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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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키는 위스키 또는 버번 위스키를 사용한 칵테일에서 유래되었으며, 조셉 카일 리키라는 로비스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883년, 바텐더 조지 윌리엄슨이 라임, 얼음, 위스키, 소다수를 섞어 만든 음료가 조 리키에게 호평을 받으면서 칵테일로 발전했다. 이후 다양한 증류주를 사용한 리키가 등장했으며, 특히 진 리키가 인기를 얻었다. 현재는 진, 라임, 탄산수를 기본으로 하며, 다양한 변형과 한국 주류를 활용한 리키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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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키 (음료) | |
|---|---|
| 기본 정보 | |
| 종류 | 칵테일 |
| 기반 | 버번 위스키, 라이 위스키, 또는 진 |
| 제공 방식 | 언더락 |
| 장식 | 라임 껍질 반쪽 |
| 음료 용기 | 하이볼 글라스 |
| 재료 | |
| 주재료 | 버번 위스키, 라이 위스키, 또는 진 2온스 |
| 부재료 | 라임 반 개, 즙을 짜서 넣고 껍질도 함께 넣음 탄산수 |
| 제조법 | |
| 방법 | 주류, 라임 즙, 라임 껍질을 하이볼 글라스 또는 와인 글라스에 넣고 얼음을 채운 후 탄산수를 넣고 섞는다. |
| 기타 정보 | |
| 참고 사항 | 롱 드링크의 일종 |
| 관련 스타일 | 리키 |
2. 역사
원래는 호밀 위스키 또는 버번 위스키를 사용한 칵테일이었다.
리키 칵테일은 1883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탄생했으며, 그 이름은 당시 민주당의 영향력 있는 로비스트였던 조셉 카일 리키(Joseph Kerr Rickey, 1842년-1903년)에서 유래했다. 그는 워싱턴 D.C.에서 "Colonel Joe Rickey|커넬 조 리키영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명사였다.
리키가 처음 만들어진 곳은 미국 국회의사당 근처 캐피톨 힐에 위치한 Shoomaker's Saloon|슈메이커스 살룬영어으로, 당시 정치 관련 인사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다. 1883년 7월 어느 날 아침, 조 리키는 동료들과 해장술을 마시기 위해 슈메이커스 살룬을 방문했다. 그는 카운터에 놓인 라임을 보고 바텐더 조지 윌리엄슨에게 특별한 레시피의 음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조 리키가 요청한 레시피는 잔에 반으로 자른 라임을 부드럽게 짜 과즙만 넣고, 작은 얼음 조각 하나, 위스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임 과즙과 위스키가 잘 섞이도록 소다수를 붓는 방식이었다. 이 칵테일은 동석한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고, 고안자인 "조 리키"의 이름이 붙여졌다. 다만, 이때 사용된 위스키가 호밀 위스키였는지 버번 위스키였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엇갈려 명확하지 않다.
이후 위스키뿐만 아니라 다양한 증류주를 기반으로 한 리키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894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회에서는 위스키, 진, 브랜디 등 다양한 증류주를 사용한 여러 종류의 리키가 제공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는 기록이 워싱턴 포스트에 남아있다.
1900년 전후에는 진 리키가 주류로 자리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조 리키 자신이 뉴욕의 한 호텔 바에서 "조 리키"를 주문했으나 바텐더가 알아듣지 못해 당황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2. 1. 조 리키 (Joe Rickey)
조셉 카일 리키(Joseph Kerr Rickey, 1842년-1903년)는 미국 민주당 소속의 영향력 있는 로비스트였으며, 워싱턴 D.C.에서는 "Colonel Joe Rickey|커넬 조 리키영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명사였다. 그는 "신사 도박꾼"으로도 알려져 다양한 정치적 경쟁 결과에 내기를 걸기도 했다.[3] 1903년 4월 24일, 그는 61세의 나이로 뉴욕시에서 사망했다.리키 칵테일은 1883년 워싱턴 D.C.에 위치한 Shoomaker's Saloon|슈메이커스 살룬영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2] 이 살룬은 미국 국회의사당을 포함한 Capitol Hill|캐피톨 힐영어 지역에 있어 정치 관련 인사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었다.
