] 만해기념관 2007-09-27
[6] 뉴스 2월에 기릴 인물, 독립운동가 오동진-문태수 선생 http://www.newsmissi[...] 뉴스미션 200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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