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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A. 한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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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틴 A. 한센은 1909년 덴마크에서 태어나 1955년 사망한 덴마크의 작가이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덴마크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여 불법 간행물에 기고하고 편집하며 활동했다. 한센은 소설 《거짓말쟁이》, 《요나단의 여행》, 《행복한 크리스토퍼》 등을 포함한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은 셸란 섬의 농촌 사회, 선과 악의 대립, 전쟁의 의미 등을 다루었다. 또한, 그는 전쟁 중 첩자 처형을 옹호하는 글을 썼던 것에 대한 자책감을 소설 《손님들》에 담아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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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A. 한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마틴 A. 한센
본명알프레드 마르틴 옌스 한센
출생1909년 8월 20일
출생지덴마크, 스트뢰뷔
사망1955년 6월 27일
사망지덴마크, 코펜하겐
묻힌 곳알레스레우 묘지, 레이레
직업작가
활동덴마크 레지스탕스 운동
수상드라크만 레가테트, 1946년
데 귈드네 라우르배르, 1949년
홀베르그 메달, 1952년

2. 생애

마틴 A. 한센은 제2차 세계 대전덴마크독일에 점령당했을 때 덴마크 레지스탕스 운동에 깊이 관여하였다. 그는 당시 불법 간행물이었던 Folk og Frihed|인민과 자유da에 익명으로 글을 기고했으며, 편집자들이 체포된 후에는 직접 내용 상당 부분을 쓰고 편집하는 역할을 맡았다.[5]

1944년 여름, 한센은 우테르슬레우 모세 근처 다락방에 숨어 지냈다. 이곳은 덴마크 레지스탕스가 첩자로 의심되는 많은 사람들을 처형했던 장소였기에 한센은 이곳을 den blodige mose|피의 늪da이라 불렀다. 그는 이러한 처형을 옹호하는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뇌 끝에 Dialog om drab og ansvar|살인과 책임에 대한 대화da를 출판했다. 이 글은 소크라테스와 친구 시미아스의 대화 형식을 빌려 첩자 처형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면서도, 처형을 실행한 이들은 사후에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글은 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레지스탕스의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한센은 1945년 자신의 일기에, 자신의 글에 영향을 받아 최소 두 명의 젊은이가 무기를 들고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했다.[6] 이 작품은 모르텐 코르가 엮은 선집 Der brænder en ild|불이 타오른다da에 토베 디틀레브센, 한스 키르크, 올레 사르비그, 할프단 라스무센 등 다른 저항 작가들의 글과 함께 실렸다. 처음에는 작가들의 안전을 위해 익명으로 출판되었으나, 전쟁 후 이름이 공개되었다.

레지스탕스 활동을 통해 한센은 덴마크 내에서 명성을 얻었다. 점령이 끝난 후, 그는 잡지 『헤레티카』(Heretica)의 편집자이자 작가로서 활동하며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냈다.[7][8] 특히 그는 점령 기간 동안 처형을 저지른 사람들은 덴마크 정부가 복귀했으므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레지스탕스 지도자였던 프로데 야콥센은 새로 구성된 법무부와 합의하여 처형 사건을 조사하지 않고 관련자들을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 한센은 이를 정의롭지 못하다고 여겼으며, 처형을 부추긴 자신의 글에 대해 도덕적 책임감을 느꼈다.[9] 이러한 고뇌 속에서 그는 임종 직전 단편 소설 Gæsterne|손님들da을 집필했다. 이 소설은 자신처럼 초법적 살인을 정당화하는 글을 썼던 작가에게, 자신이 처형한 사람의 시체를 들고 찾아온 남자가 그의 글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며 책임을 묻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센은 1955년 6월 병원에 입원해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병세가 악화되어 의식을 자주 잃었으며, 소설을 완성한 지 2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10][11]

2. 1. 어린 시절과 교육

한센은 1909년 8월 20일 덴마크 스테브스 반도의 작은 마을인 스트뢰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한스 페터 한센(1878-1945)이고 어머니는 카렌 크리스틴 마리안느 마티아센(1885-1982)이었다. 아버지는 소작농이었으며 가족은 매우 가난했다. 그에게는 잉거 엘리자베스(1911년생)와 카렌 보딜(1914년생)이라는 두 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어린 시절 한센은 농부로 일했다. 나무 가지를 치다가 떨어져 머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했는데, 회복 후 일을 마쳤지만 그 후로 편두통에 시달렸다. 그는 심한 두통 때문에 많은 양의 아스피린을 복용하여 치료했다.

