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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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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유물은 종교적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는 성인이나 종교적 인물의 유해나 유품을 의미한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에서 성유물 숭배의 역사를 찾아볼 수 있으며, 각 종교마다 성유물의 종류와 의미가 다르다. 중세 시대에는 권력자들이 성유물을 소유하여 권위를 높이고,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활용되기도 했다. 가톨릭 교회는 성유물을 등급별로 분류하고 있으며, 동방 정교회에서는 성인의 육신을 신성하게 여겨 숭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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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물
일반 정보
聖セヴラン教会にある聖遺物
聖セヴラン教会にある聖遺物
종류종교적 유물
관련 종교기독교, 불교, 샤머니즘, 기타
보관 장소교회, 사원, 개인 소장, 기타
숭배 대상성인, 부처, 영웅, 기타
라틴어Reliquiae
영어Relic
기독교에서의 성유물
종류성인의 유해
성인이 사용한 물건
성지와 관련된 물건
예시예수십자가 파편
성모 마리아의 머리카락
성 베드로의 뼈
성 바울의 편지
숭배 이유신성한 힘을 지녔다고 믿음
성인과의 연결을 상징
기적을 일으킨다고 믿음
논란위조 성유물 존재
숭배의 정당성 문제
종교 개혁 시기 비판
불교에서의 성유물
종류부처의 사리
고승의 유해
경전
불상
예시부처의 치아
부처의 손가락 뼈
다라니경
숭배 이유부처의 가르침을 상징
공덕을 쌓는 행위
신성한 힘을 지녔다고 믿음
보관 장소사리탑, 사찰, 기타
샤머니즘에서의 성유물
종류신령이 깃든 물건
주술에 사용된 물건
영웅의 유품
예시신목
무구
부적
숭배 이유신령의 힘을 빌리기 위해
액운을 막기 위해
소원을 이루기 위해
보관 장소신당, 사당, 개인 소장, 기타
기타 종교에서의 성유물
예시힌두교신상
이슬람교의 무함마드의 유품 (Sacred Relics (Topkapi Palace) 참조)
일본 신토의 신체
참고
관련 문서성인 (기독교)
사리
토템
애니미즘

2. 역사

열왕기하 13장 20-21절에는 성물의 효능을 보여주는 초기 자료가 있다.[13]

>엘리사가 죽으매 그를 장사하니라 모압 사람들의 군대가 해마다 쳐들어오더니 장사하는 중에 사람들이 군대를 보았으므로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무덤에 던졌더니 그 사람이 엘리사의 뼈를 만지자 살아나서 일어섰더라.

150년에서 160년 사이에 기록된 「폴리카르푸스 순교록」에는 순교자이자 주교인 스미르나의 폴리카르푸스의 성물 숭배가 언급된다.[14] 사도행전 19장 11-12절에는 바울 사도의 손수건이 치유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사도행전의 여인의 출혈을 고친 예수 이야기와 마가복음 6장 56절에서 예수의 옷을 만진 사람들이 치유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아우구스티누스, 성 암브로시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성 크리소스토무스, 성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성물 숭배를 당연하게 여겼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베르나르도 치니티는 "죽은 자의 유해가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의 영혼의 거룩함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들의 영혼은 부활에서 그들의 몸과 재결합하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썼다.[15] 토마스 아퀴나스는 친척의 유품처럼 죽은 자와 관련된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20] 이탈리아 파도바의 성 안토니우스 메신저 잡지의 편집장인 마리오 콘테 신부는 "성인의 성물은 사람들이 추상적인 것을 극복하고 거룩한 것과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성인은 기적을 행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만이 기적을 행하지만, 성인들은 중보자이다."라고 말했다.[16]

도쿰의 성 보니파시오의 성당에 있는 성물: 가운데 뼈 조각은 도쿰의 보니파시오의 것이며, 왼쪽과 오른쪽의 접힌 종이는 누르시아의 베네딕토와 클레르보의 베르나르의 뼈 조각을 담고 있다. 은둔자 교회 바르프하우젠


