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산토메 대성당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산토메 대성당은 인도 첸나이에 위치한 대성당으로, 사도 토마스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72년에 사도 토마스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1606년 대성당으로 승격되었으며, 19세기 후반 영국에 의해 고딕 리바이벌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1927년 소성당으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 대대적인 복원을 거쳐 국립 성지로 선포되었다. 주요 건축 특징으로는 늑재 볼트 천장, 스테인드글라스, 두 개의 첨탑, 그리고 200년 된 파이프 오르간이 있으며, 성모 마리아 조각상, 성 토마스 기둥 등의 주요 기념물과 성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인도의 로마 가톨릭 대성당 - 세 대성당
    세 대성당은 1510년 포르투갈의 고아 점령 승리를 기념하여 건축되었고, 마누엘 양식을 기반으로 토스카나 및 코린트 양식이 혼합되었으며, 황금 종과 황금 장미, 기적의 십자가 경당 등 역사적, 종교적 유물을 소장한 웅장한 건축물이다.
산토메 대성당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산토메 대성당
산토메 대성당
위치인도 타밀나두주 첸나이 38 Santhome High Road
국가인도
교단로마 가톨릭교회
전례라틴 교회
지위미성년 바실리카
기능적 지위활동 중
문화유산 지정국가 성지
봉헌일사도 토마스
건축가Captain J. A. Power (현재 구조물)
건축 양식신고딕 양식
착공1500년
완공1523년 (현재 건물 1896년)
길이64m
너비12.2m
네이브 너비10m
높이41m
첨탑 높이47.2m
언어타밀어 및 영어
웹사이트santhomechurch.com
교구
교구마드라스 및 밀라포레 대교구
관할 구역첸나이
역사
설립일1523년
설립자포르투갈 탐험가
황소 날짜1956년 3월 16일
인물
대주교조지 안토니사미 대주교 (2012년–현재)
사제M. 아룰라지 신부
보좌 사제안토니 아난드 신부
보조 사제다이슨 라자 라티남 신부
유물
유물사도 토마스 (주장됨)

2. 역사

산토메 대성당의 역사는 사도 토마스가 서기 72년 성 토마스 산에서 순교하고 마일라포르(현재의 산토메)에 묻혔다는 전승과 관련 깊다.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그의 무덤은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1291년 몬테코르비노의 요한, 1292년 마르코 폴로, 14세기 프란체스코회 선교사들, 그리고 1425년에서 1430년 사이 니콜로 콘티 등이 이곳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1517년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도착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들은 1522년 토마스 사도의 무덤 위에 교회를 짓기 시작하여 1523년에 완공했다.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45년에 이 교회를 방문하기도 했다. 1606년에는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대성당으로 승격되었다.

1893년, 영국은 기존의 포르투갈식 대성당을 허물고 신고딕 양식으로 재건하기 시작하여 1896년에 완공했다. 20세기 들어 산토메 대성당은 1927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소성당으로 지정되어 타밀나두 최초의 소성당이 되었다. 1986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으며, 2004년에는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통해 지하 예배당이 건설되고 성 토마스의 무덤이 재정비되었다. 2006년에는 국립 성지로 선포되었다.

2. 1. 초기 역사 (1세기 ~ 15세기)

서기 72년,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사도 토마스가 성 토마스 산에서 사망하고 현재의 산토메 지역인 마일라포르에 매장되었다고 전해진다. 13세기 말에는 이탈리아 프란체스코회 선교사 몬테코르비노의 요한이 1291년에, 베네치아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1292년에 각각 토마스의 무덤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4세기에도 프란체스코회 선교사들이 무덤을 방문했으며, 15세기 초인 1425년에서 1430년 사이에는 베네치아 탐험가 니콜로 콘티가 이곳을 찾았다.

2. 2. 포르투갈 시대 (16세기 ~ 17세기)

1523년 포르투갈인들이 건설한 산토메 대성당


1521년, 고아와 봄베이-바세인에 있던 포르투갈인들은 토마스 사도의 무덤을 찾기 위해 마드라스(현재 첸나이)로 선교사를 보냈다. 현지 전승에 따르면 토마스 사도는 남 아시아 지역에 기독교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왔다고 여겨졌다. 포르투갈인들이 발견한 무덤 터는 관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그들은 무덤 위에 성지를 다시 짓기로 결정했다. 포르투갈주앙 3세 국왕의 지원과 승인을 받아 교회를 짓기 시작하여 1523년에 봉헌했다. 포르투갈 ''파드루아두'' 소속 사제들은 이곳에서 매일 전례 (미사)를 집전했다.

1545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이 성지를 방문하여 약 1년 동안 산토메 교회의 사제관에 머물렀다. 그는 이곳에 머물면서 일리하 포르모사로의 선교를 준비했다. 교회에 머무는 동안 그는 정기적으로 성모 마리아 조각상 앞에서 기도하고 미사를 드렸으며, 토마스 사도의 무덤에서도 정기적으로 기도했다. 1606년, 교황 바오로 5세는 이 교회를 대성당으로 승격시키고 마일라포르의 성 토마스 교구를 설립했다.

