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페돈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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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르페돈 1세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아들이자 미노스, 라다만튀스의 형제이다. 크레타 섬에서 형제들과 왕위 다툼을 벌인 후 소아시아의 킬리키아로 도망쳐 리키아의 왕이 되었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여 트로이 편에서 싸웠으며, 파트로클로스와의 전투에서 사망했다. 사르페돈은 뤼키아로 옮겨져 장례를 치렀으며, 이설에 따르면 다른 사르페돈이 존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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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페돈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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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화
사르페돈은 형제들과 함께 크레타 섬의 왕 아스테리오스에게 양육되었으나, 성장하면서 밀레토스를 두고 형제 미노스와 갈등을 겪었다. 미노스는 밀레토스가 사르페돈을 좋아했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켜 사르페돈을 크레타 섬에서 추방했다. 이후 사르페돈은 소아시아의 킬리키아로 이주하여 왕 킬릭스를 도와 리키아의 일부를 받는 조건으로 전쟁에 참여, 킬릭스에게 땅을 받아 리키아의 왕이 되었고 제우스에게 인간 3세대 분의 수명을 받았다. 밀레토스 또한 소아시아로 건너가 밀레토스를 건설했다.
트로이 전쟁 발발 후, 사르페돈은 트로이를 도왔다. 그리스군은 협력을 요청했으나, 프리아모스가 먼저 사르페돈을 막대한 보상으로 아군으로 만들었다.[15] 『일리아스』에서 사르페돈은 트레폴레모스와 싸워 상처를 입으면서도 승리했고, 트로이 군의 방벽 공격을 지휘했다. 메네스테우스를 공격하여 대 아이아스의 지원군을 불렀으나, 방벽 돌파에는 실패했다. 파트로클로스와의 전투에서 제우스는 아들의 운명을 슬퍼하며 피의 비를 내렸고, 사르페돈은 파트로클로스의 창에 맞아 쓰러졌다. 제우스는 아폴론에게 유해를 정화하고 퓌프노스와 타나토스를 시켜 리키아로 운구하게 했다.[16] 이후 웅장한 장례 행렬과 함께 매장되었고, 유해는 잠든 듯 보였다고 한다.[17]
시켈리아의 디오도로스에 따르면,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아들 사르페돈과 트로이 전쟁의 사르페돈은 다른 인물이다. 전자의 아들 에우안드로스는 데이다메이아와 결혼하여 동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는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편을 들었다.[18] 포세이돈의 아들 사르페돈은 헤라클레스에게 살해되었다.[19]
2. 1. 탄생과 리키아 정착
사르페돈은 다른 형제들과 함께 크레타 섬의 왕 아스테리오스에게 길러졌지만, 성장하면서 미소년 밀레토스(혹은 아튀므니오스)를 두고 형제인 미노스와 다투었다. 그러나 미노스는 밀레토스가 사르페돈을 사모했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켜 사르페돈을 크레타 섬에서 쫓아냈다. 사르페돈은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소아시아의 킬리키아로 향했다. 그 무렵 킬리키아의 왕 킬릭스는 리키아인과 싸우고 있었고, 사르페돈은 리키아의 일부를 받기로 하는 조건으로 킬릭스의 편을 들어 싸웠다. 그 후, 약속대로 킬릭스로부터 땅을 받아 리키아의 왕이 된 그에게 제우스는 인간의 3세대 분의 수명을 주었다. 또한 밀레토스도 소아시아로 건너가 도시 밀레토스를 건설했다.이후 사르페돈에게 판디온의 아들 뤼코스가 망명해왔고, 그 전까지 테르밀라이라 불리던 사람들은 뤼코스에 연유하여 리키아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2. 2. 트로이 전쟁에서의 활약과 죽음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자 사르페돈은 트로이 편을 들어 참전했다. 그리스군은 사르페돈에게 협력을 얻으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프리아모스가 막대한 보상으로 사르페돈을 아군으로 만들었다고도 한다.[15]
