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개암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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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안 개암사 대웅전은 전라북도 부안군 개암사에 있는 건물로, 1636년에 중건되었으며 1986년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었다. 백제 무왕 35년에 개암사가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의 대웅전은 조선 시대에 중건된 건물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이며, 17세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공포의 연꽃 조각, 하엽주두 등 화려한 장식이 특징이며, 조선 후기 불교 건축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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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개암사 대웅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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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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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부안 개암사 대웅전 (扶安 開岩寺 大雄殿) |
영문 명칭 | Daeungjeon Hall of Gaeamsa Temple, Buan |
문화재 정보 | |
국가 | 대한민국 |
유형 | 보물 |
지정 번호 | 292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해지 여부 | 해당사항 없음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로 248, 개암사 (감교리) |
소유자 | 개암사 |
수량 | 1동 |
면적 | 해당사항 없음 |
시대 | 조선시대 |
문화재청 ID | 12,02920000,35 |
좌표 | 35°39′45″N 126°39′00″E |
2. 역사
개암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부안향토문화지》 등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 무왕 35년(634년)에 묘련왕사가 변한의 옛 궁궐 터에 절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개암사중건사적〉에는 고려 숙종 때 원감국사가 절을 크게 중창하였으며, 당시에는 황금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건물이 배치되고 연못이 있는 등 화려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개암사의 모습은 이러한 옛 기록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며, 대웅전을 중심으로 서쪽에 응향각, 동쪽에 응진전 등이 배치되어 있다. 현재의 대웅전 건물은 1636년(인조 14)에 계호대선사(戒浩大禪師)가 중건한 것으로, 이후 1783년(정조 7)과 1913년에 중수되었다.
2. 1. 백제 시대
개암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부안향토문화지》 등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 무왕 35년(634년)에 묘련왕사(妙蓮王師)가 변한의 궁궐 터에 절을 세웠다고 전해진다.2. 2. 고려 시대
〈개암사중건사적〉에 따르면, 고려 숙종 때 원감국사(圓鑑國師)가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고 한다. 당시 개암사는 황금전을 중심으로 동쪽에 청연각, 서쪽에 백옥교, 남쪽에 청허루가 있었으며, 경내에는 연못이 있어 못 속에 화죽(花竹)이 서로 비쳐 마치 극락세계와 같았다고 전해진다.2. 3. 조선 시대
이 건물은 1636년(인조 14)에 계호대선사(戒浩大禪師)가 중건하였으며, 1783년(정조 7)과 1913년에 중수가 있었다. 울금바위를 등지고 남향하여 높은 터에 자리 잡고 있다.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형태이며, 추녀 끝에는 활주가 네 귀퉁이를 받치고 있다. 기단은 장대석을 5단으로 가지런히 쌓은 상부 기단이 본래의 모습이다. 초석은 자연석 주초를 사용하였고 기둥은 두리기둥이다. 기둥 사이에는 창방을 걸고 그 위에 평방을 올렸는데, 평방을 하나의 긴 부재로 쓰지 않고 두 개의 부재를 맞대고 촉을 끼워 마치 하나의 부재처럼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이는 통나무 부재보다 목재의 뒤틀림을 방지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위봉사 보광명전이나 내소사 대웅보전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 건물의 두드러진 특징은 공포의 짜임새와 부재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이다. 