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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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두는 건축에서 기둥의 상단을 장식하는 부분으로,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다양한 시대와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연꽃, 파피루스 등의 식물 문양을 사용했으며, 고대 그리스에서는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등 세 가지 주요 양식이 나타났다. 로마 시대에는 토스카나식과 혼합식이 추가되었으며, 비잔틴 건축, 중세의 로마네스크와 고딕 건축에서도 독특한 주두 양식이 발전했다. 르네상스 이후 고전 양식이 부활하면서 다양한 변형이 나타났으며, 현대 건축에서도 독창적인 주두 디자인이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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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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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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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 기둥의 가장 윗부분 |
기능 | 기둥과 상부 구조 사이의 하중 분산 장식 요소 |
역사 및 양식 | |
기원 | 고대 이집트 |
발전 |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비잔틴 건축 중세 건축 르네상스 건축 바로크 건축 아르누보 |
종류 | 도리아 양식 이오니아 양식 코린트 양식 합성 양식 |
특징 | 다양한 장식 (잎, 소용돌이, 동물 등) 각 문화권의 특징 반영 |
구성 요소 | |
아바쿠스 (Abacus) | 기둥머리의 맨 위에 있는 판 |
에키누스 (Echinus) | 아바쿠스 아래에 있는 둥근 부분 |
목 (Neck) | 에키누스 아래 기둥과 연결되는 부분 |
장식 (Ornamentation) | 다양한 조각이나 문양 |
현대 건축에서의 활용 | |
기능 | 구조적 기능보다는 장식적 기능 강조 |
재료 | 석재 콘크리트 금속 유리 |
디자인 | 전통적인 양식의 재해석 현대적인 디자인 요소 결합 |
참고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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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대
고대 문명에서 기둥의 주두는 건축물의 미적, 구조적 특징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고대 페르시아, 에게 문명, 그리고 남부 레반트 지역에서는 각기 독특한 문화와 환경을 반영한 다양한 형태의 주두 양식이 발전하였다. 이들 지역의 주두는 사용된 재료, 장식 모티프, 조각 기법 등에서 차이를 보이며, 후대 건축 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2. 1. 이집트
고대 이집트에서는 연꽃과 파피루스 식물 문양을 기반으로 한 주두가 초기에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이들은 야자나무 주두와 함께 기원전 3세기부터 1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까지 이집트에서 사용된 주요 주두 유형이었다. 이후에는 다양한 다른 강가 식물 문양이 사용되었으며, 전통적인 연꽃 주두 역시 여러 형태로 변형되었다.이집트 장식의 여러 모티프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예를 들어 신성한 딱정벌레인 스카라브, 태양 원반, 독수리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야자 잎, 파피루스 식물, 연꽃의 꽃봉오리와 만개한 꽃 등이 흔히 사용되는 모티프였다.[1]
가장 널리 사용된 주두 유형으로는 하토르 여신을 형상화한 주두, 연꽃 주두, 파피루스 주두, 그리고 여러 요소가 결합된 이집트 복합 주두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식물 문양을 기반으로 디자인되었다. 일부 주두는 밝은 색상으로 채색되기도 했다.
2. 2. 메소포타미아
어떤 종류의 소용돌이 모양의 주두가 아시리아의 부조에서 나타나지만, 실제 아시리아 양식의 주두는 발견된 적이 없다. 대영 박물관에 전시된 장식된 기단들은 처음에는 주두로 잘못 해석되었다.2. 3.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 시대의 페르시아 기둥에서 주두는 독특한 형태를 가진다. 주두의 일부인 브래킷은 아치트레이브를 지지하기 위해 양쪽으로 튀어나온 두 개의 동물을 조각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이 동물들은 화려하게 장식되었으며, 주로 황소가 사용되었고 사자나 그리핀 형태도 찾아볼 수 있다. 동물 조각의 등 위에는 가로로 놓이는 목재(가로목)를 지지하기 위한 또 다른 브래킷이 직각으로 얹혀 있는 구조이다.페르시아의 주두는 다른 건축 양식의 주두보다 아래로 길게 뻗어 있는 편이며, 페르시아 제국이 정복했던 이집트, 바빌론, 리디아 등 여러 문화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장식이 포함되어 있다. 주두의 상단과 하단에는 이중 소용돌이 장식이 있으며, 긴 평면 홈통 부분은 사각형 형태를 띠지만, 기둥 자체(샤프트)는 원형이며 홈이 파여 있는 형태이다.
