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 점사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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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이저 점사 시스템은 1971년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가 개발한 사격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1973년 초에 출시되어 초기에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석유 파동으로 인한 경제 침체로 인해 주문이 취소되어 실패했다. 이후 아케이드용 '미니 레이저 클레이'로 재설계되어 '와일드 건맨', '슈팅 트레이너' 등의 파생작을 낳았으며, 1970년대 닌텐도의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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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저 점사 시스템 | |
|---|---|
| 개요 | |
| 종류 | 광선총 슈팅 시뮬레이션 |
| 발명가 | 야마우치 히로시 요코이 군페이 |
| 국가 | 일본 |
| 회사 | 닌텐도 |
| 출시 시작 | 1973년 |
| 출시 종료 | 1978년 |
| 재료 | 레이저 점사 시스템: 오버헤드 프로젝터, 라이플 미니 점사: 16mm 필름 프로젝터, 라이플 또는 리볼버, 아케이드 캐비넷 |
| 가격 | |
2. 역사
레이저 점사 시스템은 1971년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클레이 사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을 지시하면서 시작되었다.[3][21] 당시 사양길에 접어든 볼링장의 넓은 공간을 활용할 목적으로 기획되었으며,[32][23] 요코이 군페이, 우에무라 마사유키, 타케다 겐요 등이 개발에 참여했다.[3]
1973년 초, 시스템이 처음 공개되자 큰 인기를 끌었고, 닌텐도는 전용 자회사 '닌텐도 레저 시스템'을 설립하며 사업 확장에 나섰다.[7][24] 그러나 같은 해 10월 불어닥친 1973년 석유 파동으로 인해 경제가 침체되면서 주문이 대거 취소되었고, 닌텐도는 막대한 부채를 안고 큰 위기를 맞았다.[8][27]
위기 속에서 닌텐도는 1974년, 기존 시스템을 소형화하고 가격을 낮춘 아케이드 게임기 버전 '미니 레이저 클레이'를 출시하며 재기를 모색했다.[9][10] ''와일드 건맨''을 시작으로 여러 게임을 출시하며 점차 활로를 찾았고,[9][11] 해외 시장에도 진출했다.[12] 비록 레이저 점사 시스템 사업 자체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이 과정에서 축적된 전자 기술과 경험은 훗날 닌텐도가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 성공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27]
2. 1. 개발 배경

레이저 점사 시스템 개발은 1971년, 당시 닌텐도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가 신문에서 클레이 사격 기사를 접하면서 시작되었다.[3][21] 그는 닌텐도가 1970년에 출시했던 장난감 광선총 SP의 기술을 활용하여 본격적인 사격 시뮬레이터를 만들고자 했다. 광선총 SP는 판매량은 좋았으나 불량 문제로 큰 수익을 내지는 못한 상태였다.[21] 야마우치는 당시 조수였던 요코이 군페이에게 이 아이디어를 전달했고, 요코이는 실제 클레이 사격을 경험하기 위해 총기 면허를 취득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발에 임했다.[21] 이후 요코이는 시제품 제작을 위해 소총 구매를 요청했다.[3]
개발팀에는 요코이 외에도 우에무라 마사유키, 타케다 겐요 등이 참여했으며, 프로젝트는 1971년에 공식 승인되어 '레이저 점사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진행되었다.[3] 야마우치는 이 시스템을 당시 쇠퇴기에 접어든 볼링장 사업의 대안으로 생각했다. 1960년대 일본에서는 볼링이 큰 인기를 끌었으나, 60년대 말부터 가라오케 등 새로운 즐길 거리에 밀려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었다.[32][23] 따라서 레이저 점사 시스템은 문을 닫는 볼링장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실내 레저 기기로 기획되었다.[23]
