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르다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리베르다지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위치한 지역으로, 19세기에는 노예와 죄수 처형 장소였으나, 20세기 초 일본인 이민자들이 정착하면서 일본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현재는 일본계 브라질인을 비롯하여 중국인, 한국인 등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는 다문화 지역으로, 일본풍의 건축물, 상점, 행사 등을 통해 일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리베르다지 지하철역이 있으며, 과거 일본 신문과 현재 닛케이 심문 등의 미디어가 발행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상파울루의 지리 - 파울리스타 대로
파울리스타 대로는 브라질 상파울루의 주요 도로로, 과거 커피 재벌들의 주거 지역에서 금융 중심지로 변화했으며 현재는 다양한 문화 시설과 행사들이 열리는 상파울루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 재팬타운 - 아유타야 일본인 마을
아유타야 일본인 마을은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아유타야 왕국 내에 존재했던 일본인 거주 지역으로, 군사적, 상업적 역할과 더불어 종교적 자유를 찾아 온 일본인들의 정착지였으나, 1630년 이후 쇠퇴하여 현재는 기념 공원으로 남아있다. - 재팬타운 - 천우협
천우협은 드라마 《녹두꽃》에 등장하는 단체이다.
리베르다지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개요 | |
공식 명칭 | 리베르다지 (Liberdade) |
일본어 표기 | 리베루다지 (リベルダージ, Riberudāji) |
위치 | 브라질 상파울루의 구역 |
행정 | |
관할 하위 자치구 | Sé (세) |
하위 자치구장 | (정보 없음) |
지리 | |
면적 | 3.7 km² |
인구 통계 | |
인구 (2014년) | 218,310명 |
인구 밀도 | 16,723명/km² |
인간 개발 지수 (HDI) | 0.936 (매우 높음) |
기타 | |
웹사이트 | Sé 하위 자치구 |
![]() |
2. 역사
리베르다지는 포르투갈어로 "자유"를 의미하며, 이 지명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다. 한 역사서에 따르면 1821년에 급여 체불에 항의한 병사 2명이 처형되자, 민중이 "리베르다지!"라고 외친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현재의 리베르다지역 주변은 형장이었다. 리베르다지 광장 앞에 있는 교수형 교회(상타 크루스 도스 엔폴카르도스 교회)는 그 당시 민중의 소원에 의해 건설된 예배당을 전신으로 한다. 다른 역사서에는 1810년경 해방을 요구하는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오갔던 길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17]
2018년 7월 18일, 리베르다지 광장의 명칭은 리베르다지·일본 광장으로 변경되었다.[18] 이에 따라 지하철역의 명칭도 일본·리베르다데역이 되었다.[19] 다만, 지구의 명칭은 리베르다지 구역으로 남아있다.
리베르다지(Liberdadept)는 브라질 포르투갈어로는 "리베르다지"라고 발음한다. 그러나 가타카나 표기를 할 경우에는 이베리아 포르투갈어 발음을 전제로 표기하는 것이 관례이다.[16] 예를 들어 Brasil은 브라질 포르투갈어로는 "브라지우"가 되지만, 일본어 가타카나 표기는 "브라질"이다. 마찬가지로 Liberdade는 "리베르다데"로 표기하며, 상파울루의 한자 신문도 "리베르다데"라고 표기하고 있다.