초기 교회에서는 순교자와 다른 성인들의 유해를 건드리지 않고 묘지나 로마 카타콤에 남겨두었다. 그러나 순교자 성당이 무덤 위에 세워지면서 성인의 유해 가까이에 묻히는 것이 영혼에 유익하다고 여겨졌고, 구 성 베드로 대성당을 포함한 여러 "장례식장"이 순교자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22]

일부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레고리오 투르를 포함한 성인들의 무덤의 흙에 치유 능력을 부여했다. 투르의 마르티누스 숭배는 메로빙거 갈리아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으며, 그레고리오 투르는 성 마르티누스의 중재에 기인한 기적에 대해 광범위하게 저술했다.[17] 네스토리우스파는 사도 도마의 무덤 흙으로 만든 ''하나나''를 사용했다.[18][19]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는 성 요한 다마스케노스[32]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제단에 성물이 있어야 한다고 선포했는데, 이는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 교회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인 성물 숭배는 성인들이 하늘에서 지상 사람들을 위해 중보 기도한다는 믿음을 반영한다.[21]

중세 시대에 성물에 귀속된 많은 기적 이야기들이 「황금 전설」이나 하이스터바흐의 카이사리우스의 작품과 같은 성행전 책에 수집되었다. 이러한 인기 때문에 성물 수집과 거래가 교회, 왕족, 귀족, 상인 계급으로 확산되었다.

1563년 트렌토 공의회는 성인의 시신 숭배와 성물 숭배에서 미신과 불결한 이익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2] 예수와 관련된 성물도 많이 있다.

|thumb|upright|성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상완골, 성 요셉 교회, 마카오]]

그레고리우스의 「프랑크 역사」 서문에서 에르네스트 브레호는 성물에 강력한 매력을 준 로마-기독교 개념을 분석했다. 그는 그레고리우스가 끊임없이 사용하는 ''sanctus''와 ''virtus''를 구분했다. ''sanctus''는 "신성한" 또는 "거룩한"이라는 의미를, ''virtus''는 "신성한 사람이나 사물에서 나오는 신비로운 힘... 초자연적인 것에서 나와 자연에 영향을 미치는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힘... 이러한 접촉점과 양보는 우리가 계속해서 듣는 기적들"을 의미한다.[23]

성인 존경은 2세기 중반경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 박해로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의 유해를 신자들이 정성껏 묻고 그들의 삶과 덕을 기리며 시작되었다. 신자들은 성인의 기일에 무덤에 모여 의식을 거행하였고, 순교자의 유해를 중심으로 성당이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후, 순교자나 성직자, 신자에게 사후에 "성인" 칭호가 주어졌고, 성인과 그 유물에 보호와 신에게의 중재를 구하는 다양한 종교적 실천이 형성되어 갔다. 여기에는 매일의 기도(願掛け), 치유의 기적(奇跡) 등이 포함된다.

2. 1. 고대

고대 그리스에서는 도시 또는 신전이 존경받는 영웅의 유해나 유품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영웅 숭배의 일환이었다.[2] 영웅과 관련된 창, 방패, 무기류, 전차, 배, 선수상, 가구, 의복 등은 신전에 전시되었다. 스파르타의 레우키피데스 신전은 레다의 알을 전시했다고 전해진다.[2] 뼈는 특별한 힘을 지녔다고 여겨지지 않았고, 기적이나 치유도 일반적으로 귀속되지 않았다.[2] 오이디푸스의 무덤은 아테네를 보호한다고 알려져 있었다.[3]

오이디푸스를 기리는 그리스 영웅 숭배를 묘사한 아mphora (아풀리아식 적색 그림 도자기, 기원전 380~370년)


오레스테스와 테세우스의 유골은 원래 안치 장소에서 옮겨져 재매장되었다.[4] 델포이 신탁의 조언에 따라 스파르타인들은 오레스테스의 유골을 찾아 고향으로 가져왔다.[5] 플루타르코스는 아테네인들도 신탁의 지시를 받아 돌로피아인들로부터 테세우스의 유물을 찾아 훔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기록했다.[6] 에우리스테우스의 시신 또한 아테네를 보호한다고 여겨졌으며,[7] 테베에서는 예언자 암피아라오스의 시신이 그러했다.[8] 플루타르코스는 마케도니아의 데메트리오스 1세와 포키온의 시신에 대해서도 테세우스와 유사한 과정을 이야기한다.[9] 에피다우로스의 아스클레피오스와 마케도니아의 페르디카스 1세의 유골이나 유해는 가장 깊은 존경심으로 대우받았다.