첫 번째 레이저 점사 시스템은 1973년 초에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공개 당일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막판에 가까스로 해결하는 해프닝도 있었다.[3] 이 시스템은 오버헤드 프로젝터를 사용하여 숲이나 산과 같은 배경 위에 날아가는 표적(클레이)을 비추고, 플레이어가 광선총으로 이를 맞추면 반사판 센서가 명중 여부를 감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시스템 설치 비용은 당시 금액으로 약 400만엔에서 450만엔 사이였다.[3][6] 홍보를 위해 유명 배우이자 무술가인 치바 신이치가 광고 모델로 기용되기도 했다.[7]
초기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어서 설치된 장소마다 사람들로 붐볐다.[7] 닌텐도는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고 시스템 유지보수 및 주문 관리를 위해 1973년 2월, 자회사인 '닌텐도 레저 시스템 주식회사'를 설립했다.[7][24] 설립 당시 이미 1,400대의 선주문을 확보한 상태였으며,[24] 5월에는 모델 센터를 개설하여 본격적인 영업 활동을 시작했다.[25] 닌텐도는 폐업한 볼링장을 인수하여 레이저 점사 시스템을 설치해 나갔고, 주문량이 폭주하여 생산 공장을 24시간 가동해야 할 정도였다.[7] 1973년 말 기준으로 일본 전국 22개 시설에 총 322대의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었다.[26] 야마우치 사장은 연간 30억엔의 매출을 예상하며 큰 성공을 기대했다.[24]
하지만 이러한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 전쟁 발발로 인해 제1차 석유 파동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8][27] 석유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던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 기업과 개인 모두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 여파로 레이저 점사 시스템의 주문 취소가 잇따랐다.[8][27] 이미 막대한 개발비와 설비 투자를 집행했던 닌텐도는 50억엔(당시 환율로 약 6400만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이 부채는 훗날 1980년 게임 & 워치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간신히 청산할 수 있었다.[8][27] 결국 야마우치는 레이저 점사 시스템 프로젝트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회사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한 위기에 처했다.[8] 다행히 닌텐도는 당시 주식 시장에 상장되어 있었고, 일부 주주들의 지속적인 지지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8]
비록 1970년대 닌텐도가 전자 기술을 활용한 사업에서 여러 차례 실패를 경험했지만, 이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력과 노하우, 판매망 등은 이후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 성공을 거두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27]
2. 2. 초기 출시와 성공
레이저 점사 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는 1971년, 당시 닌텐도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가 클레이 사격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고 시작됐다. 그는 요코이 군페이에게 기존 제품인 '광선총 SP'를 사격 시뮬레이션에 활용할 수 있는지 물었다. 며칠 후 요코이는 야마우치에게 전자 클레이 사격 시뮬레이션 설계를 위해 소총 구매를 요청했다. 이 프로젝트는 1971년에 승인되었으며, 우에무라 마사유키와 타케다 겐요도 개발에 참여했다.[3][21] 개발자들은 실제 클레이 사격을 경험하기 위해 총기 소지 허가까지 취득했다.[21]
야마우치는 당시 붐이 꺾여가던 볼링장의 넓은 공간을 활용하여 슈팅 게임을 설치할 계획을 세웠다. 일본에서 볼링은 196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으나, 1960년대 말부터는 노래방 등에 밀려 인기가 식고 있었다.[32][23] 닌텐도는 볼링장 부지를 재활용할 수 있는 실내 레저 기기라는 점을 내세워 레이저 점사 시스템을 홍보했다.