2. 1. 19세기: 노예와 죄수들의 처형장
리베르다지는 19세기 후반까지 "캄푸 다 포르사"(Campo da Forca, '교수형대')로 알려졌으며, 노예와 죄수들을 처형하는 구역이었다. 노예들에게 죽음은 유일한 해방(liberdade)의 길로 여겨졌다. 사형수는 이그레자 노사 세뇨라 다 보아 모르치(Igreja Nossa Senhora da Boa Morte, '선종의 성모 교회')로 인도되어 빠르고 고통 없는 죽음을 위한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 노예와 죄수들은 현재 프라사 다 리베르다지(Praça da Liberdade)로 알려진 공공 광장인 라르고 다 포르사(Largo da Forca, '교수형 광장')에서 처형되었다. 1774년에는 처형된 노예, 자살한 사람들, 그리고 다른 곳에 매장될 수 없는 사람들을 묻기 위해 셈이테리우 도스 아플리토스(Cemitério dos Aflitos, '고통받는 자들의 묘지')가 만들어졌다.20세기에 묘지는 주택 개발로 대체되었으며, 루아 도스 에스투단테스에 있는 단순한 카펠라 도스 아플리토스(Capela dos Aflitos)는 그 시대의 유적이다. 공공 광장 남쪽에 눈에 띄게 위치한 이그레자 다 산타 크루스 다스 알마스 도스 엔포르카도스(Igreja da Santa Cruz das Almas dos Enforcados, '매달린 자들의 성 십자가 교회')는 캄푸 다 포르사의 죽은 자들을 기린다. 처형은 1891년까지 캄푸 다 포르사에서 이루어졌고, 광장은 리베르다지로 개명되었다.
2. 2. 20세기 초: 일본인 이민자들의 정착
1912년 일본인들이 리베르다지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 대부분의 부동산에는 지하실이 있어 여러 가족을 수용할 수 있었고, 임대료가 매우 저렴했기 때문이다. 비록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위치 덕분에 노동자들은 쉽게 이동할 수 있었고, 초기 닛케이 공동체를 지원할 수 있었다.20세기 초, 이 이민자들을 위한 상업 활동이 시작되었다. 호스텔, 수입품 시장, 두부를 만드는 집, 만주를 만드는 집, 그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이 생겨나면서 리베르다지는 "일본 거리"라는 칭호를 얻었다. 1915년에는 약 300명이었던 일본 이민자들의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 '타이쇼 쇼가코'(大正小学校|다이쇼 소학교일본어)가 설립되었다. 1932년에는 상파울루시에 약 2,000명의 일본인이 있었다. 그들은 일본 제국에서 직접 왔으며, 농장에서 계약을 마치고 도시의 호황 속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상파울루 내륙에서 오기도 했다.
1946년에는 닛케이인 사이에서 최초의 종전 정기 간행물인 상파울루 '신문'(新聞|신분일본어) 신문이 창간되었으며,[6] 일본 서적을 찾을 수 있는 현재 운영 중인 솔 서점(大洋堂|다이요도일본어)이 개점했다.[7]
1953년, 요시카즈 타나카는 루아 갈바오 부에노에 5층 건물을 개관했는데, 1,5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홀, 레스토랑, 호텔, 그리고 1층에 대규모 상영관이 있는 시네 니테로이(シネ・ニテロイ|시네 니테로이일본어)라는 이름을 붙였다.[8] 이곳은 이 지역의 다른 일본 운영 극장과 경쟁할 정도로 성장했다.
1905년 12월 20일, 리베르다지 구가 제정되었다. 1906년에는 후지사키 상점이 창업하여 일본 잡화를 판매했고, 하오리하카마 차림의 점원들과 러일 전쟁 승리의 영향으로 인기를 끌었다.[22] 1908년 6월 18일, 가사토마루가 산투스 항에 도착하면서 브라질에 일본인 이민이 시작되었다. 초기 이민자들은 가혹한 노동 환경을 피해 상파울루로 오는 경우가 많았다. 1910년에는 상파울루에 이미 268명의 일본인이 있었다.
1912년경, 많은 일본인들이 콩데 데 사르제다스 거리 언덕 아래에 살게 되었다. 이 지역은 반 지하 방이 있는 집이 많아 집세가 저렴했고, 중심가와 가까워 걸어서 출근할 수도 있었다. 1914년에는 우에치 호텔[23]이 개설되었고, 인근에 이민자들의 합숙소와 같은 장소가 늘어갔다. 1915년에는 다이쇼 초등학교가 개교했다. 1916년에는 콩데 거리에 야구 클럽 등이 생겼고, "남미"와 "일백신문"[24]등의 일본어 간행물도 창간되었다. 1917년에는 일본어 신문 "브라질 시보"가 창간되었고, 1918년에는 "일백신문"이 이전했다.