2. 4. 에게 해
가장 초기의 에게 해 양식 주두는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 프레스코 벽화(기원전 1600년)에서 볼 수 있으며, 이는 볼록한 형태였고, 아마도 회반죽으로 성형되었을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인 오목한 형태의 주두에는 미케네에 있는 아가멤논의 무덤 옆 기둥의 화려하게 조각된 예시가 포함되어 있다(기원전 1100년경). 이들은 갈매기표 문양으로 조각되었으며, 일부 꽃봉오리가 조각된 오목한 아포피게가 있다.2. 5. 남부 레반트
소용돌이 모양의 주두는 초기 아이올리아식 주두라고도 불린다. 이 주두는 기원전 9세기부터 시작된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을 비롯하여 남부 레반트와 고대 키프로스, 그리고 모압, 암몬, 키프로스의 도시 국가 타마소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유적지에서 발견된다.[2][3]3. 고전 시대
오더(Order)는 건축 구성 요소를 체계적으로 조직하는 구조 시스템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비율과 비례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도리아 양식, 이오니아 양식, 코린트 양식의 세 가지 주요 고전 양식 건축을 구분했으며, 각 양식은 주주실(柱柱室, stylobate)과 가구식 구조를 갖춘 기념비적 건물의 기둥 꼭대기에 서로 다른 형태의 주두를 사용했다. 이러한 기본 양식 외에도 지중해 분지, 근동, 그리고 그레코-박트리아 왕국과 인도-그리스 왕국을 포함한 광범위한 헬레니즘 세계 전역에서는 다양한 변형된 주두 디자인이 정규 고전 양식과 함께 사용되었다.
고대 고전기의 건축에 대해 현재까지 유일하게 전해지는 논문은 기원전 1세기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저술한 건축 십서la이다. 비트루비우스는 이 책에서 각 양식의 서로 다른 비율에 대해 논의하고, 각 양식의 기둥 주두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비율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시했다.
로마 세계와 로마 제국 내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토스카나 양식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그리스의 도리아식 주두와 유사한 형태를 가졌다. 또한 로마 제국 시대에는 이오니아 양식과 코린트 양식의 요소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주두를 특징으로 하는 혼합 양식이 등장했다. 토스카나 양식과 혼합 양식 기둥은 이후 르네상스 건축과 신고전주의 건축 시대의 건축가들에 의해 고전 양식의 정식 목록에 포함되었다.
3. 1. 그리스
고대 그리스 건축에서 기둥머리, 즉 주두는 건물의 미적, 구조적 특징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리스인들은 주로 세 가지 고전 양식의 주두를 발전시켰는데, 이는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이다. 이 양식들은 각각 독특한 형태와 비례, 장식을 가지며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에서 선호되었다.도리아식 주두는 가장 오래되고 단순한 형태로, 주로 그리스 본토와 서부 식민지(이탈리아 남부 및 시칠리아)에서 사용되었다. 힘과 남성성을 상징하며, 파르테논 신전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이오니아식 주두는 소용돌이 모양의 볼류트 장식이 특징이며, 소아시아와 에게 해 섬 지역에서 발전했다. 우아함과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낸다고 여겨졌다. 코린트식 주두는 화려한 아칸서스 잎 장식으로 유명하며, 세 양식 중 가장 장식적이다. 후기 그리스 시대에 등장하여 로마 시대에 널리 사용되었다.