한센은 하슬레브 세미나리에 다녔고, 1930년에 교사 자격 시험에 합격했다.

2. 2. 결혼과 가족

한센은 1909년 8월 20일 덴마크 스테브스 반도의 작은 마을인 스트뢰비에서 아버지 한스 페터 한센(1878-1945)과 어머니 카렌 크리스틴 마리안느 마티아센(1885-1982)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소작농이었고 가족은 매우 가난했다. 여동생으로는 잉거 엘리자베스(1911년생)와 카렌 보딜(1914년생)이 있었다.

1935년 한센은 베라 루이즈 마리 옌센과 결혼하였다. 아들 한스-올레 한센은 레예르의 역사-고고학 연구 및 커뮤니케이션 센터 책임자가 되었으며, 딸 메테-리세 한센을 두었다.

그는 1955년 6월 27일 사망하였으며, 레예르의 알레르슬레브 묘지에 아내와 함께 묻혔다.

2. 3. 건강 문제와 죽음

어린 시절 농부로 일하던 중 나무를 가지치기하다 떨어져 머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 이후 그는 편두통에 시달렸으며, 심한 두통 때문에 많은 양의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했다.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유럽 문학 컨퍼런스에 참석했을 때, 실수로 세척액을 마시는 사고가 발생하여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어 위 세척을 받았다. 이 사고는 평소 잦은 아스피린 복용으로 인해 약해져 있던 그의 신장에 부담을 주었고, 결국 신장염을 유발했다.

만성 신장염으로 비스페르베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1955년 6월 27일 코펜하겐에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레예르의 알레르슬레브 묘지에 아내와 함께 묻혔다.

3. 제2차 세계 대전과 레지스탕스 활동

마틴 A. 한센은 제2차 세계 대전나치 독일의 덴마크 점령 시기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덴마크 레지스탕스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점령 기간 동안 불법 간행물이었던 Folk og Frihed|인민과 자유dan에 익명으로 글을 기고했으며, 편집자들이 체포된 후에는 직접 편집까지 맡았다.[5]

1944년 여름, 레지스탕스 활동의 일환으로 우테르슬레우 모세 근처에 머물며, 첩자로 의심되는 이들의 처형을 정당화하는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는 논란이 된 저작 Dialog om drab og ansvar|살인과 책임에 대한 대화dan의 집필로 이어졌다. 이 글은 처형을 정당화하면서도 처형을 수행한 사람들은 사후에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레지스탕스 내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지만 동시에 한센 자신에게는 깊은 고뇌를 안겨주었다.[6] 이 작품은 모르텐 코르가 엮은 선집 Der brænder en ild|불이 타오른다dan에 토베 디틀레브센, 한스 키르크, 올레 사르비그, 할프단 라스무센과 같은 다른 덴마크 저항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익명으로 수록되기도 했다.

전쟁 후에도 한센은 문학 잡지 『헤레티카』의 편집자이자 작가로서 활동하며 정치적,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7][8] 특히 점령기 처형을 저지른 사람들은 덴마크 정부가 복귀했으므로 법정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당시 레지스탕스 지도자였던 프로데 야콥센과 법무부 간의 합의로 처형이 경찰에 의해 조사되지 않고 공격자들이 기소되지 않도록 되자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개인적 책임감을 느끼며 단편 소설 Gæsterne|손님들dan을 집필했다.[9][10][11] 그의 레지스탕스 운동 참여와 그로 인한 명성은 그를 덴마크 내 유명 작가로 만들었다.