공포는 건물 안팎 모두 3출목 구조로 짜여 있다. 특히 건물 앞면의 공포는 연꽃 모양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장식성이 뛰어나다. 주두(기둥머리 위에 놓이는 공포 부재)는 연꽃잎 모양을 새긴 하엽주두(荷葉柱枓)인데, 중앙 어칸의 기둥 위와 기둥 사이, 그리고 양쪽 귀기둥 부분에 각각 다른 세 가지 형태의 하엽주두를 사용하여 변화를 주었다. 이러한 하엽주두는 숭림사 보광전이나 화암사 극락전에서도 볼 수 있지만, 개암사 대웅전처럼 다양한 형태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주두 위로는 살미와 첨차가 여러 겹으로 짜여 올라간다. 각 제공(살미 끝부분)의 바깥쪽 끝은 세 번째 제공까지 위로 살짝 들린 앙서형으로 만들었고, 보 아래 네 번째 제공에는 당초문 무늬를 새겼다. 도리(지붕 서까래를 받치는 가로 부재) 밑의 초공(草工, 짧은 공포 부재)은 건물 앞면에는 봉황 머리를 새기고, 뒷면과 옆면에는 당초문을 새겨 당시의 일반적인 건축 양식을 따랐다. 그러나 출목첨차(기둥 밖으로 내민 첨차)는 줄기와 연꽃 무늬를 함께 새겨, 마치 연꽃이 층층이 피어나는 듯한 독창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화려한 공포는 숭림사 보광전이나 정수사 법당 등에서도 볼 수 있는데, 특히 숭림사 보광전과는 공포의 세부적인 기법이나 천장 구성 방식 등 전체적인 건축 수법이 매우 유사하여, 같은 목수 집단 또는 동일한 계보를 잇는 목수가 지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건물의 옆면과 뒷면 공포는 앞면과 달리 당시 일반적이던 교두형(翹頭形) 첨차로 간결하게 꾸며져 있어, 건물의 정면성을 중시하는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창호는 원래 정자살문이었으나, 후대에 꽃살문으로 교체되었다. 이는 17~18세기에 중건된 내소사 대웅보전과 같은 건물들에서 꽃살창을 많이 사용했던 경향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17세기에 중건된 불교 건축물들은 이전 시대부터 내려오던 전통적인 건축 기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당시 불교계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하여 장식성이 강해지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건물 내부 공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개암사 대웅전 역시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대웅전 내부에는 두 개의 높은 기둥(고주)을 세워 후불벽을 만들었다. 일반적인 방식처럼 옆면의 평주보다 고주를 약간 뒤로 물려 배치하고, 대들보 위에 충량(측면 평주와 고주를 연결하는 보)을 걸었다. 그 위로는 세 단으로 층을 이루는 층급천장을 만들어 내부 공간이 실제보다 더 높고 웅장하게 느껴지도록 하였다. 이 천장 공간은 용과 봉황 조각으로 가득 채워져 화려하다.
특히 앞면의 기둥과 기둥 사이(주간포), 귀기둥 위(귀포), 그리고 두 개의 충량에서 힘차게 뻗어 나온 아홉 개의 용머리 조각은 불단을 향하며 강렬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주간포에는 용머리와 함께 날개를 활짝 편 봉황 조각이 어우러져 배치되어 있다.
불단에는 석가삼존불을 모셨으며, 불상 위 천장에는 닫집(불상 위를 장식하는 작은 집 모형)을 설치했다. 닫집은 정자(亭子) 형태를 기본으로 단을 여러 겹으로 물려 만든 물림닫집이며, 앞쪽 처마 위에 박공 모양의 작은 지붕을 가진 특수한 형태이다. 닫집 안에는 세 마리의 용(飜龍)이 몸을 틀고 매달려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고, 그 주변 공간은 구름과 여의주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처럼 개암사 대웅전은 건물 안팎을 연꽃, 용, 봉황 등 불교적인 의미를 담은 상징물들로 가득 채워, 부처님이 계시는 이상 세계인 불국토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3. 건축
개암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부안향토문화지》 등에는 백제 무왕 35년(634년)에 묘련왕사(妙蓮王師)가 변한의 궁궐 터에 절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개암사중건사적〉에 따르면 고려 숙종 때 원감국사(圓鑑國師)가 절을 크게 중창했다고 한다. 당시 개암사는 황금전을 중심으로 동쪽에 청연각, 서쪽에 백옥교, 남쪽에 청허루가 있었으며, 경내 연못에는 꽃과 대나무가 비쳐 마치 극락 세계와 같았다고 묘사된다.
그러나 현재 개암사의 건물 배치는 이러한 기록과는 상당히 다르다. 지금은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서쪽에 응향각, 동쪽에 응진전이 자리하고 있으며, 절 마당 아래쪽에는 월성대와 요사채가 한쪽에 위치해 있다. 대웅전은 울금바위를 등지고 남쪽을 향해 높은 터에 자리 잡고 있다.