테세우스의 유물과 마찬가지로, 유골은 때때로 거대하다고 묘사되는데, 이는 영웅의 "실제보다 큰" 지위를 나타낸다.[2] 이러한 뼈는 선사 시대 생물의 뼈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었으며, 이러한 발견이 그 장소의 신성화를 촉구했을 수 있다.[2]

시인이자 예언자인 오르페우스의 머리는 레즈보스로 옮겨져 신전에 모셔져 신탁으로 방문되었다.[10] 2세기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는 오르페우스의 유골이 돌 항아리에 담겨 디온 근처 기둥에 전시되어 있었고, 예언적인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고 보고했다.[11]

초기 기독교에서는 2세기 중반경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 박해로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의 유해를 신자들이 정성껏 묻고 그들의 삶과 덕을 기리며, 신앙생활의 모범으로 삼으면서 성인 공경이 시작되었다. 신자들은 성인의 기일에 무덤에 모여 의식을 거행하였고, 순교자의 유해를 중심으로 성당이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후, 순교자나 성직자, 신자에게 사후에 "성인" 칭호가 주어졌고, 성인과 그 유물에 보호와 신에게의 중재를 구하는 다양한 종교적 실천이 형성되어 갔다.

''파스칼 연대기''에 따르면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의 유골이 숭배되었다고 한다.[12] 그러나 조로아스터교의 전통과 경전은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탑에 봉안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2. 2. 중세

아우구스티누스, 성 암브로시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성 크리소스토무스, 성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와 같은 교부들의 저술은 성물 숭배 관행을 보여준다.[15] 토마스 아퀴나스는 친척의 유품처럼 죽은 자와 관련된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언급했다.[20]

초기 교회에서는 순교자와 다른 성인들의 유해를 건드리지 않고 로마 카타콤과 같은 묘지에 안치했다. 그러나 순교자 성당이 무덤 위에 세워지면서 성인의 유해 가까이에 묻히는 것이 영혼에 유익하다고 여겨졌다.[22] 구 성 베드로 대성당을 포함한 여러 "장례식장"이 순교자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

일부 초기 기독교인들은 성인들의 무덤의 흙에 치유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투르의 마르티누스 숭배는 메로빙거 갈리아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으며, 그레고리오 투르는 성 마르티누스의 중재에 기인한 기적에 대해 광범위하게 저술했다.[17] 네스토리우스파는 치유를 위해 사도 도마의 무덤 흙으로 만든 ''하나나''를 사용했다.[18][19]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제단에 성물이 있어야 한다고 선포했으며, 이는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 교회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인 성물 숭배는 성인들이 하늘에서 지상 사람들을 위해 중보 기도한다는 믿음을 반영한다.[21]

중세 시대에 성물과 관련된 많은 기적 이야기들이 「황금 전설」이나 하이스터바흐의 카이사리우스의 작품과 같은 성행전 책에 수집되어 성물 수집과 거래가 교회, 왕족, 귀족, 상인 계급으로 확산되었다. 1563년 트렌토 공의회는 성인의 시신 숭배와 성물 숭배에서 미신과 불결한 이익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2]

|thumb|upright|성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상완골, 성 요셉 교회, 마카오]]

로마는 유럽 순례자들에게 성지보다 접근이 용이하여, 콘스탄티누스 1세가 성 베드로와 성 바울의 무덤 위에 바실리카를 세운 후 주요 순례 목적지가 되었다. 중세 동안 다른 종교 건축물들도 성유물을 얻게 되면서, 11세기와 12세기에 많은 순례자들이 사도 야고보(야고보 세베대오의 아들)의 유물이 보관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몰려들었다.[24]