이 외에도 벽체와 이어진 기둥인 안타 상단에 사용되는 안타 기둥머리도 존재한다. 이는 일반적인 기둥머리와는 다른 디자인 원칙을 따르며, 벽면에 맞춰 비교적 평평한 형태를 가진다.[4][5]
3. 1. 1. 도리아식

'''도리아식 주두'''는 5개의 고전 양식 중 가장 단순한 형태를 띤다. 주두는 아바쿠스라고 불리는 사각형 슬래브와 그 아래에 에키누스라고 알려진 쿠션 모양의 볼록한 몰딩으로 주로 구성되며, 에키누스 아래에는 아스트라갈 칼라가 있는 형태이다. 이 양식은 그리스 민족의 주요 분파 중 하나인 도리아인들이 점유했던 지역에서 발전했으며, 주로 그리스 본토와 서부 식민지(이탈리아 남부 및 시칠리아)에서 선호되었다.
시라쿠사의 아폴로 신전(기원전 700년경)에서 에키누스 몰딩이 더욱 뚜렷한 형태를 갖게 되었고, 이 형태는 파르테논 신전에서 절정에 달했다. 파르테논 신전의 에키누스는 볼록면이 섬세하게 연결된 곡선으로 상단과 하단에 위치한다. 에키누스의 경사진 면은 후기 예시에서 더 평평해졌으며, 로마의 콜로세움에서는 4분의 1원 형태를 이룬다. 프리즈 및 기타 요소가 더 단순한 형태의 경우, 동일한 형태의 주두는 토스카나식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도리아식은 기원전 5세기에 절정에 달했으며, 로마인들이 받아들인 양식 중 하나였다. 이 양식은 남성다움, 힘, 견고함을 특징으로 한다.
3. 1. 2. 이오니아식

'''이오니아식 기둥머리'''는 아바쿠스와 오볼로 사이에 소용돌이 모양의 볼류트가 삽입된 것이 특징이다. 이 양식은 도리아식과 비슷한 시기에 개발되었지만, 널리 사용되고 최종적인 형태를 갖추기까지는 기원전 5세기 중반까지 시간이 걸렸다. 소아시아 해안과 에게 해 섬을 중심으로 한 이오니아 지역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이오니아 양식은 도리아식보다 덜 고정적이었으며, 수십 년 동안 지역적인 변형이 계속 나타났다. 예를 들어, 기원전 560년경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 사용된 초기 이오니아식 기둥머리는 아바쿠스의 너비가 깊이의 두 배에 달해, 사실상 브래킷 기둥머리와 유사한 형태였다. 그러나 약 한 세기 후 아테네의 일리소스 강변에 세워진 신전에서는 아바쿠스가 사각형 모양으로 변화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오니아식 기둥머리 문서 참고)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이오니아식 기둥머리의 주요 특징으로 여성적인 아름다움과 날씬함을 꼽았는데, 이는 여성의 신체 비율을 기반으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오니아식 기둥머리의 볼류트는 계란과 다트(egg-and-dart) 무늬가 새겨진 에키누스 위에 놓여 있다. 볼류트 위에는 도리아식 기둥머리보다 얕은 아바쿠스가 있으며, 이 아바쿠스 역시 계란과 다트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3. 1. 3. 코린트식
그리스의 '''코린트식 주두'''는 주로 ''Acanthus spinosus''라는 식물의 잎 모양을 본떴고, 로마식 주두는 ''Acanthus mollis'' 잎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여겨진다. 모든 건축물에 사용된 잎 장식이 항상 매우 사실적인 것은 아니었다. 코린트식 주두의 잎 장식은 보통 두 줄 또는 층으로 조각되어, 마치 작은 잎 장식 컵 안에 더 큰 잎 장식 컵이 있는 듯한 형태를 띤다. 에피다우로스의 톨로스 유적(기원전 400년경)에서 발견된 코린트식 주두는 바세 유적에서 볼 수 있는 초기 그리스 양식과, 이후 르네상스 및 현대 건축가들이 계승하고 발전시킨 로마 양식 사이의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준다. (더 자세한 내용은 코린트 양식 참조)로마 건축에서 주두는 고대부터 현존하는 유일한 완전한 건축 이론서인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의 『건축 십서』(De architecturala)에서 다루어진다. 이 책은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헌정되었으며, 각 고전 양식에 맞는 세부 사항들을 적절한 맥락 속에서 간략하게 설명한다. 다양한 양식은 책의 3권과 4권에서 논의되는데, 비트루비우스는 로마의 건축 관행을 실용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는 각 양식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지만, 주두 제작에 대한 엄격하고 고정된 규칙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로마 건축에는 두 가지 독특한 주두를 가진 양식이 더 있다. 하나는 토스카나 양식 주두로, 그리스 도리아 양식과 유사하지만 윤곽에 세부 장식이 적고 견고하며 단순한 형태를 가진다. 다른 하나는 혼합 양식 주두인데, 비트루비우스는 이 양식을 언급하지 않았다. 혼합 양식은 이오니아 양식의 소용돌이 장식과 코린트 양식의 아칸서스 잎 장식을 결합한 것으로, 전체적인 비율은 코린트 양식과 매우 유사하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보다 이 혼합 양식을 훨씬 더 자주 사용했다.