첫 번째 레이저 점사 시스템은 1973년 초에 대중에게 공개됐다. 공개 당일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했지만 가까스로 해결됐다.[3] 닌텐도는 주요 지역의 폐업한 볼링장을 인수하여 시스템을 설치했다. 각 시스템 설치 비용은 400만엔에서 450만엔 사이였으며, 산이나 숲 풍경 뒤에서 움직이는 표적을 보여주는 오버헤드 프로젝터와 레이저 총이 표적을 맞혔는지 감지하는 반사 메커니즘으로 구성됐다.[3][6]
레이저 점사 시스템은 출시 초기 몇 주 동안 큰 성공을 거두었고, 시범 설치된 장소는 연일 만원을 기록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야마우치는 1973년 2월, 시스템의 유지보수 및 주문 처리를 전담하는 자회사 '닌텐도 레저 시스템 주식회사'를 설립했다.[7][24] 자회사는 설립 당시 이미 1,400대의 선주문을 확보했고[24], 5월부터 본격적인 영업 활동을 시작했다.[25] 밀려드는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생산 공장은 24시간 가동됐다.[7] 1973년 말까지 일본 전국 22개 시설에 총 322대의 시스템이 설치되어 운영됐다.[26] 야마우치는 연간 30억엔의 매출을 예상하며 성공을 확신했다.[24] 레이저 점사 시스템 광고에는 일본의 유명 배우이자 무술가인 치바 신이치가 모델로 등장해 인지도를 높였다.[7]
2. 3. 석유 파동과 위기
1973년 10월, 제4차 중동 전쟁 발발과 함께 OPEC이 유가를 대폭 인상하면서 1973년 석유 파동(1차 석유 파동)이 시작되었다.[8][26] 당시 일본 경제는 석유 수요의 98%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임박한 경기 침체에 대비하여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야만 했다.[8]이러한 경제 상황은 닌텐도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레이저 점사 시스템에 대한 고객들의 주문 취소가 잇따랐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거의 모든 주문이 취소되었다.[8][27] 이미 제품 개발과 자재 조달에 수십억 엔을 투자했던 닌텐도는 큰 손실을 입었으며,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7년에 걸쳐 상환해야 하는 50억엔(당시 약 6400만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8] 결국 야마우치는 "전자 볼 트랩" 프로젝트를 중단했고, 회사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8] 자회사였던 "닌텐도 레저 시스템 주식회사" 역시 직원 감축을 피할 수 없었다.[27]
닌텐도의 재무 상황 악화는 결산 보고서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1974년 7월기 매출액은 전년 대비 약 20% 감소한 35억엔에 그쳤고, 매출 채권은 30억엔, 재고자산은 20억엔에 달했다.[27] 그럼에도 닌텐도가 파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주식 시장에 상장되어 있었고, 일부 주주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회사를 계속 지원했기 때문이었다.[8] 이 막대한 부채는 훗날 1980년 게임 & 워치가 예상치 못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비로소 해결될 수 있었다.[27]
비록 1970년대 닌텐도가 전자 기술을 활용한 제품 개발에서 여러 차례 실패를 겪었지만, 이 시기에 축적된 기술력과 구축된 판매 경로는 이후 컴퓨터 게임 사업으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2. 4. 미니 레이저 클레이와 재기
1973년 10월, OPEC의 급격한 유가 인상은 1973년 석유 파동을 촉발했다.[8] 석유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 불필요한 오락 시설 투자가 급감했다. 이로 인해 닌텐도는 레이저 점사 시스템 주문 취소가 잇따랐고, 결국 1년도 안 되어 거의 모든 주문이 취소되었다. 수십억 엔을 투자했던 닌텐도의 이익은 절반으로 줄었으며, 야마우치는 50억엔 (당시 약 6400만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결국 야마우치는 "전자 볼 트랩" 프로젝트를 중단했고, 회사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하지만 주식 시장에 상장되어 있었기에 주주들의 지지 속에서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8]위기 속에서도 레이저 점사 시스템은 일본 내에서 어느 정도 인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1974년, 야마우치는 이를 더 작고 저렴한 버전으로 재설계하여 아케이드 시장을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바로 '미니 레이저 클레이'이다.