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남원군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남원군은 가야의 하기물, 백제의 고룡군에서 유래되었으며, 통일신라 시대 남원소경 설치 이후 남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고대에는 마한의 고랍국, 대가야의 영역, 백제의 고룡군으로 존재했으며, 신라 시대에는 남원경이 설치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남원부가 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남원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895년 남원부가 설치되었으며, 1914년 운봉군과 통폐합되었다. 1981년 남원읍 일원이 남원시로 승격되었고, 1995년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합되어 도농복합형태의 남원시가 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남원시의 역사 - 보덕국
    보덕국은 668년 고구려 멸망 후 신라가 고구려 유민을 통합하고 당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익산에 건국한 국가이며, 고구려의 국호를 사용하고 자치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안승의 신라 귀속과 반란 진압으로 멸망했다.
  • 남원시의 역사 - 남원 전투
    1597년 정유재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 등이 이끄는 일본군이 남원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조명 연합군이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진우충의 미도움으로 성이 함락되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이 패배로 전라도가 일본군에 노출되어 정유재란 전체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전북특별자치도의 폐지된 행정 구역 - 옥구군
    옥구군은 백제 시대부터 시작하여 여러 명칭으로 불리다가 1914년 군산부 일부를 제외한 지역과 주변 지역을 통합하여 옥구군으로 유지되었고, 1995년 군산시와 통합되었다.
  • 전북특별자치도의 폐지된 행정 구역 - 흥덕군
    흥덕군은 백제 시대 상칠현에서 시작하여 신라, 고려 시대를 거쳐 흥덕현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895년 군으로 승격되었으나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창군에 편입되어 소멸되었으며, 이는 일제의 식민통치 수단으로 지역 자치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 1995년 폐지 - 평택시
    평택시는 경기도 남서부에 위치하며, 안성시, 천안시 등과 접하고, 평택항, 해군 제2함대, 주한 미군 기지, 삼성반도체 평택캠퍼스 등 주요 시설과 다양한 기업의 생산 시설을 갖춘 도농복합시다.
  • 1995년 폐지 - 상주시
    상주시는 경상북도 서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사벌국에서 유래하여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농업 기반 경제, 풍부한 문화유적, 뛰어난 교통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고, 현재 인구 감소에 대응하며 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원군
지도
기본 정보
한자 표기南原郡
로마자 표기Namwon-gun
소멸1995년
행정 구역
속한 도전라북도
역사
설치조선 시대
소멸1995년 남원시와 통합
정치
행정군청 소재지 남원읍
교통
철도전라선
주요 도로국도 제17호선 , 국도 제19호선, 국도 제24호선
문화
관광광한루
지리산

2. 유래

가야의 하기물(下奇物), 백제의 고룡군(古龍郡)이다. 기물과 고룡이라는 이름은 서로 연관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龍)의 순 우리말이 "미르"이므로 둘 다 "고밀Komir"로 개련되기 때문이다.[1] 우륵의 12곡에 나오는 남원시내의 하기물과 지금의 남원시 운봉읍의 옛 모산현, 또는 장수군 번암면의 거사물현에 있던 상기물 지역은 후기 가야 세력이 호남 동부지역까지 진출했음을 시사한다.

남원이라는 이름은 통일신라 시대에 남원소경 설치 이후이다.

3. 역사

마한고랍국으로 추정된다. 5세기 이후 대가야의 영역으로 편입되어 하기물이 되었다. 6세기 전반 백제가야 연맹이 기문지방을 놓고 충돌하였고, 무령왕에 의해 백제는 하기물을 병탄해 고룡군을 설치하였다. 660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패배한 후, 3년 동안 남원 인근의 거물성(居勿城)에서 백제의 잔여 세력들이 항전했다.

685년 신문왕 5년 보덕국고구려 유민들을 이 지역으로 이주시켜 남원경(南原京)을 설치하였다. 신라 귀족 옥보고는 이곳에서 고구려의 거문고를 전수받아 이를 개량해 30여 곡을 만들었다. 940년 고려 태조 23년 남원부가 되어 인근 5현을 관할하였다.