1924년에는 도키와 여관이 개업했고, 1925년에는 성주의숙이 개강했다. 일본인 거리는 콩데 거리에서 콘세레이루 풀타두 거리, 갈봉부에노 거리 등으로 넓어졌다. 1929년에는 다이쇼 초등학교가 이전했다. 1930년에는 진료소가 개설되었고, 해외흥업 주식회사의 지점과 재브라질 일본인 동인회 사무소가 개설되었다.
1932년에는 상파울루 시내의 일본인 이민이 2000명에 달했고, 콩데 거리에는 600명이 살고 있었다. 1940년까지 콩데 거리에는 여러 상점과 치과 등이 개업하여 일본인 거리로서 융성했다. 그러나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1942년에는 브라질과 일본의 국교가 단절되었다. 같은 해, 콩데 거리 일대의 일본인 가족 및 상점에 퇴거 명령이 내려져 전쟁 전 리베르다지의 일본인 거리는 소멸했다.[25][26][27][28]
2. 3.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일본인 거리의 형성
1912년 일본인들이 이 지역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의 거의 모든 부동산에 지하실이 있어 여러 가족을 수용할 수 있었고, 임대료가 매우 저렴했기 때문이다. 비록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위치 덕분에 노동자들은 쉽게 이동할 수 있었고, 초기 닛케이 공동체를 지원할 수 있었다. 이들의 등장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중국인, 대만인, 한국인, 오키나와 이민자들이 브라질로 오는 것으로 이어졌다.20세기 초, 이 이민자들을 위한 상업 활동이 시작되었다. 호스텔, 수입품 시장, 두부를 만드는 집, 만주를 만드는 집, 그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이 생겨나면서 리베르다지는 "일본 거리"라는 칭호를 얻었다. 1915년에는 약 300명이었던 일본 이민자들의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 '타이쇼 쇼가코'(Taisho Shogakko, 대정 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1932년에는 상파울루시에 약 2,000명의 일본인이 있었다. 그들은 일본 제국에서 직접 왔으며, 농장에서 계약을 마치고 도시의 호황 속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상파울루 내륙에서 오기도 했다.
1946년에는 닛케이인 사이에서 최초의 종전 정기 간행물인 상파울루 '신문'(Shimbun) 신문이 창간되었으며,[6] 일본 서적을 찾을 수 있는 현재 운영 중인 솔 서점(Taiyodo)이 개점했다.[7] 1947년 3월, 마사히코 마루야마 교수가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아베니다 리베르다지에 있는 파울리스타 교사 센터 강당에서 종전 후 첫 콘서트를 열었다.
1953년, 요시카즈 타나카는 루아 갈바오 부에노에 5층 건물을 개관했는데, 1,5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홀, 레스토랑, 호텔, 그리고 1층에 대규모 상영관이 있는 시네 니테로이(Cine Niterói)라는 이름을 붙였다.[8] 이곳은 이 지역의 다른 일본 운영 극장과 경쟁할 정도로 성장했다. 1964년 4월, 상파울루 일본 문화 협회(분쿄, Bunkyô) 건물이 개관했다.
2. 4. 1970년대 이후: 동양인 거리로의 변화
1912년 일본인이 이 지역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 대부분의 부동산에는 지하실이 있어 여러 가족을 수용할 수 있었고, 임대료가 매우 저렴했기 때문이다. 비록 열악했지만, 위치 덕분에 노동자들은 쉽게 이동할 수 있었고, 초기 닛케이 공동체를 지원할 수 있었다. 이들의 등장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중국인, 대만인, 한국인, 오키나와 이민자들이 브라질로 오는 것으로 이어졌다.[6]20세기 초, 이 이민자들을 위한 상업 활동이 시작되었다. 호스텔, 수입품 시장, 두부를 만드는 집, 만주를 만드는 집, 그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이 생겨나면서 리베르다지는 "일본 거리"라는 칭호를 얻었다. 1915년에는 약 300명이었던 일본 이민자들의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 '타이쇼 쇼가코'(Taisho Shogakko, 대정 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1932년 상파울루시에는 약 2,000명의 일본인이 있었다. 그들은 일본에서 직접 왔으며, 농장에서 계약을 마치고 도시의 호황 속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상파울루 내륙에서 오기도 했다.[7]
1946년 닛케이인 사이에서 최초의 종전 정기 간행물인 상파울루 '신문'(Shimbun) 신문이 창간되었으며, 일본 서적을 찾을 수 있는 현재 운영 중인 솔 서점(Taiyodo)이 개점했다. 1947년 3월, 마사히코 마루야마 교수가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아베니다 리베르다지에 있는 파울리스타 교사 센터 강당에서 종전 후 첫 콘서트를 열었다.