[9][10] 야마우치는 아케이드 매장에 이 기기를 설치하면 큰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케이드 업계의 주문량이 많지 않아 생산 비용을 낮춰야 했다. 이에 요코이 군페이는 16mm 프로젝터와 비디오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이를 통해 시스템을 아케이드 캐비닛 형태로 제작하여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9][10]
1974년, 미니 레이저 클레이 시스템 기반의 첫 게임인 ''와일드 건맨''이 출시되었다. 이와 함께 성인용 버전인 ''Fascination''도 개발되었는데, 이 게임은 카우보이 대신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등장하여 플레이어가 옷을 쏘아 맞히는 방식이었으나, 일반 대중에게는 출시되지 않았다.[9]
미니 레이저 클레이 시스템은 출시 초기에는 판매가 부진했지만, 닌텐도는 꾸준히 판매량을 늘려나갔다. 1976년에는 ''Shooting Trainer''를 출시하여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1978년에는 후속작인 ''New Shooting Trainer''를 선보였다. 이 외에도 ''Sky Hawk''(1976), ''Battle Shark''(1977), ''Test Driver''(1977) 등의 게임이 미니 레이저 클레이 시스템으로 출시되었다.[11] ''와일드 건맨''과 ''Shooting Trainer''는 1976년 세가를 통해 북미 지역에도 유통되었다.[12]
한편, 1976년에 출시된 ''덕 헌트''가 레이저 점사 시스템의 일부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13] 일부에서는 가정용 사격 시뮬레이션을 목표로 한 별도의 "닌텐도 빔 건 시리즈" 제품이라고 주장하는 반면,[14] 기즈모도는 레이저 점사 시스템을 개량하는 과정의 일부였다고 보도했다.[15]
2. 5. 1970년대 닌텐도의 기술 발전
1970년 닌텐도가 발매한 완구 '광선총 SP'는 불량품 문제로 큰 이익을 내지는 못했지만 판매 실적은 좋았다.[21] 이를 바탕으로 닌텐도는 단순 완구를 넘어선 본격적인 레저 스포츠로서 사격 시뮬레이터 개발을 목표로 삼았다. 산탄총을 이용한 클레이 사격을 모델로 삼아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개발자들은 실제 클레이 사격을 경험하기 위해 총기 소지 허가까지 취득했다.[21]
레이저 점사 시스템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1971년, 당시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가 신문에서 사격 경기에 대한 기사를 읽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당시 보조 개발자였던 요코이 군페이에게 기존 제품인 '광선총 SP'의 기술을 사격 시뮬레이션에 응용할 수 있는지 물었다. 며칠 후 요코이는 '전자 클레이 사격 시뮬레이션' 설계를 위해 소총 구매를 요청했고, 이 프로젝트는 1971년에 승인되어 '레이저 점사 시스템'으로 명명되었다. 개발에는 우에무라 마사유키와 타케다 겐요도 참여했다.[3]
야마우치는 당시 붐이 사그라들던 볼링장을 활용할 방안을 모색했다. 일본에서 볼링은 196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으나, 60년대 말부터는 노래방 등에 밀려 쇠퇴하고 있었다.[32][23] 닌텐도는 이러한 빈 볼링장 부지를 재활용할 수 있는 실내 레저 기기로 레이저 점사 시스템을 홍보하며 발매했다.[21]
첫 번째 레이저 점사 시스템은 1973년 초에 공개되었는데, 공개 당일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으나 가까스로 해결되었다.[3] 닌텐도는 주요 위치의 폐업한 볼링장을 인수하여 시스템을 설치했다. 설치 비용은 약 400만엔에서 450만엔 사이였으며, 각 시스템은 산이나 숲 배경 뒤에서 표적이 나타나는 오버헤드 프로젝터와 레이저 발사가 표적에 명중했는지 감지하는 반사 메커니즘으로 구성되었다.[3][6]
초기 반응은 성공적이어서 시범 운영 장소는 만원을 이루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야마우치는 1973년 2월, 시스템 유지보수 및 주문 처리를 위한 자회사 '닌텐도 레저 시스템 주식회사'를 설립했다.[7][24] 설립 당시 이미 1,400대의 예약이 있었고[24], 5월부터 모델 센터를 설치하여 본격적인 영업 활동을 시작했다.[25] 1973년 말에는 일본 전국 22개 시설에 322대가 가동 중이었다.[26] 수요를 맞추기 위해 생산 공장은 24시간 가동되었으며, 광고에는 일본 배우이자 무술가인 치바 신이치가 등장했다.[7] 야마우치는 연간 30억엔의 매출을 예상하며 성공을 확신했다.[24]