1413년 태종 13년 남원도호부로 승격하였다. 남원도호부는 1부 1군 9현(담양·순창·창평·구례·곡성·임실·무주·진안·장수·무주·용담)을 통솔하는 진관이었다. 1457년 남원진영이 설치되어 인근 6현(곡성·옥과·구례·창평·장수·운봉)을 관할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남원 전투에서 12,000명의 인명 피해를 보았고, 남원성이 함락되었다. 이후 직산 전투까지 일본군이 삼남 지방을 점령하였다. 1654년 전라좌영이 설치되었다.

1895년 6월 23일(음력 윤 5월 1일) 조선의 행정체계가 23부로 개편되면서 이전 전라도 서부지역을 관할하는 남원부가 설치되었고, 그 치소가 되었다. 본래의 남원부는 군(郡)이 되었고 남원군을 포함해 16군을 관할하였다.[2] 1896년 8월 4일 13도제로 환원되어 남원부가 전라남,북도로 분할 편입되었다. 남원군은 전라북도에 편입되었다.[3] 1906년 둔덕면·오지면·주천면·석현면·아산면·영계면이 임실군으로, 상번암면·중번암면·하번암면·진전면이 장수군으로, 고달면·중방면·외산동면·내산동면·소아면이 전라남도 구례군으로 편입되었다.

1910년 관할의 48방(坊)을 22개 면으로 통폐합하였다. 1911년 일부 지역이 순창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4월 1일 남원군, 운봉군을 남원군으로 통폐합하였다.[4] 1914년 지사면, 덕고면 일부 지역이 임실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통폐합된 남원군의 면은 다음과 같다.

남원면, 이백면, 주천면, 흑송면, 주생면, 대산면, 대강면, 사매면, 덕과면, 보절면, 왕치면, 금지면, 산동면, 수지면, 두동면, 운봉면, 아영면, 산내면, 동면



1931년 11월 1일 남원면을 남원읍으로 승격하였다.[6] 1935년 3월 1일 대산면 일부를 순창군에, 남원읍 금성리를 대산면에, 주천면 노암리를 남원읍에 편입하고, 흑송면·두동면을 송동면으로 합면하였다.[7][8][9] 1956년 7월 8일 왕치면(王峙面)을 남원읍에 합면하였다.[10] 1981년 7월 1일 남원읍 일원을 관할로 남원시가 설치되었다.[11] 1983년 2월 15일 주천면 신촌리·어현리를 남원시에 편입하고, 덕과면 금암리를 임실군 둔남면에 편입하였다.[12] 1995년 1월 1일 남원시 일원과 남원군 일원을 관할로 도농복합형태의 남원시가 설치되었다.[13]

3. 1. 고대

마한고랍국으로 추정된다.

5세기 이후 대가야의 영역으로 편입되어 하기물이 되었다.

6세기 전반 백제가야 연맹이 기문지방을 놓고 충돌하였다. 무령왕에 의해 백제는 하기물을 병탄해 고룡군을 설치하였다.

660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패배하였고, 이후 3년 동안 남원 인근의 거물성에서 백제의 잔여 세력들이 항전했다.

3. 2. 중세


  • 마한고랍국으로 추정된다.
  • 5세기 이후 대가야의 영역으로 편입되어 하기물이 되었다.
  • 6세기 전반 백제가야 연맹이 기문지방을 놓고 충돌하였다. 무령왕에 의해 백제는 하기물을 병탄해 고룡군을 설치하였다.
  • 660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패배하였고, 이후 3년 동안 남원 인근의 거물성(居勿城)에서 백제의 잔여 세력들이 항전했다.
  • 685년 신문왕 5년 보덕국고구려 유민들을 이 지역으로 이주시켜 남원경(南原京)을 설치하였다. 신라 귀족 옥보고가 이곳에서 고구려의 거문고를 전수받아 이를 개량해 30여 곡을 만들었다.
  • 940년 고려 태조 23년 남원부가 되어 인근 5현을 관할하였다.