혼합 양식 주두의 사용 증가는 후기 고대 시대로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더욱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때로는 거칠게 조각된 주두 디자인 경향의 시작을 알렸다.
3. 1. 4. 안타 기둥머리
'''안타 기둥머리'''는 독립된 기둥 위에 놓이는 일반적인 기둥머리와 달리, 사원 측벽 끝처럼 벽면과 하나로 이어진 구조 기둥인 안타의 상단에 위치하는 기둥머리이다.안타의 상단은 종종 화려하게 장식되며, 일반적으로 꽃무늬 장식 띠가 사용된다. 디자인은 해당 기둥의 양식(예: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과 관련이 있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고 다른 디자인 원칙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4] 벽 표면에서 과도하게 튀어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타 기둥머리는 비교적 평평한 표면을 가지며 벽돌과 비슷한 모양을 형성한다. 이러한 형태의 기둥머리는 도리아식 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5]

안타 기둥머리의 측면이 위쪽으로 넓어지면서 소파를 연상시키는 모양을 가질 때는 "소파 기둥머리" 또는 "소파 안타 기둥머리"라고 부르기도 한다.[6][7][8]
안타 기둥머리는 장식용으로 벽에 덧붙이는 필라스터의 기둥머리와 혼동하기 쉬운데, 필라스터 기둥머리는 안타 기둥머리와 달리 구조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3. 2. 로마
(내용 없음 - 원본 소스가 제공되지 않아 해당 섹션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3. 2. 1. 토스카나식
토스카나식 오더의 기원은 에트루리아인에게서 찾을 수 있으며, 그들의 무덤에서 발견된다. 로마인들은 이를 특히 이탈리아적인 것으로 인식했지만, 로마 기념물에서 발견되는 '''토스카나식 주두'''는 실제로 에트루리아의 사례보다는 그리스의 도리아식 오더에 더 가깝다. 주두는 도리아식과 거의 동일하다.3. 2. 2. 혼합식
로마인들은 코린트식 주두와 이오니아식 주두를 결합하여 복합 오더를 발명했다. 이는 아마도 아우구스투스 황제 통치 초기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혼합식 주두는 이오니아식보다 더 큰 소용돌이 장식(volutes|볼루트영어)을 가지며, 일반적으로 소용돌이 장식 사이에 중앙 장식이 놓인다.하지만 실제 많은 '''복합 주두'''는 두 개의 소용돌이 장식을 서로 다른 요소로 다루기도 한다. 각 소용돌이 장식은 잎이 무성한 주두 몸통(기단) 측면에서 솟아나는 형태로 표현된다. 이러한 특징과 소용돌이 장식 사이에 별도의 장식이 있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아이올리스 양식과 유사점을 보이기도 하지만, 혼합식 주두가 아이올리스 양식에서 직접 발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리스의 이오니아식 소용돌이 장식은 보통 기둥의 앞면과 뒷면에서 볼 때 너비가 변하지 않는 하나의 덩어리로 측면에 표시된다. 반면, 혼합식 주두의 소용돌이 장식은 일반적으로 주두의 네 모서리에 각각 배치된 네 개의 더 얇은 단위로 처리되며, 정면에서 보았을 때 약 45도 각도로 돌출되어 있다.