3. 1. 『살인과 책임에 대한 대화』

마틴 A. 한센은 제2차 세계 대전나치 독일의 덴마크 점령 시기에 덴마크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5] 1944년 여름, 그는 우테르슬레우 모세 근처 다락방에 머물렀는데, 이곳은 레지스탕스에 의해 첩자로 의심되는 이들이 처형되던 장소였다. 한센은 이곳을 den blodige mose|피의 늪dan이라 불렀다. 그는 레지스탕스로부터 이러한 처형을 옹호하는 글을 써달라는 임무를 받았고, 그 결과 Dialog om drab og ansvar|살인과 책임에 대한 대화dan를 출판했다.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 시미아스가 11페이지에 걸쳐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첩자로 의심되는 이들의 처형을 정당화하면서도, 처형을 집행한 사람들은 전쟁 후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Dialog om drab og ansvar|살인과 책임에 대한 대화dan는 출간 후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동시에 레지스탕스에 참여한 많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한센 자신은 1945년 일기에서 자신의 글이 최소 두 명의 젊은이가 무기를 들고 싸우다 사망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했다.[6] 이 작품은 모르텐 코르가 엮은 선집 Der brænder en ild|불이 타오른다dan에 실렸는데, 이 선집에는 토베 디틀레브센, 한스 키르크, 올레 사르비그, 할프단 라스무센 등 다른 덴마크 저항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포함되었다. 처음에는 작가들의 안전을 위해 익명으로 출판되었으나, 전쟁 후에는 이름이 공개되었다.

점령이 끝난 후, 한센은 문학 잡지 『헤레티카』의 편집자이자 작가로서 활동하며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계속해서 피력했다.[7][8] 특히 그는 점령 기간 동안 처형을 저지른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덴마크 정부가 복귀한 이상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레지스탕스 운동의 지도자였던 프로데 야콥센은 새롭게 구성된 법무부와 합의하여, 이들 처형에 대한 경찰 조사를 막고 관련자들이 기소되지 않도록 조치했다. 한센은 이러한 결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으며, 과거 자신의 글로 처형을 부추긴 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9]

이러한 고뇌 속에서 한센은 단편 소설 Gæsterne|손님들dan을 집필했다. 이 소설은 한센 자신처럼 초법적인 살인을 정당화하는 글을 썼던 작가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자신이 처형한 사람의 시체를 들고 작가의 집 문 앞에 나타나, 작가의 글을 읽고 처형을 실행할 용기를 얻었다고 말하며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작가에게 묻는다. 한센은 1955년 6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이 소설을 썼는데, 병세가 위중하여 글을 쓰는 도중 의식을 잃기도 했다. 그는 이 소설을 완성한 지 불과 2주 후에 세상을 떠났다.[10][11]

3. 2. 전후 활동과 『손님들』

마틴 A. 한센은 제2차 세계 대전덴마크독일에게 점령당한 현실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덴마크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 점령 기간 동안 그는 당시 불법 간행물이었던 Folk og Frihed|인민과 자유da에 익명으로 글을 기고했다. 이 간행물의 편집자들이 체포되자, 한센은 상당 부분의 내용을 직접 쓰고 편집하는 역할을 맡았다.[5]

1944년 여름, 한센은 우테르슬레우 모세 근처의 다락방에서 지냈다. 그는 우테르슬레우 모세를 "피의 늪"(den blodige moseda)이라고 불렀는데, 덴마크 레지스탕스에 의해 첩자로 의심되는 많은 사람이 처형된 장소였기 때문이다. 한센은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처형을 옹호하는 글을 쓰라는 임무를 받았으며, 결국 Dialog om drab og ansvar|살인과 책임에 대한 대화da를 출판했다. 이 글은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 시미아스가 11쪽에 걸친 대화 형식으로, 첩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의 처형을 정당화했지만, 처형을 수행한 사람들은 사후에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Dialog om drab og ansvar|살인과 책임에 대한 대화da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레지스탕스의 많은 젊은 구성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한센은 1945년 일기에서 자신의 글에 고무되어 최소 두 명의 젊은이가 무기를 들고 싸우다 사망했다고 믿었다.[6] 이 작품은 모르텐 코르가 엮은 선집 Der brænder en ild|불이 타오른다da에 토베 디틀레브센, 한스 키르크, 올레 사르비그, 할프단 라스무센과 같은 다른 덴마크 저항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실렸다. 이 선집은 원래 작가들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출판되었지만, 전쟁 후에 그들의 이름이 공개되었다.