3. 3. 근세


  • 685년 신문왕 5년에 보덕국고구려 유민들을 이 지역으로 이주시켜 남원경(南原京)을 설치하였다. 신라 귀족 옥보고는 이곳에서 고구려의 거문고를 전수받아 이를 개량해 30여 곡을 만들었다.
  • 940년 고려 태조 23년에 남원부가 되어 인근 5현을 관할하였다.
  • 1413년 태종 13년에 남원도호부로 승격하였다. 남원도호부는 1부 1군 9현(담양·순창·창평·구례·곡성·임실·무주·진안·장수·무주·용담)을 통솔하는 진관이었다.
  • 1457년 남원진영이 설치되어 인근 6현(곡성·옥과·구례·창평·장수·운봉)을 관할하였다.
  • 1597년 정유재란남원 전투에서 12,000명의 인명 피해를 보았고, 남원성이 함락되었다. 이후 직산 전투까지 일본군이 삼남 지방을 점령하였다.
  • 1654년 전라좌영이 설치되었다.

3. 4. 근대


  • 1895년 6월 23일(음력 윤 5월 1일) 조선의 행정체계가 23부로 개편되면서 이전 전라도 서부지역을 관할하는 남원부가 설치되었고, 그 치소가 되었다. 본래의 남원부는 군(郡)이 되었고 남원군을 포함해 16군을 관할하였다.[2]
  • 1896년 8월 4일 13도제로 환원되어 남원부가 전라남,북도로 분할 편입되었다. 남원군은 전라북도에 편입되었다.[3]
  • 1906년 둔덕면·오지면·주천면·석현면·아산면·영계면이 임실군으로, 상번암면·중번암면·하번암면·진전면이 장수군으로, 고달면·중방면·외산동면·내산동면·소아면이 전라남도 구례군으로 편입되었다.
  • 1910년 관할의 48방(坊)을 22개 면으로 통폐합하였다.
  • 1911년 일부 지역이 순창군에 편입되었다.
  • 1914년 4월 1일 남원군, 운봉군을 남원군으로 통폐합하였다.[4]
  • 1931년 11월 1일 남원면을 남원읍으로 승격하였다.[6]
  • 1935년 3월 1일 대산면 일부를 순창군에, 남원읍 금성리를 대산면에, 주천면 노암리를 남원읍에 편입하고, 흑송면·두동면을 송동면으로 합면하였다.[7][8][9]

3. 5. 현대


  • 1895년 6월 23일(음력 윤 5월 1일) 전국의 행정체계가 23부로 개편되면서 이전 전라도 서부지역을 관할하는 남원부가 설치되었고, 그 치소가 되었다. 본래의 남원부는 군(郡)이 되었고 남원군을 포함해 16군을 관할하였다.[2]
  • 1896년 8월 4일 13도제로 환원되어 남원부가 전라남,북도로 분할 편입되었다. 남원군은 전라북도에 편입되었다.[3]
  • 1906년 둔덕면·오지면·주천면·석현면·아산면·영계면이 임실군으로, 상번암면·중번암면·하번암면·진전면이 장수군으로, 고달면·중방면·외산동면·내산동면·소아면이 전라남도 구례군으로 편입되었다.
  • 1910년 관할의 48방(坊)을 22개 면으로 통폐합하였다.
  • 1911년 일부 지역이 순창군에 편입되었다.
  • 1914년 지사면, 덕고면(서촌, 동리, 상후리, 중후리, 차후리, 상리, 상신천) 지역이 임실군에 편입되었다.
  • 1914년 4월 1일 남원군, 운봉군을 남원군으로 통폐합하였다.[4]
  • 1931년 11월 1일 남원면을 남원읍으로 승격하였다.[6] (1읍 18면)
  • 1935년 3월 1일 대산면 일부를 순창군에, 남원읍 금성리를 대산면에, 주천면 노암리를 남원읍에 편입하고, 흑송면·두동면을 송동면으로 합면하였다.[7][8][9] (1읍 17면)
  • 1956년 7월 8일 왕치면(王峙面)을 남원읍에 합면하였다.[10] (1읍 16면)
  • 1981년 7월 1일 남원읍 일원을 관할로 남원시가 설치되었다.[11] (16면)
  • 1983년 2월 15일 주천면 신촌리·어현리를 남원시에 편입하고, 덕과면 금암리를 임실군 둔남면에 편입하였다.[12]
  • 1995년 1월 1일 남원시 일원과 남원군 일원을 관할로 도농복합형태의 남원시가 설치되었다.[13]