1953년 요시카즈 타나카는 루아 갈바오 부에노에 5층 건물을 개관했는데, 1,5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홀, 레스토랑, 호텔, 그리고 1층에 대규모 상영관이 있는 시네 니테로이(Cine Niterói)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곳은 이 지역의 다른 일본 운영 극장과 경쟁할 정도로 성장했다. 1964년 4월, 상파울루 일본 문화 협회(분쿄, Bunkyô) 건물이 개관했다.[8]
1970년대 리베르다지 지하철역이 1호선의 일부로 건설되어 이 지역의 도시 구성을 변경했다. 원래는 "일본인 거리"라고 불렸지만, 일본계 브라질인의 현지 동화가 진행됨에 따라 일본인 인구가 감소하고, 그와 교체되듯이 중국인이나 한국인의 이민이 많이 전입해 오면서 혼합 거주가 진행된 결과, 2004년 정식으로 "일본인 거리"에서 "동양인 거리"로 개명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거리 조성이나 인구, 점포의 비율에서는 일본인 거리 시절의 모습이 강하게 남아 있으며, 중국인이나 한국인도 일본 요리점 등을 경영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현지인들도 "일본인 거리"라고 부르고 있다.
3. 문화 및 특징
브라질 내 니포-브라질인과 일본 문화의 거리로 널리 알려진 리베르다지에는 현재 중국인, 대만인 및 한국인도 거주하고 있다.[9]
이 지구에는 "이그레자 산타 크루스 다스 알마스 도스 엔포르카도스", "카펠라 노사 세뇨라 도스 아플리토스", 마론파 "노사 세뇨라 도 리바노"와 여러 복음주의 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가 있다.
브라질 일본 이민 역사 박물관(Museu Histórico da Imigração Japonesa no Brasilpt)은 리베르다지에 위치해 있다.[13] 리베르다데 역 앞 광장을 중심으로 "일계 단체 어삼가"로 불리며, 브라질 일본 문화 복지 협회, 상파울루 일·백 원호 협회, 브라질 도도부현인회 연합회 등 대표 기관 및 각 현인회, 일계 복지 단체, 일계 문화 단체의 사무소가 집중되어 있다.
상파울루 일·백 원호 협회의 리베르다데 의료 센터는 일계 의료기관으로, 일계 의사가 일본어 진찰을 제공한다. 브라질 일본 문화 복지 협회 내 이민 자료관에는 당시 생활을 재현한 전시 코너와 일계인 이민의 여권, 생활 용품 등 다양한 물품이 전시되어 일계 브라질인의 역사를 보여준다.
3. 1. 일본 문화의 중심지
브라질 내 니포-브라질인과 일본 문화의 거리로 널리 알려진 리베르다지에는 현재 상당수의 중국인, 대만인 및 한국인도 거주하고 있다.[9] 1974년부터 리베르다지 입구에는 높이 9미터의 붉은 ''도리이''가 세워져 있다. 이 구조물은 갈바웅 부에노 거리에 있으며, 이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전후부터 리베르다지 지구에는 일본인 거리가 형성되었으며, 중심부를 관통하는 가우봉 부에노 거리 입구에 도리이와 오사카 다리가 있고, 중심부에도 작은 일본식 정원이 설치되어 있다. 지구 전체의 가로등이 등롱 모양을 하고 있는 등[21], 곳곳에 일본적인 특징을 도입한 거리 조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일본인 거리로 유명한 리틀 도쿄와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일본인 거리가 되었다.