3. 3. 인도
인도에서는 고대부터 다양한 형태의 주두가 발전해왔다. 특히 마우리아 제국 시대의 유물에서 중요한 예시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아소카 황제가 세운 기둥 위에 놓였던 아소카의 사자 기둥머리는 인도를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다. 또한, 서양 고전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은 인도-이오니아식 기둥머리와 인도-코린트식 기둥머리 역시 인도 건축과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인도-그리스 양식의 주두는 특히 고대 간다라 지역의 불교 유적에서 많이 발견되며, 헬레니즘 문화와 인도 고유의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이들 주두는 단순한 건축 부재를 넘어 당시 인도의 정치, 종교, 문화 교류의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3. 3. 1. 아소카의 사자 기둥머리

아소카의 사자 기둥머리는 여러 동물이 새겨진 정교한 받침대 위에 네 마리의 아시아 사자가 서로 등을 대고 서 있는 모습의 상징적인 기둥머리이다. 이것의 그래픽 표현은 1950년에 인도의 공식 국장으로 채택되었다.[9]
사르나트에서 발굴된 이 강력하게 조각된 사자 기둥머리는 원래 아소카 황제의 칙령을 새긴 기둥 꼭대기에 놓여 있었다. 아소카의 다른 기둥머리들처럼 표면은 눈부시게 광택 처리되었다. 이 기둥머리가 세워진 사르나트는 부처가 처음으로 설법하고 불교 교단이 형성된 장소로, 기둥머리는 황제와 부처의 가르침이 지닌 보편적인 권위를 나타내는 제국과 불교의 상징을 담고 있었다. 기둥머리는 오늘날 인도 공화국의 국장으로 사용된다.
기둥머리 아랫부분의 거꾸로 된 종 모양 인도 연꽃을 제외하고, 네 마리의 인도 사자가 등지고 서 있는 원형 받침대 부분은 인도 국기의 도안에도 채택되었으며, 여기에는 왼쪽에는 말, 오른쪽에는 황소, 그리고 아소카 차크라가 보인다. 실제 기둥머리에는 황소와 코끼리가 있고, 사자가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받침대의 바퀴 문양인 "아소카 차크라"는 인도 국기의 중앙에 배치되었다.
3. 3. 2. 인도-이오니아식 기둥머리


파탈리푸트라 기둥머리는 고대 마우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파탈리푸트라(오늘날 인도 북동부의 파트나)의 궁궐 유적에서 발견된 거대한 사각형 기둥머리이다. 기원전 3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소용돌이 장식 디자인을 특징으로 한다. 기둥머리 윗부분에는 장미창 무늬 띠가 있는데, 앞면에는 11개, 옆면에는 4개가 새겨져 있다. 그 아래에는 구슬 앤 릴 패턴 띠가 있고, 더 아래에는 물결 모양 띠가 있다. 이 물결무늬는 일반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방향이지만, 뒷면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 물결무늬 아래에는 계란 앤 다트 패턴 띠가 있으며, 앞면에는 11개의 "혀" 또는 "계란" 모양이, 뒷면에는 7개가 있다. 가장 아랫부분에는 자갈 사이에서 자라는 불꽃 야자잎이 주요 장식으로 나타난다.
사르나트 기둥머리는 고대 불교 유적인 사르나트에서 고고학 발굴을 통해 발견된 기둥 머리이다. 때로는 "돌 지지대"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 기둥머리는 이오니아식 소용돌이 장식과 종려잎 장식을 보여준다.[10][11] 제작 시기는 마우리아 제국 시대인 기원전 3세기[12]부터 숭가 제국 시대인 기원전 1세기[10]까지 다양한 견해가 있다.
3. 3. 3. 인도-코린트식 기둥머리

인도-코린트식 기둥머리는 흔히 볼 수 있는 코린트식 기둥머리의 한 형태로, 기둥이나 벽기둥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간다라를 포함한 북서부 인도 아대륙에서 주로 발견되며, 일반적으로 헬레니즘과 인도의 문화적 요소를 결합한 특징을 보인다. 이 기둥머리는 대체로 기원전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레코-불교 미술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여겨진다.