『일리아스』 첫날, 사르페돈은 로도스섬의 무장 트레폴레모스와 싸워 왼쪽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입으면서도 트레폴레모스를 쓰러뜨렸다. 트로이 군이 그리스 군의 방벽을 공격했을 때에는 동맹군을 지휘했으며, 글라우코스와 아스테로파이오스를 부장으로 삼았다. 사르페돈은 아테네의 무장 메네스테우스가 지키는 곳을 공격했고, 위협을 느낀 메네스테우스는 대 아이아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대 아이아스는 테우크로스와 함께 메네스테우스를 도왔고, 테우크로스의 화살이 글라우코스를 다치게 하여 후퇴시켰지만, 사르페돈은 방벽의 일부를 무너뜨려 돌파구를 만들었다. 그러나 대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의 공격을 받자 방벽에서 물러나 뤼키아 군을 돌격시켰지만 방벽 안으로 침입할 수 없었고, 헥토르가 돌파구를 만들어 아군을 돌입시켰다. 헥토르가 대 아이아스에게 기절했을 때에는 다른 무장들과 함께 헥토르를 지키며 싸웠지만, 제우스는 사르페돈의 죽음을 예언했다.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싸웠을 때, 사르페돈은 병사들을 멈춰 세우고 자신은 파트로클로스와 싸웠다. 이때 제우스는 자신의 아들 사르페돈의 운명을 알고 슬퍼하며 돕고 싶었지만 헤라에게 설득당하여 생각을 고쳐먹고, 아들을 생각하여 하늘에서 피의 비를 내렸다. 사르페돈은 파트로클로스에게 창을 두 번 던졌다. 창은 모두 빗나갔지만, 첫 번째 창은 아킬레우스의 전차를 끄는 말 중 유일하게 불멸이 아니었던 페다소스를 죽였다. 그러나 사르페돈은 파트로클로스의 창에 찔려 쓰러졌고, 죽기 직전 발버둥치며 글라우코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글라우코스는 트로이 군의 무장들에게 사르페돈의 유해를 지키며 싸울 것을 호소했고, 양군은 격렬하게 싸웠다. 제우스는 아폴론에게 사르페돈의 유해를 운반하여 씻어 정결하게 하고, 암브로시아를 바르도록 한 뒤, 퓌프노스와 타나토스에게 유해를 뤼키아로 옮기도록 명령했다.[16]
그 후 사르페돈은 웅장한 장례 행렬과 함께 묘지로 운반되어 매장되었다. 사르페돈의 유해는 마치 잠든 듯했다고 한다.[17]
2. 3. 이설
시켈리아의 디오도로스에 따르면,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아들이며 크레테 섬에서 리키아 지방으로 이주한 사르페돈과, 트로이 전쟁에서 싸운 사르페돈은 다른 인물이다. 전자의 사르페돈의 아들로 에우안드로스가 있으며, 벨레로폰의 딸 데이다메이아와 결혼하여 아버지와 같은 이름의 아들 사르페돈을 낳았다. 그는 트로이 전쟁에서는 트로이 측이 아닌, 그리스 측의 편을 들어 싸웠다고 한다.[18]3. 가계
사르페돈 1세는 제우스와 에우로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형제로는 미노스, 라다만튀스가 있다.
4. 기타
참조
[1]
고대 문헌
ヘーシオドス断片89
[2]
고대 문헌
ヘーシオドス断片90
[3]
고대 문헌
アポロドーロス
[4]
고대 문헌
シケリアのディオドーロス
[5]
고대 문헌
シケリアのディオドーロス
[6]
고대 문헌
ヒュギーヌス
[7]
서사시
『イーリアス』
[8]
고대 문헌
クレタのディクテュス
[9]
서사시
『イーリアス』
[10]
고대 문헌
アポロドーロス
[11]
고대 문헌
クレタのディクテュス
[12]
고대 문헌
プリュギアのダレース
[13]
고대 문헌
アポロドーロス
[14]
고대 문헌
ヘーロドトス
[15]
고대 문헌
クレタのディクテュス
[16]
서사시
『イーリアス』
[17]
고대 문헌
ピロストラトス『ヘーローイコス』
[18]
고대 문헌
シケリアのディオドーロス
[19]
고대 문헌
アポロドーロ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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