3. 1. 대웅전
울금바위를 등지고 남향하여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기단은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장대석을 5단으로 가지런히 쌓은 상부 기단은 원래의 것이고, 자연석을 허튼층으로 쌓은 하부 기단은 마당을 낮추면서 근래에 만든 것이다.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이며, 추녀 끝에는 활주가 받치고 있다. 1636년(인조 14)에 계호대선사(戒浩大禪師)가 중건하였으며, 1783년(정조 7)과 1913년에 중수가 있었다.
초석은 자연석 주초를 사용하였고 기둥은 두리기둥이다. 기둥 사이에는 창방을 결구하고 그 위에 주간포(柱間包)를 배치하기 위한 평방을 짜 올렸다. 평방은 통나무 부재를 쓰지 않고 두 개의 부재를 맞대고 촉을 끼워 하나의 부재처럼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이는 통나무 부재보다 목재의 뒤틀림에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위봉사 보광명전이나 내소사 대웅보전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이 건물의 두드러진 특징은 공포의 짜임과 그 부재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이다. 공포는 모두 내외 3출목 구조이다. 전면의 공포는 연꽃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였다. 주두는 연꽃잎을 조각한 하엽주두(荷葉柱枓)인데, 하엽의 형태가 세 가지나 된다. 어칸(중앙 칸)의 주심포와 주간포에는 복잡한 형태의 두 가지 하엽주두를 번갈아 사용하였고, 귀공포와 인접한 주간포에는 단순한 형태의 하엽주두를 받쳐 일반적인 형태의 귀주두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였다. 숭림사 보광전과 화암사 극락전에서도 하엽주두를 볼 수 있으나, 개암사 대웅전처럼 다양하지는 못하다.
주두 위에는 살미와 첨차가 중첩되어 짜인다. 각 제공의 바깥 끝은 3제공까지 앙서형(위로 솟은 소의 혀 모양)이고, 보 밑의 4제공은 당초문을 초각(새김)하였다. 도리 밑의 초공(草工)은 전면에서는 봉두(봉황 머리)를 초각한 반면, 후면과 측면에서는 당초문을 새긴 형태로 그 시기의 일반적인 모습을 따른다.
그러나 출목첨차의 모습은 그 유래가 드문 독창적인 형태이다. 줄기와 연화문을 초각한 첨차와 소로가 중첩된 모습은 마치 연꽃이 올라가며 겹겹이 피어 있는 듯하다. 이처럼 화려한 공포는 숭림사 보광전과 정수사 법당에서도 볼 수 있는데, 특히 숭림사 보광전은 공포의 세부적인 수법과 천장의 구성 수법 등 전체적인 기법이 이 건물과 거의 유사하다. 지역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동일 목수 또는 같은 계보를 가진 목수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
정면과는 달리 측면과 배면의 공포는 당시 일반적인 교두형 첨차로 꾸며져 있어, 정면을 중시하는 전통 건축의 특성을 보여준다. 창호 역시 전면만 화려하게 꽃살문을 달았으나, 이전에는 정자살문이었다. 인근의 내소사 대웅보전처럼 17~18세기에 중건된 건물들이 꽃살창을 많이 사용함에 따라 최근에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
17세기에 중건된 건물들은 이전부터 내려오던 전통적인 건축 기술을 바탕으로 불교계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한 장식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개암사 대웅전도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내부 공간은 더욱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대웅전 내부에는 두 개의 고주(높은 기둥)를 세워 후불벽(불상 뒤의 벽)을 형성했다. 일반적인 방식처럼 측면 평주(낮은 기둥)보다 고주를 뒤로 물려 배치하고, 충량(측면 평주와 고주를 연결하는 보)이 대량에 걸치도록 하였다. 그 위에 세 단의 층급천장을 구성하여 내부 공간이 실제보다 더 높게 느껴지도록 하였으며, 이 공간을 용과 봉황으로 가득 채웠다. 특히 전면 주간포와 귀포, 그리고 두 개의 충량에서 뻗어 나온 9개의 용두(용머리)는 강렬하게 불단을 장엄하고 있으며, 주간포에는 용두와 어우러져 날개를 활짝 편 봉황을 배치하였다.