탄생 일화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한 이야기에 따르면, 조 리키는 바텐더 조지 윌리엄슨에게 자신의 "아침 음료"였던 버번 위스키에 얼음과 아폴리나리스 탄산수를 넣은 것에 라임을 추가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리키가 탄생했다고 한다.[2] 다른 설로는, 1883년 7월 어느 날 새벽까지 시간을 보낸 조 리키가 동료들과 해장술을 마시기 위해 슈메이커스 살룬에 들렀다가 카운터의 라임을 보고 바텐더 조지 윌리엄슨에게 특별한 레시피를 주문했다고 한다. 이 레시피는 잔에 반으로 자른 라임을 짜 넣고(껍질 향이 섞이지 않게 과즙만), 얼음 조각, 위스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다수를 부어 섞는 방식이었다. 이 음료가 호평을 받으며 그의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이때 사용된 위스키가 호밀 위스키였는지 버번 위스키였는지는 문헌마다 달라 명확하지 않다. 일부에서는 리키가 만들어진 정확한 날짜를 조 리키가 존 G. 칼라일의 하원의장 당선에 대해 필라델피아 사람과 내기를 한 후의 월요일로 특정하기도 한다.[2]
음료의 이름은 조 리키에게서 유래했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당시 함께 있었던 윌리엄 헨리 해치 하원의원이나 프레드 머시가 "조 리키 음료" 또는 "조 리키로 달라"고 요청하면서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4]
그러나 조 리키 자신은 자신의 이름이 음료에 붙은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미주리 출신의 존경받는 정치 로비스트이자 상원 의원, 판사, 정치인들의 친구로서 정치 문제에 권위를 가진 인물로 기억되기를 원했으나, 현실은 '리키' 음료의 창시자로 더 유명해진 것에 대해 억울함을 느꼈다.[6] 그는 당시 유행하던 스코치 하이볼이 리키의 인기를 넘어뜨려 자신의 이전 명성을 되찾게 해주기를 바란다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6] 또한, 1900년 세인트 폴 글로브 신문은 조 리키가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실제로는 리키를 마시지 않고 버번 위스키, 탄산수, 레몬을 즐겼으며, 라임 추가는 슈메이커스 바텐더들의 아이디어였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5]
처음에는 호밀 위스키나 버번 위스키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나, 점차 다양한 증류주를 사용한 리키들이 등장했다. 1894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회에서는 위스키, 진, 브랜디 등 다양한 증류주를 기반으로 한 리키가 제공되어 인기를 끌었다는 기록이 워싱턴 포스트에 남아있다. 1900년 전후에는 진 리키가 주류로 자리 잡았으며, 조 리키 본인이 뉴욕의 한 호텔 바에서 "조 리키"를 주문했으나 통하지 않아 짜증을 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2. 2. 슈메이커스 살룬 (Shoomaker's Saloon)
슈메이커스(Shoomaker's)는 1858년 로버트 오토 "찰리" 헤르초그 선장과 윌리엄 슈메이커 소령이 워싱턴 D.C.의 국립 극장 근처 E 스트리트 1331번지에 개업한 유명한 바였다. 두 사람은 남북 전쟁에서 연방군 장교로 복무한 독일 이민자였으며, 이름을 영어식으로 바꾸었다. 두 사람이 사망한 후, 미주리 출신의 민주당 로비스트였던 조셉 "조" K. 리키 대령이 1883년에 슈메이커스를 인수했다.[2][3] 바는 이후 1914년 E 스트리트 1311번지로 이전했다.[7] 윌라드 호텔과 13번가 사이의 E 스트리트 구간은 "럼 로우"(Rum Row)로 알려졌다.슈메이커스는 미국 국회의사당을 포함한 캐피톨 힐 근처에 위치하여 정치인과 로비스트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였다. 특히 14번가 모퉁이에는 여러 전국 신문들이 워싱턴 지국을 둔 "신문 거리"(Newspaper Row)가 있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원래 건물과 워싱턴 타임스 본거지인 문시 빌딩 등이 인근에 위치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 덕분에 로비스트와 정치인들은 슈메이커스에서 술을 마시며 기자들과 교류했고, 기자들은 쉽게 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공생 관계를 형성했다. 이 시스템은 1917년 셰퍼드 금주법 시행으로 구역 내 모든 술집이 폐쇄되면서 끝났다.[8]
슈메이커스는 리키 칵테일이 탄생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1883년 어느 날 아침, 조 리키 대령이 바텐더 조지 윌리엄슨에게 요청하여 라임, 얼음, 버번 위스키, 아폴리나리스 탄산수를 넣어 만든 음료가 시초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2] 당시 함께 있던 윌리엄 헨리 해치 하원의원과 프레드 머시 등도 이 음료를 "조 리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4]
이곳은 유명 작가, 정치인, 정계 주요 인사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9] 작가 엘버트 허바드는 슈메이커스의 단골 고객과 편안한 분위기에 대해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궁궐에 산다... 여기서 그들은 긴장을 풀고... 한계까지 달성된 민주주의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사물의 폭정에서 벗어난다"라고 묘사하며 그곳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전했다.[10] 슈메이커스는 특히 위스키와 와인의 품질로 명성이 높았으며, 자체 호밀 위스키를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 의회 농업 위원회 조사에서는 텍사스 출신 코완 판사가 슈메이커스를 "워싱턴에서 최고의 위스키를 구할 수 있는 곳"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반면, 가게 내부는 장식이 거의 없고 청결하지 않아 "슈즈"(Shoes) 또는 "거미줄 홀"(Cobweb Hall)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후자는 첫 위치에서 거미줄을 전혀 청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소박하고 낡은 모습은 오히려 단골들에게 존경받는 특징이 되었다.