리베르다지는 1970년대에 상파울루 지하철 네트워크와 성공적으로 연결되어 상업 발전을 이루었다. 오늘날, 상파울루는 물론 도시 외 지역에서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매주 주말 리베르다지 광장에 모여 지역 주간 시장에서 수공예품을 구매한다.

리베르다지 지역 내에는 일본계가 운영하는 호텔이나 일본 요리 레스토랑, 일본어 서적을 취급하는 책방 및 일본풍의 기념품 가게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활황을 띄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계나 한국계 등 다른 아시아계 주민이 운영하는 점포도 많지만, "일본인 거리"로 알려져 있기도 하여 일본인 외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점포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부분이 일본 관련 점포이다.
상파울루 지하철 리베르다지 역 앞 광장에서는 일 년 중 계절마다 상파울루 센다이 칠석 축제나 지륜 통과, 수국차 시음 등 일본의 연중 행사가 재현되며, 아키타견 품평회 등 일본과 관련된 행사가 개최된다.
2008년 1월, 브라질 일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질베르투 카사브 시장에 의해 이 지역 재건 프로젝트가 승인되었다. 복원 작업의 40%는 2008년 6월 나루히토 황태자의 상파울루 방문을 위해 이루어졌다.
리베르다지는 특히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많은 하위 그룹의 만남의 장소이다.
3. 2. 다문화 지역
브라질 내 니포-브라질인과 일본 문화의 거리로 널리 알려진 리베르다지에는 현재 상당수의 중국인, 대만인 및 한국인도 거주하고 있다.[9] 1970년대 상파울루 지하철과 연결되며 상업이 발전했고, 주말마다 지역 주간 시장이 열린다.2008년 질베르투 카사브 시장은 브라질 일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여 재건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리베르다지는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의 하위 그룹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브라질 일본 이민 역사 박물관(Museu Histórico da Imigração Japonesa no Brasilpt)이 리베르다지에 있다.[13] 원래 "일본인 거리"였으나, 일본인 인구 감소와 중국인, 한국인 이민 증가로 2004년 "동양인 거리"로 개명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풍이 강하게 남아있고, 현지인들은 "일본인 거리"라고 부른다.
리베르다지에는 일본계 호텔, 일본 요리 레스토랑, 일본어 서적 책방, 일본풍 기념품 가게 등이 많다. 중국계나 한국계 등 다른 아시아계 주민의 점포도 많지만, 대부분 일본 관련 점포이다. 상파울루 지하철 리베르다지 역 앞 광장에서는 상파울루 센다이 칠석 축제 등 일본 관련 연중 행사가 개최된다.
3. 3. 미디어
과거 상파울루 심분(São Paulo Shimbun)은 리베르다지에서 발행된 일본 신문이었다.[10]닛케이 심분(Nikkey Shimbun)과 자매지인 포르투갈어 신문 조르날 닛파크(Jornal Nippak)는 리베르다지에서 발행된다.[11][12]
4. 주요 시설
리베르다지 역 앞 광장을 중심으로 "일계 단체 어삼가"로 불리며, 브라질 일본 문화 복지 협회, 상파울루 일·백 원호 협회, 브라질 도도부현인회 연합회 등 대표 기관과 각 현인회, 일계 복지 단체, 일계 문화 단체의 사무소가 집중되어 있다.
일계 의료기관으로는 상파울루 일·백 원호 협회의 리베르다데 의료 센터가 있으며, 일계 의사에 의한 일본어 진찰을 받을 수 있다. 브라질 일본 문화 복지 협회 내 이민 자료관에는 당시 생활을 재현한 전시 코너와 일계인 이민의 여권, 생활 용품 등 다양한 물품이 전시되어 있어, 일계 브라질인의 역사를 아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29]
주요 시설 |
---|
5. 교통
상파울루 지하철 1호선 리베르다지 역이 중심부 광장 앞에 위치해 있으며, 시내버스 정류장이 지역 내에 여러 곳 있다. 리베르다지 역 앞에는 택시 승차장도 있다. 콩고냐스 공항에서 택시로 25분, 구아룰류스 국제공항에서는 택시로 약 40분 거리이다.[14][15]
참조
[1]
간행물
Será Que Você Conhece São Paulo?
http://www.pucsp.br/[...]