그러나 1973년 10월, 제4차 중동 전쟁 발발로 시작된 1차 석유 파동은 상황을 급변시켰다.[8][27] 석유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일본 경제는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했고, 이는 레저 산업에 직격탄이 되었다. 레이저 점사 시스템 주문 취소가 잇따랐고, 1년도 안 되어 거의 모든 주문이 취소되었다.[8] 수십억 엔을 투자했던 닌텐도의 이익은 절반으로 줄었고, 회사는 50억엔 (당시 약 6,400만 달러)의 부채를 안게 되었다. 이 부채는 7년에 걸쳐 상환해야 했으며, 1980년 게임 & 워치의 대성공으로 간신히 청산할 수 있었다.[8][27] 야마우치는 '전자 클레이 사격' 프로젝트를 중단했고, 회사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닌텐도가 위기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주식 시장에 상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일부 주주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회사를 계속 지원했다.[8]
1974년, 레이저 점사 시스템이 여전히 어느 정도 인기를 유지하자 야마우치는 이를 더 작고 저렴한 버전으로 재설계하여 '미니 레이저 클레이'라는 이름으로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 내놓았다.[9] 비용 절감을 위해 요코이 군페이는 16mm 프로젝터와 비디오를 활용하여 시스템을 아케이드 캐비닛 형태로 제작하는 아이디어를 냈다.[9][10] 1974년, 이 기술을 활용한 첫 게임인 ''와일드 건맨''이 출시되었다. 이와 함께 성인용 버전인 ''Fascination''도 개발되었는데, 카우보이 대신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등장하여 플레이어가 옷을 쏘아 맞히는 방식이었으나 일반에 출시되지는 않았다.[9]
미니 레이저 클레이 시스템은 초기에는 판매가 부진했지만 점차 판매량을 늘려나갔다. 1976년에는 이 시스템 기반의 ''Shooting Trainer''가 출시되어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었으며, 1978년에는 후속작 ''New Shooting Trainer''가 출시되었다. 그 외에도 ''Sky Hawk''(1976), ''Battle Shark''(1977), ''Test Driver''(1977) 등의 게임이 미니 레이저 클레이 시스템용으로 발매되었다.[11] ''와일드 건맨''과 ''Shooting Trainer''는 1976년 세가를 통해 북미 지역에 유통되기도 했다.[12]
한편, 1976년 출시된 ''덕 헌트''의 경우, 레이저 점사 시스템의 일부로 보는 시각[13], 가정용 사격 시뮬레이션을 목표로 한 별도의 '닌텐도 빔 건 시리즈'의 일부로 보는 시각[14], 또는 레이저 점사 시스템 개량 과정의 일부로 보는 시각[15] 등 그 계보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존재한다.
1970년대 닌텐도는 전자 기술을 활용한 제품 개발에서 여러 실패를 겪었지만, 이 시기에 축적된 기술력과 판매 경로는 이후 컴퓨터 게임 사업 성공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27]
3. 게임 시스템
레이저 클레이 사격 시스템은 과거 일본 볼링장 등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클레이 사격 시뮬레이션 게임이다.[3] 플레이어는 천장의 프로젝터가 스크린에 비추는 움직이는 표적(클레이 버드)을 레이저 소총으로 쏘아 맞추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표적에 명중하면 프로젝터는 표적이 파괴되는 영상을 보여준다.[3] 게임의 구체적인 진행 방식과 기술적 원리는 하위 문단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3. 1. 작동 원리
레이저 클레이 사격 시스템은 클레이 사격의 트랩 경기를 모방한 시뮬레이션 게임이다.[3] 플레이어가 발밑의 스위치를 밟거나 구령을 외치면, 프로젝터는 약 20m 앞 스크린에 움직이는 표적인 클레이 버드를 4초 동안 투영한다. 플레이어는 이 표적을 향해 모의 총의 방아쇠를 당기며, 이때 총은 충격과 함께 발사음을 낸다.스크린에 투영된 클레이 버드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레이저 광선이 함께 조사된다. 현실적인 조준을 위해, 레이저 광선은 클레이 버드의 예상 비행 경로보다 약간 앞쪽에 조사된다.[21] 이는 실제 클레이 사격에서 움직이는 표적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조준 앞섬'을 구현한 것이다.
