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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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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담수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단종 복위 운동 실패 후 고초를 겪었으나 벼슬을 거부하고 은거하며 생육신으로 불렸다. 그는 성석용의 증손이며 성삼문의 육촌 형으로, 1450년에 진사가 되었다. 단종 복위 사건으로 고문을 받고 유배된 후 풀려났으며, 세조가 관직을 제수했으나 거절하고 파주에서 낚시와 독서로 여생을 보냈다. 사후 정조에 의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서산서원과 물계서원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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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담수 - [인물]에 관한 문서
개인 정보
이름성담수
한자 이름成聃壽
미수(眉叟) 또는 이수(耳叟)
문두(文斗)
시호정숙(靖肅)
기본 정보
출생일?
사망일?
거주지조선 경상도 창녕
조선 경상도 함안
분야성리학
경력
직책조선의 경상도 창녕 참봉
임기1456년 2월 29일~1456년 3월 8일
임금조선 세조
경력정치인, 문인
학력1450년 진사시 합격
서훈이조판서 추증
가족 관계
아버지성희(成熺)
형제동생 성담년, 여동생 성씨
친인척외조카 이기, 외조카 이행, 당숙 성승, 6촌 형 성삼문, 성삼빙, 성삼고

2. 생애

성담수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생육신 중 한 명이다. 1450년(세종 32년)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사육신 사건이 발생하자 벼슬을 포기하고 은거하였다.[1] 세조참봉 등의 관직을 제안했지만, 성담수는 자신을 감시하려는 의도임을 알고 거절하였다.[1] 이후 김시습, 이맹전(李孟專), 원호, 조려(趙旅), 남효온 등과 함께 생육신으로 불렸다.[1]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성삼문 등이 처형되자, 성담수 역시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김해시유배를 갔다.[1] 3년 만에 풀려났지만, 평생 은거하며 낚시와 독서로 소일하였다.[1]

사후 정조대에 이르러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함안의 서산서원과 창녕의 물계서원에 배향되었다.

2. 1. 가계와 초기 이력

보문관대제학 성석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개(成槪)이고, 아버지는 홍문관 교리를 지낸 성희(成熺)이며, 어머니 이씨는 호조판서를 지낸 이견기(李堅基)의 딸이다.[1] 성승은 그의 당숙이고 성삼문은 그의 6촌 형이었다.[1] 1450년(세종 32년) 진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관직을 포기했다.[1] 그 후 세조가 여러 번 참봉, 봉사 등의 관직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1] 경기도 파주시의 외진 곳에서 자연 속에 파묻혀 지내며 일생을 낚시와 독서로 소일했다.[1] 사후 정숙(靖肅)의 시호가 내려졌다.[1] 아버지 성희는 승문원 교리 등을 지냈다.[1] 단종 복위 사건으로 성삼문 등이 사형당했으며, 그도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1] 이어 김해시로 귀양 갔다가 3년 만에 겨우 풀려 나왔다.[1]

2. 2. 세조와의 관계 및 은거

세조는 성담수에게 참봉 등의 관직을 내렸으나, 성담수는 세조가 자신을 감시하기 위한 뜻임을 간파하고 이를 거절하였다.[1] 벼슬을 단념하고 경기도 파주시의 외진 곳에서 자연 속에 파묻혀 지내며 일생을 낚시와 독서로 소일했다.[1] 단종 복위 사건으로 성삼문 등이 처형되자 성담수도 체포되어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김해시유배되었고, 3년 만에 석방되었다.

그 뒤 성담수와 함께 은거한 대표적인 신하 다섯 명인 김시습, 이맹전(李孟專), 원호, 조려(趙旅), 남효온 등과 함께 사육신에 대비하여 생육신이라 불리기도 했다.[1]

2. 3. 생육신

세조는 성담수에게 참봉의 관직을 내렸지만 받지 않았다. 벼슬을 단념하고 경기도 파주시의 외진 곳에서 자연 속에 파묻혀 지내며 일생을 낚시와 독서로 소일했다. 단종 복위 사건으로 성삼문 등이 사형당했으며, 성담수도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이어 김해시로 귀양 갔다가 3년 만에 겨우 풀려 나왔다.[1]

세조는 참봉 등의 관직을 내렸는데 그는 세조가 자신을 감시하기 위한 뜻임을 간파하고 이를 거절하였다. 그 뒤 그와 함께 은거한 대표적인 신하 다섯 명인 김시습, 이맹전(李孟專), 원호, 조려(趙旅), 남효온 등과 함께 사육신에 대비하여 생육신이라 불리기도 했다. 사후 정숙(靖肅)의 시호가 내려졌다.[1] 그의 사후 조선 성종 때 동생 성담년이 관직에 나섰다.[1]

2. 4. 사후

사후 정숙(靖肅)의 시호가 내려졌다.[1] 조선 성종 때 동생 성담년이 관직에 나갔다.[1]

1782년(정조 6) 김시습, 원호, 남효온, 유응부 등과 함께 정조의 특명으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함안 서산서원과 창녕 물계서원에 성씨 일족들과 함께 배향되었다.[1]

3. 가족 관계

항목내용
할아버지성개(成槪)
아버지성희
어머니이견기의 딸
동생성담년 (성종 때 출사)
동생성담명(成聃命)
동생성담령(成聃齡)
동생성담중(成聃仲)
동생성담로(成聃老)
동생성담기(成聃紀)
여동생창녕 성씨


4. 기타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은 6촌 형제[1]이고, 명종을사사화를 날조하는데 가담한 이기는 생질(여동생의 아들)이었다. 성삼문은 6대 종형이며, 아버지 성희성삼문의 5대 종숙이므로 유배되었다.

관계이름
조부성개
부친성희
모친이견기의 딸
남동생성담년
여동생창녕 성씨
6촌 형제성삼문
생질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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