프랑스 혁명시기 많은 사원이 파괴되었으나, 나폴레온과 피우스 7세 교황 아래 를 통하여 왕정 복고 시대에 파괴된 성당을 재건하기 위해 로마의 카타콤베에서 많은 성유물이 프랑스로 반입되었다.[65]

성유물은 기증, "새로운 발견", 업자로부터의 구입, 강탈 등 다양한 수단으로 입수되었다. 유해의 이동과 분할이 진행되었고, 가짜도 많이 유통되었다. 성유물 약탈과 도굴은 로마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였으나, 약탈 성공은 성인이 기존 묘소에 불만이 있었음을 증명한다는 논리가 퍼졌다.[66]

11세기 말부터 13세기에 걸쳐 십자군 원정은 많은 성유물을 서유럽으로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제4차 십자군 원정(1202년-1204년) 당시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많은 성유물이 약탈되어 서유럽으로 옮겨졌다.[67]

2. 3. 근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지역에서는 성유물 숭배가 금지되었고, 많은 성유물이 파괴되었다.[72][73] 장 칼뱅은 성인들의 유해가 여러 곳에 중복되어 존재한다고 비판하며, 가짜 성유물 문제를 지적했다.[38][39]

프랑스 혁명 당시 성상 파괴 운동으로 많은 사원이 파괴되었다. 이후 1801년 협약을 통해 나폴레옹피우스 7세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다. 왕정 복고 시대에는 파괴된 성당을 재건하기 위해 로마의 카타콤베에서 많은 성유물이 프랑스로 반입되었다.[65] 그러나 19세기에는 성유물의 진위 논쟁이 일면서 성유물 숭배가 쇠퇴하였다.

가톨릭 교회는 성유물 사용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교회법은 성물이 공개적으로 숭배되려면 성인성시성 또는 성인이 살았던 지역 주교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했다.[40][41] 인증된 성물의 문서와 성궤에는 일반적으로 밀랍 봉인이 붙어 있다.[40]

3. 여러 종교의 성유물

3. 1. 기독교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사도들, 순교자, 성인들의 유해나 유품을 성유물로 존경한다. 성유물은 기적을 일으키고 신자들을 보호하며, 신에게 중재하는 힘을 가진다고 믿어진다.[16] 대표적인 성유물로는 참십자가, 성못, 성해면, 성창, 가시관, 예수의 솔기 없는 옷, 롬바르디아 철왕관 등이 있다.

초기 교회에서는 순교자와 다른 성인들의 유해를 건드리는 행위는 행해지지 않았고, 로마 카타콤과 같이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순교자 성당이 세워지면서 성인의 유해 가까이에 묻히는 것이 영혼에 유익하다고 여겨졌다.[22]

아우구스티누스, 성 암브로시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성 크리소스토무스, 성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와 같은 교부들은 성물 숭배를 당연하게 여겼다.[15] 토마스 아퀴나스는 친척의 유품처럼 죽은 자와 관련된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였다.[20]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는 모든 제단에 성물이 있어야 한다고 선포했다. 이는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 교회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20] 성인의 성물을 숭배하는 것은 성인들이 하늘에서 사람들을 위해 중보 기도한다는 믿음을 반영하며, 많은 치료와 기적들이 성물 자체가 아닌 성인의 거룩함 때문이라고 여겨진다.[21]

1563년 트렌토 공의회는 성인의 시신을 통해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가르쳤다. 또한 성인의 호칭, 성물의 숭배, 성화의 사용에서 모든 미신과 불결한 이익은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22]

|thumb|upright|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상완골, 성 요셉 교회, 마카오]]

그루지야의 성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시오니 대성당, 트빌리시, 그루지야)


팔레스타인 마르 사바 수도원의 카톨리콘에 있는 성 사바스의 유물


성유물 숭배는 동방 정교회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동방 정교회 신학의 신성화 개념에 따라, 성인들의 육체는 신의 은총에 의해 변형된 것으로 간주된다. 정교회 예식서에서는 고인이 된 신자들의 유해를 "성유물"이라고 부르며 존경한다. 정교회 신자들의 시신은 방부 처리되지 않는다.