고전적인 코린트식 디자인을 바탕으로 하지만, 종종 더 길쭉한 형태로 변형되었으며 때로는 두루마리 장식과 결합되기도 했다. 이러한 기둥머리는 주로 불교의 탑과 사원 건축에 사용되었다. 인도-코린트식 기둥머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붓다 또는 보살의 형상을 통합했다는 점이다. 이들 형상은 일반적으로 코린트 양식 특유의 화려한 잎사귀 장식에 둘러싸여 기둥머리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4. 후기 고대
후기 고대 시대의 주두는 고전 시대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특히 비잔틴 건축에서는 코린트 양식에서 유래하여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한 주두들이 많이 나타난다. 이 시기 주두는 표면을 평평하게 다듬고 드릴을 사용하여 섬세하게 장식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디자인이 시도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바람에 날리는 듯한 잎사귀 조각이나 바구니 모양을 닮은 주두 등이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 소피아 대성당이나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 등 당시 주요 건축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기 고대 주두 양식은 이후 이슬람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다.
4. 1. 비잔틴

비잔틴 건축의 주두는 고전적인 코린트식에서 유래하여 다양하게 발전했지만, 표면은 평평하고 장식은 드릴로 언더컷(undercut)하는 경향이 있다. 돌 블록은 채석장에서 나온 그대로 거칠게 남겨두고, 조각가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하여 동일한 디자인이 반복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가장 주목할 만한 디자인 중 하나는 바람에 날리는 듯한 잎사귀 조각이며, 가장 훌륭한 예는 8세기 테살로니키의 성 소피아 대성당에서 발견된다.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1071) 주두는 특히 존 러스킨의 관심을 끌었다. 라벤나의 산트아폴리나레 인 클라세(549)에서도 다른 형태의 주두들을 찾아볼 수 있다.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547)의 주두 위에는 아치를 지지하기 위해 필요한 도세렛(dosseret)이 나타나는데, 이는 아치의 시작 부분이 주두의 아바쿠스보다 훨씬 넓기 때문이다. 동방 지역의 주두에는 독수리, 사자, 양 등이 때때로 조각되기도 하지만 관습적인 형태로 처리된다.
성 소피아 대성당에는 복합식 주두와 이오니아식 두 가지 유형의 주두가 사용되었다. 복합식 주두는 코린트식과 이오니아식을 결합한 형태로, 후기 비잔틴 제국 시대에 주로 로마에서 등장했다. 성 소피아 대성당에서는 복합식 주두가 본당의 주요 공간을 채우고, 이오니아식 주두는 측면 공간 뒤, 즉 복합식 주두와 반대되는 위치에 사용된다. 그러나 성 소피아 대성당의 주두는 표준적인 제국 양식의 표현과는 다르며, 다양한 변형된 잎사귀 문양으로 채워져 있다. 일부 주두에서는 작고 무성한 잎사귀가 마치 스크롤의 회전에 휩쓸린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비고전적인 감성이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에 있는 주두는 벨트 버클이나 단검 날에서 볼 수 있는 장식과 유사한, 물결 모양의 섬세한 꽃무늬를 보여준다. 그 역피라미드 형태는 바구니 모양을 연상시킨다.
초기 이슬람 건축의 주두는 그리스-로마 및 비잔틴 양식에서 파생되었는데, 이는 주두를 제작한 석공 대부분이 이러한 전통 속에서 훈련받았음을 반영한다.