2. 3. 영국 시대 (19세기 ~ 20세기 초)

1896년 영국에 의해 재건된 산토메 대성당


19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 통치 시기에 기존의 포르투갈 양식으로 지어진 산토메 대성당은 재건되었다. 영국은 1893년부터 고딕 리바이벌 건축 양식을 적용하여 대성당을 새로 짓기 시작했으며, 1896년에 완공하여 개관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도 토마스가 묻힌 것으로 전해지는 장소는 재건된 대성당 중앙의 두 번째 작은 탑 아래에 위치하게 되었다.

2. 4. 현대 (20세기 후반 ~ 현재)

1986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산토메 대성당을 방문하였다. 2004년에는 대성당에 대한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지하 예배당이 새로 건설되고 사도 토마스의 무덤이 재건되었다. 2006년, 산토메 대성당은 국립 성지로 공식 선포되었다.

3. 건축

산토메 대성당은 19세기 후반 고딕 리바이벌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3. 1. 주요 특징

산토메 대성당은 19세기 후반의 고딕 리바이벌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늑재 볼트 천장은 티크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건축물의 다른 부분에는 대리석과 화강암이 사용되었다. 성당에는 16개의 창문과 34개의 스테인드글라스 패널이 있으며, 제단 위에 있는 주요 스테인드글라스는 그리스도의 상처를 만지는 사도 토마스를 묘사하고 있다. 주 제단의 조각상은 "사제로서의 사도 토마스와 왕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또한, 성당 측벽에는 14개의 십자가의 길이 부착되어 있다.

교회에는 두 개의 첨탑이 있다. 교회 입구 왼쪽에 있는 주요 첨탑은 약 44.81m 높이로, 멀리서도 보이며 종탑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첨탑은 사도 토마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교회의 중앙 부분에서 솟아 있다.

산토메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200년 된 영국산 파이프 오르간이 교회의 갤러리에 설치되어 있으며, 입구의 계단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본당과 인접한 성체 숭배 경당은 성체 앞에서 조용히 기도하거나 묵상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이 경당은 교회의 왼쪽 날개에서 접근할 수 있으며, 외부에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별도의 입구도 있다.

3. 2. 첨탑

교회에는 두 개의 첨탑이 있다. 교회 입구 왼쪽에 있는 주요 첨탑은 높이가 약 44.81m이다. 이 첨탑은 멀리서도 잘 보이며 종탑의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첨탑은 사도 토마스의 무덤이 있는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성당 중앙 부분에 세워져 있다.

3. 3. 파이프 오르간



200년 된 영국산 파이프 오르간이 교회의 갤러리에 설치되어 있으며, 입구의 계단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4. 주요 기념물 및 성유물

산토메 대성당에는 신자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여러 기념물과 성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대표적인 기념물로는 마일라포르의 성모로 불리는 '밀라이 마타' 조각상과 토마스 사도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성 토마스 기둥'이 있다. 또한, 토마스 사도의 유골 일부와 그를 순교시켰다고 알려진 창을 비롯하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바르톨로메오 사도, 성 필로메나 등의 성유물이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4. 1. 밀라이 마타 (Mylai Matha)

1523년 리스본에서 금색으로 칠해진 성모 마리아의 나무 조각상이 산토메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이 조각상은 성당 제단의 왼쪽에 설치되어 있으며, 마일라포르의 성모 또는 현지에서는 밀라이 마타(மயிலை மாதா|마일라이 마타ta)로 불린다.

매년 12월에는 밀라이 마타 축제가 열린다. 또한 신자들은 매달 두 번째 토요일에 특별 기도, 행렬, 묵주 기도, 저녁 축복을 통해 밀라이 마타에 대한 경건함을 표현한다. 이러한 전통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4. 2. 성 토마스 기둥

교회 안에 있는 나무 기둥은 신자들이 사도 토마스가 해안으로 떠내려와 세운 것으로 믿으며, 이 기둥이 2004년 쓰나미로부터 교회를 구했다고 여긴다.

4. 3. 성유물



산토메 대성당에는 다음과 같은 성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 토마스 사도의 뼈
  • 성 토마스 산에서 성 토마스를 죽이는 데 사용되었다고 전해지는 창
  •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성유물
  • 바르톨로메오 사도의 성유물
  • 필로메나의 성유물

5. 갤러리

참조

[1] 웹사이트 Santhome Basilica in Chennai — A historical pilgrimage https://www.indiastu[...] 2021-08-30
[2] 웹사이트 Basilica of the National Shrine of St.Thomas http://www.santhomec[...] SanThomeChurch.com 2010-02-20
[3] 웹사이트 National Shrine Status http://www.santhomeb[...] 2009-02-27
[4] 웹인용 Basilica of the National Shrine of St.Thomas http://www.santhomec[...] SanThomeChurch.com 2010-02-20
[5] 웹사이트 National Shrine Status http://www.santhomeb[...] 2009-02-2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