성인들의 성유물 숭배는 정교회에서 매우 중요하며, 교회는 종종 성인의 성유물을 눈에 띄게 전시한다. 아토스 산에 있는 많은 수도원에서 수도원이 소유한 모든 성유물은 매일 저녁 완전기도 때 전시되고 숭배된다. 정교회에서 성유물에 대한 숭배(그리스어; δουλια, ''dulia'')는 경배(λατρεια, ''latria'') 즉,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숭배와 명확하게 구별된다.

성유물 검사는 새로운 성인의 영광화(시성)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이다. 성화의 징후 중 하나는 성인의 성유물 상태이다. 어떤 성인들은 부패하지 않음 즉, 정상적인 조건에서 부패하지 않는다. 때로는 살이 썩더라도 뼈 자체가 성스러움의 징후를 보일 수 있다. 꿀색을 띠거나 성스러운 향기를 풍길 수 있다. 어떤 성유물은 몰약을 흘리기도 한다.

성유물은 교회의 성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별 감독은 성별될 교회 근처의 교회에 있는 빵접시(파텐)에 성유물을 놓고, 십자가 행렬로 새 교회로 가져가 성찬대(제단)에 놓는다.

성인의 성유물은 사제에게 감독이 주는 권능의 수단으로 성상에 수놓아진다. 성상은 성찬대(제단)에 보관되며, 그것 없이는 성찬식(성체)을 거행하는 것이 금지된다. 때때로 고정된 제단의 경우, 성유물은 제단 자체에 내장되어 밀랍으로 밀봉된다.[52]

3. 1. 1. 가톨릭 교회의 분류

가톨릭 교회는 2017년까지 성유물을 세 가지 등급으로 나누었다.

  • '''1등급 성유물:''' 그리스도의 삶의 사건(구유, 십자가 등) 또는 성인의 유해(뼈, 머리카락, 두개골,[43] 사지 등)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물건이다. 전통적으로 순교자의 유물은 다른 성인들의 유물보다 더 귀하게 여겨졌다. 성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은 더 귀중한 유물이다. 예를 들어, 헝가리의 성 슈테판 1세의 오른쪽 팔뚝은 통치자로서의 그의 지위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유명한 신학자의 머리는 그의 가장 중요한 유물일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머리는 그가 죽은 포사노바의 시토회 수도원의 수도사들에 의해 제거되었다. 성인이 자주 여행했다면 그의 발뼈가 귀하게 여겨질 수 있다. 가톨릭 교리에서는 성유물이 예배에 사용되려면 작고 알아볼 수 없는 부분으로 나뉘어져서는 안 된다고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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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등급 성유물:''' 성인이 소유하거나 자주 사용했던 물건, 예를 들어 십자가, 묵주, 책 등이다. 마찬가지로 성인의 삶에서 더 중요한 물건일수록 더 중요한 유물이다. 때때로 2등급 유물은 성인이 착용했던 물건(셔츠, 장갑 등)의 일부이며 ''ex indumentis''("옷에서")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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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등급 성유물:''' 1등급 또는 2등급 성유물과 접촉했던 물건.[44] 대부분의 3등급 성유물은 작은 천 조각이지만, 1천년기에는 기름이 인기가 있었다. 몬차의 유리병에는 그리스도 삶의 주요 장소 앞에서 타오르는 램프에서 수집한 기름이 들어 있었고, 일부 성유물함에는 기름을 부었다가 다시 빼낼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성인의 뼈에 닿은 천을 "''ex brandea''"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ex brandea''는 엄격하게 사도들의 시신이나 무덤에 닿았던 옷 조각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러한 경우에만 사용되는 용어이며 3등급 성유물의 동의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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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성인 시성부는 3등급 성유물을 폐지하고 성유물 분류를 두 단계로 변경했다. 중요한(insigni) 성유물과 중요하지 않은(non insigni) 성유물이다. 전자는 시신이나 그 중요한 부분뿐만 아니라 화장 후 보관된 재의 항아리 전체 내용물을 포함한다. 후자는 시신의 작은 조각뿐만 아니라 성인과 복자들이 사용했던 물건을 포함한다.[45]