1917년 10월 31일은 워싱턴 D.C.에서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다음 날부터 셰퍼드 금주법이 발효되었기 때문이다. 슈메이커스는 이날 오후 10시에 술이 모두 떨어지자 문을 닫았으며, 당시 손님들은 유행가 "저 너머에"(Over There)를 불렀다고 전해진다.[11] 이후 슈메이커스는 청량음료를 판매하는 곳으로 잠시 다시 문을 열었으나,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1918년 3월에 최종적으로 문을 닫았다.
2. 3. 조지 A. 윌리엄슨 (George A. Williamson)
조지 A. 윌리엄슨은 워싱턴 D.C.의 유명 바 '슈메이커스'(Shoomaker's)의 바텐더였으며, 1883년 조 리키 대령이 바를 인수한 후에는 비서 겸 공동 소유주가 되었다. 그는 리키 칵테일의 탄생과 관련된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리키 칵테일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존재한다. 1903년 세인트루이스 공화국 신문 기사에 따르면, 1880년대 초 조 리키 대령이 슈메이커스에서 윌리엄슨에게 얼음과 탄산수를 넣은 버번 위스키를 주문했고, 다음 날 윌리엄 헨리 해치 하원의원의 제안으로 윌리엄슨이 라임 반 개를 짜 넣으면서 리키가 탄생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리키 대령의 요청과 해치 의원의 제안에 따라 윌리엄슨이 음료를 만들었음을 시사한다.
반면, 작가 조지 로스웰 브라운은 1930년 저서 ''워싱턴: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역사''에서 윌리엄슨을 리키의 직접적인 발명가로 묘사했다. 브라운의 설명에 따르면,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손님이 윌리엄슨에게 카리브해식 음료 제조법을 알려주며 라임을 사용하되 럼 대신 호밀 위스키를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날 윌리엄슨이 이 레시피를 조 리키 대령에게 선보였고, 대령이 이를 마음에 들어 하면서 '리키'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것이다.[1] 다른 기록에 따르면 1883년 조 리키가 슈메이커스 살룬에서 윌리엄슨에게 구체적인 레시피(라임, 얼음, 위스키, 소다수)를 지시하여 칵테일을 만들게 했다고도 전해진다.
윌리엄슨은 단순히 음료를 만드는 기술자 이상의 인물이었다. 그는 뛰어난 사교성과 정치적 감각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았다. 1915년 워싱턴 이브닝 스타의 부고 기사에서는 "국가 정치의 많은 중요한 문제들이 [윌리엄슨]의 입회하에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그와 함께 논의되었다"고 언급하며 그의 영향력을 시사했다. 또한 워싱턴 포스트는 그를 "줄렙의 왕"이라고 칭했으며[12], 금주법 시대 이전 워싱턴 D.C. 바텐더 연합의 전 회장이었던 조 크로울리는 윌리엄슨을 "슈메이커스의 바텐더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고 회고했다.[13]
2. 4. 진 리키의 유행
18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진을 기반으로 한 리키가 기존의 버번이나 호밀 위스키를 사용한 '조 리키'를 대체하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1891년 ''오마하 데일리 비''는 ''워싱턴 스타''를 인용하여 "술꾼이 [...] 가장 먼저 찾는 것은 진-릭샤(Gin-Ricksha)"라고 보도하기도 했는데, 이는 진 리키의 초기 유행을 보여주는 사례이다.1900년 전후에는 진 리키가 이미 주류로 자리 잡았으며, 칵테일의 원조로 알려진 조 리키 본인이 뉴욕의 한 호텔 바에서 '조 리키'를 주문했으나 통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1907년경 진 리키의 인기는 더욱 높아져, ''로스앤젤레스 헤럴드''는 진 리키 제조에 필요한 라임 2백만 개가 서인도 제도에서 증기선 ''프레토리아''를 통해 도착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스카치 하이볼이나 매미 테일러 같은 다른 칵테일들이 인기를 얻으며 진 리키와 경쟁하기 시작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진 리키의 명성은 꾸준히 이어져, F. 스콧 피츠제럴드의 1925년 소설 ''위대한 개츠비'' 7장에는 더운 여름날 등장인물들이 시원하게 진 리키를 마시는 장면이 등장한다.[15][16] 소설 속에서 톰은 "얼음으로 가득 채워진 진 리키 네 잔을 앞세우며" 돌아오고, 개츠비는 "정말 시원해 보이는데"라고 말하며 음료를 마신다.[16]