한센의 레지스탕스 운동 참여는 그에게 명성을 안겨주었고, 덴마크 내에서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점령이 끝난 후, 그는 편집자이자 『헤레티카』의 작가로서 정치적 아이디어를 계속 논했다.[7][8] 특히 그는 점령 기간 동안 처형을 저지른 사람들은 덴마크 정부가 복귀했으므로 법정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 레지스탕스 운동의 지도자인 프로데 야콥센은 새롭게 재건된 법무부와 합의하여 처형이 경찰에 의해 조사되지 않고, 공격자들이 기소되지 않도록 했다. 한센은 이를 부당하다고 여겼으며, 당시 자신의 글을 통해 처형을 장려한 것에 대해 부분적인 책임을 느꼈다.[9] 이에 그는 마치 한센 자신처럼, 초법적인 살인을 정당화하는 글을 썼던 작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단편 소설 Gæsterne|손님들da을 썼다. 이야기 속에서 한 남자가 자신이 처형한 사람의 시체를 들고 화자의 문 앞에 나타난다. 방문객은 작가의 글을 읽고 그 행위를 하도록 격려를 받았다고 느끼며, 그 남자의 죽음에 대해 작가에게 책임을 묻는다. 한센은 1955년 6월 입원 중 Gæsterne|손님들da을 썼으며, 질병으로 인해 글을 쓰는 동안 의식을 자주 잃었다. 그는 이 단편 소설을 완성한 지 불과 2주 만에 사망했다.[10][11]

4. 작품 세계

마틴 A. 한센은 1935년 데뷔 소설 《누 오프기버 한》(Nu opgiver handa)을 통해 셸란 농촌 공동체의 현실과 그 속에서의 환멸을 그리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1937년작 《콜로니엔》(Kolonienda)에서도 이어졌다. 1941년 발표한 《요나탄의 여행》(Jonathans Rejseda)에서는 선과 악의 투쟁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었다.[12]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인 1945년에 출간된 《행복한 크리스토퍼》(Lykkelig Kristofferda)는 백작의 싸움 시대를 배경으로 이상주의와 현실 사이의 갈등을 고백적 글쓰기 형식을 통해 탐구했다.[13][14] 전쟁 직후인 1946년에는 전후의 어두운 분위기와 전쟁의 상흔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 단편 소설 모음집 《가시나무》(Tornebuskenda)를 발표했으며,[15] 이듬해인 1947년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 부활의 문제를 다룬 단편집 《꿩》(Agerhønenda)을 출간했다.[16] 그의 마지막 단편 모음집은 1953년에 나온 《파라디스에블레르네와 기타 이야기》(Paradisæblerne og andre historierda)이다.[17]

덴마크 라디오의 의뢰로 집필한 라디오 드라마는 소설 《거짓말쟁이》(Løgnerenda)로 발전했는데, 이 작품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이자 반영웅인 주인공을 통해 전후 덴마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18][19] 이 작품은 라디오 방송과 신문 연재를 거쳐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으며, 1970년에는 영화화되기도 했다.[20][21][22] 1952년작 《오름과 티르》(Orm og Tyrda)는 스칸디나비아가 노르드 이교에서 기독교로 전환되던 시기의 역사적 배경과 그로 인한 문화적 충돌 및 이중적 전통을 다루었다.[23][24]

4. 1. 초기 소설

마틴 A. 한센의 데뷔 소설 《누 오프기버 한》(Nu opgiver handa)은 1935년에 출판되었다. 이 작품은 셸란의 농촌 공동체와 그들의 삶에 대한 환멸이 깊어지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1937년에 발표된 소설 《콜로니엔》(Kolonienda)에서도 이어진다. 1941년 소설 《요나탄의 여행》(Jonathans Rejseda)은 주인공 요나탄 스메드가 병 속에 악마를 가두어 왕에게 전달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다룬다. 이 과정에서 서술자는 선과 악의 갈등에 휘말리며,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악이 지닌 모호하고 다양한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12]

《행복한 크리스토퍼》(Lykkelig Kristofferda)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인 1945년에 출판되었다. 백작의 싸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마틴이라는 상인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틴은 젊은 시절, 기사로서 타인을 보호하는 데 헌신하고 결국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상주의자 크리스토퍼와 함께했던 여정을 회상한다. 고백적 글쓰기의 특징을 보여주듯, 화자인 마틴은 자신의 이상 부재가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었지만, 동시에 크리스토퍼를 자신보다 더 용감한 인물로 만들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13][14]

1946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한센은 전쟁 후의 암울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전쟁이 남긴 죽음과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시도한 단편 소설 모음집 《가시나무》(Tornebuskenda)를 출간했다. 이 모음집에는 "가시나무", "하지 축제", "9월 안개" 세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15] 1947년에는 12편의 단편 소설을 묶은 《꿩》(Agerhønenda)을 출판했다. 이 작품집의 여러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다룬다.[16] 그의 마지막 단편 소설 모음집인 《파라디스에블레르네와 기타 이야기》(Paradisæblerne og andre historierda)는 1953년에 출판되었다.[17]