1983년 ''교회법''[46] 제1190조에 의해 교황청의 허락 없이 성유물을 판매하거나 다른 수단으로 처분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3등급 성유물의 판매를 허용했다.[47] 성유물은 공개적으로 공경하기 위해 제단에 놓을 수 없다. 그것은 성체(성찬 예식에서 성별 후 성체와 성혈)의 전시를 위해 예약되어 있다.[48]

3. 2. 불교

불교에서는 부처와 여러 성현들의 사리가 숭배된다.[61] 부처의 죽음 이후, 그의 유해는 여덟 부분으로 나뉘었다. 이후 이 사리들은 불교가 전파된 곳곳의 에 봉안되었다. 부처의 원래 유해로 여겨지는 일부 사리는 현재까지도 남아 있으며, 그중에는 스리랑카에 있는 부처의 사리치아가 있다.

미얀마 만달레이에 있는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카니슈카 탑에서 발견된 부처의 사리(2005)


탑은 사리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건물이다. 많은 불교 사찰에는 탑이 있으며, 역사적으로 탑에 사리를 안치하는 것이 종종 사찰 전체의 기반이 되는 최초의 구조가 되었다. 오늘날 많은 탑에는 저명한 불교도들의 화장된 유골이나 링셀이 안치되어 있다. 드물게 두좀 린포체의 경우처럼 전체 시신이 보존되기도 한다. 1987년 그가 죽은 지 1년 후, 그의 시신은 프랑스에서 네팔 보우드나트 근처의 그의 사찰 중 한 곳에 있는 탑으로 옮겨졌다. 순례자들은 탑의 유리창을 통해 그의 시신을 볼 수 있다.

부처의 사리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부처가 실존 인물이었음을 상기시키며, 선한 덕을 증진시키는 데 사용된다.

3. 3. 이슬람교

이슬람교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유품을 성유물로 보존한다.[62] 무함마드의 수염과 발자국,[62] 알리의 검, 다윗의 검, 요셉의 터번, 모세의 지팡이, 아브라함의 항아리, 야히야의 팔뚝과 손 등 다양한 성유물이 톱카프 궁전 박물관의 내전에 보관되어 있으며, 이 성물들은 라마단 기간에만 볼 수 있다.[62]

이스탄불 에위프의 튀르베(묘소)에 보존된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발자국


무함마드가 소유했었다고 믿어지는 망토(아랍어: kherqa)는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중앙 사원에 보관되어 있으며, 큰 위기 상황에서만 공개된다.[64] 1996년 아프간 탈레반 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는 망토를 꺼내 Ulema(종교 학자)들에게 보여주었고, 아랍어: Amir-ul Momineen("신앙의 지휘관")으로 선포되었다.[64]

4. 성유물의 사회적 기능

4. 1. 권력 정당화

성유물은 신의 은총을 지상에 매개하여 기적을 일으킨다고 여겨졌다. 따라서 기적으로 명성이 높은 성유물을 소유한 자는 자신이야말로 신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는 정당한 권력자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중세 유럽 사회에서는 고위 성직자나 왕족, 귀족 등의 권력자들이 인맥과 재력을 총동원하여 예수 또는 인기 있는 성인의 성유물을 손에 넣으려고 경쟁했다.

중세에는 귀중한 성유물을 소유하는 것이 단순한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인 의도가 작용하여 고액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강한 신앙심을 가졌던 프랑스의 루이 9세는 그리스도가 썼다는 “가시관”이나 “성십자가”를 고액으로 구입했다고 한다. 그리스도교회가 성유물의 분배를 통해 그리스도교 세력을 확장하고 유럽에 남아 있던 이교의 관습을 그리스도교화하려고 한 데 비해, 세속의 권력자들은 그리스도교의 권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권위를 확립하고, 선물을 통해 다른 권력자들과 우호 관계를 맺기 위해 성유물을 활용했다. 13세기 이후 성유물의 인정과 이동에 대한 교황청의 통제가 강화되었는데, 이는 그리스도교회의 중앙 집권화와 관련이 있다.