5. 중세
중세 서유럽의 로마네스크 건축과 고딕 건축 시대에는 주두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이 시기에는 종종 작은 기둥들을 여러 개 묶어 사용했는데, 이는 더 큰 하나의 기둥인 교각 주변이나 벽면을 따라 배치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개별 기둥 자체의 구조적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낮추는 대신, 조각가들이 예산이 허락하는 한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하여 다채로운 주두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두 시대 모두에서 주두는 단순한 구조적 요소를 넘어 장식적인 역할이 강조되었으며, 특히 로마네스크 건축에서는 인물이나 성서 이야기 장면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고딕 건축 시기에는 섬세한 식물 문양 장식이 나타나는 등, 서유럽 전역에서 지역과 시대에 따라 풍부하고 다양한 주두 양식이 나타났다.[13]
5. 1. 로마네스크
로마네스크 건축 시기 서유럽의 주두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작은 기둥들이 묶여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사실상 더 큰 하나의 기둥인 교각 주변이나 벽면을 따라 배치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개별 기둥의 중요성을 줄이는 대신, 조각가들이 예산이 허락하는 한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를 주었다. 특히 로마네스크 건축에서는 주두에 인물이나 이야기 장면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롬바르디와 독일에서 나타난 가장 초기 유형 중 하나는 쿠션형 주두이다. 이는 정육면체 블록의 하단 부분이 원형 기둥에 맞게 잘려나간 형태로, 처음에는 기하학적 무늬로 채색되다가 나중에는 조각 장식이 더해졌다.
가장 뛰어난 조각은 프랑스, 특히 파리 주변 지역에서 발견되며, 1130년부터 1170년 사이에 가장 다양한 형태의 주두가 만들어졌다.[13]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때때로 개성 있는 인물이 새겨진 주두가 등장하는데, 이를 역사적 주두 또는 인물 주두라고 부른다.
5. 2. 고딕
고딕 건축 시대에는 로마네스크 건축 시대와 마찬가지로 작은 기둥들이 종종 묶여 사용되었다. 이는 사실상 더 큰 하나의 기둥인 교각 주변이나 벽면을 따라 배치되었으며, 이로 인해 개별 기둥의 구조적 중요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서유럽 전역의 고딕 건축 주두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조각가가 조각하는 돌덩이에 따라 디자인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며, 특히 서방에서는 기둥과 교각이 무리지어 사용되어 더욱 다채로운 형태가 나타났다. 예산이 허락하는 경우 조각가들은 자신의 창의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었다.[13]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주두에 인물상을 새겨 개성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이를 역사적 주두 또는 인물 주두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주두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초기 영국 고딕 양식의 주두이다. 이 시기 주두는 마치 금속 세공품을 모방한 듯 정교한 잎사귀 장식이 특징이며, 작은 시골 교회에서부터 큰 대성당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다양성을 보여준다.
5. 3.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의 주두는 종종 비잔틴 양식의 영향을 받은 변형된 형태를 보인다.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초기 아르메니아 건축물의 주두는 주로 부피가 큰 직사각형 돌을 종 모양으로 깎아 만든 석판 형태였다. 이 시기 건축물(예레루크, 테코르, 초프크 등)의 주두에는 식물, 동물 문양이나 야자수 등이 조각되었다.
10세기 이후에는 주두가 주로 원통과 석판을 조합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아르메니아의 궁전, 교회, 안뜰 구조물(드빈, 아루치, 즈바르트노츠, 이슈카나, 바나크, 하그파트, 사나힌, 아니)에서 다양하고 독특한 주두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6. 르네상스 이후
르네상스 시대 이후, 고전 건축 양식에 대한 재해석과 창의적인 변형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주두 디자인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이 시기에는 단순히 과거 양식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시대정신과 지역적 특색을 반영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그 결과, 바로크, 로코코 등 후속 양식에서는 더욱 화려하고 역동적인 형태의 주두가 등장했으며, 고전의 틀을 벗어난 독창적인 임시 양식 주두들도 만들어졌다. 이는 주두가 건축물의 구조적 기능을 넘어 중요한 장식 요소이자 건축가의 창의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6. 1. 르네상스
르네상스 시대에는 고전 양식의 부활과 함께 주두 디자인이 매우 다양해졌는데, 이는 로마네스크나 고딕 양식 시대와 비슷할 정도였다. 특히 이 시기에는 평면 필라스터가 널리 사용되면서, 이에 맞춰 주두 역시 고부조(높은 돋을새김) 형태로 평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요구되었다. 이는 주두 디자인 자체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15세기에는 전통적인 복합식 주두를 변형하여, 뻣뻣하게 표현된 아칸서스 잎 조각 위에 소용돌이 장식을 안쪽으로 말아 넣는 형태가 나타났다. 르네상스 시대의 새로운 주두 디자인 조합에서 사용된 장식 대부분은 고대 로마의 양식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르네상스'는 단순히 고전 규범을 되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이오니아식 주두에서 소용돌이 장식은 그 위에 놓이는 아키트레이브와 같은 평면에 위치했다. 이는 기둥이 모서리에 위치할 때 어색한 형태를 만들었는데,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아테나 니케 신전의 설계자는 모서리 기둥의 바깥쪽 소용돌이를 45도 각도로 앞으로 나오게 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 문제는 16세기 건축가 세바스티아노 세를리오에 의해 더 만족스럽게 해결되었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이오니아식 주두의 모든 소용돌이를 바깥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들었다. 이후 세를리오의 방식 대신 고대 이오니아식 주두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그리스 부흥 양식에서처럼 의도적으로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려는 경우에 해당하게 되었다.