Universidade Aberta a Maturidade - PUC Ipiranga
2016
[2]
간행물
Crueldade marca início do bairro da Liberdade: No local eram enforcados criminosos e escravos no período colonial
http://www.nippobras[...]
1999-11-12
[3]
뉴스
Igreja dos Enforcados
http://revistasp.org[...]
2012-07-05
[4]
뉴스
A little corner of Brazil that is forever Okinawa
https://www.bbc.com/[...]
2018-02-04
[5]
웹사이트
São Paulo’s Asiatown: A Little Piece of Japan Halfway Around the Globe
https://www.nippon.c[...]
2021-02-22
[6]
웹사이트
Jornal São Paulo Shimbun deixa de ter edição impressa
https://www1.folha.u[...]
2018-12-31
[7]
웹사이트
Lojas tradicionais de imigrantes buscam inovar sem esquecer cliente antigo
https://www1.folha.u[...]
2022-03-20
[8]
웹사이트
Conheça o novo cinema de rua da Liberdade, em São Paulo, voltado a filmes asiáticos
https://guia.folha.u[...]
2023-07-06
[9]
웹사이트
Afinal, o que é o brasileiro? - Territórios e identidades: estudo de caso do bairro da Liberdade - São Paulo, SP
https://museudaimigr[...]
[10]
뉴스
Formulário de Contato
http://www.saopaulos[...]
2014-03-17
[11]
뉴스
ホーム
http://www.nikkeyshi[...]
2014-04-16
[12]
웹사이트
Portal Nikkei – Bem vindo ao Portal Nikkei
http://www.portalnik[...]
2022-10-19
[13]
웹사이트
Museu da Imigração Japonesa
https://www.bunkyo.o[...]
Historical Museum of Japanese Immigration in Brazil
2021-04-16
[14]
웹사이트
Metrô: Estação Liberdade dá acesso à cultura japonesa em São Paulo
http://www.saopaulo.[...]
Sao Paulo's State Government
2016-06-06
[15]
웹사이트
Liberdade
http://www.metro.sp.[...]
[16]
문서
浜岡 2017
[17]
문서
尾西ほか (1996)
[18]
문서
ニッケイ新聞 2018-08-30付
[19]
문서
ニッケイ新聞 2018-08-04付
[20]
문서
ニッケイ新聞 2016-08-23付
[21]
문서
ニッケイ新聞 2016-05-31付
[22]
웹사이트
サンパウロ市の日本移民
https://www.ndl.go.j[...]
[23]
웹사이트
上地彌蔵(うえじ・やぞう)
https://cenb.org.br/[...]
[24]
웹사이트
三浦 鑿(みうら・さく)
https://cenb.org.br/[...]
[25]
문서
尾西ほか (1996)
[26]
문서
ディスカバリー・ニッケイ
[27]
문서
ディスカバリー・ニッケイ
[28]
문서
ディスカバリー・ニッケイ
[29]
뉴스
ニッケイ新聞 2018-08-31付
[30]
뉴스
ニッケイ新聞 2018-07-26付
[31]
뉴스
サンパウロ新聞 2018-09-03付
[32]
뉴스
ニッケイ新聞 2003-01-23付
[33]
문서
尾西ほか (1996)
[34]
문서
深沢 2016-05-31付
[35]
문서
松田 2015-08-26付
[36]
간행물
Guia dos Estádios
2018-06-23
[37]
간행물
BAGAGEM DE MEMÓRIAS
2018-08-05
[38]
뉴스
니ッケ이신문
2005-12-20
[39]
뉴스
니ッケ이신문
2016-05-28
[40]
서적
松沢
2016
[41]
간행물
Galileu
2018-09-2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