4. 2. 지역 발전 촉진

성유물은 순례자들을 끌어들여, 이들을 수용하고 기념품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성유물을 소장한 곳뿐만 아니라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수도원, 교회, 마을에도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다.[27] 성유물은 휴대 가능하다는 점에서 소유, 목록 작성, 유증, 도난, 위조, 밀수가 가능했고,[28] 기존 유적지의 가치를 높이거나 새로운 장소에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29] 순례지에 바쳐진 헌물은 성인을 대신하여 헌물을 받은 지역 사회의 중요한 수입원이었다.[30]

패트릭 기어리에 따르면, 교회에 성인의 유해를 보관하는 것은 수입과 지위 측면에서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었으며, 성유물 획득과 지역 성인의 미덕을 알리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31] 지역 성직자들은 자신의 수호 성인을 홍보했고, 때로는 경비병들이 사망 직후 시체가 무단으로 해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죽어가는 성인을 감시해야 했다.[32] 기어리는 성유물을 얻기 위해 노령의 성인을 살해하는 위험이 합법적인 우려였다고도 제안한다.[31]

성유물은 활발한 시장을 형성하여 다른 휴대용 상품과 같은 무역로를 따라 거래되었다. 매슈 브라운은 9세기 이탈리아 부제인 데우스도나를 현대 미술상인에 비유하며, 그가 알프스를 건너 북유럽의 수도원 박람회를 방문했다고 설명한다.[33]

캔터베리는 1170년 헨리 2세의 기사들에게 암살된 캔터베리 대주교 성 토마스 베켓의 성유물을 보기 위해 여행한 영국 순례자들에게 인기 있는 목적지였다.[24] 베켓 사후 그의 후임자와 캔터베리 장은 그의 성유물을 이용하여 순교자 숭배를 빠르게 홍보했다. 여기에는 통치자에 대한 교회의 독립 주장, 유럽적 명성을 지닌 영국 성인에 대한 욕망, 캔터베리를 순례 목적지로 홍보하고자 하는 욕망이 동기로 작용했다. 베켓 사후 첫 해에 사당 기부금은 대성당 총 수입의 28%를 차지했다.[34] 성유물은 기적을 일으키는 힘으로 많은 순례자를 끌어들여 교회와 마을,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순례자(현재의 관광객)를 유치하여 지역 전체에 번영을 가져왔다.

5. 성유물과 예술

많은 교회들이 순례길을 따라 세워졌다. 유럽의 여러 교회들은 성유물(예: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을 모시고 순례자들의 방문을 환영하며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특별히 건립되거나 재건되었다.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들은 제단 뒤에 통로를 만들어 성유물을 보관하기 위한 여러 개의 작은 예배당을 설치했다. 외부에서 보면 이 작은 방들의 집합체는 교회 한쪽 끝에 아름답고 곡선이 있는 지붕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많은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들의 독특한 특징이다. 고딕 양식 교회들은 조각상과 성유물을 전시할 공간을 제공하는 높고 오목한 현관을 특징으로 한다.

미술사가이자 철학자인 한스 벨팅(Hans Belting)은 중세 회화에서 이미지가 성유물을 설명하고 그 진위를 증명하는 역할을 했다고 언급했다. 벨팅은 그의 저서 ''Likeness and Presence''에서 성유물 숭배가 중세 유럽에서 회화의 발전을 촉진하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했다.[32]

== 성유물함 ==

성유물함은 성유물을 보호하고 전시하는 데 사용되는 용기이다. 성유물 자체가 귀중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금, 은, 보석, 에나멜로 제작하거나 장식한 용기에 보관되었다.[54] 종종 상자 모양을 하지만, 그 안에 보관된 성유물을 모방한 다른 많은 형태도 있다.