4. 행정 구역


  • 1895년 6월 23일(음력 윤 5월 1일): 전국의 행정체계가 23부로 개편되면서 이전 전라도 서부지역을 관할하는 남원부가 설치되었고, 그 치소가 되었다. 본래의 남원부는 군(郡)이 되었고 남원군을 포함해 16군을 관할하였다.[2]
  • 1896년 8월 4일: 13도제로 환원되어 남원부가 전라남,북도로 분할 편입되었다. 남원군은 전라북도에 편입되었다.[3]
  • 1906년: 둔덕면·오지면·주천면·석현면·아산면·영계면이 임실군으로, 상번암면·중번암면·하번암면·진전면이 장수군으로, 고달면·중방면·외산동면·내산동면·소아면이 전라남도 구례군으로 편입되었다.
  • 1910년: 관할의 48방(坊)을 22개 면으로 통폐합하였다.
  • 1911년: 일부 지역이 순창군에 편입되었다.
  • 1914년: 지사면, 덕고면(서촌, 동리, 상후리, 중후리, 차후리, 상리, 상신천) 지역이 임실군에 편입되었다.
  • 1914년 4월 1일: 남원군, 운봉군을 남원군으로 통폐합하였다.[4] (19면)


구 행정구역신 행정구역
남원군 서봉면(棲鳳面), 만덕면(萬德面), 통한면(痛漢面), 장흥면(長興面)남원면 일원
왕지전면(王之田面), 갈치면(葛峙面)왕치면 일원
주촌면(朱村面), 상원천면(上元川面), 하원천면(下元川面)주천면 일원
주포면(周浦面), 남생면(南生面), 이언면(伊彦面)주생면 일원
흑성면(黑城面), 송내면(松內面)흑송면 일원
대곡면(大谷面), 정산면(睛山面), 성남면(城南面)대산면 일원
견소곡면(見所谷面), 생조벌면(生鳥伐面), 초랑면(草郞面)대강면 일원
사동면(巳洞面), 매내면(梅內面)사매면 일원
덕고면(德古面), 적과면(迪果面)덕과면 일원
보현면(寶玄面), 고절면(高節面)보절면 일원
금안면(金岸面), 기지면(機池面)금지면 일원
백암면(白岩面), 백파면(白波面)이백면 일원
운봉군 군내면(郡內面), 서면(西面)운봉면 일원
북상면(北上面), 북하면(北下面)아영면 일원
산내면(山內面)산내면 일원
동면(東面)동면 일원


  • 1931년 11월 1일: 남원면을 남원읍으로 승격하였다.[6] (1읍 18면)
  • 1935년 3월 1일: 대산면 일부를 순창군에, 남원읍 금성리를 대산면에, 주천면 노암리를 남원읍에 편입하고, 흑송면·두동면을 송동면으로 합면하였다.[7][8][9] (1읍 17면)
  • 1956년 7월 8일: 왕치면(王峙面)을 남원읍에 합면하였다.[10] (1읍 16면)
  • 1981년 7월 1일: 남원읍 일원을 관할로 남원시가 설치되었다.[11] (16면)
  • 1983년 2월 15일: 주천면 신촌리·어현리를 남원시에 편입하고, 덕과면 금암리를 임실군 둔남면에 편입하였다.[12]
  • 1995년 1월 1일: 남원시 일원과 남원군 일원을 관할로 도농복합형태의 남원시가 설치되었다.[13]

참조

[1] 서적 한국사 7 (삼국의 정치와 사회3 신라.가야) 국사편찬위원회 편집부 1970
[2] 법률 칙령 제98호 지방제도개정건 1895-05-26
[3] 법률 칙령 제36호 지방제도관제개정건 1896-08-04
[4] 법률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1913-12-29
[5] 간행물 조선 전도부군면리동 명칭 일람 1917
[6] 법률 조선총독부령 제132호 1931-10-20
[7] 법률 조선총독부령 제6호 1935-01-26
[8] 법률 조선총독부령 제7호 1935-01-26
[9] 법률 도령 제1호 1935-01-30
[10] 법률 법률 제392호 지방자치단체의폐치분합및구역변경에관한법률 1956-07-08
[11] 법률 법률 제3425호 광명시등시설치와군관할구역변경에관한법률 1981-04-13
[12] 법률 대통령령 제11027호 시·군·구·읍·면의관할구역변경및면설치등에관한규정 1983-01-10
[13] 법률 법률 제4774호 경기도남양주시등33개도농복합형태의시설치등에관한법률 1994-08-0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