한센은 덴마크 라디오의 의뢰를 받아 라디오 드라마 대본을 집필하게 되었고, 이는 소설 《거짓말쟁이》(Løgnerenda)로 발전했다. 이 작품은 거짓말을 일삼고 주변 사람들을 조종하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이자 반영웅인 요하네스 비그의 시점에서 일기 형식으로 서술된다. 이야기는 비그와 전쟁 후 덴마크 산도 섬에서의 그의 삶을 따라간다.[18][19] 작품의 첫 부분은 배우 포엘 케른의 낭독으로 1950년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었다. 이후 이 소설은 덴마크 신문 벨링스케에 연재 소설 형태로 실렸으며, 최종적으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1970년에는 크누드 레이프 톰센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20][21][22]

1952년에 출판된 소설 《오름과 티르》(Orm og Tyrda)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이 노르드 이교에서 기독교로 전환되던 시기와 그로 인해 형성된 지역의 이중적인 종교 전통을 상세하게 다룬다. 소설의 제목은 거대한 뱀이 마을 교회를 휘감자, 마을 사람들이 뱀과 싸우기 위해 황소를 키웠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이 전설에서 황소는 뱀을 물리치지만 뱀의 독에 중독되어, 마을 사람들이 다시 예배 장소에 접근할 수 있게 된 후 교회 앞 계단에서 죽음을 맞이한다.[23][24]

4. 2. 《요나탄의 여행》

1941년에 출판된 소설이다.[12] 주인공 요나탄 스메드가 병에 가두어 악마를 속이고 그를 왕에게 전달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따라간다. 여행 과정에서 서술자는 선과 악의 투쟁에 휘말리고 자신의 세계에서 악의 모호하고 다양한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12]

4. 3. 《행복한 크리스토퍼》

《행복한 크리스토퍼》(Lykkelig Kristofferdan)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인 1945년에 출판된 소설이다. 이 작품은 백작의 싸움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마틴이라는 상인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이다. 이야기 속에서 마틴은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데, 이때 그는 크리스토퍼라는 젊은 이상주의자와 함께 여행했다. 크리스토퍼는 기사로서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헌신했으며, 결국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고백적 글쓰기의 특징을 보여주듯, 화자인 마틴은 자신의 이상 부재가 결과적으로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었지만, 크리스토퍼야말로 자신보다 더 용감한 인물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13][14]

4. 4. 단편 소설

1946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한센은 전쟁 후의 어두운 분위기를 다루고 전쟁으로 인한 죽음과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 단편 소설 모음집 《가시나무》(Tornebusken)를 출판했다. 이 작품에는 "가시나무", "하지 축제", "9월 안개" 세 편의 이야기가 실렸다.[15] 1947년에는 12편의 단편 소설이 담긴 모음집 《꿩》(Agerhønen)을 출판했다. 이 모음집의 여러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다루었다.[16] 그의 마지막 단편 소설 모음집인 《파라디스에블레르네와 기타 이야기》(Paradisæblerne og andre historier)는 1953년에 출판되었다.[17]

4. 5. 《거짓말쟁이》

한센은 덴마크 라디오의 의뢰를 받아 라디오 방송용 이야기를 쓰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소설 Løgneren|뢰그네렌da (거짓말쟁이)을 집필했다. 이 작품은 거짓말을 일삼고 주변 사람들을 조종하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이자 반영웅인 요하네스 비그의 시점에서 일기 형식으로 서술된다. 이야기는 비그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덴마크의 산도 섬에서의 그의 삶을 다룬다.[18][19]

소설의 첫 부분은 배우 포엘 케른의 내레이션으로 1950년 라디오를 통해 처음 공개되었다. 이후 덴마크 신문 벨링스케에 연재 소설 형태로 연재되었으며, 최종적으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1970년에는 크누드 레이프 톰센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20][21][22]