스페인 아예르베의 산 페드로 교회에 있는 성물함


중세에는 상아가 성유물함에 널리 사용되었는데, 순백색은 내용물의 신성함을 나타내었다.[55] 이러한 물건들은 중세 전반에 걸쳐 유럽과 비잔티움 제국 전역에서 주요한 예술 작품의 형태를 이루었다.

16세기가 되면서 성서와 그리스도가 제정한 의식 외에는 은총을 얻을 방법이 없다고 주장하는 프로테스탄트 여러 교파에서는 성직 계급 제도와 함께 성유물이 부정되기 시작했다. 프로테스탄트는 성인 숭배와 함께 성유물 신앙도 금지했고, 프로테스탄트가 지배적인 지역에서는 성유물함과 함께 파괴되었다.

== 회화 ==

중세 회화에서 이미지는 성유물을 설명하고 그 진위를 증명하는 역할을 했다.[32] 미술사가이자 철학자인 한스 벨팅은 그의 저서 ''Likeness and Presence''에서 성유물 숭배가 중세 유럽에서 회화의 발전을 촉진하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했다.[32]

유럽의 여러 교회들은 성유물을 모시고 순례자들의 방문을 환영하며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특별히 건립되거나 재건되었다.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들은 제단 뒤에 통로를 만들어 성유물을 보관하기 위한 여러 개의 작은 예배당을 설치했고, 고딕 양식 교회들은 조각상과 성유물을 전시할 공간을 제공하는 높고 오목한 현관을 특징으로 한다.

5. 1. 성유물함

성유물함은 성유물을 보호하고 전시하는 데 사용되는 용기이다. 성유물 자체가 귀중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금, 은, 보석, 에나멜로 제작하거나 장식한 용기에 보관되었다.[54] 종종 상자 모양을 하지만, 그 안에 보관된 성유물을 모방한 다른 많은 형태도 있다.

중세에는 상아가 성유물함에 널리 사용되었는데, 순백색은 내용물의 신성함을 나타내었다.[55] 이러한 물건들은 중세 전반에 걸쳐 유럽과 비잔티움 제국 전역에서 주요한 예술 작품의 형태를 이루었다.

16세기가 되면서 성서와 그리스도가 제정한 의식 외에는 은총을 얻을 방법이 없다고 주장하는 프로테스탄트 여러 교파에서는 성직 계급 제도와 함께 성유물이 부정되기 시작했다. 프로테스탄트는 성인 숭배와 함께 성유물 신앙도 금지했고, 프로테스탄트가 지배적인 지역에서는 성유물함과 함께 파괴되었다.

5. 2. 회화

중세 회화에서 이미지는 성유물을 설명하고 그 진위를 증명하는 역할을 했다.[32] 미술사가이자 철학자인 한스 벨팅은 그의 저서 ''Likeness and Presence''에서 성유물 숭배가 중세 유럽에서 회화의 발전을 촉진하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했다.[32]

유럽의 여러 교회들은 성유물을 모시고 순례자들의 방문을 환영하며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특별히 건립되거나 재건되었다.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들은 제단 뒤에 통로를 만들어 성유물을 보관하기 위한 여러 개의 작은 예배당을 설치했고, 고딕 양식 교회들은 조각상과 성유물을 전시할 공간을 제공하는 높고 오목한 현관을 특징으로 한다.

6. 성유물 목록 (일부)

참십자가 조각은 전 세계 많은 교회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56] 성못은 몬차 대성당의 롬바르디아 철왕관과 비엔나 호프부르크 궁전 등에 보관되어 있다.[56] 예수의 솔기 없는 옷은 트리어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다.[56]

트리어 대성당에 있는 예수의 예수의 솔기 없는 옷
쾰른 대성당에는 성경의 동방박사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56]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사도 베드로의 유해가,[56] 성 바오로 외성 바실리카에는 사도 바울의 유해가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56]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는 성 야고보의 유물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56]

7. 한국과 성유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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