불단에는 석가삼존불을 봉안하였고, 그 위에는 닫집(불좌 위를 장식하는 작은 집 모형)을 설치했다. 닫집은 정자형의 물림닫집으로, 정면 처마 위에 박공면을 가진 특수한 형태이다. 그 속에는 세 마리의 번용(飜龍, 꿈틀거리는 용)이 또아리를 틀고 매달려 있으며, 공중에는 구름과 여의주를 장식하였다. 이처럼 개암사 대웅전은 안팎을 연꽃, 용, 봉황 등 불교적 상징물로 가득 장식하여 부처님이 주재하는 불국토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3. 2. 내부 구조
대웅전 내부에는 두 개의 고주(높은 기둥)를 세워 후불벽을 만들었다. 일반적인 방식처럼 옆면의 평주보다 고주를 뒤로 물려 배치하였고, 충량(대들보와 직각으로 걸리는 보)이 대량에 걸치도록 하였다.고주 위로는 세 단으로 이루어진 층급천장을 만들어 내부 공간이 실제보다 더 높게 느껴지도록 하였다. 이 천장 공간은 용과 봉황 장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특히 앞면의 주간포(기둥과 기둥 사이 공포)와 귀포(모서리 기둥 위 공포), 그리고 두 개의 충량에서 뻗어 나온 9개의 용머리 조각은 불단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주간포에는 용머리와 함께 날개를 활짝 편 봉황도 배치되어 있다.
불단에는 석가삼존불을 모셨으며, 불상 위쪽으로는 닫집을 설치하였다. 닫집은 정자(亭子) 형태의 물림닫집으로, 앞쪽 처마 위에 박공 지붕 모양을 가진 독특한 형태이다. 닫집 안쪽에는 세 마리의 번용(飜龍, 몸을 뒤트는 용)이 또아리를 틀고 매달려 있으며, 천장에는 구름과 여의주가 장식되어 있다. 이처럼 대웅전 내부는 연꽃, 용, 봉황 등 불교적 상징물로 가득 꾸며 부처가 머무는 불국토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4. 의의 및 평가
부안 개암사 대웅전은 1636년(인조 14년)에 중건된 건물로, 17세기 조선 시대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시기 건물들은 이전부터 내려오던 전통적인 건축 기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불교계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하여 장식성이 강화되는 경향을 나타내기 시작하는데, 개암사 대웅전 역시 이러한 흐름을 따른다.
특히 건물의 외부를 장식하는 공포의 짜임과 그 부재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이 두드러진다. 전면 공포는 연꽃 봉오리와 잎사귀 모양을 사실적으로 조각한 다양한 형태의 하엽주두(荷葉柱枓)를 사용하였고, 출목첨차 역시 줄기와 연꽃무늬를 새겨 넣어 마치 연꽃이 겹겹이 피어나는 듯한 독창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화려한 공포 구성은 익산 숭림사 보광전이나 강화 정수사 법당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숭림사 보광전과는 세부적인 기법과 천장 구성 방식 등에서 매우 유사하여 동일 계보 장인의 솜씨로 추정되기도 한다. 반면, 측면과 뒷면의 공포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로 꾸며져 있어, 건물의 정면을 중시했던 한국의 건축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장식화 경향은 건물 내부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높은 기둥(고주)을 세워 후불벽을 만들고 그 위로 세 단의 층급천장을 구성하여 공간이 실제보다 더 높고 장엄하게 느껴지도록 하였다. 이 천장과 대들보 등에는 섬세하게 조각된 용과 봉황이 가득 채워져 있는데, 특히 아홉 마리의 용머리 조각은 불단을 향해 뻗어 나와 강렬한 인상을 준다. 불단 위에는 정자형 몸체에 특이하게 박공지붕 형태를 더한 닫집이 설치되었고, 그 안팎으로 용, 구름, 여의주 등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처럼 개암사 대웅전은 건물 안팎을 연꽃, 용, 봉황 등 불교적 상징물로 가득 채워 부처가 머무는 불국토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이는 조선 후기 불교 건축의 장식화 경향과 당시의 신앙관, 미의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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