총구에 내장된 센서가 스크린에서 반사된 레이저 광선을 감지하면, 총에서 파쇄음이 나고 총 하부에 부착된 적외선 발광기에서 명중 신호가 제어 장치로 전송된다. 초기에는 전파 통신 방식이었으나 안정성 문제로 적외선 방식으로 개선되었다.[20][21]
제어 장치는 수신된 명중 신호와 클레이 버드가 날아간 후 신호가 수신되기까지 걸린 시간, 그리고 미리 플러그 보드로 설정된 명중률 값을 종합하여 최종 명중 여부를 판정한다. 이 과정에서 10단계의 듀티 사이클을 이용한 확률 펄스와 명중 신호의 논리곱(AND 연산)을 계산한다. 이를 통해 발사 시간이 길어질수록 산탄이 퍼져 명중률이 떨어지는 '탄 벋어남' 현상을 확률적으로 재현한다.[21] 명중으로 판정되면, 스크린상의 클레이 버드가 흩어지는 영상이 표시되어 명중했음을 알려준다.[3][21]
3. 2. 기술적 특징
이 시스템은 클레이 사격의 트랩 경기를 모방한 사격 시뮬레이션 게임이다.[3] 사수가 발밑의 스위치를 누르거나 구령을 외치면, 프로젝터를 통해 약 20m 앞 스크린에 움직이는 표적(클레이 버드)이 4초 동안 나타난다. 플레이어는 이 표적을 향해 모의 총의 방아쇠를 당기며, 이때 총에서는 실제와 유사한 충격과 발사음이 발생한다. 명중으로 판정되면 스크린 상의 클레이 버드가 파괴되는 연출이 표시된다.게임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실제 클레이 사격의 중요한 요소들이 반영되었다. 산탄의 비행 시간을 고려한 '조준 앞섬'(표적의 예상 경로보다 약간 앞을 조준하는 것)의 필요성이 구현되어 있으며, 발사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산탄이 퍼져 명중률이 낮아지는 '탄 벋어남' 현상도 재현되어 있다. 하나의 클레이 버드당 두 발을 쏠 수 있으며, 첫 발 명중 시 2점, 두 번째 발 명중 시 1점을 얻는다. 총 20회의 사격으로 한 게임이 구성되며, 게임 시간은 볼링 한 게임과 비슷한 수준이다.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스크린에 투영된 클레이 버드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레이저 광선이 함께 조사된다. 특히 '조준 앞섬'을 구현하기 위해 레이저 광선은 클레이 버드의 비행 방향보다 약간 앞쪽에 조사된다. 모의 총의 총구에 내장된 센서가 스크린에서 반사된 레이저 광선을 감지하면, 총기 하부에 부착된 적외선 발광 장치에서 명중 신호가 제어 장치로 전송된다. 초기에는 전파 통신 방식이었으나 불안정하여 적외선 방식으로 변경되었다.[20] 제어 장치는 10단계의 듀티 사이클을 이용한 확률 펄스를 생성한다. 클레이 버드가 날아간 후 명중 신호를 수신하기까지 걸린 시간에 따라 로터리 스위치가 작동하며, 미리 설정된 명중률(탄 벋어남 구현)과 명중 신호의 논리곱(AND) 연산을 수행한다. 두 조건이 모두 충족될 때만 최종적으로 명중으로 판정되어 스크린에 파괴 연출이 나타난다.[21]
1974년에는 이 시스템을 재설계하여 아케이드 게임용으로 출시한 "미니 레이저 클레이" 버전도 등장했다. 이 버전은 최대 4명이 동시에 플레이할 수 있는 2개의 사격장으로 구성되었으며, 100JPY을 내면 클레이 비둘기 10개를 쏠 수 있었다 (비둘기당 2발). 높은 점수를 얻으면 상품으로 교환 가능한 토큰을 지급했다.[4] 더 저렴한 모델로는 16mm 필름으로 표적을 투사하고 리볼버 형태의 총을 사용하는 1인용 버전도 있었다.[5]
시스템 가격은 1개 사격 라인(사대)당 350만엔으로 책정되었으며, 이는 당시 볼링 레인 1개당 가격인 550만엔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시공비 별도).[22] 시스템은 최소 10개 사격 라인 구성부터 판매되었다.