4. 6. 《오름과 티르》

1952년에 출판된 소설 《오름과 티르》(Orm og Tyrda)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이 노르드 이교에서 기독교로 전환되던 시기의 역사적 과정과 그로 인해 발생한 지역 사회의 이중적인 종교·문화적 전통을 자세하게 다룬다. 소설의 제목은 한 마을의 교회 주위를 거대한 뱀(오름)이 감싸고 있자, 마을 사람들이 그 뱀과 싸우기 위해 황소(티르)를 키워야 했던 전설에서 유래했다. 이 전설에 따르면, 황소는 결국 뱀을 물리치는 데 성공하지만, 싸움 과정에서 뱀의 독에 중독되어 교회 앞 계단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황소의 희생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다시 자유롭게 예배 장소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다.[23][24]

5. 작품 목록

한센은 에세이, 단편 소설, 소설 등 다양한 형식의 글을 썼으며, 그의 작품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또한 사후에 그의 많은 편지와 일기들이 출판되기도 했다.

원제한국어 제목연도비고
Nu opgiver handa이제 그는 포기한다.1935
Kolonienda식민지1937
Jonathans rejseda요나단의 여정1941
Lykkelige Kristofferda행복한 크리스토퍼1945
Tornebuskenda가시나무1946
Agerhønenda자고새1947
Tanker i en Skorstenda굴뚝 속의 생각1948
Åsynetda시야1949
Sankt Hans aftenda성 요한 축일 밤1949
Løgnerenda거짓말쟁이1950
Leviathanda리바이어던1950
Paradisæblerne og andre historierda낙원의 사과와 다른 이야기들1953
Orm og Thyrda뱀과 티르1953스벤 하브스테인-미켈센과 함께
Kringenda크링겐1953여행기 (노르웨이)
Dansk vejrda덴마크 날씨1953에른스트 클라우센의 삽화
Konkylienda조개1955



'''사후 편집'''

원제한국어 제목연도비고
Efterslæt: sidste noveller og skildringerda후기: 마지막 단편 소설과 묘사1959
Against the wind: stories영어역풍: 이야기1979영어 제목
For folkets frihedda국민의 자유를 위해2018


참조

[1] 웹사이트 Martin A. Hansen https://forfatterweb[...] 2014
[2] 웹사이트 Martin A. Hansen https://biografiskle[...] 2014-05-28
[3] 서적 Martin A. Hansen: krigen og kunsten Hovedland
[4] 웹사이트 Jens Alfred Martin Hansen https://gravsted.dk/[...]
[5] 웹사이트 Kærlighedsbroen: Martin A. Hansens mindesten over de unge frihedskæmpere https://pure.au.dk/p[...] Aarhus University 2018
[6] 웹사이트 Martin A. Hansen: "Dialog om Drab og Ansvar" (1944) https://danmarkshist[...] Aarhus University 2012-02-24
[7] 웹사이트 Martin A. Hansen, 1909–1955 https://danmarkshist[...] Aarhus University 2012-02-24
[8] 서적 Fortællingen om Martin A. Hansen og Heretica Anis
[9] 서적 Martin A. Hansen. Krigen og kunsten.
[10] 서적 Efter drabet Forlaget Press
[11] 웹사이트 Arne Mariager: Martin A. Hansen var selv den største historie https://hsfo.dk/arti[...] 2018-10-13
[12] 웹사이트 Fra kollektiv realisme til skælme- og rejseroman https://dansklittera[...] 2013-04-08
[13] 웹사이트 Lykkelige Kristoffer https://forfatterweb[...]
[14] 웹사이트 Den danske Don Quixote https://www.informat[...] 2012-01-27
[15] 웹사이트 Tornebusken https://forfatterweb[...]
[16] 웹사이트 Agerhønen https://forfatterweb[...]
[17] 웹사이트 Kulturkrisens overvindelse? https://dansklittera[...] 2013-02-11
[18] 웹사이트 Løgneren https://denstoredans[...] 2009-08-20
[19] 웹사이트 Løgneren https://forfatterweb[...]
[20] 웹사이트 En svigefuld dagbogsskriver https://dansklittera[...] 2012-12-10
[21] 웹사이트 Martin A. Hansen https://denstoredans[...] 2013-06-27
[22] 서적 Den falske dagbog: om Martin A. Hansens sidste roman, Løgneren Gyldendal
[23] 웹사이트 Orm og Tyr https://mytologi.lex[...] 2011-08-15
[24] 웹사이트 Orm og Tyr https://digterogland[...] Landsforeningen Martin A. Hansen
[25] 웹사이트 Forfatterskabet https://martin-a-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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