주두의 다른 장식이 핵심 특징이 되는, 때때로 임시 양식이라고 불리는 새롭게 발명된 양식들도 많이 나타났다. 고전 전통 안에서도 어느 정도의 창의적인 변형은 항상 허용되어 왔으며, 이러한 경향은 르네상스 이후 더욱 두드러졌다. 벤자민 헨리 라트로브는 1807년 미국 국회의사당 상원 현관을 재설계하면서, 유럽의 아칸서스 잎 대신 옥수수 이삭 모양으로 장식한 6개의 기둥을 선보이며 '미국적인' 양식을 만들었다. 라트로브가 1809년 8월 토마스 제퍼슨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이 주두들은 "옥수수 속대 주두(corn cob capitals)"라는 별칭을 얻으며 의회 의원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또 다른 예로 영국 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는 뉴델리의 총독 관저(현재 대통령 관저인 라스트라파티 바반)를 설계하면서 인도 건축 요소를 통합한 델리 양식을 창안했다.[14] 이 양식의 주두는 네 모서리에 소용돌이 장식 대신 종(bell)이 매달린 수직 띠 장식을 사용했다.[15] 델리 양식은 이후 캠피언 홀, 옥스포드 등 루티엔스의 다른 건물에도 사용되었다.[16]
6. 2. 바로크와 로코코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에는 이전 시대보다 더욱 화려하고 장식적인 주두가 사용되었다. 고전 양식의 엄격함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역동적인 형태, 풍부한 조각 장식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참조
[1]
문서
Arnold, 2005, pp.204ff
[2]
학술지
Royal Architecture in the Iron Age Levant
https://jjar.huji.ac[...]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2021-12-16
[3]
뉴스
Can royal architecture prove biblical Judah was a kingdom?
https://www.jpost.co[...]
2021-11-21
[4]
서적
The Classical Orders of Architecture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07
[5]
서적
The Classical Orders of Architecture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07
[6]
간행물
[7]
웹사이트
Architectural Elements
http://www.samothrac[...]
Emory University
[8]
웹사이트
Architectural Elements | Samothrace
http://www.samothrac[...]
2016-11-02
[9]
웹사이트
State Emblem
http://www.india.gov[...]
Know India india.gov.in
[10]
서적
Sarnath : Archaeology, Art and Architecture
https://archive.org/[...]
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
2012
[11]
서적
Guide to Sarnath
https://archive.org/[...]
1937
[12]
서적
Indian Architecture (Buddhist And Hindu)
https://archive.org/[...]
1959
[13]
문서
John James,'' The Creation of Gothic Architecture – an Illustrated Thesaurus: The Ark of God'', vols. 5, London and Hartley Vale, 2002/2008.
[14]
서적
Edwin Lutyens: Architect Laureate
George Allen and Unwin
[15]
서적
Edwin Lutyens: Architect Laureate
George Allen and Unwin
[16]
서적
Edwin Lutyens: Architect Laureate
George Allen and Un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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