4. 관련 상품
레이저 점사 시스템 기술은 1970년대 초반부터 상업적인 오락 제품으로 개발되어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초기 제품으로는 클레이 사격을 모방한 레이슈팅, 서부극을 배경으로 한 와일드 건맨 및 슈팅 트레이너 등이 있다. 이 게임들은 당시의 최신 기술이었던 레이저를 활용하여 사용자에게 새로운 형태의 건 슈팅 게임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던 초기의 시도들이었다.
4. 1. 레이슈팅
1973년 5월 SKB 판매가 발매한 업무용 대형 건 슈팅 게임이다.[28] 레이저 클레이와 마찬가지로 볼링장 부지를 재활용한 클레이 사격 시뮬레이션 게임이지만, 표적으로 클레이를 본뜬 장치인 '레이 버드'를 실제로 공중으로 날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센서와 스트로보 발광 장치를 내장한 레이 버드가 방출기에서 공중으로 쏘아 올려지면, 플레이어는 이를 총으로 조준한다. 총에서 발사된 광선이 레이 버드에 명중하면 스트로보가 번쩍이고 파쇄음이 나며, 회장의 조명을 이용해 명중했음을 연출한다. 사용된 레이 버드는 바닥의 벨트 컨베이어를 통해 회수되어 다시 방출기로 돌아가 충전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게임 구성은 트랩 경기용과 스키트 경기용의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4. 2. 와일드 건맨
1974년에 닌텐도 레저 시스템이 발매한 게임 센터용 건 슈팅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서부극을 소재로 한 영상에 등장하는 건맨과 속사 대결을 펼친다. 이후 일반적인 아케이드 게임처럼 스크린을 내장한 독립형 기기로 개발되었으며, 엘모사(Elmo Co.)와 공동 개발한 16mm 영사기 2대를 사용했다.[29] 미국과 유럽에도 수출되었다.[30]4. 3. 슈팅 트레이너
1976년 닌텐도 레저 시스템이 발매한 아케이드 건 슈팅 게임이다. 서부극의 황야를 무대로, 무작위로 나타나는 병의 실루엣을 라이플총으로 쏘는 규칙이다. 모의 총에는 RCA제 반도체 레이저를 내장하였고, 스크린에서 반사된 레이저 광선을 포토 트랜지스터로 감지하여 명중을 판정한다. 판매 가격은 229.99999999999997만엔[31]이었다.5. 반응 및 평가
일본에서는 여러 레이저 클레이 게임이 1976년 일본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아케이드 게임 중 하나였다. '스카이 호크', '미니 레이저 클레이' 및 '와일드 건맨'은 각각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로 높은 전기 기계식 게임 (EM 게임)이었다 (남코의 F-1, TOGO의 모구라 타이치 및 세가의 '그룹 스킬 디가'보다 낮음).[16] 이듬해 '슈팅 트레이너'와 '레이저 클레이'는 각각 1977년 아케이드 EM 게임 중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렸으며, 그 해 상위 3개 슈팅 게임 중 하나였다(남코의 슛 어웨이보다 낮음).[17]
북미에서는 '와일드 건맨'이 1976년 AMOA 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케이드 머신 중 하나였다.[18] 이듬해 '슈팅 트레이너'는 '플레이 미터'에 따르면 미국에서 1977년 17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린 아케이드 게임이었으며, 목록에서 세 번째로 높은 전기 기계식 게임이었다(남코의 F-1 및 얼라이드 레저의 '데이토나 500'보다 낮음).[1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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