이후에도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의 1942년 곡 "Jukebox Saturday Night"에서는 이 음료의 무알코올 버전인 "소다 팝 리키"를 마시며 즐기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심슨 가족'', ''에이전트 카터'', ''타임리스'', ''우리 해적단은 죽었다'', ''팜 로얄'' 등 여러 대중문화 작품에서 언급되며 그 이름이 알려져 있다. 진 리키에는 딸기, 라임 주스, 꿀, 민트 등을 추가한 딸기 라임 진 리키와 같은 다양한 변형도 존재한다.[14]
3. 재료 및 제조법
리키는 진을 베이스로 라임과 탄산수를 사용하여 비교적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칵테일이다. 일반적으로 텀블러에 라임 즙을 짜 넣고 얼음, 진, 탄산수를 넣어 가볍게 저어 완성하며, 마시는 사람이 직접 머들러로 라임을 으깨어 맛을 조절하는 것이 특징이다. 상세한 재료와 만드는 법은 하위 문단을 참고할 수 있다.
3. 1. 기본 재료
3. 2. 제조법
'''재료''''''만드는 법'''
# 텀블러에 라임을 짜 넣는다.
#: 짠 라임은 그대로 텀블러에 넣는다.
# 얼음, 진, 소다수를 텀블러에 넣고 가볍게 젓는다.
# 머들러를 곁들인다.
머들러를 곁들이는 것은 필수이다. 마실 때, 곁들여진 머들러로 라임 과육을 으깨어 자기 입맛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3. 3. 다양한 리키
진 리키에는 다양한 변형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진, 딸기, 라임 주스, 꿀, 민트 잎, 클럽 소다, 설탕을 넣어 만드는 딸기 라임 진 리키가 있다.[14]'시니 리키'(Sheeney Rickeyeng)는 라임 껍질을 넣지 않은 진 리키의 변형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워싱턴 D.C.의 유명 바텐더였던 헨리 토마스(Henry Thomas)가 그의 저서 『믹솔로지스트 헨리 토마스의 삶과 시대』(The Life and Times of Henry Thomas, Mixologisteng)에서 언급한 것이다.[18]
기존의 진 대신 다른 증류주를 사용하여 다양한 종류의 리키를 만들 수도 있다.
어떤 종류의 리키든 설탕이나 시럽과 같은 감미료는 첨가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마시는 사람이 베이스가 되는 술 자체에서 유래하는 약간의 단맛을 느낄 수는 있다.
참조
[1]
서적
Washington: A Not Too Serious History
Baltimore
[2]
뉴스
Inventor of the Gin Rickey
The Washington Post
1911-10-01
[3]
서적
Imbibe!
New York
[4]
뉴스
A Lobbyist of Special Interest
https://www.wsj.com/[...]
2010-09-08
[5]
뉴스
Col. Rickey on Mixed Drinks
The Saint Paul Globe
1900-06-17
[6]
뉴스
Not Proud of His Honors
The Wellsboro Gazette
1901-07-26
[7]
웹사이트
Shoomakers
https://www.loc.gov/[...]
Library of Congress
[8]
서적
Prohibition in Washington, D.C.: How Dry We Weren't
The History Press
[9]
뉴스
Cobwebs and Quality Mark Shoomaker's Wine
The Washington Times
1906-12-30
[10]
서적
A Little Journey to Shoomaker's, Being an Appreciation and Eye-Opener
New York
[11]
뉴스
Last Days Before Prohibition
The Washington Post
1933-12-10
[12]
뉴스
Water Mint Juleps Arouse Ire of City's Mixologists
The Washington Post
1911-07-15
[13]
뉴스
The Lost Legion
The Washington Post
1928-09-16
[14]
웹사이트
Strawberry Lime Gin Rickey
https://www.seasonal[...]
2019-07-19
[15]
서적
The Great Gatsby
https://archive.org/[...]
Charles Scribner's Sons
[16]
서적
The Great Gatsby
https://archive.org/[...]
Charles Scribner's Sons
[17]
뉴스
D.C. councilmember to declare the rickey as Washington's native cocktail
https://www.washingt[...]
2011-07-14
[18]
서적
Life and Letters of Henry William Thomas, Mixologist
Washington,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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